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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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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이미지들의 잔치를 벌여보자

등록 2004-08-20 00:00 수정 2020-05-03 04:23

거대하지는 않으나 환상적인 무대 …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무대미술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뮤지컬 에서 육중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식의 환상적 스펙터클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뮤지컬 (LG 아트센터)의 ‘동화 같은 현실’이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다. 스펙터클만 생각한다면 런던 서쪽의 웨스트엔드의 뮤지컬 의 국내 공연을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온갖 첨단기기를 장착한 경주용 자동차 ‘치티’가 무대 위로 오르는 장면에 입을 다물 수 없기 때문이다. ‘오즈의 마법사’ 마녀들에 관한 뮤지컬 만 해도 용의 머리가 포효하고, 내년 국내 무대에 오를 예정인 뮤지컬 은 비행기가 등장하는 등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국내 초연되는 뮤지컬 가 환상적 무대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보다 실감나는 캐릭터들을 즐길 수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10년째 장기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는 애니메이션 전문영화사 디즈니가 처음으로 만든 작품이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력과 막대한 자본력으로 색다른 무대를 만들었다.

카퍼필드의 마술이 숨어 있다

가족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지만, 평론가들은 기존의 뮤지컬 제작 관행을 파괴하며 만화적 상상력을 현실에 옮긴 작품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사전 제작비 1200만달러를 투자한 대가로 토니상 뮤지컬 부문에서 최고 의상상을 받은 게 고작이었다.

뮤지컬 에도 관객의 눈을 자극하는 장치가 수두룩하다. 그것은 비행기가 무대에 등장하는 것처럼 관객의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빠른 장면전환 과정에서 첨단기술의 결정체들이 숨가쁘게 지날 뿐이다. 이를 찾아내려면 관객들의 눈썰미가 필요하다. 설령 눈썰미가 있더라도 끝내 의문을 풀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저주받은 야수가 위엄 있는 왕자로 바뀌는 장면은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와 스탠리 메이어가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이 장면은 10년을 이어온 공연에서 두번 ‘오작동’된 것으로 알려졌다. 투명한 카트에 얼굴만 내민 미세스 폿츠(주전자)의 아들 칩이 몸뚱이를 어디에 감췄는지도 수수께끼다. 이처럼 마술적 기법을 동원하지 않고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무대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화처럼 클로즈업 기법이 통하지 않는 무대에서 뮤지컬 는 색다르게 캐릭터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야수의 하인들이 시계와 주전자, 옷장, 촛대 등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차츰차츰 보여준다. 예컨대 형체만 있던 시계하인의 등이 시간이 지나면서 태엽이 달리고 수염이 시침으로 바뀌는 식이다. 이는 물건의 완성(인간의 소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무생물체로서의 배우를 느끼게 한다. 뮤지컬 비평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가 첨단기술의 결정판이라고 말한다. “마술에 가까운 특수효과로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충실히 표현했다. 거대한 스펙터클이 아니어도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뮤지컬 가 보여주는 무대미술의 성취는 무엇일까. 일단 획기적인 기술적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 커다란 배가 무대 위를 미끄러다니는 듯한 장면이 국내 창작 뮤지컬()에서도 경험한 상황에서 전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면 눈이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뮤지컬 의 뒤를 이은 대형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들은 처럼 무대가 아래, 위로 움직이는 수준이라야 자극을 받을 것이다. 그나마 에 등장하는 무대미술의 백미로 꼽을 만한 것은 야수가 사는 거대한 성이 관객에게 다가오는 장면이나 성이 한바퀴 회전하면서 싸움의 무대가 바뀌는 장면이다.

10kg에 이르는 야수의 분장

물론 뮤지컬 의 핵심적인 볼거리는 따로 있다. 무엇보다 빠른 장면전환은 애니메이션의 그것을 보는 것처럼 순식간에 이뤄진다. 2시간30분의 공연 동안 43회의 장면전환이 이뤄진다. 장면전환에 속도감이 붙은 것은 특수한 무대 바닥에서 이뤄진다. 애당초 LG아트센터 무대 위에 10년 전 브로드웨이 팔라스극장에서 초연할 때 사용한 무대 세트가 그대로 설치돼 있다. 원래 무대 바닥 위로 15cm 정도 올라온 세트에 도르래 케이블이 깔려 있다. 지하의 오토메이션룸에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무대가 자동으로 이동하게 된다. 만화처럼 장면전환이 이뤄지는 뮤지컬 무대의 공간 변환을 위해 2.4km에 이르는 자동화 케이블이 바닥 등지에 깔려 있다.

