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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방된 사람들이 미치고 싶을 때!

등록 2005-06-01 00:00 수정 2020-05-03 04:24

알제리계 프랑스인과 터키계 독일인이 만든 두 이주자 영화
이슬람과 서구문명의 충돌 속에 창백한 청춘들의 초상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인종은 유전되지만 문화는 유전되기 어렵다. 문화는 풍토다. 풍토가 바뀌면 문화도 바뀐다. 그래서 남의 땅에서 자신의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은 허망하다. 더구나 세월은 문화를 지운다. 이주자들에게 세대차는 치명적이다. 그들은 같은 나라에 살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다. 자신의 문화를 지키려는 이주 1세대의 완고한 노력도 현지의 문화에 흡수돼가는 이주 2세대의 흐름을 막지 못한다. 더구나 그곳이 제1세계라면, 그들이 제3세계 출신이라면, 세대의 충돌은 심각해진다. 부모들은 품으려고 하고, 아이들은 벗어나려 한다. 이주자들이 희망을 찾아 떠난 땅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희망은 유전되기 어렵지만, 상처는 유전되기 십상이다. 서구에서 이주노동의 역사는 한 세대를 순환했다. 프랑스인으로 사는 알제리 2세와 독일인이 된 터키 2세, 그들의 충돌하는 정체성은 서구 문화의 화두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터키계 독일 감독 파티 아킨이 만든 <미치고 싶을 때>는 2004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고, 알제리계 프랑스 감독 토니 갓리프는 <추방된 사람들>로 2004 칸 영화제 감독상을 움켜쥐었다. 한국에서는 <미치고 싶을 때>가 지난해 연말, <추방된 사람들>은 5월 하순 개봉했다.

이슬람의 율법과 자유의 몸부림

“어딜 가나 이방인이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프랑스로 떠난 아들딸의 편지를 받고 울먹이는 알제리 가족을 보면서 <추방된 사람들>의 나이마(루브나 아자벨)는 이렇게 되뇐다. 그의 눈가에 얼핏 물기가 스친다. 프랑스에서 알제리까지 5천km를 왔지만, 어디에서도 그들은 ‘추방된 사람들’이다. 프랑스에서는 알제리인이고, 알제리에서는 프랑스인이다. 그들 스스로도 유전자를 부인한다. 나이마는 아랍어 이름을 가졌지만, 아랍어로 말하지 못한다.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라고 소개한다. <추방된 사람들>은 알제리계 프랑스 이민 2세대, 자노(로맹 뒤리스)와 나이마가 부모가 걸어온 길을 거슬러 파리에서 알제로 가는 로드 무비다. 프랑스 파리에서 스페인 세비야로, 모로코를 거쳐 알제리까지, 연어처럼 뿌리를 향해 거슬러 올라갈수록 상처가 덧나지만, 치유도 시작된다. 나이마와 자노는 알제리에서 수피교(아랍식 씻김굿) 의식을 통해 슬픔을 씻어내고 자신과 화해한다. 아랍 음악에 실려 “핏줄과 자신을 찾으라”는 주술이 울려퍼진다.

<미치고 싶을 때>의 주인공은 터키계 독일인이다. 스무살의 시벨(시벨 케킬리)에게 가족은 굴레다. 아버지는 터키 남자와 결혼을 강요하고, 오빠들은 남자 손 한번 잡았다고 여동생의 코뼈를 부러뜨린다. 결혼은 유일한 탈출구다. 시벨은 고분고분한 여성이 아니다. 이슬람 여성의 ‘본분’을 버리고,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그는 터키 가족에 묶여 있지만, 독일 사회에 속해 있다. 물론 자유연애 같은 ‘나쁜 물’도 든다. 시벨은 갑갑해서 “미치고 싶을 때” 차히트(비롤 위넬)를 만난다. 그는 중년의 터키계 독일인이다. 시벨은 결혼을 구걸한다. 손목을 그어가며 협박한다. 둘은 위장결혼을 한다. 위장결혼에서 사랑이 싹튼다. 사랑이 다가오자 불행이 닥친다. 시벨이 외도를 하고, 질투가 살인을 부른다. 차히트는 감옥에 갇히고, 시벨은 터키로 떠난다. 출소한 차히트는 시벨을 찾지만 시벨은 이미 아이의 엄마다. 차히트는 같이 떠나자고 하지만 시벨은 나타나지 않는다.

<추방된 사람들>과 <미치고 싶을 때>는 이주자 감독이 만든 이주자 영화다. <추방된 사람들>은 토니 갓리프 감독의 자전적 영화다. 젊은 시절 알제리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48년생 감독은 43년 만에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섰다. 그리고 그 길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되묻는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아직도 걸어가고 있는 이주자의 행렬 속에서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는 역사를 만난다. <미치고 싶을 때>를 만든 파티 아킨은 31살의 젊은 터키계 독일 감독이다. 아킨은 젊은 터키계 독일 여성을 통해 독일에서 터키식으로 살아가기를 냉정하게 응시한다. 그의 시선은 여성에게 머문다. 터키계 독일 여성은 자유주의 사회에서 봉건적 굴레를 뒤집어쓰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그들의 삶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충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가부장제는 여성들을 이슬람 율법 아래 묶어두려 하지만 여성들은 자유를 찾아 떠나려고 몸부림친다. 여성에게는 “미치고 싶어”지는 현실이다. 이런 비동시성의 충돌은 <추방된 사람들>의 나이마에게도 찾아온다. 원피스 차림으로 알제리 거리를 활보하는 나이마에게 알제리 중년 여성은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고 욕을 퍼붓는다. 얼핏얼핏 스치는 이슬람과 서구 문명의 충돌은 세계의 오늘을 생각하게 한다.

이 땅에서 이주자의 영화가 나올까

두 영화에서 음악은 영상 못지않게 효과적으로 민족성을 드러낸다. <미치고 싶을 때>에는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터키 악단이 주요 장면마다 등장한다. 이들의 노래는 인물의 심정과 영화의 정서를 대변한다. <추방된 사람들>에서도 음악은 주요 모티브다. 프랑스, 스페인, 알제리로 이어지는 음악의 여정 속에서 문화의 차이와 변화는 자연스레 드러난다. 알제리계 아버지와 집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토니 갓리프 감독은 직접 음악까지 담당했다. 놀라운 점 하나. 터키와 알제리의 음악은 상당한 지역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유사한 리듬을 들려준다. 그 리듬에 취해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면, 문화와 문화가 뒤섞이고 충돌하는 지금 여기의 세계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이주자의 영화가 만들어질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남의 것일지라도, 디아스포라는 서글프고 애상적이다. 누구나 자신의 땅에서 “추방된 사람들”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고, “미치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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