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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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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인간의 미래다”

등록 2005-11-04 00:00 수정 2020-05-03 04:24

신화 다시 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캐나다 국보급 소설가 마거릿 애투드
오디세우스의 부인 등장시킨 <페넬로피아드>로 남성 중심 신화를 역전시켜

▣ 프랑크푸르트=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10월21일 프랑크푸르트 메리어트 호텔에서 마거릿 애투드를 만났다. <도둑신부> <시녀 이야기> <캐츠 아이> 등을 통해 국내에도 열성팬을 확보하고 있는 애투드는 캐나다의 국보급 소설가다. 매년 노벨상에 이름이 거론된다.

그가 캐넌게이트 신화 시리즈의 두 번째 권으로 <페넬로피아드>를 등재했다. 신화 시리즈는 28개 언어의 31개국 33개 출판사가 참여하는 세계 일류급 작가들의 ‘신화 다시 쓰기 프로젝트’다. 한국에서는 문학동네가 참여했다. 이 시리즈는 1999년 스코틀랜드의 촉망받는 출판기획자 제이미 빙의 원대한 포부에서 시작되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도서전이 열린 10월20일 네 권의 저자가 기자회견을 갖는 것으로 첫 결실을 알렸다. 1권은 신화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신화의 역사>, 3권은 재닛 윈터슨의 <무게>, 한국에서는 번역 중인 4권은 데이비드 그로스만의 <사자의 꿀>이다. 빅토르 펠레빈(러시아)의 <공포의 헬멧>도 곧 나온다. 이언 매큐언(영국), 잉게 슐츠(독일), 치누아 아체베(나이지리아), 수통(중국), 기리노 나쓰오(일본) 등이 집필 중인 이 시리즈는 2038년 100권 완간이 목표다.

2038년 100권 목표하는 세계적 프로젝트

이 방대한 계획의 초기 주자인 <페넬로피아드>는 신화 새로 쓰기의 모범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오디세우스가 전세계를 떠돌며 모험을 하는 동안에 그의 부인 페넬로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여성 편력을 만끽하는 동안에 페넬로페는 수많은 구혼자를 물리치며 정절을 지켰다고 ‘간단하게’ 말한다. 옷감을 다 짜면 결혼하겠다고 약속하고는 저녁에 낮에 짠 옷감을 푸는 식으로. 그런데 다른 신화에는 ‘정숙하지 못한’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12명의 시녀가 있다. 오디세우스는 여행에서 돌아온 뒤 페넬로페의 구혼자와 12명의 시녀를 도륙한다. 왜?

“원래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남부 아메리카 신화. 다른 사람들이 각 대륙의 멋진 이야기를 하듯이 나도 우리 대륙의 신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눈물이 세계를 창조하고 성행위 뒤에 알이 부화되고 이 알에서 세계가 창조되는 등 신기한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너무 길었나 보다. 결국 <오디세이아>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마음에 걸렸던 12명 시녀의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페넬로피아드>의 서문에서 그는 신화의 속성이 ‘구전’이라면서 신화 다시 쓰기가 신화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가 이 ‘본질’로까지 끌어올리고 싶었던 특별한 이야기는 따로 있다. 그는 “무엇보다 페넬로페에 관한 ‘모순된 말’에 주목했다.”

애투드는 구천을 떠도는 입 없는 페넬로페를 불러내 말문을 틔운다. 그리고 시녀에게 노래하게 한다. “신화에는 언제나 여성이 있었다. 하지만 남성이 주역인 경우가 많으므로 잘 안 보일 때가 많다. 모든 신화에서 남성이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위기에 처했을 때 남성을 돕는 것은 여성이다. 그래서 여성에게 눈길을 돌리면 남성은 작은 역할밖에 없다. 영웅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신화는 여성을 말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다.”

페넬로페의 낮은 목소리는 1990년대 후반 한국 작가의 여성적 글쓰기와 닮은 점이 있다. 왜 전세계적으로 여성은 독백을 하는 것일까. 그는 ‘여성성’을 찬양해왔지만 정작 ‘여성적 글쓰기’라는 말이 생물학적 한계를 지정하는 것이기에 경계하는 눈치다. “남성도 고백을 한다. 독백을 하는 것은 형식일 뿐이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에서 전사로 등장할 때는 독백을 할 필요가 없다. 액션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햄릿 역시 독백을 한다. 그 사람이 고민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독백을 한다.”

그는 시, 소설, 평론 등 여러 분야의 글을 썼다. 소설의 장르 역시 공상과학(SF), 추리소설 등 다양하다. 하지만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여성이다. 오해받는 여성, 고기를 먹지 않는 여성, 출산 기계로만 이용되는 여성,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나선 여성, 여성의 남자를 빼앗는 여성 등. 그는 옛날부터 남성 중심의 신화를 여성의 신화를 바꿔온 것이다. “세계에 대응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힘으로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리하게 우회하는 것이다. 페넬로페의 어머니가 물의 신이다. 물은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다는 돌아서 간다. 깨부수고 파괴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것은 여성의 특징이고 페넬로페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다. 고대부터 여자와 아이들은 보호를 하고 남성은 나가서 싸운다. 그 이유는 여성의 힘이 약해서라기보다(!) 여성에게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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