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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자우림 랜드, ‘밴드’는 영원하리

등록 2004-12-31 00:00 수정 2020-05-03 04:23

변함없는 팀워크를 자랑하는 4인조그룹 자우림… 홍대 앞 클럽에서 키운 ‘정체성’이 생명력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넓고 넓은 음악의 바다에 떠 있는 섬 하나에서 폭죽이 터지기 시작한다. 뭍에 있던 이들이 몰려나와 구경한다. 누군가는 이내 흥미를 잃고 돌아가지만 누군가는 감탄사를 터뜨리다 못해 배를 끌고 와 섬을 향해 노를 젓기 시작한다. “저 섬에 가서 나도 같이 폭죽을 터뜨릴 거야.” 하지만 안개 속의 섬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실, 도달해봤자 배를 댈 곳을 찾지 못해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저 바다에 둥실 뜬 배 안에서 불꽃이나 쳐다볼 일이다. 자우림 아일랜드, 그곳의 네명이 만들어놓은 음악보호 경계구역에 당신은 쉽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김윤아 밴드’가 될 수 없는 이유

얼마 전 다섯 번째 폭죽 (All You Need Is Love)를 쏘아올린 록밴드 자우림. 1997년 1집을 내고 수년이 지난 지금, 미디어에 적당히 마모될 법도 하건만 그들이 누군가를 향해 쌓아올린 불신의 벽이 꽤 높아 보인다. 사무실에서 처음 마주한 이들에게 말을 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난 밴드·프로젝트 음반을 통틀어 를 좋아한다”는 식의 작전도 별 효용이 없었다. 연애 문제 같은 사생활이 궁금해서 취재하러 온 게 아니라는 뜻은 잘 전달된 것 같지 않았다.

“게시판에서 어느 팬이…”라고 우회적으로 운을 떼곤 “이번 앨범이 발랄해졌다고 하던데요”라고 물어봤지만 문장이 채 마침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말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은데요, 발랄해지려고 했지만 결국 우울한 노래들이 채워졌죠, 어느 어느 노래 들어보셨는지요, 음반 재킷이 발랄해서 그런 거겠죠, 그들은 철창을 치기 바빴다. 음악기자와 음악인이 음악적 진실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얘기를 나누기 위해 걷어내야 할 낯가림의 두께가 꽤 두꺼워 보인다. 대중적 인기와 음악적 자의식을 저울질하며, 연예산업의 천박성에 대항해온 그들의 줄타기가 찾아낸 방식일까.

“이번 음반이 스카펑크라고 하던데요.” “그런 평 한 적 없어요. 기자분들도 각자 느끼는 대로 쓰시는 거죠. 저흰 저희 음반에 대해 특별히 평하지 않아요.” “사회 비판적인 가사들은….” “저흰 사회 비판한 적 없어요. 그냥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가사를 쓸 뿐이에요. 의도하고 그런 걸 하나요.”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결과물들도 대중에게 던져진 순간 그들 말대로 대중이 느끼는 만큼 의미가 윤색되고, 결과적으로 사회 비판적 성격의 노래로 남게 된다. ‘Fucking America’라고 외치는 안치환과는 다르지만, 세상을 꼬아보고, 꼬아진 세상을 풀어버리려는 자우림의 정신에 환호하는 이유는 비틀어진 가사에도 있다. ‘내성적인 사회 비판’이라고 하면 자우림과 미디어 사이의 절충형 단어가 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자우림은 “남들을 위해서 저희가 음악을 하는 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적성과 흥미, 만족과 성취감을 좇는 이들은 대중에겐 자연발생적인 공감 정도만 기대할 뿐이다. 밴드 구성원들의 시선은 내부를 향해 있고, 함께 원을 만들어 벽을 쌓아올린 이들에게 ‘김윤아 밴드’의 그림자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홍일점의 보컬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틀림없이 이들은 ‘자우림 밴드’이다. 하나의 조직체에서 공동작업을 통해 음악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영민하게 익혔기에 지난 몇년간 성공적인 활동을 보여줄 수 있었다. ‘자우림’의 생명력은 “우린 밴드이다”라는 믿음에 있다.

