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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국악으로 옷 갈아입다

등록 2006-05-12 00:00 수정 2020-05-03 04:24

국립국악원 창작극단의 진지한 실험, ‘금강산 윤이상음악회’… 서양식 악보에 심겨진 동아시아적 ‘음통일체’를 다시 끌어내다

▣ 금강산=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고뇌에 찬 평생을 외롭고 슬프게 살다 간 남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작품이 살아 있는 한 남편은 살아 있다. 많은 작품을 민족의 유산으로 남겨 남쪽에서도 작품이 연주되는데 명예회복 조처가 취해지지 않는 것은 몰상식하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 진실위)는 지난 1월26일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대해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간첩단’으로 확대 포장한 것이라 발표했다.

하지만 사건에 연루돼 끝내 고향인 통영 땅을 밟지 못하고 평생 조국을 등져야만 했던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79)씨는 금강산에서도 어김없이 흐느꼈다.

뱃노래, 무녀, 범종, 고향의 음들이여

이렇게 남편의 명예회복을 목메어 촉구하는 이수자씨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지난 4월29일 윤이상평화재단(이사장 박재규)이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연 ‘금강산 윤이상음악회’가 끝난 뒤였다. 이씨는 음악회에서 윤이상의 초기 가곡 <편지>와 <추천>을 국악 관현악으로 편곡해 연주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지휘자 노부영씨를 만나 “좋은 연주를 들려줘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앞서 처음으로 남쪽 기자단을 만났을 때 “명예가 회복되면 선생님이 꿈에도 잊지 않던 통영 앞바다에 가서 한을 풀어드리고 싶다”던 게 절절한 바람이었다면 남쪽의 전통 선율로 윤이상이 되살아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던 셈이다.

애당초 윤이상은 전통음악에 대한 남다른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윤이상 작곡 기법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음통일체’의 뿌리가 우리 전통음악, 즉 동아시아적 음의 질서와 법칙에 있기 때문이다. 음통일체는 어떤 중심음이 여러 장식음을 파생시키며 길게 흐를 때 부차적인 장식음들이 모두 중심음으로 통일되는 음 현상을 일컫는다. 이번 음악회에 참석한 <세종대의 음성학>의 저자 한태동 박사(전 연세대 대학원장)는 “윤 선생은 <악학궤범>과 <훈민정음> 등에 나타난 음악학과 음성학을 서양의 현대 기법에 적용시켰다.

여기에는 우리식 음에 대한 관념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이상은 ‘고향의 음’으로 남도 사람들의 뱃노래와 무녀의 노래, 절에서 들려오는 범종·목탁소리 등을 꼽았다. 물론 음표로 표시되는 서양식의 음이 아니었다. 동아시아적 음의 관념이었을 뿐이다. 이를 서양의 기법으로 풀어낸 윤이상의 음악은 동아시적 음과 서양 악기의 통합이었던 셈이다. 물론 여기엔 국악의 정신과 소릿결이 살아 있다. 윤이상도 가야금과 거문고, 북 같은 전통악기가 피아노를 대신하길 기대했다. “비록 가수가 서양 발성법을 구사하는 사람일지라도 약간의 우리 전통음악이나 민요의 선적·율동적·색채적 묘미를 가미해 불러주었으면 한다.”(1994년 6월20일 베를린에서 윤이상)

이런 의미에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시도는 윤이상 음악의 ‘난해함’을 푸는 또 하나의 돌파구라 할 만하다. 윤이상의 음악이 국악으로 옷을 갈아입었을 때 민족적 브랜드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다. 윤이상이 피리 대신 오브에를, 가야금 대신 하프를 적용할 수밖에 없던 동아시아 음의 원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이상이 현대음악에 새긴 동아시아 음을 국악기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국립국악원 김철호 원장은 “윤 선생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서양 악기로 연주하도록 만든 것이다. 일단 초기 가곡부터 국악으로 재해석하면서 현대음악에 다가설 길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북측 윤이상음악연구소 관현악단의 원숙한 기량

사실 윤이상의 현대음악은 아무에게나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생전에 유럽의 현존하는 5대 음악가로 뽑히고,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윤이상임에도 내로라하는 연주자들마저 윤이상의 작품 앞에서 꼬리를 내리기 일쑤다. 여전히 골치아픈 작곡가로 여기며 몇몇 작품은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음표 밖에 있는 뭔가를 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양의 윤이상음악연구소가 탁월한 연주로 주목받는 까닭도 윤이상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데 있다. 윤이상음악연구소 관현악단은 이번 음악회에서 윤이상의 소관현악 <협주적 단편>을 원숙한 기량으로 연주했다.

이같은 사정은 국내의 윤이상 작품 연주자들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요즘 현대음악 연주단체로 주목받는 통영국제음악제(TIMF) 앙상블은 윤이상의 현대음악 작품을 주요 레퍼토리로 삼고 있다. 하지만 작품 해석의 완성도를 따지는 것조차 쉽지 않다. TIMF 앙상블의 최우정 예술감독은 “서양의 음표가 펜으로 새겨진 것이라면 동양의 것은 붓으로 칠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윤 선생의 작품은 붓질에 가까워 의도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윤이상음악연구소의 연주를 한 차례 듣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대범한 연주가 돋보인다. 작품 해석과 연주 기법 연구가 뒷받침된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음악 연주자들도 버거워하는 윤이상의 작품을 어떻게 국악기로 소화할 것인가. 무엇보다 윤이상의 작품과 음악이론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윤이상음악연구소만 해도 1984년 12월에 설립된 뒤, 윤이상의 음악 활동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 1990년에 연구 성과를 직접 연주할 목적으로 윤이상관현악단을 창단해 지금까지 2천 회가 넘는 국내외 공연을 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윤이상 음악의 본산으로 성장했다. 이를 남의 것으로만 여길 필요는 없다. 한반도 등지에서 이뤄지는 윤이상의 작품에 대한 연구를 공유하면서 음악을 통한 소통과 화합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윤이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면 국악기로 다양한 윤이상의 작품을 선택할 수 있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곽태규 예술감독은 “윤 선생의 현대음악은 난이도가 높아 쉽게 근접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악과 양악 어법을 두루 섭렵하고 선생의 작품 안과 밖을 이해하는 편곡자가 있다면 북쪽 관현악단과 협연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립국악원 가야금 연주자로 이번 음악회에서 연주한 임은주씨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윤 선생의 초기 가곡은 전통악기로 연주했을 때 제대로 맛이 살아나는 듯했다. 창작악단이 서양 쪽 어법까지 제대로 소화하게 되면 현대음악으로 무대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베이징, 비무장지대 음악회 등 교류 넓혀

사실 남과 북의 음악인들이 윤이상을 화두로 처음 만난 것은 1998년 11월 평양에서였다. 당시 제1회 윤이상 통일음악제에서는 윤이상의 작품을 비롯한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을 연주했다. 그 뒤 통일과 평화를 내세운 음악회가 평양과 베이징 등지에서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적 일체감은 무대 밖에서까지 빛을 발하진 못했다. 앞으로 윤이상평화재단은 베이징 윤이상음악회, 비무장지대 윤이상음악회 등을 남북 공동으로 열면서 무대 안팎의 교류를 이뤄내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 당국자가 “윤이상은 무죄”임을 선언한다면, 이수자씨가 금강산에서 듣지 못한 TIMF 앙상블의 윤이상 연주를 통영에서 들을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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