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에서 이해불가능하게 그려진 베트남 전사 투이… 역사적 맥락을 강조했던 감독의 의도는 드라마의 ‘오버’에 묻혀버렸나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뮤지컬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는 이 한국 관객을 위해 쓰인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은 1989년 런던 초연 때부터 한국 공연 가능성을 생각했다. 이 작품과 한국 근대사의 부분적인 공통점을 발견했고 한국 관객들이 특별한 느낌으로 받아들일 것이라 확신한다.” 실제로 전쟁 속에서 잉태된 킴과 크리스의 비극적 사랑이 2시간40여 분에 걸쳐 무대를 쥐락펴락하는 동안 베트남의 ‘해와 달’이 남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이공의 선술집 드림랜드가 ‘달아오를’ 땐 ‘라이따이한’의 슬픈 얼굴이 스쳤고, 플루트 반주로 ‘해와 달’이 흐를 땐 어느 호찌민 호텔의 ‘한-베 집단 맞선’이 떠올랐다.
다큐멘터리 보고 실존인물에게 편지 썼다지만
지난 7월7일 성남아트센터에서 본공연에 들어간 은 20여 년 전 영국의 신문에 실린 사진 기사에서 비롯됐다. 공항에서 이별하는 한 베트남 여성과 혼혈 소녀의 사진 아래에 ‘베트남전이 끝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상흔은 아물지 않았다’는 설명이 있었다.
이것을 모티브로 프랑스의 알랭 부브리가 푸치니의 고전 오페라 을 윤색해 의 가사를 썼다. 신화적 판타지나 애틋한 추억 등이 아닌 ‘역사의 재현’만으로 세계 4대 뮤지컬의 반열에 오르는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지금껏 20여 개국에서 공연한 은 무려 3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이런 의 성공 신화 뿌리를 가슴 시린 스토리와 마음에 안기는 음악에서 찾기도 한다. 헬리콥터에 탑승하지 못한 킴은 ‘하룻밤의 사랑’으로 인해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문제는 이번 투어 버전의 드라마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오버’의 혐의를 짙게 풍긴다는 데 있다. 예컨대 킴이 부모가 맺어준 정혼자 투이를 죽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냈고, 아메리칸드림을 드러내는 엔지니어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배신한 정혼녀를 끝까지 지키려는 투이를 이해할 수 없는 인물로 만들고 탐을 미국행 비자쯤으로 여기는 엔지니어를 감싸는 듯한 인상이다.
이번 국내 공연의 감독을 맡은 로렌스 코너는 출연진들에게 스토리를 이해하고 역사적 맥락에서 연기할 것을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인들이 만든 베트남전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고 자신이 분한 인물들에게 편지를 쓰도록 하기도 했다. 배우들이 진실된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이때 투이로 분한 배우 이건명은 무슨 말을 썼을지 자못 궁금하다. 호아저씨(호찌민) 동상 아래의 베트남 해방전사 투이를 죽어 마땅한 ‘사랑의 포로’로 여기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적어도 내 눈에 비친 투이는 전사로서, 정혼자로서 진실한 인물이었다.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 흥행성을 인정받은 . 무려 240일의 제작 기간에 노랫말 토씨 하나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인 흔적은 무대 곳곳에 드러난다. 헬리콥터와 자동차 등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감흥이 훼손될 리도 없다. 크리스로 분한 마이클 리의 한국어 발음도 국적을 따져야 할 정도는 아니고, 킴으로 분한 김보경의 청명한 음색도 참기 힘든 흠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헬리콥터 영상 사이로 들리는 징소리는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이어진 베트남의 상흔, 그 실체가 너무도 주관적으로 그려진다는 게 공연 내내 찜찜했다.
내심 기대했던 베트남전의 안과 밖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라이따이한으로 부르는 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부이도이’(Bui Doi·먼지 같은 인생이라는 뜻으로 미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가 미국에도 있었다. 참전군인 존은 종전 3년 뒤 애틀랜타에서 부이도이의 참상을 알리며 크리스와 탐의 부자 관계를 이어주려 한다. 그때 라이따이한의 아버지들은 어디에 있었는지를 묻게 하는 대목이다. 원제작진은 부이도이를 위한 재단을 설립해 수익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국내 제작진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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