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일산 오픈스튜디오’에서 개인 창고의 신기한 보물들 공개한 50여명의 작가들…당구대 비치한 개성, 초벌작품이 뿜는 매력, 흙손 뜨는 즐거움 등 생기 넘쳐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는 <화가의 작업실>(The Painter’s Studio·1854)이라는 그림에 자신의 미술 생애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담았다. 온갖 사회계층의 인물이 좌우로 나뉜 이 작품에서 화가는 작업실의 중심에서 누드모델을 뒤에 두고 풍경을 담은 그림에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다. 당시 양분된 사회상을 담은 그림은 담론의 공간이었던 작업실을 엿보게 한다. 여기에서 시대의 흐름에 비켜서지 않은 화가의 모습을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오늘의 미술작가들도 시대와 호흡하며 대중과의 소통을 꾀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다. 거리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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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이원석의 소박한 마당
실제로 전시장 바깥에서 시각예술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형식으로 소통을 꿈꾸는 예술가들이라 할지라도 작품에 매몰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설령 공공성을 생각하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개별 공간을 뛰어넘은 미술 작가는 흔치 않다. 숙명적으로 전시장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의 처지에서 예술작품이라는 결과물에 집착하는 것을 눈 흘겨볼 일도 아니다. 그러나 시각예술을 풍요롭게 가꾸는 것은 작가의 몫만이 아니다. 예술가들의 서식지를 누비면서 작가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이 있을 때 예술의 적극적 소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야만 예술 생태계가 원활히 작동될 수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의 구산동과 성석동 일대 작가 50여명이 작업실 문을 열고 관람객을 맞았다. 지난 10월1일부터 9일 동안 이어진 ‘열린미술축제 - 2005 일산 오픈 스튜디오’는 작업실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행사였다. 해마다 한번씩 작업실을 공개하는 ‘연례행사’로 자리를 잡았지만 ‘열린 작업실’에 들어가는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서울 홍익대 앞의 한 갤러리에서 얻은 리플릿을 보았을 때 적지 않은 규모의 행사임을 예감했다. 연휴 마지막 날 자유로의 서울 방향 차량들이 쏟아져나올 때, 열린 작업실을 체험하며 예술 생태계를 가꾸려는 사람들이 섞여 있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열린 작업실이 자리잡은 마을의 들머리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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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가의 작업실에 가려고 구산동을 찾은 게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해 여름 화가 홍성담씨의 작업실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당시 홍씨의 작업실은 조립식 패널로 지은 창고 건물에 있었다. 한낮임에도 전등을 켜지 않으면 음산한 분위기에 압도될 듯한 공간이었다. 오픈 스튜디오 행사가 진행되는 작업실에 가는 길에도 정체불명의 공장과 창고가 즐비했다. 겨우 자동차 한대가 들어서기도 버거운 골목길을 지나자 ‘오픈 스튜디오’임을 표시하는 조그만 안내판이 보였다. 바로 조각가 이원석씨의 작업실이었다. 이미 들머리에서 한적한 분위기를 실감했기에 관람객이 눈에 띄지 않는 데서 느끼는 ‘충격’은 충분히 흡수할 수 있었다.
누군가 열린 작업실을 찾는다면 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었다. 지난해 오픈 스튜디오의 개막행사가 열렸던 이씨의 작업실은 안과 밖의 경계가 따로 없었다. 마치 사각 프레임의 닫힌 공간에 머물렀던 전시 공간이 소박한 마당으로 옮겨진 듯했다. 거기엔 우리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은유와 풍자로 표현하는 이씨의 작품이 가득 차 있었다. 이것들은 작품이 완성되기 전의 ‘에스키스’(초벌 작품)로서 작가의 의도에 따라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거대한 상체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벽에 머리를 박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나른한 일상에 찌든 팬티 차림의 ‘나’도 있었다.
