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으로 규정된 가족의 개념을 뒤집는 교육방송 새 드라마 <겨울아이>
아빠 잃은 소녀와 딸 잃은 아빠가 중국집에서 만들어내는 희망의 대안
▣ 김진철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 nowhere@hani.co.kr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아버지를 정점으로 어머니와 자식들이 밥상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광경이 주말 저녁 안방에 줄곧 등장해온 터다. 한국의 대표작가 김수현의 작품들이 흔히 그래왔다. 깨져나가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꾸준히 현대 사회에 대해 성찰해온 작품들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가족 드라마는 가부장의 권위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이른바 한국적 가족상에 대한 ‘집착’과 이것이 해체되고 있는 오늘날에 대한 ‘반성’,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이면에서 읽히는 것도 그래서다.
세대화해 담은 성장드라마이기도
과연 가족이 무엇이기에 그럴까? 가족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는 왜 대부분 전통적 가족상에 대한 향수가 깔려 있을까? 진정 혈연으로 규정된 가족이란 개념은 여전히 유효한가? 시청률 잡기에 매몰된 드라마들이 못해온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에 대한 고찰에 교육방송 드라마가 나섰다. 지난 11월16일 저녁 7시25분 첫 편을 시작한 16부작 수목드라마 <겨울아이>(극본 박범수, 연출 이창용)가 그것.
이야기는 허름한 중국음식점 ‘용궁반점’을 주무대로 펼쳐진다. 주인공은 가족을 잃은 여고생과 가족을 포기한 40대 가장. 여고 2학년 심홍단(유연지)은 자신의 실수로 아버지를 잃었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 손에 자란 홍단은 가스불을 제대로 잠그지 않아 발생한 화재로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아버지 친구였던 장달인(이영범)이 운영하는 용궁반점에 맡겨진다. 달인도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다. 무관심하게 방치했던 장애인 딸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말았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달인은 그 뒤로 아내와 서로 원망하며 마음의 문까지 닫아버렸다. 끊임없는 죄책감과 원망은 자학으로 이어졌고, 이 때문에 용궁반점은 개점 휴업 상태다. 그런 달인 앞에 친구의 딸 홍단이 나타난다.
두 인물은 피붙이를 제 탓으로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삶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정반대다. 공부도 못하고 돈도 없는 고아 홍단은 중국음식 조리사였던 아버지의 꿈을 이뤄보겠다고 의욕에 넘치지만, 달인은 남은 가족과도 인연을 끊은 채 모든 것에 시큰둥하다. 하지만 최고의 요리사가 되겠다며 갖은 애를 쓰는 홍단을 지켜보며 달인은 점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하고 부성애를 다시 찾아간다. 홍단과 달인은 용궁반점에서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는다. 홍단은 아버지의 꿈을 이어나가며 삶의 의미를 회복한다. 달인은 홍단을 도우며 숨진 큰딸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홀했던가를 깨달는다. 그리고 아내와 작은 딸과도 화해한다. 이 밖에도 홍단의 생모인 주향(이미영)과 주향의 딸인 혜진(배유미)은 남부러울 것 없이 부유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불안을 갖고 있으며, 달인의 친구 덕재(이봉원)는 새아빠로서 아들을 잘 키워보겠다며 고군분투하고, 덕재와 재혼한 봉자(이상미)는 새딸 공주를 친딸보다 더 이뻐한다. <겨울아이>에 나오는 가족은 모두 찢어지고 깨진 상처를 아물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노력은 과거의 가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애씀이다. 그리고 그렇게 무너진 가족은 한 단계 더 나아간 새로운 가족의 결합으로 화해한다.
새 가족은 한국의 전통적 가족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전통적 가족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가족을 모색해보는 하나의 실험인 셈이다. 남이었던 10대 소녀와 40대 성인 남성이 부녀의 관계로 성숙해가는 과정은 새 가족의 결합이라는 의미와 함께 세대 간의 화해의 뜻도 함축하고 있다. 또한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홍단과 홍단 친구들이 성장해나가는 모습뿐 아니라, 안팎의 고난을 꿋꿋이 이겨내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통해 주변의 어른들도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담담히 표현된다.
교육방송 드라마의 계도적 한계 넘어
드라마 전반에 흐르는 서민적 분위기도 평가받을 만하다. 휘황찬란한 자본의 위세가 호화롭게 펼쳐지는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와 견줄 수 있다. 우선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국집 용궁반점이라는 무대가 그렇고, 무대를 꾸미는 등장인물들도 평범하고 소박하며 성실한 소시민들이다. 달인의 작은딸로 장애아를 설정한 것 또한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폭넓은 공감을 시도한 흔적이다. 내용의 무게에 따른 부담감은 밝고 경쾌한 기본 톤으로 보완한다. 건전한 웃음을 통해 소박한 이웃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지금껏 계도적이고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한 교육방송 드라마의 한계를 깰 수 있을 듯하다. 지난해 드라마 <명동백작>을 통해 6·25 동란 앞뒤로 문화예술인들의 삶과 사상을 형상화해 호평을 받았던 교육방송에게 이번 <겨울아이>는 드라마의 폭과 깊이를 더 확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이 무엇이고 왜 희망일 수 있는지를 말하는 역설은, 지상파 3사 드라마가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지점이기에 더욱 그렇다. 여러 부족한 여건 탓에 교양 프로그램 위주로 방송 시간을 채울 수밖에 없으며, 더구나 드라마의 경우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고 있는 터라, 교육방송의 이런 신선한 시도는 무척 반가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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