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신임 노동부 장관의 구상… ‘일자리 협약’에 민주노총의 요구도 반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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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김대환 신임 노동부 장관은 “이른바 ‘파업도 쉽게, 해고도 쉽게’라는 뼈대로 돼 있는 노사관계 개혁 로드맵은 문제가 있다”며 “현재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과는 별도로 로드맵을 공론화에 부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또 “지난 1월 초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도 로드맵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건의했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의 이런 방침에 따라 노무현 정부 노동개혁 프로그램의 핵심 축인 로드맵은 수정이 불가피하거나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공산이 커졌다. 그는 특히 “파업도 해고도 모두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말해 로드맵 자체가 대폭 수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파업과 해고 모두 ‘어려운’ 쪽으로 근본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그의 인식은 이미 노사정위에 제출된 로드맵의 기본 구상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지난해 9월 내놓은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이른바 노사관계 개혁 로드맵)은 노사정위원회에 넘어가 있으나, “사용자의 대항권만 강화했다”는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논의가 중단될 처지에 놓여 있다.
대통령-이수호 위원장 면담 적극 주선
김 장관은 로드맵의 ‘공론화’와 관련해 방법이나 절차, 시기 등을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노동계와 재계로부터 의견을 두루 듣는 과정을 거쳐 이미 제출된 로드맵 내용을 빼거나 보태는 수정 절차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기존 로드맵안을 폐기하고 노동부가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 건 불가능하지만, 로드맵의 방대한 항목 중에서 우선순위를 가리고 현실성이 없는 부분은 삭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애초 올 상반기 안에 확정짓기로 한 로드맵의 시한도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김 장관은 최근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과 관련해 “앞으로 민주노총의 요구를 수용, 반영해 합의를 구체화하거나 필요하다면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 협약에 대해) 민주노총이 정부와 별도의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민주노총쪽에 구체적인 안을 내놓으라고 말해뒀다”며 “민주노총이 대화에 참여한다고 해서 (이미 체결된) 협약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노총·경총·정부가 이미 합의한 내용을 전면 수정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노사정위를 포함한 여러 가지 대화 틀을 가동해 민주노총의 요구를 반영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는 또 “임금안정이 일자리 창출에 당장 큰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 일자리 협약 내용의 변화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로드맵 및 일자리 사회협약에 대한 김 장관의 이런 구상은, 지난해 여름 이후 파국으로 치달아온 노무현 정부 전반기의 노-정 관계를 대화와 교섭의 파트너십으로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로 풀이된다. 노동부는 그동안 노사 양쪽을 모두 배제한 채 독자적인 로드맵을 급히 만들어 노사정위원회에 던져놓은 뒤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들어와 논의하든지 그대로 수용하든지 선택하라”고 밀어붙여왔다. 따라서 로드맵을 다시 공론화하고,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역시 민주노총이 원하는 대로 ‘노사정위 바깥에서’ 실질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밝힌 건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을 적극 끌어안겠다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로드맵과 일자리 협약에 대한 탄력적 대응을 통해, 나아가 이를 연결고리 삼아 민주노총과의 관계 복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는 “참여정부 노동정책에서 정책의 미비가 있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한다”는 김 장관의 또 다른 말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김 장관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심도 있는 연구와 고민을 통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현실에서 구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하고, “대통령과 이수호 민주노총 새 위원장의 면담을 적극 주선하겠다”고 말했다. 은 장관 취임 사흘째인 지난 2월14일 낮,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김대환 노동부 장관을 만나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파업도 해고도 쉽게”는 문제 있어
-노사정위원회에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이 나왔다. 이번 합의로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는가.
=일자리 사회협약은 한번 맺고 끝나는 게 아니다. 지속적으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가꿔나가야 한다. 네덜란드에서도 그때그때 바꾸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일자리 사회협약이 갖는 에너지는 노·사·정의 신뢰회복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화를 통해 노·사·정 상호간에 신뢰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지, 그 이상의 욕심을 부리는 것은 무리다. 일자리 창출은 내가 노동부 장관에 재임하는 동안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나갈 것이다.
