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노리는 출판 마케팅의 인터넷 각축전… 플래시카드·메인화면 쟁탈·북로그 모시기 등 각양각색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지난 연말 주부 이경순(35)씨는 카드메일 사이트 ‘레떼닷컴’(www.lettee.com)에서 날아온 플래시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언뜻 봤을 때 책을 소개하는 광고였는데 들여다볼수록 뭔가 마음을 잡아당기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위즈덤하우스 펴냄)라는 제목의 책을 소중한 마음을 담아 누군가에게 선물해보라는 내용이었다. 플래시 메일은 연말을 맞아 출판사와 카드메일 업체가 제휴해 만든 것이었다. “처음엔 유행을 타는 처세서류의 실용서적 광고라 생각돼 지우려 했어요. 그런데 플래시를 보니까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어서 책에 관심이 쏠렸어요.”
5% 싸게 공급할테니 메인화면 올려줘!
이경순씨처럼 <살아 있는 동안…>을 알리는 플래시 메일을 받은 사람이 200여만명. 이들 중 상당수는 출판사가 마련한 블로그 이벤트에 참여했다. 중국인 저자 탄줘잉이 ‘살아 있는 동안 꼭 해보라’고 권한, 사랑에 송두리째 걸어보기·동물 친구 사귀기·은사님 찾아보기·부모님 발 닦아드리기 등 49가지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내용 하나를 꼽고, 49가지 이외에 자신이 추가하고 싶은 한 가지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이씨는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책 광고 메일을 받아 일상을 돌아보는 작은 행복을 경험했다. 이씨 같은 누리꾼(네티즌)들의 참여에 힘입어 <살아 있는 동안…>는 매스컴의 ‘홀대’에도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거머쥐었다.
최근 출판사 마케팅 담당자들은 온라인의 위력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이 도서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판매로 이어지도록 하면서 ‘대박’의 흐름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한국출판연구소가 조사한 ‘2004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는 성인들이 22.4%로 나타났다. 2002년에 비해 10% 이상 늘어난 수치다. 특히 초·중·고생의 ‘도서정보 검색서비스’ 이용률은 2년 전 31.9%에서 2004년 38.9%로 늘어나기도 했다. 인터넷 서점이 입소문 마케팅의 거점 구실을 충실히 하고 누리꾼들이 도서 정보를 퍼나르는 보이지 않는 영업자 구실을 톡톡히 하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점을 상대로 좋은 위치에 책이 진열될 수 있도록 하던 출판 영업자들이 자신들의 책을 인터넷 서점의 메인 화면에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인터넷 서점의 메인 화면에 오른 책은 그렇지 않은 책보다 10배가량 많이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출판사들은 인터넷 서점의 메인 화면에 신간도서를 올리는 조건으로 일반적인 거래금액보다 5% 이상 싸게 공급하기도 한다. 물론 싸게 공급한다고 해서 모두 메인 화면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인터넷 서점의 편집담당자는 “할인율이 높거나 이벤트를 하는 책을 띄우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책의 질과 무관하게 올리면 고객의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터넷 시대의 베스트셀러 도서 탄생은 온·오프라인의 융합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100만부 돌파 3개월여 만에 200만부 판매를 기록한 소설 <다 빈치 코드>(베텔스만 코리아 펴냄)의 경우가 그렇다. 성배(聖杯)를 찾아나선 기호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12시간 동안 숨막히는 긴박감을 전하는 소설이다. 출판사는 출간 수개월 전부터 전 직원이 프로모션을 준비했다. 그 중 하나가 ‘북 크로싱’(book crossing) 운동이다. 일종의 릴레이 독서운동 차원에서 140여명의 전 직원에게 미리 책을 나눠준 뒤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도록 했다. 이것이 입소문의 시작이었다면 유럽 여행까지 내건 예약 판매 온라인 이벤트는 입소문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렇다고 출판사의 파격적인 이벤트가 베스트셀러 도서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출판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베스트셀러 도서의 조건으로 3T를 꼽는다. 시점(Time), 과녁(Target), 책 제목(Title)이 그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독자층을 겨냥해 그럴듯한 제목으로 책을 펴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광고와 이벤트 등이 어우러진다면 대박의 기본 조건은 갖춘 셈이다. <한국의 부자들> <평생 성적, 초등 4학년에 결정된다> 등을 베스트셀러 도서로 만든 예담의 신민식 홍보마케팅 이사는 “10만부 판매를 이루는 것은 출판사의 마케팅력으로 가능하다.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독자들의 입소문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히트작 제조사도 “10만부부턴 입소문"
