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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신데렐라는 오늘도 진화 중!

등록 2004-07-22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 등 신데렐라 드라마 인기 비결… 다면화된 21세기형 캐릭터로 60분 판타지 영리하게 구축 </font>

▣ 백은하/ 자유기고가 lucielife@naver.com

뭐, 새삼스러울 건 없다. 불쌍한 신데렐라가 계모와 언니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멋있는 왕자님의 간택을 받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뛰어넘어 끊임없이 반복됐던 익숙한 돌림노래가 아니었던가. 이 땅에 텔레비전이 보급되고 드라마가 생겨난 이래로 나 같은 ‘고전’은 드라마 제작자들 사이에선 ‘바이블’로 칭송되고, 천년을 우려먹어도 또 우려먹을 게 남아 있는 ‘반영구적 쇠꼬리’쯤으로 애용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2004년의 텔레비전이 동시에 여기저기서 신데렐라 이야기를 쏟아낸다고 해서, 특별히 흥분할 필요도 싸잡아서 비난할 필요도 없다.

2004년판 신데렐라들. 문화방송 , SBS 그리고 최근 시작한 한국방송 까지 여름을 겨냥한 각 방송사의 ‘섬머 패키지’는 외관상으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차태현·성유리·김남진이라는 달콤한 스타들을 내세우거나, 박신양·김정은이라는 안정된 커플로 승부를 겨루거나, 비·송혜교라는 조합만으로 기대되는 캐스팅을 내놓은 이 드라마들은 내용상으로 봐도 비슷비슷하다.

리조트 사장 아들과 리조트 도우미(G·O), 자동차회사 회장 아들과 가난한 어학연수생, 아시아 대형스타와 무명의 작가의 연애 이야기로 별 볼일 없는 여자들이 올라가지도 못할 왕자님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큰 축으로 하고 있다. 또 계절상품답게 북해도에 발리에 파리에 중국으로 이어지며 도통 주인공들이 한국땅에 발 붙이고 있을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의지하지도 않은 ‘방콕’행을 받아들여야 하는 가난한 시청자들에게나, 복잡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안방에서 편안히 즐기는 이 ‘60분간의 판타지’는 잊지도 않고 또 찾아오는 반가운 계절과일인 것이다.

성인이 된 왕자… “애기야” 한기주 열풍

하지만 조금 깊게 들어가서 살펴보면, 최근 동시에 선보이고 있는 이 드라마들 사이에도 약간의 차이는 있다. 이 과거의 신데렐라 드라마가 보여주었던 클리세를 많은 부분 답습하고 있는 반면, 에서 이어지는 은 기존 요소들을 뒤집으면서 재미를 더한다. 왕자의 성격과 신데렐라의 성격이 바뀌고, 해피엔딩의 당연한 절차도 밟지 않는다. “사회적 위화감 조성”이나 “비현실적 이야기”라는 상투적인 비판은 귓등으로 흘려들을 생명력 없는 트집이 되어버렸다.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본다”던 소극적인 시청자들과 달리 새로운 신데렐라 드라마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옹호론과 함께 ‘폐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2004년, ‘신데렐라 드라마’들은 어느덧 진화의 시대를 맞이한 것인가. 아니면 영리한 품종 개량에 성공한 것인가.

전국이 ‘한기주 열풍’이라고 해도 그다지 과장은 아닐 것이다. 에서 박신양이 연기하는 한기주는 현재 가장 뜨거운 관심 아래 놓인 캐릭터다. 발 빠른 연예신문은 ‘한기주 어록’이란 것을 정리해서 기사화하는가 하면, 박신양을 모델로 내세운 광고들은 이 효과를 이용하려는 움직임으로 바쁘다. “애기야”라는 소리를 들어본 지 수억만년이 흐른 과년한 여자들에게 이 달콤한 호칭은 기꺼이 유아기로 퇴행하게 만드는, 매회 반복 학습해도 목마른 대사로 자리잡았다. 40%가 넘는 시청률의 공은 어느 부분 털털한 연기를 펼치는 김정은에게도 나눠줘야겠지만, 한기주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끌어들인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바야흐로 이제는 재벌은 재벌이되 ‘어떤 재벌’이냐가, 신데렐라는 신데렐라이되 ‘어떤 신데렐라냐’가 중요해진 시대가 도래했다. 안하무인에 자존심 강한, 독점욕으로 불타는 그러나 알고 보면 외로운 과거가 있는 재벌 아들. 이 박제된 왕자들은 이제 퇴장할 시기다. 물론 새로운 왕자 역시 낙하산으로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고, “직원 하나 해고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권력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부모에 대한 반항심으로만 이글거리는 ‘문제아’가 아니라, 실수도 많이 해왔지만 그 세월과 함께 ‘성인’이 된 왕자다.

