▣ 김도훈 기자
A.D.C: 여기 당신의 기차표가 있습니다, 에르큘 포와르씨. 하지만 여전히 출발까지는 한 시간여 남은 것 같네요.
포와르: 그렇다면 절 위해 기다리진 마시오.
A.D.C: 기다리지 말라구요? 허, 제 상관이 당신이 안전하게 출발하는지 꼭 지켜보고 오라고 하셨어요. (중략)
이스탄불에 도착하게 되면 푹 쉴 수 있을 겁니다. 거기 있는 성 소피아 사원은 정말 끝내주지요.
포와르: 아, 보신 적이 있나 보죠?
A.D.C: 아뇨.
(1974) 중에서
KTX는 내 생활을 바꿔놓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새마을호로 4시간 걸리던 거리를 이제는 2시간30분에 갈 수 있다. 아침 출근도 문제없어졌다. 부산에서 월요일 첫 차를 타면 10시까지는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의 사무실로 출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난 주말의 고향 나들이는 악몽이었다. 부산행 KTX는 (언제나처럼) 의미 없는 정차를 반복하더니 결국 18분여 늦게 도착했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도 (언제나처럼) 15분이 늦었다. 오해 마시길. 나는 인생의 20분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에 대한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직장인 관련 베스트셀러의 맹신자가 아니다. 까짓 20분. 만성 변비만 고쳐도 도로 회복 가능하다. 진짜 악몽은 연착이 아니었다. 뒤로 기울어진 특실 좌석은 아무리 용을 써도 정상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다른 차량에 서 있던 승무원을 데려와 불편을 호소했더니 “남는 자리에 앉으시라”는 말만 돌아왔다. 새 좌석의 바닥에는 탑승객이 뿌려놓고 간 얼음 덩어리들이 가득했다. 승무원은 발로 얼음조각들을 이리저리 휘젓더니 사라졌다. 불편한 마음으로 KTX 매거진을 펼쳤다. 해고된 여승무원들의 요구가 얼마나 헛된 것이며, 그들 없이도 KTX의 훌륭한 서비스는 예전과 다름없다는 내용의 글이 두 페이지에 걸쳐 핏대를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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