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아시아 최대의 게이 파티 ‘네이션 V’로 날아간 조선 게이의 삼일야화
싱가포르인의 근육, 일본인의 유카타을 보다 문득 서울이 그리워졌네</font>
▣ 이민철/ 동아시아 동성애자
정말 가지 않으려고 했다. 올해만 세 번, 타이를 다녀왔다. 혼자서 다짐했다. “올해 또 가면 ‘미친 X’”라고. 아예 타이의 ‘타’자, 푸껫의 ‘푸’자만 나와도 눈 감아버렸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 파티가 벌어지기 전 주말, 20만원짜리 푸껫행 비행기표를 발견해버린 것이다. 정상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 게다가 11월3일 출발, 6일 도착. 일정도 파티와 딱 맞았다. 아, 신의 축복인가 저주인가! 갈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고뇌하는 ‘호모’였다. 고민에 빠졌지만 결과는 뻔했다. 아시아 최대의 게이 파티, ‘네이션(Nation) V’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었다. 자중하려고 자문도 구했다. 친구 왈 “나라면 간다”.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저가 항공기의 위험도 발길을 막지는 못했다. 결론은, 목숨 걸고라도 간다. 떠나기 전날 오후에 비행기표 사고, 저녁에 호텔 예약.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달렸다.
네이션 V 파티의 명성은 진작부터 자자했다. 아시아 각지의 게이(남성 동성애자)들이 모여서 사흘 밤낮으로 흐드러지게 음주가무를 즐기는 아시아 최대의 게이 파티. 싱가포르의 센토사섬을 게이 공화국으로 만들어버렸다는 파티. 네이션 V는 2001년부터 싱가포르의 독립기념일에 열리는 게이 파티다. 올해는 싱가포르 정부가 ‘에이즈 확산’을 명분으로 자국에서 주최를 불허해, 다섯 번째인 네이션 V는 타이 푸껫으로 장소를 바꾸었다.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돈 쓰고 발품 팔면서 찾아다니지 않아도 수천 명의 ‘물 좋은’ 게이들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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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일본>대만, 한국은 ‘자따’?
다행히 안착했다. 악명과 달리 저가 항공은 무사히 나를 푸껫으로 데려다주었다. 더구나 ‘정시’ 도착이라니, 감지덕지할 따름이었다. 승무원들의 무표정도, 기내식의 간소함도 모두 용서가 됐다. 목요일인 11월3일 오후, 푸껫의 호텔에 짐을 풀었다. 짐을 풀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었다. 한국의 게이 사이트에 네이션 V에서 함께 다닐 친구를 구한다는 글을 올린 사람에게 인천공항에서 연락을 해둔 터였다. 마침 호텔도 같았다. 그는 푸껫의 빠똥에 나가 있다고 했다. 돌아오면 전화하겠단다. 그런데 금방 전화가 왔다. “공항에서 전화했던 사람인데요”라고 했다. 벌써 돌아왔나? 이상했지만 캐묻기도 뭐했다. 호텔 로비로 내려가자 한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로써 식사 파트너 현지조달 완수. 따로 또 같이 놀면 그만이었다. 밥을 먹으러 갔다. “혹시 서른 살 아니세요?” “아닌데요.” “방금 빠똥에 갔다오지 않았어요?” “아닌데요.” 뭔가 이상했다. 앞뒤를 맞춰보니, 서로 다른 사람인 줄 알고 만나고 있었다. 사정은 이랬다. 게시판에 ‘친구 구함’을 올린 사람에게 연락한 또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도 (나처럼) 공항에서 ‘게시판 아저씨’에게 전화를 했고, 호텔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가 호텔 안내에 가서 오늘 혼자서 투숙한 한국인을 물었더니 내 방으로 전화를 연결해주더란다. 나도 그도 서로를 ‘게시판 아저씨’로 착각한 것이다. 게이 문화의 익명성이 낳은 해프닝이었다. 만나기로 했던 사람을 꼭 만날 이유는 없으므로 그냥 같이 다니기로 했다. 