그렇게 순식간에 바뀌는 무대에서 디즈니의 기술력이 낳은 환상을 체험할 수 있다. 야수와 가스통의 결투 장면은 특수효과의 진수를 보여준다. 두 사람은 바뀐 무대의 성벽에서 혈투를 벌인다. 이때 천둥번개 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쏟아진다. 거센 빗방울이 금방이라도 객석을 향할 듯한 이 장면은 프로젝션 TV를 이용해 스크린에 비오는 영상을 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1년6개월에 걸친 개발을 통해 선보인 마녀의 ‘파이어볼’(fireball)은 불덩어리가 완전이 사라질 때까지 손에 쥐고 있어도 아무런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뤼미에르의 방화 플라스틱 손은 35cc가량의 부탄 액체를 이용해 불꽃을 점화시킨다.

“무대미술 전문인력 턱없이 부족”

애니메이션 의 화려한 영상은 무대 디자인을 통해 더욱 풍부해졌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거대한 성과 다채로운 조명은 관객들을 쇼적 환상이 있는 마법의 공간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 뮤지컬의 줄거리를 전달하는 데는 색깔도 유용하게 쓰인다. 예컨대 성의 차가운 블루와 대비되는 빨간 마법의 장미, 무대를 감도는 보라색은 야수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하는 식이다. “인간은 색깔에 잠재적으로 반응하면서 배우의 연기나, 음악, 줄거리에 집중할 수 있다. 색깔은 줄거리를 감정적으로 이해하고 경험하는 데 기여한다”(의 무대 디자이너 스텐리 메이어).

전통을 고집하는 브로드웨이 평론가들도 뮤지컬 의 의상에 대해서만큼은 인색한 평가를 내릴 수 없었다. 의상 디자이너 앤 하우드워드가 디자인한 무대의상은 하나하나가 ‘작품’에 가깝다. 특히 야수의 분장은 백미로 꼽힌다. 야수는 메이크업, 보철, 머리 등을 살피는 세명의 분장팀이 1시간30여분의 분장을 통해 탄생한다. 온몸이 털로 뒤덮인 야수의 의상을 걸치면 무려 10kg이나 불어난다. 야수는 공연 내내 ‘한증막’에 갇힌 상태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의 동작을 취할 때 끊임없이 땀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클라이맥스에서 격렬한 동작이 이뤄지면서 야수의 분장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의 쾌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뮤지컬 의 무대미술이 새로운 차원에서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뉴욕에서 10년 전에 무대에 올린 작품을 국내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연에는 배우와 오케스트라를 제외하고 240여명의 국내 제작진이 참여하고 있다. 이 가운데 무대미술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껏해야 프로그래밍된 버튼을 조작하는 수준인 속내를 알면 무대미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설앤컴퍼니의 조용신 테크니컬 매니저는 “수입 뮤지컬 제작에 국내 인력이 참여해 기술적 노하우를 쌓더라도 창조적 기술로 활용하기 힘들다. 기계와 전기, 무대공학 등에 관한 전문인력이 턱없이 모자라 탓이다”고 말한다.

최근 무대미술은 ‘테크닉’이 아니라 ‘예술’로 대접받는다. 그만큼 시각적인 부분이 무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대미술은 연출과 대본, 연기 등의 영역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무대라는 거울에 현실세계를 반영하고 무대라는 창을 통해 상징의 세계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로 무대미술의 몫이다. 특히 뮤지컬 무대는 시각효과가 중심이 되는 ‘이미지 극장’ 구실을 하면서 미술과 첨단공학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는 현대 무대미술의 예술적 성취를 확인하는 자리로 손색이 없다. 다만 다양한 무대효과에 연기와 노래가 생기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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