이렇듯 열린 작업실은 생산과 소통이 함께하는 예술 생태를 일구려고 했다. 열린 공간에서 창작 과정을 드러내는 것은 작품을 만드는 곳과 보여지는 공간을 엄격하게 구분한 근대적 이분법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접하면서 역동적 소통을 모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평론가 김준기씨의 진단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작업실을 여는 일은 소통 부재의 자폐적 예술 생산을 넘어 예술의 대사회적 접점을 형성하려는 예술운동이다. 우리는 작업실을 통해 예술가의 삶과 예술작품을 새롭게 조망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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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적 생산 넘은 사회 예술 운동
아무리 열린 작업실이라 해도 소통의 당사자들이 만나지 못한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벌써 네 번째 작업실 문을 열었지만 예술가의 애달픈 구애만 이어지는 형국이다. 대학시절부터 예술을 통한 사회적 발언의 방식으로 ‘작업실 조합’ 형태의 작가 공동체를 꿈꾸었던 이씨. 그에게 일산 오픈 스튜디오는 단지 일회적인 행사가 아니다. “작가들은 번듯한 작업실을 마련하려고 애쓴다. 여기에서 창작에만 매몰되려는 작가는 없다. 전시장에 내놓을 수 없었던 작품까지 내놓는 것은 작업장을 소통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것이다. 작가들이 소통을 바라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에 취약한 탓에 부족한 게 많다.”
그렇다고 일산의 미술 작업실이 예술 군락지로서 생명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10여년 전부터 서울 접근성이 뛰어난 일산의 농사형 창고에 몇몇 조각가들이 둥지를 틀고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려 애쓰고 있다. 최근 한지를 이용한 실험적인 작품품을 선보이고 있는 서송씨는 일찍 작업실을 열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러다 2003년 여름 작업실 한쪽을 부인 장선영씨에게 내주어 어린이 작업실 ‘푸르뫼 창작공간’으로 개방했다. 푸르뫼에서는 예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지역 아이들은 작가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차츰 창의적 예술활동에 나선다.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 창작 의욕을 북돋는 셈이다.
올해 오픈 스튜디오에서는 물레 체험(김영무)과 스펀지 조형(최승호), 흙으로 손 뜨기(차현주), 먹으로 세상보기(천영신), 도예 실습(박동엽) 등의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스펀지에 칼을 대기만 하면 작품이 탄생하는 모습에 탄성을 지른 아이들은 작가의 흙을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을 것이다. 인체 형상을 모티브로 삼아 손의 표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조각가 차현주씨는 “오픈 스튜디오가 아니라면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15명 정원도 채우지 못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누군가 일산의 작업실 군락지에 우연히 들어섰다가 노란색 ‘오픈 스튜디오’ 현수막에 이끌려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면 뜻밖의 행운이라 여겼을 게 틀림없다. 전시장이나 건물의 장식품으로 보았던 최상의 결과물에서 느끼지 못한 감흥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작업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결과물이 나오는 조각의 특성을 생각하면 작품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도 있다. 액체 플라스틱 재료가 거대한 작품을 빚어내는 광경은 놀랍기 그지없다. 작업실 한켠의 미니 갤러리 중앙에 당구대를 설치한 작가의 취향을 어디에서 느낄 수 있겠는가. 50여개 작업실은 저마다의 색깔로 관객을 맞으려 했다.
