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은 몸들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 <맨헌트> <아 유 핫?>
▣ 이후/ 소수문화관찰자 morphmaia@hani.co.kr
근육질의 남성이 벗은 몸을 드러내고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자신만큼 섹시한 남자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보디빌더 경연장이나 포르노 배우 모집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미국 최고의 남자 모델과 미국 최고의 섹시남으로 선정되기 위한 도발적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이야기다.
국내 케이블 방영… 프로 모델 지망생 20명
지난 3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온스타일의 <맨헌트>(Manhunt)는 매주 금요일 밤, 그야말로 멋진 남자들의 퍼레이드를 보여준다. 미국 각지에서 뽑힌 20명의 엄선된 모델 지망생들이 그 주인공으로, 모델 에이전시 IMG와의 10만달러 계약을 위해 경쟁을 벌이는 과정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진행자는 그 이름도 의미심장한 카르멘 엘렉트라. 인기 드라마 <베이워치>에 출연한 관능적인 여배우로, 20명의 남자 모델 지망생들과 함께 있으니 구색은 맞아 보이지만 프로그램 진행상에서 그녀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도전자들을 담금질하는 브루스 헐스의 비중이 더 크다. 캘빈 클라인의 모델이자 25년간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슈퍼모델로 처음에는 오만한 교관처럼 등장하나, 회를 거듭할수록 후배 모델들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가 돋보인다.
애초에 타고난 외모와 갈고닦은 몸매를 내세웠으니 볼거리는 많다. 캘빈 클라인의 하얀 팬티만 입고 전원 스카이다이빙을 한다거나, 호텔 옥상에서 벌어진 슈퍼모델 맬리사 밀러와의 기습적인 촬영, 성정체성을 파괴하는 괴짜 포토그래퍼와의 작업, 광고주와의 오디션에서 실제 CF 촬영에 이르기까지 프로 모델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합숙 생활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와중에 4명씩, 정해진 시간에는 어김없이 탈락자들이 정해져 긴장감이 더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기성 모델의 신분으로 풋내기 지망생인 양 참가한 X맨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참가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일상적인 부분까지 관찰하는 것이 임무. 그리고 탈락자를 결정하기 직전, 심사위원들에게 냉철한 평가를 보고한다. 모델의 세계에서 타고난 자질이나 성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 수 있는 부분.
온스타일의 김제현 팀장은 “최근 메트로섹슈얼 열풍이 불면서 남성들도 패션, 외모, 스타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여성들도 이런 남성들에게 더욱 호감을 가지는 추세”라며 “<맨헌트>는 메트로섹슈얼 열풍을 반영한 색다른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외모만 평가하는 단순한 진행이라면 제아무리 잘난 남자들이 나와도 지루할 것이다. 다채로운 사진촬영 결과를 통해 그들이 모델로서 어떻게 변모해가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평범한 대학생, 인명구조원, 영업사원이었던 그들이 프로 모델의 자질을 갖추는 과정을, 마치 직업체험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잘 보여주고 있다.
확실히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보는 것은 즐겁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시청자가 여성들이겠지만, 다양한 성향을 가진 남성들도 채널 고정의 유혹을 받을 법하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보느라 몸매가 ‘착하지 않은’ 시청자들은 자신과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제아무리 잘난 몸뚱이라도 계속 보다 보면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결국 긴장감 넘치는 동물 다큐멘터리로 채널을 돌리고 싶어진다.
‘과잉의 육체미’가 즐겁다? 거북하다?
그렇다면 이런 프로그램은 어떤가. 2003년 워너(Warner)사가 제작, 동아TV에서 방영하고 있는 <아 유 핫?>(Are You Hot?)은 앞서 말한 <맨헌트>에 비해 좀더 노골적이다. 인기리에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섹시해지고 싶고, 섹시한 자신을 뽐내고 싶은 본성’을 마음껏 드러낸다. 심사위원은 패션 디자이너 랜돌프 듀크와 슈퍼모델 레이첼 헌터, <레니게이드>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영화배우 로렌조 라마즈. 참가자들을 향해 내뱉는 이들 심사위원의 평가가 압권이다. 대부분 셋의 평가가 일치했지만, 자격미달로 보이는 자신감 과잉의 도전자들이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참가자들에 대해서는 무안할 정도로 직설적인 평가를 내린다.
재미있는 것은 탈락자들의 변. 그들은 무모하리만치 당당하여 자기가 왜 탈락됐는지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보인다. 한참 지켜보다 보면 도대체 섹시함의 기준은 무엇이며, 저렇게까지 섹스 어필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앞서 말한 문화적 차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애당초 미국에서 가장 섹시한 남녀를 뽑겠다는 선발대회의 일종 혹은 상금을 놓고 벌이는 리얼리티 쇼로 시청률 경쟁이 살벌한 방송산업일 뿐, 시청자들은 자신의 잣대와 심사위원의 기준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마치 게임하듯 방송을 즐기게 된다.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한 정글의 수컷처럼, 자신들의 성적 매력을 겨루는 남자들이 등장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결과가 궁금해서 본다거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좋아한다거나, 이른바 말하는 ‘얼짱·몸짱’ 감상을 즐긴다는 젊은 시청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부분 표현과 소재의 폭이 넓은 외국 프로그램들을 좋아하는 케이블 채널 마니아들이다. 이들에게 남자의 육체미는 하나의 소재일 뿐 ‘남자들도 벗었다’는 건 이슈도 아니다. 메트로섹슈얼의 부각, 여성상위(?) 시대가 만든 새로운 관음증 같은 원인 추측에는 관심없다. 다만, 일반 시청자들은 거북스럽다거나 재미없다는 편인데 나라마다 웃음의 코드가 조금씩 다르듯, 미국과 한국 사이의 정서와 문화의 차이 때문일까.
개중에는 성 상품화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크다. 이것은 방송사 홍보담당자들에게 매우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즐겨보는 프로그램들을 되돌아봤을 때 정작 문제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여자 아나운서가 어떻게 가슴골이 보이는 의상을 입느냐로 인터넷 논쟁이 뜨거운 반면, 초등학생들도 보는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남자 연예인을 초대한 여자 진행자들이 노골적으로 유혹적인 춤을 춘다. 연예가 관련 뉴스에는 ‘섹시’라는 말이 최고의 수식어로, 그것도 비일비재하게 사용되고 여가수들은 음반을 낼 때마다 ‘섹시’ 콘셉트의 수위를 높이거나 모바일 누드를 찍는다. 겉으로는 발랄한 육체미를 칭찬하는 것 같지만, 보다 보면 불쾌하다. 이런 느낌이 시청자의 무의식에 쌓이기 때문에, 연예계 X-파일을 보고도 무덤덤한 것이 지금의 현실 아닌가.
한밤의 ‘란제리’ 채널보다 낫지 않을까
사실 우리 시청자들에게 서양의 오락물은 너무 동물적인, 지루한 프로그램으로 보이기도 한다. 과잉의 몸, 과잉의 페로몬, 과잉의 자기 긍정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밤중에 란제리 홈쇼핑 채널을 뚫어지게 보느니, 섹시 남녀 선발대회를 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성형수술 인조 미인들의 토크쇼를 보느니, 남자 슈퍼모델을 평가하는 게 훨씬 재미있다. 다소 당황스럽긴 하지만 몸과 마음을 모두 드러낸 이들은 정정당당하게 경쟁한다. 심지어 보기만 해도 즐거울 정도로 끝내주게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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