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와 연기자로 ‘상상 이상을 보여준 슈퍼스타 비 혹은 정지훈
겉멋이 위험한 드라마 <이 죽일놈의 사랑>에서 또 한번 사랑받을까
▣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스타와 슈퍼스타의 차이는 ‘스토리’에 있다. 재능과 운, 그리고 노력까지 더해진다면 스타는 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은 스타에게 단지 좋은 연기와 노래만을 원하진 않는다. 대중은 스타가 ‘꿈’을 보여주길 바란다. 실제 스타의 능력이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건 대중이 실제라고 믿을 수 있는 몰입감 강한 이야기 자체다. 스타의 매력적인 이야기는 매번 그의 성공과 실패를 자신의 일처럼 조마조마하게 만들고, 어김없이 성공하는 스타의 능력은 대중이 그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 과정에서 대중은 스타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하고, 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무결한 서사를 갖춘 영웅으로 만든다. 대중이 괜히 자살한 로커나 다재다능한 천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0년대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단지 그들의 재능뿐만 아니라 혜성처럼 나타나 시장을 휩쓸고, 앨범마다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하면서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채 은퇴한 ‘만화 같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수 비, 혹은 연기자 정지훈은 그런 이야기의 2장을 쓰는 중이다. 2000년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연예인들에게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스토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기획사는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될성부른 싹을 몽땅 수집하고, 데뷔 전부터 준비된 ‘연예인’으로 만든다. 기획사가 만든 콘셉트, 가수의 의사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곡 같은 것들. 덕분에 엔터테이너로서의 완성도는 높아지지만, 대중은 그들을 즐길 수는 있어도 몰입하고 동경하긴 어렵다. 그들을 ‘만든’ 기획사의 그림자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비도 마찬가지였다. 박진영이 프로듀싱한 몸 좋은 댄스가수. 그의 이미지는 전형적인 아이돌 가수일 뿐이었고, 그건 곧 그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설정했다.
안티팬들에겐 ‘재수없는’ 일
하지만 비는 그 한계를 예상 이상의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주는 것으로 돌파했다. 단순하게 말하면, 춤만 잘 추는 댄스가수라고 하면 정말 춤을 잘 추면 되고, 가수의 연기 도전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 기대치 이상으로 연기를 더 잘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데뷔곡 <나쁜 남자>가 그를 스타로 만들었지만 그의 이미지를 춤 잘 추는 박진영의 클론쯤으로 한정짓자 2집에서는 올 라이브 무대와 독특한 무대 연출을 보여준 <태양을 피하는 방법>으로 댄스가수에도 ‘레벨’의 차이가 있음을 보여줬다. 또 누구나 가수의 평범한 연기자 데뷔작이라고 생각했던 <상두야 학교가자>에서는 원맨쇼에 가까운 연기로 <상두야 학교가자>를 그해 가장 중요한 마니아 드라마로 만들었다. 결국 두 번째 출연작 <풀 하우스>는 파트너인 송혜교와의 애드리브 연기가 화제를 모으며 40%대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 드라마에서도 캐스팅 1순위의 ‘연기자’로 인정받았다.
그러자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대중은 이 ‘박진영이 키운 가수’의 한계가 여기까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는 그 순간마다 전작 이상의 성공을 거뒀고, 그것은 가볍게만 느껴지던 엔터테이너에게도 진정성이 있음을 보여줬다. 그가 활동 영역에 따라 가수 비·연기자 정지훈이라는 ‘콘셉트 분열’을 보여줌에도 그게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그가 정말로 그 양쪽 모두에서 가볍게 볼 수만은 없는 역량을 발휘해왔기 때문이다. 대중이 설정한 한계를 대중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능력으로 뛰어넘는 힘 대 힘의 정면승부. 거기서 오는 긴장감과 연이은 승리의 쾌감은 그의 팬들이 그를 응원하는 것을 넘어 ‘동경’하도록 만들었다.
모두가 냉소적인 시선을 던지는 클럽에서, 오직 춤과 노래만으로 대중을 열광시키는 그의 뮤직비디오
이종격투기 선수의 근육질 과시를 넘어
그래서 <이 죽일놈의 사랑> 속 정지훈의 모습은 흥미롭다. 이 작품에서 그는 고아에 이종격투기 선수고, 형의 복수를 위해 보디가드로 변신하며, ‘개복구’라 불릴 정도로 위악적이면서도 자신을 위해 희생한 여자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영상은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쉴 새 없이 정지훈의 액션과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고, 성난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캐릭터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그의 매력을 설명한다. 대본의 부실함인지 의도된 것인지는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이 죽일놈의 사랑>에는 캐릭터의 디테일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멋지지만 비극적인 남자라는 것만 강조한다. 그래서 복구는 톱스타 정지훈이기에 가능한 캐릭터지만, 자칫하면 마치 톱스타가 마이너리티의 콘셉트로 촬영한 화보집 같은 공허함을 줄 수도 있다. 이런 캐릭터에 겉멋이 아닌 한 불행한 인간의 삶의 흔적을 잡아내고, 작품에 무게감을 부여하는 것은 온전히 정지훈의 몫이다. 대중은 성공과 실패 모두 그의 능력이나 한계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는 또 한 번 물러설 수 없는 정면승부를 선택한 셈이다. 만약 여기서조차 비·정지훈이 ‘멋진 놈’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는 2000년대가 ‘엔터테이너의 시대’임을 증명하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물론, 덕분에 그는 다시 한 번 죽을 만큼 달려야겠지만. 시청자가 먼저 무릎 꿇을까, 그의 심장이 먼저 터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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