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감독의 흥행몰이 순항 중… 우직한 ‘비전향 다큐멘터리’의 힘이 관객 불렀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봄날 대학축제 때였다. 당시 함께 활동하던 이들과 함께 장터에 주점을 열었다. 첫날 우리는 주점에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다. 냉전의 그늘에서 오랫동안 세상 구경을 하지 못한 출소 장기수들이었다. 우리는 수인사를 나눈 뒤 ‘이념의 중압감’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설가 김하기가 이름 지은 ‘살아 있는 무덤’을 벗어났어도 ‘갇힌 신세’일 수밖에 없었던 참석자들 역시 일행과 막걸리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조금은 어색하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짓눌린 듯한 분위기였다. 그들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가까스로 이야기를 나눴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리고 군대 시절 권운상의 장편소설 와 김하기의 소설집 을 모포와 침낭 속에서 읽으며 어렴풋이나마 그들의 삶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도 한 인간을 그토록 끈질기게 만든 것들에 대한 의문부호를 떨칠 수는 없었다.
개봉 2주만에 ‘1만명 관람’ 은 일대 사건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은 남쪽의 한 모퉁이에서 지냈다. 남북 관계의 진전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1993년에 이인모씨가 북쪽으로 송환됐고, 2000년 9월에는 대부분의 비전향 장기수가 이념의 고향에 안착했다. 송환이 이뤄진 비전향 장기수들은 모두 63명. 그들의 투옥 기간은 모두 20∼45년이니까 한 사람이 평균 32년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셈이다. ‘달팽이가 숙명처럼 제 집을 살아가듯 통일의 그날까지 분단 구조물인 너(감옥)를 우리의 집으로 지고 살아갈 운명’(김하기의 가운데)이라 여겼던 그들의 강제된 운명이 마침내 자의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운명의 얄궂은 장난은 생사를 갈라놓기도 했고 또 다른 이산의 아픔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았으면서도 그들의 속내를 엿보기는 힘들었다. 서로의 차이를 알려는데도 인색했기에 ‘친구’가 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다가 만날 수 없는 지금에서야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됐다. 푸른영상 대표인 김동원(49) 감독이 12년 동안 카메라에 담은 분단 구조물에 청춘을 가두어야 했던 사람들에 관한 영상 보고서가 나왔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은 지난 3월19일 개봉 뒤 독립 다큐멘터리의 ‘블록버스터’로서 새로운 신화를 써가고 있다. 개봉 2주가 되기도 전에 ‘1만명 관람’이라는 ‘일대 사건’을 만들었다. 영화 배급사인 인디스토리가 배급한 독립 장편영화의 모든 관객 수를 개봉 첫 주에 돌파하기도 했다. 마이너리티 세계에서 블록버스터라지만 초대형 폭탄이 되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을 것이다. 출연료를 받는 배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 대박 공식대로 뻔지르르하게 꾸민 화면도 없다. 그런데도 은 작품 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며 새로운 관객까지 스크린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은 다큐멘터리의 기본 명제인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내면을 자극하는 감동의 향기가 흐른다. 지난해 극장가에서 작은 돌풍을 일으킨 박기복 감독의 에서 느꼈던 흐느낌보다도 진한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나 등 아동을 내세운 영화에서처럼 맑은 웃음을 짓게 한다. 사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김동원 감독의 차분한 1인칭 내레이션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기법 그대로다. 반공 단막극 의 일부 장면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취임 연설을 넣은 것도 실험성에 무게를 두게 하지는 못한다. 우석대학교 영화학부 송교섭 겸임교수(영화연출)는 관객들이 12년의 작업이라는 시간의 무게에서 영화의 힘을 느낄 것이라고 말한다. “웃음과 눈물을 절묘하게 엮어내 감동을 배가했다. 우리가 터부시했던 거대담론을 느낌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들이 있기에 미래를 낙관한다"
우리 사회가 이념의 잣대를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들이댈 때, 김 감독은 그들에게서 인간의 얼굴을 발견했고 인간적 목소리를 주목했다. 김 감독 역시 상영시간 동안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대학 시절 밴드 생활을 하며 양아치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던 김 감독은 1980년대 중·후반 을 찍으며 철거민들을 만나면서 철이 들었다고 했다. 타고난 반골 기질이 다큐멘터리를 찍는 데 내공으로 작용했다. 비전향 장기수들을 처음 만날 때 침대의 할아버지 사이에서 자리를 끝내 벗어나지 않는 어색한 듯한 우직함이 바로 그것이다. 비전향 장기수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일방적이지 않다. 때론 답답할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고 냉정함을 견지하기도 한다. “전반부에서는 실체적 접근을 위해 내레이션을 많이 썼지만, 후반부에서는 되도록 내레이션을 자제하며 화면으로 말을 하고 싶었다. 그분들을 만나면서 제 생각이 바뀌기도 해서 유보적인 면도 있었을 것이다.”
