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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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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서재는 내게 보물섬과도 같았다.

등록 2006-03-30 00:00 수정 2020-05-03 04:24

[내가반해버린문장]

<font color="darkblue"> <탐독>(이정우 지음, 아고라 펴냄)</font>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어떤 어머니는 딸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처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어린 딸은 학원을 서너 개 다니고 주말엔 영어 과외도 받고 있었다. 확실히 영어 발음은 나보다 좋았다. 그러나 아이의 언어는 학원 섭렵을 통해 깨달은 ‘계약적 인간관계’와 못사는 자들에 대한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가 바람계곡에 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게 쉬워 보였다. 나는 아이가 너무 심심하고 할 일이 없어서, 부모의 서재에 기어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이는 낯선 대륙과 헤아릴 수 없는 존재의 비의들과 스스로 감당 못할 단어들 속을 탐험할 것이다. 그러면 부모는 ‘어린이 독서논술 교실’ 한 달 속성 수강증을 끊어주겠지. 제기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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