-이번 일자리 사회협약은 민주노총이 빠진 채 한국노총만 참여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하는데.
=일자리 협약과 관련해 민주노총이 정부와 별도의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쪽에 구체적인 안을 내놓으라고 말해뒀다. 이번의 일자리 사회협약은 포괄적이고 아주 추상적이다. 민주노총이 대화에 참여한다고 해서 (이미 체결된) 협약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요구를 수용할 것은 하고, 또 (기존 합의를) 보완하고 구체화할 수 있다고 본다.
-일자리 사회협약에 노동계가 임금안정에 협조한다는 대목이 있는데, 임금이 과연 일자리 창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보는가.
=노동자가 임금안정에 협조한다고 해서 당장 일자리를 만드는 데 큰 효과를 내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기업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어야 일자리가 창출되는데, 기업이 지금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는 사업의 수익률 등이 큰 요인이고 임금 요인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임금안정이 주는) 심리적 효과는 크다. 일자리는 기업활동 활성화, 사회적 일자리 창출, 그리고 ‘괜찮은 일자리’를 지키고 나쁜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만들어가는 이 세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이 엄동설한에 일자리 하나가 얼마인가? 그만큼 우리나라도 지금 일자리가 전국민적 관심사다.
-김 장관과 이수호 민주노총 새 위원장이 고교(대구 계성고) 동창으로 오랫동안 친분을 나눠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실이) 초장에 밝혀져서 부담스럽다. 친분이 강조되다보니 겉으로는 좋아지겠구나 하는데 솔직히 부담이 된다. 이수호 위원장은 몸이 (공직으로) 얽매이지만 않았다면 매일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민주노총이 투쟁적이고 강성이라고들 하는데, 이 위원장은 정이 있고 온화하고 따뜻한, 품이 넓은 사람이다. 환경이 허락한다면 자주 만나고 싶다. 앞으로 비공식적으로라도 같이 만나서 긴밀하고 진지하게 대화할 것이다. 물론 노-정 관계가 두 사람의 관계로 풀릴 그런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끼리 대화를 잘하면 원만하게 풀릴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현 상황에 대한 이 위원장과 나의 인식이 서로 접근될 것이라고 본다.
-이수호 위원장이 대통령과의 직접 면담을 원한다고 몇번 얘기했는데.
=대통령과 이수호 위원장의 면담은 적극 주선할 것이다. 또 면담뿐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
-노사관계 로드맵은 참여정부 노동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가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른바 ‘파업도 쉽게 해고도 쉽게’라는 뼈대로 돼 있는 노사관계 로드맵은 문제가 있다. 파업과 해고는 모두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지난 1월 초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도 내가 로드맵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건의했다. 당시 노동법 학자들이 모여 로드맵을 만들었는데 본격적인 논의가 안 된 채 서둘러 나온 측면이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으로 가야
-로드맵 가운데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가.
=면밀한 검토는 아직 못했다. 하지만 (장관이 되기 전에) 바깥에서 로드맵의 내용은 잘 파악하고 있다. 이제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 로드맵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협의와 토론을 통해 앞으로 법제화되는 것이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로드맵을 다시 고칠 수 있다는 뜻인가.
=로드맵을 보면 면면이 꼭 노사 어느 쪽에 불리하고 유리한 것은 아니지만, 노동계나 사용자쪽에서 불만을 얘기할 수 있다. 따라서 다시 이야기해볼 수 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지금 로드맵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필요하면 (노사정위 논의와 별도로) 다른 한편으로 로드맵을 공론화할 용의가 있다. 노·사·정 사이에 합의만 되면 (공론화에 부치는 게) 가능한 것 아닌가.
