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서 탈인 두 남녀가 지독히 싸우다 사랑해버리는 드라마 …자장면 먹는 내 모습도 이해해 줄 ‘그’를 꿈꾸는 새로운 여성 판타지 탄생
▣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연애 잘하는 여자와 못하는 여자의 차이. 연애 잘하는 여자는 남자 앞에서는 우아하게 썰어먹는 음식을 조금씩 나눠 먹지만, 연애 못하는 여자는 남자 앞에서도 자장면에 막걸리를 먹는다. 연애 잘하는 여자는 필요하다면 남자 앞에서 아프지 않아도 아픈 척할 수 있지만, 연애 못하는 여자는 아파도 파스 하나 붙이면 벌떡 일어난다. 그래서 문화방송 의 안나(한예슬)는 참 사랑받기 힘들다. 안나는 미술·음악·영어에 능하고, 자신의 힘으로 막대한 돈도 벌었다. 한편 라이벌 유경(박한별)은 철수(오지호)를 차고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하려다가 파혼당한 뒤 다시 철수에게 접근하지만, 안나는 한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다. 그러나 완벽한 그녀에게 한 가지 없는 것. 유경은 마음에 드는 남자 앞에서는 일부러 쓰러지기라도 하면서 그 남자에게 접근하지만, 안나는 좋아하는 남자가 마음에 안 들 때는 “꼬라지하고는~”부터 튀어나오며 남자를 밀어낸다.
“생일선물 꼬라지하고는~"
남자가 다가올 틈조차 주지 않을 만큼 솔직해서 탈인 여자. 은 그런 연애‘만’ 못하는 여자가 ‘환상의 커플’을 만들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보여준다. 하나는 빌리(김성민) 같은 남자 만나기. 빌리는 안나가 아무리 자신의 구애를 무시해도 100일 동안 안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 뒤에는 안나가 “생일선물 꼬라지하고는~”을 몇 년째 반복해도 안나의 취향에 맞는 선물을 찾으려 노력한다. 빌리가 프러포즈를 시작한 지 100일째 되는 날 사실 안나가 빌리를 먼저 찾아왔고, 안나가 빌리의 선물을 받으며 “그래도 이제 내가 싫어할 거란 건 아네”라고 말하며 웃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빌리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안나의 모든 걸 그대로 받아주는 남자다. 이쯤 되면 그가 다른 드라마 남자 주인공과 달리 꽤 소심하고, 그리 남자다운 모습도 보여주지 못하는 건 전혀 흠이 되지 않는다. 그가 조금이라도 터프했다면 안나와 날마다 전쟁일 테니까. 심지어 그는 문화적 취향까지 섬세하다. 그러나, 이런 남자가 현실에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안나는 기억상실에 걸린 뒤 자장면 한 그릇 살 돈 없어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 와서 철수를 만난다. 철수는 생활력 좋고, 근본적으로 착한 심성을 가졌다. 하지만 자기 말 안 듣는 여자에게 “나상실이~!”를 외치는 그가 빌리처럼 안나에게 모든 걸 맞춰줄 리 없다. 그는 안나와 처음 만났을 때 다른 남자와 마찬가지로 그를 싫어한다. 그런 남자에게 안나 같은 여자의 장점을 인식시키는 방법. 최대한 같이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 철수는 안나와 함께 살면서 그가 툴툴대면서도 자기 할 일은 다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약한 척하지 않아 남자에게 부담주지 않으며, 자신의 조카들이 아플 때는 밤을 새워서 아이들을 돌보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된다. 반대로 안나는 철수를 통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고맙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배운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남자는 여자의 ‘내숭’ 대신 진실한 모습을 알게 되고, 남자에게 늘 오해받던 여자는 드디어 남자와 대화하는 법을 익힌다. 그래서 은 여성 판타지이되 기존 트렌디 드라마와는 다른 판타지를 보여준다.
연애에 고픈 사람들, 무릎 탁!
기존의 트렌디 드라마는 여자로부터는 미움을 받지만 남자들로부터는 사랑받는 청순가련형 여주인공이거나, 혹은 여자가 바꿔주지 않으면 사고뭉치로 남아 있을 것 같은 ‘잘생긴 재벌 2세 싸가지’를 만나 티격태격하며 밀고 당기기에 타고난 여성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은 연애의 기술은 없되 근본적으로 좋은 ‘사람’일 수 있는 안나를 남자들이 이해해보길 요구한다. 그래서 에는 남녀가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인 사랑 대신 지독히도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두 남녀가 일상을 통해 조금씩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들어선다. 여자가 자장면을 먹는 걸 보며 구박하던 남자가 자장면에 막걸리를 함께 먹는 여자의 모습을 귀엽게 바라볼 때, 남자의 구박에 툴툴대던 여자가 남자의 호의에 ‘고마워’라고 말할 때 같은, ‘연애에 고픈’ 사람의 무릎을 치게 하는 순간들. 기존 트렌디 드라마들이 여성 시청자들을 모든 걸 다 가지고 연애까지 잘하는 여주인공의 ‘워너비’로 만들었다면, 은 연애를 잘 못하는 여자들도 사실은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여자 안나의 사랑 이야기가 시청자들과 통한다는 것은, 또 모든 걸 가진 재벌 2세 대신 빌리와 철수 같은 캐릭터가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은 여성들의 또 다른 변화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자신을 다른 세계로 끌어들이는 능력 좋은 재벌 2세나 운명적인 사랑을 만들어주는 비운의 주인공 대신 나를 이해해주는 남자를 더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다고 말이다.
나도 알고보면 사랑스런 여자
사랑 따윈 필요 없…지는 않지만, 그것 때문에 나를 송두리째 바꾸고, 맞추기도 싫은 여자들. 그 여자들은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나는 겉으로 무뚝뚝하고 버릇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사랑스러운 여자라고. 남자들, 이젠 그들의 긴 생머리 대신 자장면을 맛있게 먹는 우리의 마음속을 좀 이해할 수는 없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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