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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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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들은 대로 만들어지더라

이낙원 의사의 코로나19 일기 ④ 끝
등록 2020-03-28 22:52 수정 2020-05-03 04:29
대구시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병동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시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병동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3월4일 기사 감염

오늘 아침 포털 뉴스에 ‘코로나19, 중추신경계 침범 가능성 신경계 감염증 가능성… 두통, 구토 등 증상 연관’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기사는 국제 학술지 논문을 인용해 코로나바이러스가 다른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호흡기 감염을 통해 중추신경계로 전파될 수 있으며, 이때 두통·구역·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했다. 코로 감염됐을 경우 호흡부전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마스크 착용시 코를 덮는 걸 강조하는 연구자의 말을 전했다. 마스크는 당연히 코까지 덮는 용도라 새로울 게 없는 기사였지만, 이 기사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고 포털 뉴스 메인 화면까지 올라왔다. 기사 제목 때문이리라.

이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더욱 주의해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중추신경계 감염을 예방할 수 있을까? 기자는 두통·구토 증세가 있는 사람들이 중추신경계 감염증을 막기 위해 빨리 전문의를 찾아가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다.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기사는 아닌 것 같다. 이 기사의 기능은 기사를 위한 기사로,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기사를 보고 생긴 불안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을 안심시켜야 하는 의사의 기분은 좋지 않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코로나19 검사를 하기 위해 선별진료소를 찾는 두통 환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내 경험에 근거해,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써보면 이렇다. 두통 환자가 기사를 보자마자 병원을 찾는 건 아니다. 기사가 심어준 불안이 환자의 몸 안, 특히 뇌에서 증폭되는 과정이 하루이틀 걸린다. ㄱ씨가 오늘 아침 두통이 생겼다고 치자.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타이레놀 한 알 복용했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포털 기사에서 ‘신경계 감염을 일으키는 코로나19 가능성’이라는 기사를 봤다. ㄱ씨는 내용은 자세히 보지 않았으므로 기사 제목이 주는 충격만 마음속에 새긴다. 슬슬 두통이 신경 쓰인다. 퇴근 뒤 ㄱ씨는 스마트폰을 열어 다시 검색한다. 두통과 다른 신경계 감염증도 검색해본다. 검색어는 기사 제목에 있던 ‘신경계 감염’이다. 네이버는 ‘신경계 감염’과 관련된 수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바이러스에 의한 뇌수막염 등이 있고, 이 감염증은 평생 가는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는 내용을 읽으며 ㄱ씨는 식은땀을 흘린다. 경기도에 사는 ㄴ씨가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침상 생활을 하면서 콧줄로 연명치료를 한다는 기사까지 보니 머리가 더욱 지끈거린다. 오늘 밤 ㄱ씨는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자신이 신경계 감염증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새벽 즈음 확신으로 변한다. 잠을 설친 탓에 머리가 멍하지만 그 모든 게 신경계 감염증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두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핑 돈다. 아이들이 불쌍해진다. 아침 일찍 ㄱ씨는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선별진료소로 향한다.

통증은 물리적 자극에 의한 감각 현상이자 동시에 뇌 현상이다. 뇌는 물리적 자극 없이도 증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때 ‘질환 정보’는 뇌의 증상 ‘창작’에 도움을 준다. 요즘처럼 호흡기 질환 정보가 쏟아지는 시기엔, 몸의 작은 변화에도 뇌는 호흡기 질환 증상으로 확대해석할 수 있다. 이때 시작된 불안은 뇌가 다시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찾게 한다. 뇌는 여러 정보 중 최악의 상황을 자기 증상으로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정보 → 증상 → 확신 → 다시 정보 → 다시 더 확신 → 증상 악화’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악순환을 촉발하는 것은 대개 과도한 정보다. 건강에 대한 불안을 조성하는 기사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기사 하나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독자가 많다는 것을 기자들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3월5일 우물 속 사람