이날 저녁, 워밍업 삼아 푸껫의 게이 바로 놀러 갔다. 썰렁했다. 일찌감치 철수하고 내일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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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파티의 날이 밝았다. 4일 오전에는 만반의 손님맞이 태세를 갖추기 위해 근육에 ‘뽕’을 넣는 운동을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파티 장소로 향했다. 게이들이 파티를 하는 사흘 동안 ‘크라운 플라자 리조트’를 통째로 빌렸다. 싱가포르의 ‘프라이데이 닷컴’(fridae.com)을 통해 예약을 받았는데, 파티 몇달 전에 예약이 마감됐다. 크라운 플라자 리조트 주변의 네댓 개 호텔도 ‘서포팅’ 호텔로 지정됐는데, 대부분 게이들로 꽉 찼다. 파티가 열렸던 푸껫의 까론 비치 주변은 거대한 게이 MT촌이었다. 예약한 티켓을 받으러 가는데, 나라별 참가자들 통계가 나와 있었다. 대략 싱가포르, 일본, 대만 순서였다. ‘USA’도 있었다. 나라별 통계에 홍콩, 타이도 있었지만 한국은 없었다. 동아시아 게이 신(Gay Scene)에서 한국은 일종의 ‘자따’에 가깝다. 일본을 비롯해 동아시아 게이들은 예전부터 서로 오가며 놀았지만, 한국만은 외로워도 슬퍼도 혼자 놀았다(아니 못 놀았다). 이토록 한국의 엄숙주의는 아시아 각지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물론 ‘물’부터 봤다. 첫날 오후 ‘웰컴 파티’가 열리는 수영장 주변을 두루 살폈다. 알록달록 수영복을 입은 청년들이 즐거움을 선사했다. 서로 ‘물’을 보느라 바빠서 정작 수영장의 물에 뛰어드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형, 저 하얀 바지 보이지? 쟤가 일본에서 파티 여는 멤버야.” “어떻게 아는데?” “일본 애들이 그러던데.” 조신해 보였던 나의 식사 파트너는 알고 보니 나름대로 아시아를 주름잡는 파티광이었다. 그는 일본의 ‘파라다이스 볼’(Paradise ball·최근에 샹그릴라(Shangrila)로 이름을 바꿨다), 대만의 ‘폴로 미’(Follow me) 파티 등을 두루 섭렵한 ‘재원’이었다. 서울을 빼면 동아시아의 주요 도시에서는 정기적으로 수천 명이 모이는 게이 파티가 열린다. 홍콩, 싱가포르는 물론 쿠알라룸푸르에도 리퀴드(Liquid) 파티가 있다. 알다시피, 말레이시아는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다. 방콕은 굳이 따로 파티를 열지 않아도 날마다 잔치 분위기다. 한국에는 주말에만 있는 것들이, 방콕에는 매일 밤 있다. 네이션 V의 주최자는 싱가포르의 ‘프라이데이 닷컴’이지만, 일본의 아게하(Agheha), 대만의 폴로 미, 홍콩의 ‘HX’ 등 각 나라의 파티 주체들이 공동 주최자로 참여했다. 하루에 세 개씩 사흘간 밤새워 파티가 열리는데, 각각의 파티를 각 나라가 맡아서 여는 방식이다.
뜨거운 고고 보이 쇼, 나도 다음 생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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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한국 애다!” 수영장 주변으로 속속 입장하는 ‘선수들’ 사이로 ‘분홍 반바지’를 입은 청년이 보였다. 이태원 게이 클럽에서 자주 보던 사람이다. 파티에서 처음 보는 한국인이었다. “쟤들은 대만 애들 같아.” “아냐. 싱가포르 커플이야. 싱가포르에서 봤어.” “쟤들은 대만에서 본 애들이군.” 물 구경은 국적 게임으로 이어졌다. 동남아 각지를 주유하며 익힌 나의 분류법에 따르면, 몸이 좋으면 싱가포르이나 대만, 스타일이 튀면 일본 게이일 가능성이 크다. 촌스러우면? 한국 사람들. 싱가포르 게이들은 일찍이 서양물이 들어서 ‘글로벌 스탠더드’인 근육에 목숨을 걸고, 일본 게이들은 어느 분야나 그렇듯이 서양의 기준과 다른 ‘일본류’를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건장한 골격에 배도 적당히 나온 ‘베어’(Bear) 타입이 유난히 인기다. 한국의 게이 문화는 늦게 시작돼서 아직 ‘수수하다’.
