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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스위트 홈’을 팔아라

등록 2005-01-19 00:00 수정 2020-05-03 04:24

아파트 브랜드 광고의 분양 전략… 웰빙족 ‘자연파’와 홈 네트워크 ‘첨단파’의 이미지 메이킹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우리 시대 ‘스위트 홈’은 어떤 모습일까? 아파트 광고가 ‘꿈에 그린’ 집을 보여준다. 일단 ‘푸르지오~’라고 노래할 수 있는 저 푸른 초원 위에 살아야 한다. 웰빙 시대 아닌가? 꼭 ‘어울림’의 김희애씨처럼 요가도 해야 한다. 물론 “오버 더 레인보우~”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햇살이 쏟아져야 운동하는 맛이 난다. 채시라씨는 아무리 자연이 좋아도 ‘이 편한 세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가스불을 끄는 것을 깜박했는가? 걱정마라. 휴대전화로 끌 수 있는 ‘홈 네트워크’ 시스템이 있다. 이영애씨가 휴대전화로 가스불을 끄면서 “남들에게는 꿈이지만, 자이에게는 생활입니다”라고 자랑하지 않던가? 삼성 래미안도 ‘유비쿼터스’ 시스템으로 “당신을 내조하겠습니다”라고 다투어 나선다.

수도권 입주민들 “브랜드 보고 산다"

아파트 광고가 아파트만큼 많은 시대다. 신문뿐 아니라 텔레비전에도 아파트 광고가 넘쳐난다. 현재 방송 중인 아파트 광고만 20여개가 넘는다. 특히 아파트 광고는 톱모델의 경연장이다. LG 자이(이영애), 대우 푸르지오(김남주), 대림 e-편한 세상(채시라), 롯데캐슬(안성기), 경남 아너스빌(배용준), 신성 미소지움(김호진·김지호 부부), 한화 꿈에 그린(김현주), 우미건설 이노스빌(박신양)…. 어느새 아파트 광고는 톱모델로 등극했다는 ‘지표’가 됐다. 최근에는 무명 모델 기용이 ‘차별화’ 전략으로 쓰일 정도다. 모델료도 엄청나다. 김현주씨가 8억원, 박신양씨가 6억원을 받았다. 고액 모델료가 아파트 분양가를 올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형편이다.

아파트에 ‘브랜드’ 도입은 오래되지 않았다. 1999년 삼성중공업의 주상복합 아파트 ‘쉐르빌’이 최초의 브랜드로 꼽힌다. 브랜드가 도입되면서 광고 경쟁에 불이 붙었다. 2001년부터 100대 광고주에 건설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5년 사이 브랜드는 아파트 구매 기준이 됐다. 아파트를 분양 받는 시대에서 아파트를 고르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감덕식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이 2004년 4월에 발표한 <아파트 시장에서의 고객만족 전략>을 보면 아파트의 가장 중요한 구매 기준은 브랜드다. 수도권 아파트 입주민 398명은 주요 구매 기준에 대해 △브랜드 25.6% △교통 18.9% △투자 가치 11.1% 순으로 응답했다. 감 연구원은 논문에서 “브랜드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을 보증하는 수단으로 여겨짐과 동시에 사회적 신분의 상징으로 이해되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이 가격 프리미엄과 결부되는 현실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같은 지역, 같은 평수라도 브랜드에 따라 아파트 가격이 차이가 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브랜드 가치는 분양과 직결된다. 당연히 건설사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너도나도 유명 모델을 기용해 스위트 홈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애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파트 광고에는 스위트 홈의 욕망이 녹아 있다. 일단 아파트 광고는 자연파와 첨단파로 나뉜다. 2004년 초부터 웰빙 바람이 불면서 자연을 강조한 광고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한화 꿈에 그린, 금호건설 어울림 광고 등이 대표적이다. 두 광고는 모두 모델인 김현주, 김희애씨가 자연 속에서 요가를 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대림건설 e-편한 세상도 맑은 실내 공기를 강조한 ‘에코 프로젝트’ 광고를 내보냈다. 지금 다수의 아파트 광고는 ‘도시 속의 자연’이라는 콘셉트로 승부를 걸고 있다.