이렇듯 일산에 뿌리내린 작가들은 대안적인 예술교육으로 지역 공동체를 일구면서 나름의 예술 소통을 꾀하고 있다. 올해는 회화쪽의 작가들도 여럿 참여해 열린 작업실의 개념을 더욱 넓혔다. 온갖 공구가 널려 발 디딜 틈도 없는 작업실을 한달여의 작업 끝에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작가도 있다. 하지만 작업실이 문화체험의 공간으로 쓰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미술인회의가 ‘아뜰리에 매핑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예술가의 사회적 호흡을 꾀하고, 경기문화재단이 일산 오픈 스튜디오를 ‘문화예술인 창작촌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선정해 체계적인 지원을 모색하는 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걱정마라, 내년에도 한다
지금 쿠르베의 작업실을 일산에서 발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각 프레임 안에서나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도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관람객을 부르고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이제는 미술계 거장들이 주도하는 대규모 미술 이벤트에 익숙한 이들이 응답해야 할 차례다. 그래야만 열린 작업실이 예술적 생기를 나누는 문화기지로 거듭나 외국 창작촌과 교류를 꾀하고 소비의 중심지로 떠오를 수 있다. 예술 생태 실험의 현장에서 이뤄지는 미술 축제는 다음해 이맘때에도 경험할 수 있다. 열린 작업실 작가들의 애달픈 구애에 누가 응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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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가가 돈 이야기를 하냐고? |
미술작가에게 작업실은 필수적이다. 만일 회화작업을 하는 작가라면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옹색하게나마 작업실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조각가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대체로 사람 크기를 훌쩍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기에 창고 같은 작업실이 절실하다. 조각가 최승호씨도 작품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다 일산 구산동에 작업실을 마련했을 때 인생의 절반은 성공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작업실이 있다고 해서 원하는 작품을 만들고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스펀지와 칼날을 주요 작품 재료로 삼고 있는 그이지만 한때는 양철 함석을 애용했다. 양철 함석으로 실물 크기의 헬리콥터를 만들기도 했다. 작업실에서 거대한 몸체를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겨우 작품을 만들었지만 전시장으로 운반해 설치하기까지 숱한 난관을 돌파해야 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견딜 만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전시를 끝낸 뒤에 찾아왔다. 적절한 작품 설치 장소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끝내 ‘역작’은 폐기 처분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아픔은 미술작가들의 대형 작품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기 일쑤다.
그나마 조각작가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아예 작품이 보존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하는 미술작가들이 수두룩하다. 회화나 조각 등 전통적 장르에서 나타나는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설치미술가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주도하며 다양한 소재로 파격적인 주제를 다룬다. 작가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다양한 감각을 총동원하는 것이다. 이런 특정 장소에 걸맞게 제작되는 설치미술 작품은 작가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의도된 결과’ 일지라도 작품이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 ‘해체’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설치미술가들은 작품 제작 때마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다. 주로 풀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널리 알려진 설치미술가 안성희씨도 예외가 아니다. 안씨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설치미술로 방향을 바꿨다. “80년대 후반 판화를 배우면서 손으로 붓질을 하지 않아도 뭔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도시의 자연물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기에 냄새와 촉감 등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데 설치미술이 제격이었다.”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드는 까닭일까. 안씨는 유학을 마치고 영국에 체류하면서 틈틈이 국내에 들어와 2002 광주 비엔날레 등 각종 전시에 참여하고, 지난해 귀국한 뒤로는 더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안씨는 국내에서 재료비를 제외한 순수한 ‘작가료’(Artist Fee)를 한번도 받지 못했다. 광주 비엔날레에 초대돼 현지의 자유공원에 채소밭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다만 얼마라도 작가료를 받았던 것을 떠올려 행정 담당자에게 “작품 비용은 얼마나 줄 거냐”고 넌지시 물었다가 “작가가 돈 이야기나 한다”는 ‘핀잔’을 들었다.
이처럼 설치미술가는 전시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처지다. 행여 ‘재료비’라도 챙긴다면 운수 좋은 경험에 가깝다. 안씨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2005 청계천을 거닐다’전 참여를 앞두고 한달여 동안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재료를 찾으려고 새물맞이를 앞둔 청계천을 10여 차례나 드나들었다. 그런 끝에 박물관 전시 케이스 안에 청계천에서 채집한 식물 전시품들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 적지 않은 예산이 책정됐지만 ‘규정상’ 작가료는 따로 없었다. “전시(설치)가 작업인데 작가료를 못받는다면 아마추어란 말인가. 진정한 작가는 아직 아니라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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