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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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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해버린 문장] " 인간이 기생충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등록 2006-07-06 00:00 수정 2020-05-02 04:24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인간이 기생충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훌륭한 선배들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
(칼 짐머 지음, 이석인 옮김, 궁리 펴냄)

어떤 기생충은 달팽이의 투명한 촉수로 기어들어간다. 촉수 밖으로 비쳐지는 기생충의 줄무늬는 달팽이를 풀벌레처럼 보이게 한다. 새가 달팽이를 잡아먹으면 기생충은 새 몸속에 둥지를 튼다. 어떤 기생충은 포식자에게 옮겨가기 위해 자신들의 중간숙주를 멍청하고 어리석게 만들어 쉽게 잡아먹힐 수 있도록 한다. 아휴, 이 모진 것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희박한 미래를 위해, 이것들은 중간숙주의 몸에 철저히 굴복하고 자신과 숙주의 경계를 해체하면서 기다린다. 그리고 포식자의 주둥이에서 모든 것이 으깨져버리는 순간, 완전한 패배로 판명될 것 같은 그 순간, 승리한다. 아휴, 이 모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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