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실패한 작업남 얘기 뒤로 지금껏 꺾이지 않은 가수 ‘싸이’의 인기… 멋있기 보단 재미있길 택한 그 남자의 살 떨리는 랩과 춤사위를 보라</font>
▣ 이문혁 CJ미디어 기획특집팀 프로듀서
영화 이 천만 관객을 이렇게 손쉽게 넘을지는 상상도 못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더욱 말이다. ‘한강에 괴물이 산다’라는 기가 막힌 꼬임의 결론이 ‘한강에 괴물이 살다가 죽었다’ 이외에는 없었다. 몇 달 동안 계속 풀풀 난 돈 냄새 때문에 비위가 상해서 눈을 필요 이상으로 흘긴 탓인가? 여하튼, 진짜 ‘괴물’은 한강이 아니라 꼬이면 여지없이 넘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으로 천만 관객 돌파 뉴스를 봤다. 김기덕 감독이 내비치는 섭섭함의 대상도 영화 의 성공이 아니라, 그렇게 열심히 영화를 보면서도 자신의 혹은 다른 영화에는 눈길 주는 것을 꺼려하는 관객이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식의 질문 하나. 정말 대중은 올바른 판단을 하기 힘든 걸까?
‘작업의 정석’을 아는 압구정 청년
가수 싸이는 시작부터 작업남이었다. 실패한 작업남의 이야기 를 가지고 처음 사람들 앞에 섰을 때만 해도 그저 해프닝으로 끝나지 싶었다. 일단 그의 외모가 그리고 무대에서의 몸짓이, 하물며 쏘아대는 랩의 톤까지도 이른바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처음 그를 만나 인터뷰를 했을 때 아차 싶었다. 한마디로 만만치가 않았다. “힙합은 원래 좀 배고픈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니에요?”라는 비비 꼬인 질문에 “이 배로 고파봤겠습니까? 배부른 사람들도 힙합 할 줄 안다는 걸 좀 보여주려고요” 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거침없이 배를 어루만지던 그였다. 의도된 위악, 계산된 자기 비하가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를 그는 아는 듯 보였다. “랩 연습하느라고 외국 유명한 곡에 한국말로 가사를 붙여보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라는 말에서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고생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유복한 가정의 버클리음대 유학생이 재미로 할 수 있는 경지는 넘어선 노력까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 머지않아서 “사람 만나면 사람만 봐라”라며 “이 10원짜리야”라고 호통치는 못생겼지만 당당한 압구정 청년의 작업에 대중은 반응했다. 〈Psy From The Psycho World〉라는 그의 첫 음반 제목처럼 그는 압구정이라는 ‘미친’ 나라에서 온 똘아이(?)였고, 맛간 한 청년의 앞뒤 안 가리는 실패한 작업담에 대중은 열광했다. 그러면서도 영민한 그는 대중에 대한 ‘작업의 정석’을 놓치지 않았다. 멋있기보다는 재미있을 것. 사람들은 절대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않는다는 걸 알았던 싸이, 배반한 ‘압구정 보이’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더 큰 작업에서는 ‘새’가 되지 않았다. 그럼 다시 로.
영화 하나의 성공이 문화방송 으로까지 이어진 이유는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영화의 성공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한강에 사는 괴물이 죽는 걸 1천만 명이 궁금해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호기심이 조작된 혐의가 짙다는 진실이다. 강요된 쏠림과 의도된 대박, 결국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Winner takes all)가 아니라 모두 가진 자만이 승리자가 되는 뒤집어진 현실이,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한 영화감독이 조국의 대중을 불신하게까지 만들었다. 숫자가 작품의 질을 말해주는 세상, 흥행작이 곧 성공작이 되는 판국에서 그의 울부짖음은 십수 편을 만들었으나 고작 100만 관객을 끌어모으는 데 그치고 만 자신의 영화들에 대한 마지막 예의였는지 모른다. 여기서 또 한 번 ‘캐리 브로드쇼’ 어투로. “그럼 대중적이라는 것이 꼭 나쁜 것일까?”
저돌적 랩과 깔끔한 음악, 그리고 춤사위
가수 싸이는 자신의 음악을 직접 만드는 ‘싱어 송 라이터’(Singer-song-writer)다. 그의 노래가 대부분 랩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감안하면 ‘래퍼 송 라이터’(Rapper-song-writer)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고저와 장단이 없는 우리말로 랩을 하기 위해서는 띄어쓰기밖에 없다는 것을 서태지가 발견한 이후, 아마 사람들에게 가장 잘 들리는 랩을 쓸 줄 아는 이가 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랩은 독특하다.
힙합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 고추장 냄새가 많이 나고, 그렇다고 토종 댄스 랩이라고 하기에는 기름기가 없지 않다. 여하튼 잘 들린다. 그리고 직설적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뱃살만큼이나 생각 또한 감추지 않는다.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간결하고 어렵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소리 지르고 음악에 미치고 인생을 즐기면 당신은 “챔피언”이라는 그의 선언은 주술처럼 대중을 사로잡는다.
