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서고 자학하고 늪에 빠지며 경계와 금기를 허무는 개그맨들…쉽게 질리는 대중의 입맛을 의식해 극단적으로 간다고 웃음을 찾을 수 있나
▣ 강명석 기획위원
아이와 부모가 함께 하고, 군인과 시험 준비 중인 고3도 한다. 해외의 유학생과 이효리도 한다. 이젠 세계 정복(?)도 꿈이 아니다. 한국방송 의 ‘골목대장 마빡이’ 얘기다. 요즘 ‘골목대장 마빡이’의 출연진들이 하는 동작 따라하기는 전 국민의 놀이가 됐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빡이 릴레이’를 진행해 해외 유학생까지 마빡이 동작을 따라하고, 어떤 네티즌은 마빡이 동작을 개발해 인터넷에 올린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개그맨의 유행어나 행동은 따라하기의 대상이다. 그러나 ‘골목대장 마빡이’의 재미는 단지 동작 흉내내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골목대장 마빡이’는 더 이상 출연진만의 창작물이 아니다. 그것은 마빡이 따라하기를 매개로 이어진 네티즌들의 거대한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다. ‘대빡이’ 김대범이 거리에서 이마를 3천 번 두들기는 ‘삼천빡’을 한 뒤 이 동영상을 미니홈피에 올리자 네티즌들이 그에게 새로운 임무를 제시하고, 네티즌들이 자신이 고안한 새로운 마빡이 동작을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로 찍어 보내면 출연진들이 그중 가장 반응이 좋은 동작을 뽑아 다음주에 직접 해보는 식이다.
이는 아이러니한 일이다. ‘골목대장 마빡이’는 첫 무대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대신, 동시에 단명이 예상된 코너였다. 개그맨이 지칠 때까지 동작을 반복하는 것만으로 웃기는 코너가 오래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골목대장 마빡이’의 그 단순한 동작은 무대 밖의 네티즌들과 연결되자 누구나 쉽게 개그를 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됐다. ‘골목대장 마빡이’는 무대와 무대 바깥, 개그맨과 관객의 경계를 없애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얻었다. 이것은 한국 역사상 가장 ‘웃기기 어려운’ 요즘 개그맨들의 새로운 생존 전략이다. 지극히 짧은 호흡과 내러티브보다는 아이디어가 중심이 되는 공개 코미디에 익숙해진 지금의 관객들은 무슨 코너든 쉽게 질린다. ‘영구’ 심형래처럼 캐릭터 하나로 몇 년을 가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점점 더 아이디어의 수준은 높아져야 하는데 코너의 수명은 짧아진다. ‘골목대장 마빡이’뿐만 아니라 의 일부 개그맨들은 개그의 모든 경계를 허물면서 해법을 찾았다.
역사상 가장 ‘웃기기 어려운’ 요즘
‘착한 녀석들’은 개그와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이들은 어떤 준비된 콘셉트의 개그를 선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시종일관 웃기지 못해 ‘편집되는’ 자신들의 처지를 자학한다. 심지어는 방청석 사이에서 도화지에 ‘개콘 재미없어’ 같은 글귀를 쓴 채 말없이 서 있거나, 다른 코너에 ‘난입’해 출연진을 납치하고 자신들이 코너를 차지하기도 한다. 이건 문자 그대로 ‘익스트림’이다. 개그맨은 프로그램에서 절대적인 룰처럼 여겨졌던 코너와 코너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비웃으니 익스트림이고, 이미 이런 개그계의 룰을 모두 알고 있고 그것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웃는 관객들 역시 익스트림이다. ‘봉숭아 학당’에서 ‘강유미 기자’라는 캐릭터로 매주 출연진들의 실제 이야기를 전달하는 개그우먼 강유미나, ‘패션 7080’이 어느 순간부터 그 우스꽝스러운 옷차림 그대로 실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그 결과를 관객에게 알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개그가 현실과 만나며 개그가 현실을, 현실이 개그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순간의 쾌감을 전달한다. ‘패션 7080’ 출연진들이 매번 자신들이 바깥에서 올린 ‘전과’를 직접 찍은 사진을 통해 보고하며 “합성 아닙니다”라고 강조하는 것 역시 이런 맥락이다. 무대 위에서만 존재할 줄 알았던 ‘패션 7080’팀의 우스꽝스러운 복장이 현실에서 그대로 벌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기존 공개 코미디의 패턴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패턴을 벗어나는 새로운 재미를 얻는다. 무대 위에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자, 그들은 무대 바깥마저 웃음 소재로 삼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개그와 현실의 경계 허물기는 관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공개 코미디에서 가능한 포맷이다.
삭발한 머리 위에 생고기 올리기?