그동안 출판사들은 신문과 방송의 새책 소개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다. 기자들의 눈에 띄는 ‘보도자료’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여 제목 하나라도 언론에 노출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언론이 주목한 책이라고 해서 모두 베스트셀러 도서 목록을 꿰차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의 눈높이가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관심사를 따르지 못한 탓이었다. 한 일간지 출판담당 기자는 “하루에도 수십권의 책이 쌓이는데 여기에서 옥석을 가려내기 쉽지 않고, 가려내도 읽는 데 한계가 따른다”며 이렇게 말한다. “기자의 부담을 독자들이 덜어주는 형편이다.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꼼꼼하게 읽는 독자들이 평가도 제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누리꾼들은 온라인에서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지난 2003년 ‘북로그’(Booklog)의 원조 격인 ‘나의 서재’ 코너를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북로그는 개인 미디어인 블로그를 서평에 도입한 것으로 서평 전문가들의 ‘인큐베이터’ 구실을 하고 있다. 북로거들은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솔직담백한 서평을 올린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서평에 댓글을 달아 다양한 의견을 밝히기도 한다. 지난해 1월 ‘나만의 독서 일기장’으로 북로그를 선보인 교보문고에는 현재 6만6500여건이 올라 있다. 이들은 자신의 북로그에 서평을 올리는 데 머물지 않고 인터넷 개인서점인 ‘프렌드샵’을 운영하면서 전문가 서점인 ‘북멘토’ 진입을 꾀하기도 한다.
요즘 직장여성 문지원씨는 아동물 출판계에서 유명인사로 통한다. 학부모 교육모임 ‘잠수네’에 아동서적 서평을 쓰다가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예스24 등에 서평을 올리면서 영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문씨는 지난해 가을 대형서점에 들렀다가 <똑똑한 아이로 만들어주는 그리기 100선>(배영교육 펴냄)이라는 책이 ‘끼워팔기’용으로 제공되는 것을 보았다. “눈여겨보던 책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 서평을 올렸어요. 그것이 북 마니아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순위에 오르더라고요.” 2003년에 나온 초판을 소진하는 데 1년 이상 걸렸던 <똑똑한 아이로…>였는데 지금까지 알라딘에서만 9천여부가 팔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출판사들이 북로거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책을 펴낸 뒤 대형서점의 매대나 인터넷 서점 메인 화면을 차지한다 해도 언젠가는 다른 책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독자의 눈에서 멀어져가는 책에 생명력을 심어주는 게 북로그다. 북로거들을 사로잡지 못하는 책이 꾸준히 생명력을 발휘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인터넷 서점 책 소개란에 ‘알바’를 동원해 몇개의 서평을 올리는 것으로 베스트셀러 도서 목록에 오르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아무리 번지르르하게 포장을 해도 ‘알바의 솜씨’를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북로거, 매출 양극화 깰 수 있을까
인터넷 시대에 베스트셀러 도서 탄생을 위한 마케팅 기법도 진화하고 있다. 그것이 출판사의 일방적인 홍보성 이벤트만으로 이뤄질 리 없다. 갈수록 북로거들의 영향력은 확대될 게 틀림없다. 문제는 베스트셀러 도서 일변도의 시장으로 인해 매출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인터넷 서점의 경우 베스트셀러 종합 100위까지의 도서 판매량이 전체 매출의 50%를 웃돌았다. 이런 현상에 따라 서가에 꽂혀야 할 책들의 자리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로거들의 활약으로 베스트셀러 도서의 조건이 깨지고, 인터넷 서점마다 특이한 도서가 판매 순위에 오르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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