마침내 밤 9시, 일본의 아게하가 주최하는 ‘G.Y.M’ 파티가 열렸다. 파티 장소인 크라운 프라자 리조트의 볼룸(Ballrooms) 앞으로 선수들이 서서히 입장했다. 허걱! 호텔 로비의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각국의 선수들을 감상하던 ‘투 코리언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유타카를 맞춰 입은 서너 명의 게이들이 등장했다. 뜨악! 이번에는 한국 선수들의 의상에 입이 벌어졌다. 아까 보았던 ‘분홍 바지’와 일군의 무리들이 핫팬츠에 쫄티를 맞춰 입고 등장했다. 형용할 수 없는 그 빛깔 오~ 놀라워라! ‘치어걸’을 패러디한 ‘치어보이’ 같았다. 대략 물구경을 끝내고 무도회장으로 들어섰다. 벌써 여기저기서 웃통을 벗은 게이들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우선 ‘내셔널리티’로 승부하는 일본인들이 눈에 띄었다. 유타카 청년들은 다음날도 다른 유타카로 등장했고, 아예 일장기가 박힌 머리띠를 두른 무리도 있었다. 일장기 소년들은 웃통을 벗고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강강수월래까지 했다. 마치 남들이야 뭘 하든 우리끼리 놀겠다는 듯. 춤추는 인파를 비집고 나가자 유도복을 입은 아이들도 보였다. 순간 살짝 짜증이 났다. ‘오호 통재라, 전범국 일본이 마침내 자랑스러운 조국이 되었군. 그런데 게이한테 무슨 조국이 있어? 우리는 게이 공화국의 시민들이야.’ 한국의 치어보이들이 태극기 셔츠를 입지 않은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일본 게이들은 적당한 ‘일본 필(feel)’의 멋을 자랑했다. 중국계 게이들은 몸으로 승부한다. ‘역시 적당히 몸 좋고 수수한 대만 애들이 짱이야.’ 어느새 무도회장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나중에 확인한 바로 2천여 명이었다). 유레카! 남자가 치마를 입고 춤추고 있었다. 한 명은 청치마, 또 한 명은 격자무늬였다. 흰 티셔츠에는 빨간 글씨로 ‘It’s a gay thing’.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 남성도 여성도 넘어서는 것! 이날의 ‘퀴어’ 드레서였다. 심지어 엉덩이 양쪽을 드러낸 가죽 바지를 입은 커플도 있었다. ‘한국 촌놈’들에게는 영화에서나 보던 과격한 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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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가 달아오르자 ‘고고 보이 쇼’가 시작됐다. 쇼단은 이름도 유치찬란한 ‘더 재패니즈 핫티스트 고고 보이’(The Japanese Hottest GoGo Boy)였다. 그들의 내한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정말 별로였다. 몸도 춤도 별로.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한국 게이 클럽의 허접한 무대장치 대신, 조명발 받쳐주고 의상발 세워주니 정말 ‘핫’(Hot)해 보였다. 너무나 부러워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다음 생에는 고고 보이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날마다 몸 만들고, 밤마다 춤추는 저들이 진정한 디오니소스다. 아쉬운 쇼가 끝났다. 앞에서 누군가 격렬한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어라? 아는 얼굴이었다. 방콕의 클럽에서 만나 ‘원 나이트 스탠드’를 했던 대만 청년이었다. 웬만하면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피했는데, 자꾸 사람들에 밀려서 그 청년과 가까워졌다. 내 코에 그의 뒤통수가 걸렸다. 일단 대피. 부랴부랴 자리를 옮겼다. 새벽 1시를 넘길 무렵, 체력이 바닥났다. 도저히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논다”는 나의 지론도 무너졌다. 무도회장 앞의 소파에 무너져 있는데, 낯익은 청년이 서양 아저씨의 손을 잡고 지나갔다. 10년 전 게이인권단체에서 봤던 고등학생이다. 인연이란 참 묘했다. 한국 아저씨는 1시에 철수했지만, 파티는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이어졌다. 다행히 나에겐 내일이 있었다.
