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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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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조낸 즐겁삼 ㅋㅋㅋ

등록 2006-11-04 00:00 수정 2020-05-03 04:24

인터넷 문화를 예술로 끌어내는 젊은 미술가들의 도전…싸이월드·댓글·몰카 등 이용해 디지털화된 감성 보여준다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아트그룹 ‘니나노 프로젝트’는 특이하게 작품 활동을 한다. 새파란 젊음으로 미술계에 돌진한 이들이 활동하는 방식은 ‘게릴라’를 떠올리게 한다. 어디에서도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작품으로 소통한다.

이들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해 초 라는 작품을 포스터로 만들어 서울 대학로와 신촌 일대의 도로와 건물에 붙이고 뿌리면서부터다. 일종의 ‘아트 테러’였다. 이들은 수집한 소문을 근거로 싸이월드의 아바타 이미지를 이용해 상상의 미술계 인맥도 ‘아트맵’을 작성했다. 인터넷에서도 위력을 발휘하는 인맥이라는 키워드가 작품 활동의 모티브가 되었던 셈이다.

캔버스에 펼쳐진 일촌 파도타기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인맥도를 그린 것은 아닙니다. 술자리의 뒷담화로 이야기되는 친소관계를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어 표현한 것이죠. 어디에서건 아트맵을 본 사람들은 미술판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니나노 프로젝트에서 활동하는 한 작가의 말이다.

여기에서 인맥도의 진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고, 아트맵의 주변부에 표시된 사람이라고 해서 신세 한탄을 하지도 않는다. 이들의 작업에서 어려운 미학 혹은 예술적 해석을 곁들이려 하는 것은 ‘오버’에 가깝다. 다만 미술계의 단면에서 작은 재미를 느끼면 된다. 만일 싸이월드의 ‘일촌’ 파도타기가 떠올리는 것은 익명성이 주는 재미를 즐길 준비가 모자란 탓이리라.

이처럼 인터넷은 일상적인 삶의 패턴을 변화시키는 데 머물지 않는다. 색다른 표현 욕구를 갈망하는 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정보와 이미지의 바다를 거침없이 유영하는 대열에서 작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여기에서 작가들은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접목을 시도해 퓨전아트를 드러내고 인터넷 문화를 흡수해 새로운 표현 양식을 선보이려고 한다. 아트센터 나비의 최두은 전시팀장은 “디지털 문화는 스크린을 캔버스로 활용하게 만들었고 전시공간의 제약을 해소하고 있어요. 디지털이 표현 도구를 다변화하면서 소재의 폭도 넓어지죠. 이제 온라인에서 형성되는 문화의 흐름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작가들이 많아요”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미술작가들은 우리나라의 인터넷 문화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일까. 니니노 프로젝트가 인맥에 바탕한 사회적 맥락을 풀어냈다면 에밀고는 이방인의 눈으로 디지털화된 감성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말레이시아 태생의 중국계로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인 그에게 싸이월드는 예사롭지 않은 관찰 대상이었다. 그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첫 화면에 있는 ‘미니룸’을 현실 공간과 대비해 보여주는 시리즈 작업을 하고 있다.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로 꾸민 미니룸을 현실의 공간과 함께 읽도록 하는 것이다. 미니룸과 전혀 다르거나 미니룸을 재현한 공간은 환상과 실재에서 묘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기존의 예술을 둘러싼 신화와 위계에 짓눌릴 필요도 없다. 신세대 작가들이 일상적 풍경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문화의 흐름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작가적 상상력을 채우는 데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이미 인터넷은 이미지로 무장해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기술의 힘으로 예술적 상상력을 돌파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어쩌면 누리꾼들은 사물의 본질보다는 상징적 이미지를 신뢰하는지 모른다. 그 이미지들에 의해 갈수록 예술에 대한 정의가 복잡해지고 경계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을 해석하려는 순간 고민은 깊어진다.

당선사례에 ’즐~’ 악플 현수막을

누군가 온라인의 이미지를 오프라인 공간으로 꺼내는 순간 작가적 상상력이 빛을 내기도 한다. 인터넷은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은 ‘댓글(리플)문화’에서 엿볼 수 있다. 사이트에 올린 글이나 사진에 대한 자유로운 댓글을 사이버 민주주의의 단면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양방향 여론 형성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설치작가 박정환씨가 댓글을 주목했다. “댓글로 자신의 절제되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소통 방법이잖아요. 일방적으로 유통되는 정치 선전물에도 댓글 형식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정치인들이 악플이 달리는 이유를 성찰하기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리플아트’가 거리마다 펼쳐졌다. 박정환씨는 실제 현수막 아래에 자신의 생각을 담은 댓글을 새긴 현수막을 달았다. 예컨대 5·31 지방선거 당선자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거 때의 약속을 꼭 지키겠습니다’라는 당선사례 현수막 아래에 ‘구라 조낸 즐~이3!!!! 가드 올려라 면상나라간다 ㅋㅋㅋㅋ’라는 악플 현수막을 설치하는 식이다.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말투를 빌려 선거철에만 눈에 띄는 정치인을 질타하는 방식으로 소통의 욕구를 드러낸 셈이다. 이는 인터넷의 댓글이 오프라인에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이런 댓글 현수막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 순위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인터넷 환경에서 예술은 다양성의 차원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때론 합성과 혼성, 이종교배 등을 통해 의외의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영상 작업을 하는 양아치씨의 은 디지털 감시체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작가는 한 은행의 무인 카메라 앞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연기자가 여러 동작을 취하도록 했다. 그렇게 찍은 동영상 이미지를 누군가 해킹으로 빼낸 뒤, 흐릿한 영상에 영화 의 대사를 입혀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우리를 알게 모르게 감시하는 무인 카메라의 한 이미지 조작을 고발한 것이다. ‘몰카 사기극’이 사적인 감시라면 감시 드라마는 공적인 감시였다.

만일 무인 카메라가 네트워크에 접속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문제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인 카메라는 네트워크로 관리되고, 통신위성을 통해 개인이 감시되기도 한다. 그런 사실을 잊거나 무시한 채 살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휴대전화 이용자의 위치를 추적해주는 서비스인 ‘친구찾기’에 가입한 사람이 130만여 명이나 된다. 이런 현실에서 작가들이 공적인 감시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디어는 감시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느끼지 않으며 지낸다. 그것이 네트워크를 통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는 탓이다. 드라마 형식으로 공적인 감시의 실체를 전하고 싶었다.”

내밀한 인터넷 문화 따라잡기

이렇듯 우리의 인터넷 문화는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되고 통용된다.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번식하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은 사회구조를 보완하는 구실에 머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는 11월28일까지 서울 홍익대 앞 쌈지스페이스에서 열리는 ‘ㅋㅋㅋ ^^;’전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인터넷 문화의 내밀한 풍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익숙한 모습일 뿐이다. 이제 웹브라우저 2.0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여기에선 개인의 노출도가 높아지는 만큼 오프라인의 맥락에서 벗어난 문화가 싹틀 가능성이 높다. 그때 작가들은 무엇으로 인터넷 문화를 드러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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