만일 비전향 장기수의 실체를 알고 싶다면 에서 오래된 답을 구하기 힘들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의 ‘전향공작과 양심의 자유’(2001년 8월1일 방영) 편이나 지난해 개봉한 홍기선 감독의 영화 등을 미리 보는 게 좋다. 의 카메라는 오래된 ‘기억’을 쫓지 않고 지금의 ‘삶’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래된 기억을 전혀 꺼내놓지 않는 것은 아니다. 1962년 남파공작원으로 내려왔다가 현장에서 체포된 고 진태윤 선장은 살인적 전향 공작에 대해 “600대까지는 세었지, 그 뒤로는…”이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함께 체포됐던 김영식씨 역시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아들을 낳으려면 나이팅게일 같은 사람을 낳아야 돼”라며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다. 너무나 치졸한 강압에 자존심 하나로 버텼던 그들은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다큐멘터리 이 오랫동안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던 레드 콤플렉스를 가볍게 뛰어넘은 비결은 무엇일까. 카메라는 어느 순간 긴장이 흐르면서도 따뜻한 호흡을 잃지 않는다. 을 찍던 김 감독은 흔들리는 ‘경계인’이었다. 비전향 장기수에겐 선택의 폭이 넓은 자유주의자로, 남쪽 사람들에겐 색깔이 의심스러운 진보주의자로 비치기 십상이었다. 그러면서도 12년 동안 작품을 이어온 것은 철거민을 찍을 때는 빈민으로, 장기수를 찍을 때는 장기수의 아들이 되었던 그의 너른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애당초 김 감독은 작품을 목적으로 비전향 장기수들을 만나지 않았다. 희망의 공동체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고 그들 속에 있다보니 작품이 잉태됐을 뿐이다. “나는 누구처럼 능글맞고 날카롭지도 않다. 항상 흔들리고 자신 없어 한다. 그런데도 그동안 함께 했던 상계동과 행당동의 사람들, 그리고 장기수들이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한국 독립영화계의 대부로 불리는 김동원 감독은 ‘비전향 다큐멘터리’를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동안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를 잡기도 했다. 은 충무로 배급망을 통하지 않고 전국 8개 아트플러스 극장에 개봉한 뒤 지난 3월26일부터는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 인천에서도 상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운수 좋은 경험’이 자신에게만 주어진 ‘처음이자 마지막’의 행운인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 힘들다. 전국 10개 극장 연합회를 주축으로 한 아트플러스 체인만 해도 손익분기점을 위해 독립영화 상영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상영 원하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라도
“상연 기회를 꿈으로 여기며 작품을 제작할 수밖에 없는 독립영화인들이 수두룩하다. 이 독립영화전용관 개관의 기폭제가 되길 기대한다. 국공립 도서관에서 독립영화 필름을 구입해 상영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초기에 지원을 하면 멀지 않아 자생력을 갖출 것이다.”
비전향 장기수라는 딱지를 벗겨내 인간의 표정과 고뇌를 보여주고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야만의 시대를 증언한 은 온갖 험로를 거쳐 우리 앞에 다가왔다. ‘푸른영상’(www.docupurn.org) 사람들은 12년 동안의 촬영과 편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결혼비디오와 기업·선거홍보물 제작을 마다하지 않았다. 푸른회원이라 불리는 후원자들은 십시일반으로 활동 비용을 보탰다. 마지막 키네코(디지털 자료를 필름으로 전환) 작업을 하는 데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카메라 기종에 따라 화질의 차이가 눈에 띄어도 색보정 비용을 마련할 수가 없어 포기했다. 앞으로 푸른영상은 10여명을 모아 상영을 원하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갈 예정이다. 이미 지난주에 전북 전주에 다녀왔고 이번주에는 충북 청주와 충주에서 간이상영한다. 이 방방곡곡 상영을 이어가면 언젠가는 와 의 뒤를 이어 1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게다가 남북 동시상영이 불현듯 실현될 수도 있다.
