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뒹구는 <주먹이 운다>와 세련된 누아르 <달콤한 인생>
▣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dmsgud@hani.co.kr
김지운 감독과 류승완 감독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감독이 되기까지 연출부나 해외유학 같은 통상적인 코스를 밟지 않았고 각각의 장편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그해의 최고 데뷔작으로 꼽혔다. 지금까지 두 사람 모두 세편의 영화를 개봉했고, 영화광 출신 감독답게 장르적인 세공이 돋보이는 영화들에 주력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절친한 친구 사이기도 한 두 감독이 네 번째 영화에서 맞붙는다. 4월1일 개봉하는 <주먹이 운다>(류승완 감독)와 <달콤한 인생>(김지운 감독)은 대표적인 장르영화 감독 둘의 정면 대결이라는 점에서뿐 아니라 공통점이 많았던 두 감독이 선택한 전혀 다른 길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거칠게 분류하자면 <주먹이 운다>는 거리의 영화고, <달콤한 인생>은 세트(인공)의 영화다.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세트를 중심으로 정교하게 연출된 스타일을 추구했던 류승완 감독은 <주먹이 운다>에서 데뷔작 때의 땀냄새와 예상을 벗어나는 거리의 돌발성에 영화적 흐름을 싣는다.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인 전직 복서로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에서도 밀려나 거리에서 돈 1만원에 인간 샌드백을 자처하며 삶을 소진하는 40대의 강태식(최민식)과 우발적인 살인사건으로 소년교도소에 들어와 주변의 공기와 충돌하는 20대 유상환(류승범)이 권투 신인왕전에서 맞붙는다는 이야기로 거친 화면의 질감에 낙오된 자들의 조각난 삶과 생의 복원에 대한 의지를 담았다. 이 과정에 흔들리는 삶을 붙잡는 큰 축으로 혈연에 대한 연민과 집착이 서 있다. 90% 가까이 실제 거리 로케로 찍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신을 조각내지 않고 한두컷으로 이으면서 두 인물의 감정 흐름에 연출의 개입을 최대한 자제했다. 차례로 교차하는 두 인물의 사연 가운데 상환에 비해 태식의 에피소드는 다소 밋밋한 편이고 가족의 비중이 커질수록 ‘신파’의 냄새가 짙어지는 건 관객의 취향에 따라 판이한 평가를 받을 것 같다.
<장화, 홍련>에서 꽃무늬 벽지를 비롯해 집안의 공간연출에 큰 힘을 줬던 김지운 감독은 ‘스타일’의 장르인 ‘누아르’를 표방한 <달콤한 인생>에서 아예 공간의 색감과 명암이 등장인물의 심리를 말해주는 수준으로 연출의 무게추를 실었다. “쿨하고 드라이하게 시작해서 핫하고 웨트하게 끝난다”는 감독의 말처럼 냉정하고 합리적인 주인공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서 끈적한 피냄새 진동하는 복수를 벌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보스(김영철)의 오른팔인 선우(이병헌)는 보스의 젊은 애인 희수(신민아)를 감시하라는 지시를 받고 희수의 연애현장을 덮치지만 응징하지 않고 남자를 보낸다. 이게 화근이 돼 그는 보스와 평소 차갑고 원리원칙적인 그를 못마땅해하던 동료와 다른 조직에게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받는다. 한국의 액션 드라마로는 생소하게 대규모 총격전을 비롯해 총이 폭력의 주요 도구로 사용된다. <킬빌> <올드보이> 같은 영화들이 이따금 떠오르기는 하지만 화면의 때깔은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련되고 우아하다.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는 않지만 모든 사단의 원인 제공자인 희수의 캐릭터가 약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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