근육질이 너무 흔해서 질릴 지경
결전의 날이 밝았다. 토요일 밤의 열기 속으로 빠질 날이다. 오후의 ‘풀 사이드’(Pool side) 파티는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밤새 놀던 공주님들은 아직 꿈나라에서 왕자님을 만나고 있었다. 드디어 밤 9시, 파티의 꽃 네이션 파티가 열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는 얼굴을 만났다. 서울의 친구였다. 인사를 하고 수다를 떨었다. 여기저기서 한국 게이들이 출몰했다. 이런, 서울의 게이 클럽에서 추파를 던졌다가 거절당한 청년도 있었다. 뭐 그쯤이야, 살다 보면 다반사지. 자신을 위무하면서 무도회장으로 들어섰다. 이날도 역시 ‘물 구경’을 주 임무로 하는 조신한 파티광(아까의 식사 파트너)과 함께였다. 무도회장 주변을 도는데 자꾸 익숙한 얼굴들이 스쳤다. 처음에는 어디서 봤는지 곰곰이 돌이켜봤지만, 나중에는 아예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한국의 게이 바인지, 방콕의 클럽인지, 대만의 사우나인지, 하여튼 어디선가 본 듯한 청년들이 많았다. ‘쳇, 여기도 그 물이 그 물이군.’ 서울의 게이 바에서 주말마다 밀려드는 회한이 푸껫까지 와서 다시 밀려들었다. ‘팔리지’ 않는 자신에 대한 위로인지, 정말 ‘뉴 페이스’가 부족하다는 실망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김우중 선생님, 세계는 넓은지 몰라도 아시아는 좁다고요. 회한에 어린 눈으로 계단을 올려다 보았다. 와우! 어제의 치어보이들이 오늘은 타잔 의상으로 변신했다. ‘죽이는’ 콘셉트였다. 털로 만든 치마인지 바지인지만 달랑 걸치고 있었다. 생의 활기가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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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쟤들 타잔이다!” “무슨 타잔이야, 제인이지.” “아냐, 치타 같아.” 농담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정말 아무나 생각할 수 없는, 누구도 시도하기 힘든 패션이었다.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그들에게 기꺼이 ‘베스트 드레서’ 상을 주겠다. 시간은 흐르고, 무대는 뜨거워졌다. 거대한 알몸의 물결이었다. 모두 웃통을 벗어젖혔다. 대부분 몸이 좋았다. 그들에게 근육은 생존의 조건이었다. 만들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처음 볼 때는 ‘감동’ 그 자체였던 근육질이 이제는 너무 흔해서 질릴 지경이었다. 차라리 근육 없는 매끈한 몸이 ‘쿨’할 지경이었다. 못 먹는 포도를 신포도로 생각하는 합리화라고? 뭐 그럴 수도. 주현미의 노래처럼 “시간은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가는데” ‘동남아 그 사람’은 오지 않았다. 푸껫의 마지막 밤도 독수공방해야 하다니, 정말 이건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비행기값에 숙박료에 본전 생각이 간절했다.
이날 만난 서울의 친구까지 가세해 ‘투 코리언스’에서 ‘쓰리 코리언스’가 된 ‘신포도 게이들’은 뒷담화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야, 그래도 얼굴은 한국 애들이 제일 낫지 않냐.” “그러게.” “새임 가이, 새임 플레이스, 새임 뮤직(Same Guy, Same Place, Same Music), 이젠 지겨워.” “네이션에는 재고가 없다더니.”(이성애자의 언어로 번역하면, 네이션 파티에서는 모두 짝을 만난다더니) “다 자기네 나라에서 안 팔리는 애들이니까 여기까지 온 거야.” “형, 싱가포르 애들은 너무 더워서 할 게 없으니까 운동만 한대요.” “참, 동대문에서 장사하는 애들이 많이 왔다며?” “어쩐지 타잔의 패션감각이 심상치 않더라니.” 뒷담화가 꼬리를 물었다. 차라리 춤이나 추자. 우리의 합의였다. 참, 쭈뼛쭈볏 눈치를 보다가 평생 처음으로 무도회장에서 웃통을 벗어보았다. 나름대로 2년 동안 악을 써가며 만든 몸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알통들을 보니 남루해졌다. 잠시 벗었다 다시 입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년에는 더 좋은 몸으로 다시 오리라.’ 어쨌든 무엇가 목표가 생기는 건 좋은 일이다.
동남아 판타지 깨니 고향이 정답네
독수공방의 나날이 끝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서울을 점점 사랑하게 되는구나.’ 한때 나의 슬로건은 ‘12억 중국 인민이 있다’였다. ‘한국에서 못 팔면, 동남아에서 팔면 된다’였다. 그때는 서울이 정말 지겨웠다. 하지만 동남아 ‘빤따지’마저 깨지니 역시나 고향뿐이었다. 비행기 추락의 공포를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선잠이 들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만나서/ 사랑을 맺은/ 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 고색창연한 <서울의 찬가>였다. 무엇보다 무사히, 정시에 돌아오게 해준 저가 항공사에 다시 한 번 감사할 따름이다. 과연 동남아에서 단맛, 쓴맛 다 본 굴러먹은 ‘조선 호모’가 내년에도 네이션 V에 갈까? 또다시 유혹에 빠질까?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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