일본 활동하며 그들을 부러워했으니…

그 뿌리는 1996년 가을, 서울 홍익대 앞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베이스 김진만씨와 함께 홍대 앞 클럽 블루데빌의 무대에 섰던 기타 이선규씨는 어느 날 우연히 김윤아씨의 노래를 듣고 반해 러브콜을 보냈다. 그 뒤 드러머 구태훈씨가 합류하면서 자우림의 밑그림이 그려진다. 이들은 매주 블루데빌 무대에 오르면서 함께 곡을 쓰고, 연주를 했다. 홍대 앞 무대는 음악적 성장의 모태였다. 그 뒤 우연히 영화 삽입곡 가 폭탄처럼 터지면서 고마운 유명세에 휩쓸리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밴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현명함이 있었기에 ‘댄스그룹’이 되지 않았다. 이미 만들어놓은 곡들을 차곡차곡 채워 1집을 냈다. “스포츠 신문에서 연예인들과 묶어서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기순위 프로그램도 그만 나갔으면 좋겠어요.” 1집을 냈을 때도, 5집을 낸 지금도, 바다 건너 일본에 건너가서도 변함이 말한다.

자우림은 일본 음악 페스티벌과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고, 7개 도시 순회공연도 가졌다. “언어가 달라도 감동은 그대로라는 게 놀라웠어요. 행복했죠.” 기획된 ‘보아’와 자신들은 다르다고 말하는 표정엔 자신감이 묻어 있다. “일본 음악 시장은 제대로 되어 있어요.” 크고 작은 공연장엔 하드웨어가 잘 구비되어 있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인정받은 인디밴드들은 자신들의 색깔을 그대로 가지고 오버그라운드로 떠오를 수 있단다. “콘셉트를 깨버리고 필요한 것만 뽑아내려 하니 결국 모든 게 망가지는 거죠.” 댄스그룹 해보자, 기획사를 바꿔봐라, 김윤아 너만 따로 해보자, 라는 식으로 ‘밴드’를 부정하는 말에 시달려야 했던 ‘자우림’의 초기를 떠올리면 더욱더 일본 시장과의 격차가 크게 다가온다.

그런 문제의식에서였을까. 드러머 구태훈씨는 지난해에 홍대 앞에 클럽 사운드홀릭을 열었다(http://cafe.daum.net/SoundHolic). 인디밴드들에게 좋은 음향 시스템을 제공하고 싶어 세심하게 공을 들였다. “힘들게 무대에 서야 한다면 밴드들도 그만큼 힘들어져요.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손해죠.” 구태훈씨의 말이다. 자우림에 합류하기 위해 사표를 던지기 전까지 무대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했던 그는 ‘사운드홀릭’을 밴드 레이블로 키워볼 생각이다. ‘홍대’라는 하나의 음악적 생태계 안에서 싹을 틔우고 성장한 그들이 다시 물을 뿌리는 모습에서 밴드의 정체성을 재확인할 수 있다.

이즈음 문득 궁금해져서 “그래서 자우림이 어떤 음악을 하는 밴드인 거죠”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그들은 ‘당신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표정을 띠고 “그냥 자우림이에요. 저희들끼린 그냥 알아요”라고 답해올 것이다. 조금 더 파고들어 “한명이 데모 테이프를 가져와 들려주면 각자 악기를 연구해서 음악을 합쳐 만들죠”라는 대답을 얻어낸들, 아니면 “5집은 날것의 에너지를 담아내려고 했어요. 라이브가 가능하도록이요”라고 파편적인 답을 얻어낸들, 누가 자우림의 음악이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공연 클럽 ‘사운드홀릭’ 시작

보컬의 목소리가 튀는 걸 십분 감안해도, 그들의 자의식은 밴드 안 세계에 머물고 있고, 각자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 집중하면서 전체의 조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김윤아씨도 자신의 목소리를 밴드에 속한 악기 하나로 생각한다. 드럼이 리듬감을 만드는 타악기라면, 목소리는 가사를 담을 수 있는 또 다른 악기이다. 음반에서 변화무쌍한 목소리를 보이는 건 ‘자우림의 이 노래엔 이 목소리가 어울린다’라는 보컬관이 반영된 탓이다. 기타 연주의 가짓수만큼이나 보컬의 표현법을 늘려보려 한다.

그래도 무조건 여기저기 불려다녀야 했던 시절을 통과의례처럼 치르고, 지금은 쇼프로그램의 게스트로 나서지 않아도 되니 그럭저럭 안정적인 생활로 접어든 셈이다. 처음부터 인연을 맺어온 기획사쪽에선 이들에게 어떤 음악적 콘셉트를 강요한 적이 없다고 한다. “개인 음반을 내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며 “프로젝트 음반들은 영양학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설파하는 김윤아씨 표정에서 현명한 밴드 문화가 엿보인다. 결국 풍부한 음악적 세례는 이들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반가운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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