-오늘 아침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며 또 분신했다
=노동시장이 변화하고 있고, 비정규직 존재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비정규직을 남용하는 경향은 분명히 일부 있다. 이는 철저히 막아야 한다. 반면 노동계가 비정규직 철폐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건 접어야 한다. 정규직화는 과도한 요구다. 물론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차별은 축소해나가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은 어떤 방식으로 해소해나갈 것인가.
=비정규직 차별 해소가 현재 노동문제의 최대 포인트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으로 가는 건 맞다. 하지만 이 원칙을 엄밀하게 규정하는 건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앞으로 심도 있는 연구와 고민을 통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현실에서 구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민주노총이 현행 노사정위원회의 전면 개편과 또 다른 틀의 사회적 대화를 원하고 있는데.
=노사정위원회는 합의를 포함한 ‘협의’를 하는 곳이다. 꼭 노·사·정 3자의 합의만 추구해서는 노사정위가 제대로 굴러가기 어렵다. 협의 틀을 갖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노사정위는 중요하다. 그동안 노사정위 합의안이 철저하게 이행되지 못한 점이 문제로 지적돼왔는데,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지고 이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사정위원회의 대화 이외에 노-정 교섭이 필요한 사안은 노동계와 직접 만날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노-정 관계가 대립과 갈등으로 빠져들었는데.
=노-정간 협의의 틀이 탄력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그동안 노-정간 대화가 정치적 명분으로 경직된 면이 있었다. 노-정 관계는 신뢰의 미비, 정책의 미비, 정치적 의도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에서 정책의 미비가 있었던 점을 솔직히 인정한다. 사전에 대화와 협의를 통해 파업을 줄여야 하는데,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정부가 사용자인 철도 등 공공부문부터 손배·가압류를 한꺼번에 취하할 생각은 없는지.
=일거에 손배·가압류를 푸는 건 불가능하다. 공공부문의 손배·가압류는 건설교통부 등 다른 부처도 걸려 있다. 푸는 절차도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철도의 경우 철도청의 경영자율성을 무시할 수 없다.
-노동전문법원을 설치할 필요성은?
=법관들이 법에 쓰여진 대로 (일반 사건과 같이)처리할 뿐 노동사건의 특수성과 차별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법원이 노동사건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노동위원회의 중재 역할을 강화하고 거기에 법적 효력이 있는 심판 및 판결권한까지 주는 방법도 있다.
“나는 노동자들의 친구다”
-우리 노-사 관계가 비대칭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노동에 대해 우위라고 할 수 있는데, 자본주의가 지속하고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노-사간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발전 역사를 봐도 비대칭 관계를 시정하고 힘의 균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물론 개별 사업장 노-사 문제에 원칙적으로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맞다. 하지만 노-사 대립이 장기화하고 심화되어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심각할 때는 개입할 것이다.
-노동자문단이라고 할까, 노동정책을 만들면서 앞으로 함께 논의할 사람들이 있다면.
=특별한 모임은 없고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이원덕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신철영 전 경실련 사무총장,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윤진호 인하대 교수 등과 자주 얘기를 나눠왔는데 앞으로도 이 사람들과 정례적으로 만나 의견을 나누고 토론도 할 생각이다.
-인하대 교수(경제학부)로 있으면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등을 거쳤는데, 노동 진영과의 관계는?
=나는 노동자들의 친구다. 친노동자적이란 말도 맞다. 그래서 노동운동에 대해 쓴소리도 하는 그런 사이다. 노동자들이 비합법적인 싸움을 해야 하고 탄압받던 시절에는 노동자 투쟁이 불가피했다. 나도 당시 헌신적으로 노동운동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단계는 지났다. 노·사·정이 모두 국민들을 상대로 (설득과 지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정면으로 부닥쳐 이기지 않으면 진다는 식의 사고는 안 된다. 운동은 한판 싸움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노-정 관계에서 결과보다는 과정과 절차가 더 중요하다. 그래야 신뢰도 형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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