그는 연애도 열심히 하지만 일도 열심히 한다. 재즈바에서 땀 흘리며 색소폰을 불어주며 ‘사랑을 그대 품안에’라고 외치던 느끼한 왕자가 아니라 좋아하는 여자에게, 종아리가 굵다고, 얼굴이 못생겼다고, “콧구멍도 이따만하다”고 놀리는 장난기 가득한 쿨한 남자다. “전 설렁탕이 좋아요” 같은 말을 내뱉으며 기꺼이 낮은 데로 임하는 속보이는 제스처 대신 “직원식당에서 식사하는 소박한 재벌 2세? 이거 너무 가식적이지 않나요?”라며 솔직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한기주의 인기는 그가 옷 잘입고 말 잘하는 멋진 재벌이어서도 있지만, 보기 드문 성인남자 캐릭터라는 데 있다. 백팩에 스니커즈를 신고 멋진 슈트를 입은 의 재벌 2세, 그러나 여전히 아이 같았던 정재민(조인성)은 과도기에 놓인 캐릭터였던 셈이다.

돈다발 움켜쥐는 신데렐라가 좋아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캔디 같은 성격에 “사막 한복판에 놔둬도 살아서 돌아올” 여자들. 과거의 신데렐라들이 가진 건 쥐뿔도 없지만 자존심 하나로 똘똘 뭉쳤다면, 21세기의 신데렐라들은 “자존심은 상하지만 이 돈은 고맙게 받겠다”며 돈다발을 굳게 움켜쥔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왕자들에게 대가 없이 안기지는 않는다. 마음에 없는 계약동거를 하더라도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당신을 선택했다”는 눈에 보이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의 이수정(하지원)에 비하면 의 태영(김정은)은 그런 면에서 퇴행한 캐릭터다. 오히려 은 유빈(성유리)을 지지리 못사는 집안 딸로 설정하지 않았기에, 부에 대한 절박함을 만들지 않는다. 꿈이 리조트의 G·O가 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녀는 결코 꿈을 이루는 방편으로 황태자 건희(차태현)에게 비굴하게 굴지는 않는다.

물론 캔디나 신데렐라를 괴롭히는 계모나 ‘이라이자’는 새로운 신데렐라 드라마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의 혜미(진재영)나 의 한기주의 약혼녀인 유나는 전형적인 악녀다. 하지만 은 이혼한 전부인 백승경(김서형)을 배치해 이야기의 다른 긴장을 부여하는 동시에 보통의 드라마에서 악녀가 홀로 짊어지고 가야 할 부담감을 설정해놓는다. 의 혜원(한은정) 역시 배치상으로 보면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해야 하는 악녀이지만, 그녀의 역할은 훼방꾼에 머물기보다는 자신만의 드라마를 가진 온전히 독립적인 캐릭터로 존재한다.

이처럼 최근의 신데렐라 드라마들은 절대적이었던 캐릭터 요소들을 조금씩 희석해가는 가운데 시청자들과 TV평들이 문제 삼아 왔던 명백한 요소들을 영리하게 피해나가기 시작한다. 극단적으로 일관화됐던 캐릭터들은 조금씩 다면화되어간다. 그러니 저런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턱이 없다는, 현실과 비현실에 대한 논란은 이런 류의 드라마를 비판하는 데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꼭 텔레비전이 퍽퍽한 현실을 날것 그대로 재생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드라마라는 것은, 극이라는 것은 원래 판타지다. 그것이 드라마가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유다. 논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낙도, 하루 종일 고기를 잡고 돌아온 어부도,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때론 불가능의 판타지에 빠지면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는다. 그것이 어떤 부분 텔레비전 드라마의 소임이자 존재 이유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극 안의 리얼리티를 얼마나 게으르지 않게 구축하느냐이다. 그 판타지의 세계를 얼마나 빈틈없이 메우고 있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그간 너무나도 안일한 신데렐라 드라마들이 생산돼온 것에 비하면 최근 만들어지는 드라마들은 그래서 반갑고 싫지 않다.

‘품종 개량’은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SBS는 제목이 ‘파리에서 생긴 일’이라고 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에 이어 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물론 같은 방송사에서 만들어졌던 모범적인 드라마의 틀을 그대로 가져와서 다른 색의 살을 붙여서 새 상품을 만들어내는 제작 행태는, 과거 일본 드라마를 무작위로 베껴온 두뇌 없는 트렌디 드라마가 범람한 시절과 비교한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SBS판 해외 로케이션 시리즈’의 생명이 어디까지 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제 우려스러운 것은 드라마들이 자신들이 만든 전형을 스스로 고착화하고 새로운 클리세들을 생산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한국의 신데렐라 드라마들은 주인공들을 못생긴 녹색괴물로 만들고도 해피엔딩에 이르는 같은 자체적인 전복에 이르진 못했다. 대신 그간 부정적으로 지적됐던 요소들을 바꾸는 방식으로 한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1대1이 아니라 남자 2, 여자 2로 이루어진 구조, 솔직하고 쿨한 농담, 현실적인 에피소드, 그러다 자살이나 피살로 마무리짓는 파격적인 결말. 하지만 새 시대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찾았다고 안심할 때는 아니다. 개량 품종이 메이저가 되어 대량 복제되는 순간이 오면 시청자들은 금세 식상해할 것이 분명하다. 하여 이 득의양양한 드라마의 새 법칙들은 유성매직 대신 연필로 쓰는 게 좋을 것이다. 조만간 지우개로 깨끗이, 깨끗이 지워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미안하지만, 그게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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