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감시시스템 해결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주민등록번호’

10월18일 수요일 오후 6시 연세대 신상경관. 진보네트워크센터 주관으로 토론회가 열렸다. ‘감시시스템과 프라이버시 국제토론회’. 이날 토론회에는 홍성태 편집위원, 김기중 변호사, 영국 노동네트워크 운영자인 크리스 베일리, 일본의 도시마루 오구라 도야마대학 교수(JCA NET 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베일리는 “전세계 모든 국가가 도청을 자행하고 있다”며 에셜런(Echelon)을 그 예로 들었다.
시민사회의 ‘대응감시’ 절실하다
에셜런은 미국과 영국이 중심이 돼 구축한 세계에서 가장 큰 커민트(comint: 네트워크로 전달되는 물리적 정보를 가로채는 기술) 시스템이다. 세계 각국에 비밀로 설치된 도청기지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것이 에셜런의 핵심. 촘촘히 구축된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 정부는 외국 정부의 기밀정보와 기업정보 심지어 개인정보까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도청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컴퓨터 로봇을 이용한 이메일 도청도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베일리는 “가공할 각 국가의 감시 시스템에 맞서기 위해 세계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오구라 교수는 도청법 날치기 통과, 주민등록증 도입 시도 등 날로 강화되고 있는 일본의 감시 시스템을 설명했다.
다음날인 19일에도 감시문제에 대한 국제 토론회가 이어졌다. 아셈2000 민간포럼 미디어분과 주최로 열린 ‘새로운 정보민주주의와 새로운 정보통신기술’ 토론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전응휘(피스넷 운영자)씨, 강명구 서울대 교수(신문방송학), 크리스 베일리 등은 각각 기조 발제를 통해 정보화사회의 감시문제를 지적했다.
이틀 동안의 행사에서 토론자들은 “정보화사회는 감시사회일 수밖에 없다”며 감시사회에 대한 해법으로 “그 해악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적극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결론을 맺었다. 시민사회의 적극적 대응.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대응을 해야 하나. ‘이에는 이, 감시에는 감시로 맞서야 한다.’
정보사회학적 시각에서 감시위험성을 경고해 온 고영삼 부산발전연구원 연구원은 감시사회의 주체인 국가와 기업의 감시에서 시민들이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응감시’가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고 연구원이 말하는 대응감시는 결국 감시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개입이다. 고씨는 “현재 200만명을 대상으로 국민정보화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단순히 정보검색 기술 등만을 가르칠 게 아니라 감시사회에 대한 경종을 알리는 정보윤리교육을 함께 가르칠 것”을 제안했다.
고씨는 특히 시민들이 감시에 대해 적극 맞대응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감시문제를 단순히 프라이버시권 침해라는 차원으로 볼 게 아니라 철저히 인권이란 시각에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감시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프라이버시권의 목소리는 너무나 소극적인 대응입니다. 감시는 단순히 나의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겠다는 프라이버시권 차원이 아니라 시민들이 정보유통권, 자기정보에 대한 보호권 등 기본권을 자신이 가져야 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140여개 항목 기입되는 주민등록표
홍성태 편집위원도 감시자에 대한 국민의 ‘역감시’를 제기했다. 그는 “감시를 무력화할 수 있는 기술적 대안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대응과 구체적인 대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면서 “유명무실한 정보공개권과 정보관리권의 보장을 통해 상호감시의 제도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기중 변호사는 “감시문제를 해결할 핵심적인 키워드는 번호”라고 말했다. “번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정부의 통합전산망도 이 번호에 의해 가능합니다. 표준번호를 통해 얼마든지 데이터를 가공하거나 필요할 때 재가공할 수 있습니다. 번호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원천적으로 자기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나 숨고 싶을 때 숨어 있을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김 변호사는 특히 한국의 가장 일상화하고 위험한 감시시스템으로 주민등록제도를 꼽았다. 김 변호사는 바로 이 “주민등록제도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에서 감시문제는 풀리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주민등록제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실 김 변호사만의 목소리가 아니다. 학계 등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 제도의 혁신을 주창한다.
주민등록제도가 어떻기에? 주민등록제는 1968년 도입돼 30여년 동안 시행해 온 제도. 한국 국민은 태어나면 1달 안에 행정관청에 이름, 성별, 출생일, 부모의 이름과 본적, 주소 등을 신고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물론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출생신고를 받은 관청은 아기에게 13자리의 번호를 부여한다. 이 번호는 그의 일생동안 절대 바뀌지 않는다. 한국인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변별점이 이 주민등록번호인 것이다. 의료서비스를 받을 때나, 행정서비스·교육서비스 등을 받을 때도, 일반 금융거래에서도 우리는 무시로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해야 한다. 한마디로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사회가 한국사회다.
특히 동사무소에서 보관하고 있는 개인별 주민등록표는 그 개인의 총체적 정보체이다. 이름, 생년월일 등 기초정보는 물론 자라면서 정보는 계속 추가되는데, 혈액형, 혼인여부, 배우자 이름, 군입대 여부, 예비군 훈련상황, 개인별 주소이동상황, 학력과 직업도 기록된다. 무려 그 항목이 140여개. 그런데 이 항목 가운데 73개 항목과 전화번호, 의료보험증 번호, 호주변경사유 등 5개 항목이 추가돼 모두 78개 항목의 정보가 국가행정전산망에 수록돼 국가행정기관이 공유하게 된다. 주민등록번호는 한국사회에서 그야말로 국가가 언제나 ‘빅브러더’로 기능할 수 있는 핵심적 감시제도라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인 것이다.
작업장 감시, 노동자 합의 제도화를

“주민등록제도는 우리의 호적제도가 비정상적으로 확대발전한 것입니다. 세계 어디에 혈연관계를 기초로 한 호적제도 같은 게 있는 나라가 있습니까? 번호를 통해 자국민들을 구분, 관리하는 나라는 미국(사회보장번호)과 스웨덴 등 북구뿐이죠. 그외 어느 나라에든 전 국민을 통제하는 통일된 식별기호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주민등록제도는 본격적으로 국가감시망이란 차원에서 문제를 삼기에는 우리의 일상과 내면에 너무나 깊숙이 스며들어버렸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주민등록제도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되레 개인의 안전과 국가정책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리는 한 대학교수는 이런 주민등록제에 대한 해법으로 “주민등록제는 유지하되 가족 등 호적관계만 기록하도록 해야 하고 그 관리도 국가가 아닌 지자체에서 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가신분증에는 국가명, 이름, 사진만 들어가게 하고, 번호도 사람에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신분증 자체에 부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데이터가 한데 모아지면 한 사람의 행적을 추정할 수 있게 되고 악용소지가 높아지기 때문이죠.”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장여경 실장은 감시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기업 및 국가기관 감시를 방지할 일종의 특별법 같은 포괄적인 감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실장은 또한 ‘작업장 감시’ 등 구체적인 감시형태에 대한 개별대응도 필요하다면서, 작업장 감시의 경우에는 반드시 개별 사안마다 노동자와 합의를 하도록 제도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외쳤다. 장 실장은 또 개별 감시기기에 대한 명문화도 생각해봐야할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CCTV의 경우, 자신이 찍힌 화면은 자신이 볼 수 있어야 한다’, ‘화장실 등 절대적으로 설치할 수 없는 데는 설치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 노동자 인권 차원에서 기기마다 개별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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