그래서 비공개 코미디를 선언한 한국방송 는 ‘하드코어’를 웃음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의 인기 코너인 ‘타짱’의 아디이어는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앞에 두고 기상천외한 분장으로 상대방을 웃기는 것은 버라이어티 쇼에서도 종종 등장했다. 그러나 ‘타짱’의 내용물은 그런 코너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그 모든 것을 넘었다. 과연 공중파 방송에서 개그맨 양배추가 웃통을 벗은 채 실제와 흡사한 돼지나 닭의 탈을 쓰고, 심지어 닭 탈을 쓴 채로 ‘계란을 깨 먹는’ 모습이 나올 거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또 삭발한 자기 머리 위에 생고기를 얹는 개그맨 윤성호는 어떤가. ‘타짱’의 재미는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콘셉트의 코너에서 대중이 ‘설마’하던 것을 넘어 아예 생각조차 못한 수위의 개그를 선보인다는 데 있다. 그래서 ‘타짱’은 어떤 이에게는 유머지만, 어떤 이에게는 ‘혐오’나 ‘엽기’로 분류될 수도 있다.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하는 ‘막무가내 중창단’ 역시 마찬가지다. 가사 내용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은 의 ‘도레미합창단’이 이미 보여준 아이디어지만, ‘막무가내 중창단’은 ‘도레미합창단’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위를 보여준다. ‘벽에 걸린’이라는 가사가 나오면 진짜 거리에 있는 벽에 걸리고, ‘늪에 빠진’이라는 가사가 나오면 진짜 늪(!)에 빠진다. 개그맨 유상무가 늪에 빠져 거의 몸이 잠겼다가 제작진에 의해 겨우 빠져나오고, 한겨울 늪지에서 찬물로 몸을 씻는 모습은 외국에서라면 코미디가 아니라 류의 프로그램에 속하는 영역처럼 보인다. 또 도시의 히어로 따귀맨이 도시의 악인을 처단하는 ‘따귀맨’은 주인공의 따귀를 맞는 적의 모습을 극단적인 슬로모션으로 보여준다. 뺨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침이 튀는 모습이 그대로 등장한다. 이쯤 되면 가 왜 공개 코미디 대신 스튜디오와 ENG 카메라 녹화를 선택했는지도 이해가 된다. 그건 과거와 같은 시추에이션 코미디로의 회귀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개 코미디에서 미처 못한 것들을 다 해보기 위해서였던 셈이다.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지자 그들은 정말로 ‘늪’에 빠져들었다. 무슨 코너든 1~2개월만 지나면 ‘식상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개그맨으로 살기 위해서는 개그 프로그램 출연뿐만 아니라 온갖 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개그의 ‘끝의 끝’으로 다다른 것이다.
눈물겨운 개그가 가져온 비극
호오는 각자 다르겠지만 웃기기 위해 지금의 공개 코미디 형식 안에서, 혹은 그 경계를 무너뜨리면서까지 모든 것을 다 하는 그들의 모습은 눈물겨울 정도로 감동적이다. 어쩌면 이런 ‘익스트림’이나 ‘하드코어’ 개그는 지금보다 개그맨의 처우가 더 좋아진다면 공중파 방송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순간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그맨들의 이 눈물겨운 감동은 비극을 수반한다. 개그가 극단에 치달을수록, 그것을 보고 웃을 수 있는 대중은 점점 소수가 된다. ‘착한 녀석들’의 개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그계의 현실에 대해 알아야 하고, ‘타짱’은 인터넷에서는 방송이 끝날 때마다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하지만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다. 공중파 방송사의 코미디가 모두 공개 코미디 위주로 흘러가면서 빠른 호흡과 급변하는 웃음의 유행에 적응하는 젊은 층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생긴 결과다. 그만큼 개그맨은 진보적인 웃음을 선보이게 됐지만, 그들의 대중적인 입지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열악한 조건에서 다시 지금의 개그 팬들을 상대로 더 센 것들을 내놓는 상황이 반복된다. 개그맨들이 좀더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더 여유 있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개그맨들이 흔히 ‘정통 코미디’라 불리는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의 등장을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익스트림이든 하드코어든, 혹은 시추에이션 코미디든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건 그들을 생존케 할 수 있는 더 많은 관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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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3사의 ‘개그 삼국지’에서 세 프로그램은 공개 코미디라는 점에서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 뚜렷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방송 는 박준형, 정종철 등 터줏대감이라 해도 좋을 만큼 오랫동안 를 지켜온 개그맨들을 중심으로 안정된 라인업을 구성, 개그맨들 간의 상호 작용이 더 쉽게 이뤄진다. ‘착한 녀석들’처럼 ‘개그에 대한 개그’를 하는 코너들은 충분한 시간 동안 개그맨의 캐릭터가 쌓일 수 있는 의 특성이 있기에 가능하다. 반면 SBS 은 ‘사랑의 카운슬러’처럼 현실적인 요소에 바탕을 둔 코너가 많은 와 달리 만화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독특한 콘셉트의 코너에 춤과 음악 등의 요소를 결합한다. 무슨 상황이 벌어지건 ‘서브 백 번!’을 외치는 ‘강대욱’이나 힙합을 소재로 한 ‘나몰라 패밀리’, 등장인물이 세 살 때부터 웃음을 잃은 외계인으로 설정된 ‘띠리띠리’가 대표적인 예.
문화방송 는 이들과는 또 다른 ‘제3의 길’을 추구한다. 는 문화방송이 이전에 보여준 내러티브가 강한 시추에이션 코미디, 그리고 액션이 강한 슬랩스틱 코미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모님’은 최근 사모님과 김 기사의 사랑 이야기를 가미해 더 뚜렷한 스토리를 보여주고, ‘주연아’는 애초에 과외 교사와 제자의 사랑이라는 설정이 깔려 있다. 또 슬랩스틱 액션이 가미된 ‘킬리만자로의 개’나 무술을 소재로 한 ‘선생곽원갑’도 의 한 기류를 형성한다.
다만 이렇게 제각각인 개그 프로그램들에도 하나의 공통점은 존재한다. 바로 중장년층 시청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코너들. 에는 ‘집으로…’가 있었고, 에는 ‘맨발의 코봉이’, 에는 ‘아홉 살 인생’이 있다. ‘익스트림’한 공개 코미디도 중장년을 중심으로 한 가족 시청자들을 무시할 수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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