따져보면 따질 것이 많은 그의 복음에 대중이 속아(?) 넘어가는 것은 그가 너무 열심히 외치기 때문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않는 것만큼 이 사회는 열심히 뭔가 하는 사람에게 관대하다. 이따금 목에 혈관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줘야겠다는 사명을 받은 것처럼 목청 높여 노래 부르면서, 언제나 그의 체형으로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어려운 안무를 소화해내며, 싸이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장르를 만들어냈다. 쏙쏙 들어오는 저돌적인 랩과 어디선가 낯익은데 물증을 찾기는 힘든 깔끔한 음악, 살이 다 떨어져나갈 듯한 춤사위,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진 합작품이 바로 ‘싸이표 음악 퍼포먼스 상품’이다. 그리고 대중은 그 상품을 소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배고파 보이지 않은 배로 힙합을 할 수 있다는 것보다는 두툼한 배로도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싸이는 보여줬고, 그의 음악은 발표할 때마다 최고의 ‘유행가’가 됐다. 애초에 ‘명곡’을 세상에 던지겠다는 그의 의도가 있었건 없었건, ‘뮤지션’이 되겠다는 그의 의지가 견고했건 아니었건 간에, 지금 현재 싸이가 서 있는 자리는 가장 인기 있는 가수다. 그리고 그의 노래는 가장 많이 불리는 ‘유행가’다. 여기에 그의 음악에 대한 평가가 설 자리는 만원버스에 아기를 안고 탄 새댁이 설 자리보다 조금 넓다. ‘예쁜 게 착한 거’인 시대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로.
잘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 판 건 확실하다. 근 석 달 동안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였으니, 그게 괴물이든 메기와 도롱뇽의 혼혈아든 간에 눈으로 보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 게다가 칸과 까지 거들고 나섰으니. 공포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젊은이들만 봐서는 500만도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족은 사투를 시작해야” 했고, 삼국시대부터 히트 상품이던 ‘한강’은 20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약발을 받았다.
이 더 재미있었다는 얘기를 하면 월드컵 프랑스전에서 지단을 응원하는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던 분위기도 한몫 단단히 했다. 좋은 콘텐츠는 마케팅의 결과로 사후에 결정되는 것이라는 공식이 영화 이 제공한 가장 영양가 있는 교훈이랄까? 자, 마무리 . “대중은 정말 구제불능인 걸까?”
콘서트에서 사고칠 줄 아는 동물적 감각
가수 싸이는 항상 덜그럭거린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항상 주변에 이야깃거리를 몰고 다닌다고나 할까. 그가 뭔가를 하면 그건 뉴스가 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직접 만든다. 싸이는 그의 음악을 팔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판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상품이 되면 그가 내뿜는 숨소리조차도 불티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기막힌 전략은 그가 움직이는 모든 것에 예외가 없다. 그의 콘서트가 항상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도 그가 사고를 칠 줄 알기 때문이다. 이효리의 퍼포먼스를 패러디하다가 옷이 벗겨지면, 그는 다시 옷을 고쳐 입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벗어젖힌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를 아는 동물적인 감각 덕이다. 예상대로 행동하는 변칙 복서. 그러면서도 그는 여유로움이 얼마나 상품가치가 있는지도 놓치지 않는다.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과 그의 입담에 기인한 면이 적지 않지만, 결정적인 것은 유복함이다. 어떤 사람이 아버지에게 대놓고 차 사겠다고 “2천만 가불하고 파요”라고 밉지 않게 말할 수 있을까 말이다. 게다가 거침없이 농담을 내뱉는 그를 ‘노래하는 개그맨’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입을 막는 ‘뮤지션’이라는 마패가 있다. 요새 부르는 처럼 “코믹 멜로 액션 에로 맘에 드는 걸 찍으시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대중이란 연인을 ‘항상 즐겁게 해주는’ 곡예를, 아니 즐겁게 해주지 않는 순간 통보도 없는 이별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 썩은 동아줄로 미친 소를 끄는 그 살 떨린 게임을 싸이는 음악이라는 가면을 쓰고 벗어가며 지금도 하고 있다. 가수도 크게 보면 연예인이라는 알리바이를 가지고. 이 다음은 사족.
현실적인 사람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꿈을 꾸는 사람이란 말에 감동했었다. 갓 데뷔한 서태지에게 70점을 준 인기 가수를 비웃기라도 하듯, 대중은 서태지를 서태지로 만들었다. 이런 대중에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결국 세상은 사람들이 바꾸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어찌 됐건 음악이란, 아니 좋은 음악이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거문고를 사람들이 골방에 혼자 있을 때 울리는 어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쇼는 많지만 콘서트는 드물고, 가수는 많지만 뮤지션은 숨죽여서 더 절박하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 우리의 태지는 어디서 뭘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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