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도 반복된 소재로 우리 곁에 온 세편의 멜로 드라마… 속 뻔한 사랑의 재발견
▣ 강명석 기획위원
질문은 또다시 반복된다. 로부터 계속됐던 그 질문.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생각하건, 혹은 ‘사랑이’에 귀가 번쩍 뜨이건, 심지어 ‘변하니’에 초점을 맞춰도 이 질문은 언제나 어렵다. 적어도 방송 드라마가 지금도 같은 질문을 던질 만큼. 겨울을 맞아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사랑들이 돌아왔다. 문화방송 과 한국방송 , SBS 은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드라마를 보여준다. 사촌남녀의 사랑과 불치병이란 설정을 동원한 , 친구의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던 남자가 난치병에 걸린 그의 여동생과 사랑하게 되는 , 그리고 조폭과 여의사의 사랑을 다루는 중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새로운 설정을 담은 작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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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인지 이 작품들에 대한 반응은 저조하다. 과 은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 중이고, 은 세 작품 중 그나마 높은 편이지만 과 같은 ‘대박’을 기록하진 못했다. 물론 드라마가 뻔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 작품은 오히려 그런 ‘옛사랑’을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지 증명한다.
‘명대사’ 버리고 일상에 주목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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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연인 시리즈’의 몇 가지 설정들을 반복한다. 전작들이 그랬듯 강재(이서진)는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남자고, 의사 미주(김정은)는 똑똑하고 귀여운 여자다. 형제 같은 사이면서도 라이벌 관계인 강재와 세연(정찬)의 대립구도는 과, 조폭으로 대표되는 남자들의 세계는 의 형사의 세계와 겹쳐 보인다. 그러나 은 정해진 설정 안에서 최대한 작품의 밀도를 높인다. 이 ‘명대사’의 남발과 갈수록 억지스러운 사건들로 작품의 몰입을 방해했던 것과 달리, 은 차분하게 두 사람의 감정선을 쌓아나간다. 강재는 어느 순간 자신의 연인의 옆집에 살고 있는 미주가 내는 소리에 신경을 쓰게 되고, 미주는 당뇨병에 걸린 강재를 걱정하며 정성스레 그의 입맛에 맞는 초콜릿을 고르는 자신을 발견한다. 예전처럼 ‘화끈한’ 악녀의 질투나 극단적인 사건은 없지만, 일상 속에서 서서히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그들의 모습은 연인이 있으면서도 미주에게 점점 끌리는 강재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반면 은 장르의 법칙 안에서 구성의 완성도를 높여 트렌디 드라마 특유의 재미를 최대한 뽑아내려 한다. 그들 사이에 어떤 설정이 있건 간에, 이 드라마 최대의 재미는 자신이 천재임을 숨기고 사는 태웅(현빈)과 ‘싸가지’ 없는 성격이지만 알고 보면 귀엽기 이를 데 없는 보라(성유리)의 티격태격하는 사랑이다. 마치 로맨틱 코미디 만화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그들은 서로 오해하고 다투면서도 계속 운전기사와 그를 부리는 아가씨의 관계로 쉴 새 없이 붙어다닌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들은 계속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함께 농구시합을 하고, 리포트를 쓰고, 때론 위기에 빠진 보라를 구하기도 하며 사랑의 감정을 키운다. 물론 그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은 그렇게 꽉꽉 눌러담은 에피소드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의 무게를 점점 무겁게 한다. 저렇듯 함께 있으면 즐거운 연인들에게 그들의 관계가 밝혀진다면, 그리고 태웅의 천재성이 드러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은 뻔한 트렌디 드라마라는 비판을 면키 힘들겠지만, 동시에 보는 내내 유쾌하게 남녀의 사랑을 즐기다가, 어느 순간 순정만화 같은 사랑을 보여주는 트렌디 드라마 특유의 재미를 최대한 높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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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에 걸린 첫사랑과의 만남
그리고 은 아예 그 진부해 보이는 사랑을 ‘진짜’로 만드는 나름의 기적(!)을 보여준다. 지석(강지환)이 갑자기 불치병에 걸리고, 그의 아내 정란(정혜영)이 엘리베이터에 우연히 함께 탄 미연(김하늘)이 있는 앞에서 지석에게 무신경하게 암치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사건을 전개시키기 위한 억지스러운 전개다. 그러나 의 오종록 PD는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만의 연출을 통해 가슴 절절한 현실로 만든다. 거의 롱테이크에 가까울 정도로 카메라가 차분히 등장인물의 행동을 따라가는 사이, 등장인물은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절절한 것인지 표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얻는다. 어둠이 깔린 주방에서 차분하게 요리를 준비하다가 어느 한순간 자신의 상황에 괴로움을 느끼는 정란의 마음이나 친구들과 계속 이어지는 술자리 끝에 폭발하는 지석의 슬픔은 드라마를 감싸는 차분한 공기와 어울리며 첫사랑이 끝난 뒤 ‘그저 그랬던’ 인생을 살아가던 남자가 그 일상과 부딪치는 파열음을 격렬하게 잡아낸다. 절망 끝에서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사랑을 택하는 남자의 모습을 극단적인 감정표현으로 보여주는 강지환의 연기 역시 올해의 재발견이라 할 만큼 인상적이다.
물론 이 모든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온 멜로드라마들의 사랑은 뻔하고, 진부하고, 옛날의 것들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을 보여주는 데 필요한 것이 꼭 세련된 설정이나 사실적인 일상의 묘사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 모두에게 각자의 사랑이 있듯, 드라마에도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존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 ‘사랑’의 모습은 반복됐으되 그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 이 드라마들에 대한 대중의 외면은 그래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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