“국보법에 기죽지 않았다” |
[관객들과 만난 김동원 감독] 지난 4월1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 2관에서 김동원 감독이 관객 50여명을 만났다. 김 감독은 한동안 ‘참았던’ 담배를 지난해 초 편집 과정에서 다시 물었다. 막내딸 푸른이에게 편집 끝나면 다시 참겠다고 했다는 말이 알려져 금연에 성공했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아직 시사회를 준비 중이다”는 말로 흡연 욕구를 실토했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관객과의 만남에서 김 감독은 “은 분단의 상처를 껴안고 우리 안의 분단의식에서 벗어나는 통일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 오랫동안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게 많기에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화면에서 김 감독은 많이 망설이고 주저하는 것 같은데.
= 작품에 논쟁적이거나 선전·선동의 요소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내가 보기와 달리 마음이 약하다. 남파공작, 수령론, 부자세습 같은 것을 따져 묻거나 반박하고 싶기도 했다. 일부 묻기도 했지만 카메라에 담지는 않았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피해의식이 많은 분들에게 나까지 나서 물어보면 선생들이 불편해할 것 같았다.
- 김 감독은 내레이션에서도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지만 등장인물의 인터뷰도 일상에 관한 것을 주로 넣었는데.
= 구성안을 만들 때 북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 생각했다. 변하지 않으면 세계화 시대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북한의 실상은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북한의 선전물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길게 넣을 이유는 없었다.
- 폭압적인 군사독재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을 보며 국가보안법이 떠오르게 된다. 법적 대응을 위한 자기 검열은 없었는가.
= 그것은 386의 정서인 듯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위험할 게 어디 있냐고 반문한다. 이적 표현물이 있어 걸려면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 움츠러들지 않았다. 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 영화를 보면서 아쉬웠던 게 김 감독이 평양행 항공권을 손에 쥐고도 당국의 출국금지 조처로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한 것이다. 그 뒤 어떻게 됐는가.
= 나로서도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곧바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랬더니 이내 무혐의 처리됐다. 앞으로라도 기회가 되면 필름을 들고 선생들을 찾아뵙고 싶다.
- 12년의 작업이라는 데 고개가 숙여진다. 그렇게 오랜 기간 촬영과 편집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과 주안점은 무엇인가.
= 나는 선생들과 달리 전향 공작을 받지 않아서 선택의 폭이 좁았다. 그동안 작업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흔들릴 때마다 제자리에 붙잡아주는 힘으로 작용했다. 내레이션의 경우 단순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성찰적인 내용을 담고 싶었다.
- 500개의 테이프에 800시간의 촬영 분량을 고작 150분으로 편집해야 했는데 ‘버리기’ 아쉬웠던 것은.
= 지금도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다. 그래도 편집할 때 몇분 더 넣고 싶었는데 결국 추리고 추려야만 했다. 선생들 송환을 앞두고 50여번의 환송회 행사가 있었는데 한컷도 쓰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소개하지 못한 게 아쉽다. 보안감찰 대상인 선생들이 경찰에 거짓말하며 빠져나가는 장면도 있었다.
- 어쨌든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은 이뤄졌다. 그분들의 북쪽 생활이 어떠리라고 보며 남아 있는 전향 장기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금방석에 앉아 지내신다고 하는데 만족한 삶을 사는지 나 역시 궁금하다. 송환 이전에도 영웅대접을 받을 것에 거북해하셨다. 그리고 모두 평양에 모여 사시는 데 결국 고향에 가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전향 장기수 28분이 계신다. 남북 모두 적극적이지 않아서 해결하기가 수월치 않을 것이다. 남북 관계에 획기적 진전이 있다면 예상보다 쉽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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