자연의 느낌에 이국적인 정취를 더하는 광고도 있다. 두산 위브는 배우 이미연씨가 뉴욕 센트럴 파크의 녹지에서 태극무를 연마하는 광고에 이어 돔형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플라멩코를 추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아예 ‘유럽풍’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광고도 있다. 신도 브래뉴는 유럽의 성에 모델 신애씨가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유럽형 고품격 아파트”라고 말한다. 안성기씨가 나오는 롯데캐슬 광고는 유럽 이미지의 원조 격이다. 롯데캐슬은 계속해서 중세 유럽의 성을 보여줌으로써 ‘특정 계층’을 위한 아파트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이처럼 ‘한국에서 살지만 한국적이지 않은 느낌’은 스위트 홈의 빼놓을 수 없는 구성 요소다.

빅모델로 승부한 푸르지오와 에버빌

첨단 시스템을 강조한 광고도 한 줄기를 이룬다. LG 자이는 홈 네트워크 시스템을 내세운다. 이영애씨가 집 밖에서 휴대전화로 집 안의 불을 켜고 물을 덥히는 장면이 핵심 이미지다. 첨단을 ‘가족 사랑’과 ‘이웃 사랑’과 연결시킨다. 삼성 래미안은 지난 연말 시작한 광고에서 ‘빅모델’을 쓰지 않는 자신감을 보였다. 래미안의 유비쿼터스 시스템이 평범한 주부들이 가족을 뒷바라지하느라 미루어왔던 꿈을 이룰 기회를 준다는 내용이다. 김동욱 삼성물산 과장은 “브랜드 가치가 축적돼 있어 굳이 빅모델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명 모델도 과감히 쓰는 대기업 건설사와 달리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는 중소 건설사는 더욱 ‘빅모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분양할 때 “누가 광고하는 아파트”라고 하면 쉽게 통하기 때문이다.

모델 전략으로 성공한 광고도 있다. 대우건설 푸르지오가 김남주씨의 기존 이미지를 극대화했다면, 현진 에버빌은 노주현씨의 이미지를 살짝 비틀어 보여준다. 푸르지오는 ‘패션 리더’인 김남주씨의 이미지를 활용해 ‘김남주씨가 선택한 아파트는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충호 대우건설 대리는 “김남주씨를 통해 투자 가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아파트라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푸르지오의 전략은 성공을 거둬 선호도 조사에서 1위에 올랐다. AC 닐슨 코리아가 2004년 10월 발표한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조사를 보면 △대우건설 푸르지오 20.2% △삼성물산 건설 부문 래미안 19.3% △LG건설 자이 18.1% △대림산업 e-편한 세상 15.4% △롯데건설 롯데캐슬 8.2% 순으로 나타났다.

현진 에버빌은 2002년 첫 광고 당시 “노주현은 죽었다”는 카피로 시선을 끌었다. 에버빌로 이사한 뒤, 일과 술에 찌들어 살던 노주현이 가정적인 노주현으로 거듭난 모습이 카피 뒤에 따라붙었다. 슬로건은 ‘남편을 바꾸는 아파트’. 광고 당시 “노주현이 집 마련하다 힘들어 죽은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떠돌 만큼 화제를 모았다. 현진 에버빌은 최근에도 노주현씨가 아내를 위한 사랑 고백을 연습하면서 민망해하는 광고로 공감대를 끌어내고 있다. 건설사 도급 순위 100위권의 현진 에버빌은 광고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김혜경 현진종합건설 광고담당자는 “브랜드 인지도 때문에 분양에 밀린다는 판단 때문에 광고에 집중 투자를 했다”며 “광고 효과로 요즘에는 지방에서도 분양이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면 아파트도 팔리지 않는 시대다. 심지어 아파트 가치가 곧 사람의 가치가 되는 시대다. 롯데캐슬 광고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고 ‘솔직히’ 말한다. 당신을 말해줄 집을 얻기 위해서 한국인은 오늘도 뛰고 있다. 오늘도 아파트 광고는 ‘꿈에 그린’ 스위트 홈을 열심히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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