환자 수 증가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최고 하루 500명 이상씩 늘다가 오늘은 300명대로 줄었다. 신천지 교인 검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확진자 증가폭도 조금씩 줄고 있다. 전국에서 인구 대비 환자 수가 가장 적은 인천에서 근무하는 나도 그 여파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병원에서 확진된 사람은 없었다. 환자들의 불안이 누그러지는 것도 확연히 느껴졌다. 병원을 찾는 환자도 줄었다. 뉴스 앵커들의 목소리도, 환자들의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진 듯하다. 그래서 모처럼 한가한 오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부산스러운 일상에 매몰돼 있다가 갑자기 여유가 생기면 사람은 당황해 여유를 날려버리기 쉽다. 모처럼 생긴 시간에 영화를 보고 싶어 인터넷TV(IPTV)를 켰다. 이 눈에 띄었다. 바이러스 재난 영화라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리모컨을 눌렀다. 영화는 홍콩에 출장 다녀온 한 여성 회사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여성은 가족 품으로 돌아온 지 하루 만에 원인 불명의 질환으로 죽고, 그의 아들도 죽는다. 뭔가 치명적인 전염병이 시작된 것이다. 홍콩, 미국 시카고, 영국 런던 등 바이러스 질환이 비행기를 타고 전세계로 퍼지는 데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호흡기로 인체에 침범해 수일 내 중추신경계 감염을 일으켰고, 사람들은 경기를 일으키며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각 지역에 요원을 파견해 역학조사를 한다. 여기서 나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과학적 검증과 설정이 그럴듯한 영화였지만, 두통이 와서 더는 볼 수 없었다.

머릿속이 꽉 차서 여유 공간이 없던 골통에 탁구공이 하나 더 들어와 자리를 잡으려 하니 서로 부대낄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이다. 아이고 머리야, 하며 잠시 침대에 누웠다. 안구가 눈꺼풀 아래서도 돌아가는 것 같다. 안구와 두뇌 속 전기회로 시동이 꺼지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30분 정도 쉬니 두통이 가셨고, 생각해보니 두통이 생길 만한 일상이었다.

모처럼 한가한 오후, 스마트폰을 내내 들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8시 뉴스’를 보는데 바이러스 얘기뿐이라 보다가 껐고, 다시 쉰다고 보는 영화가 바이러스 영화니. 이것은 뇌에 대한 학대다. 뿅망치로 내리치거나 언어폭력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학대가 가능하다. 같은 내용을 계속 보면 그것을 해석하는 뇌가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엔 거실로 나와 파헬벨의 을 들었다. 역시 학대받은 뇌에 가장 큰 위로는 음악이다. 눈을 감아 안구세포에서 시작해 뇌로 전해지는 신호를 차단했다.

인간은 한 가지에만 매몰돼 살 수 없는 존재다. 수만 년 동안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왔다.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나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거나, 귓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기도 했다.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쫓아가 참견하거나 거들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을 함께 지켜보고, 누군가 결혼하거나 죽을 때 달려간다. 다른 이의 탄생과 죽음을 함께 체험한다. 인류 역사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선사시대에 인간은 생계를 위해 일한 시간이 하루 평균 4시간이었다고 한다. 다양하면서도 여유로운(한가한) 일과 속에 우리의 몸과 뇌는 형성돼왔다.

가끔은 ‘전문직’이 인간의 본성에 잘 맞지 않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하나만 보고 살도록 설계된 몸이 아닌 것 같다. “한 우물을 파라”는 전문가의 깊은 지식을 치켜세우는 속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물 속에서만 사는 사람이 과연 행복할까? 우물이 깊어질수록 하늘은 좁아지니까 말이다.

병원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경기도 성남 분당제생병원의 선별진료소. 한겨레 박종식 기자

병원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경기도 성남 분당제생병원의 선별진료소. 한겨레 박종식 기자

3월9일 결정적 단서

레지던트 1년차 때였다. 위 연차 선배와 신장내과를 회진했다. 40대 남성으로 발열과 함께 신장 기능이 나빠져 입원한 환자였다. 선배는 환자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병실을 나오면서 말했다. “결막 충혈이 있잖아. 한타바이러스야.” 곧 혈액검사를 했고, 한타바이러스에 의한 유행성출혈열이 진단됐다.

한타바이러스는 평소 등줄쥐 몸속에 살다가 타액이나 분변으로 몸 밖에 나온 바이러스가 사람 호흡기로 감염돼 일으키는 질환이다. 발열과 결막 충혈 등 혈관염 증세와 함께 신장 기능이 악화된다. 적절한 수액 치료를 받지 못하면 자칫 사망할 수 있다. 내가 만난 환자는 선배의 명석한 진단 덕분에 적절한 치료를 받았고, 완쾌됐다. 늘 이런 식이면 얼마나 좋을까. 질환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단서가 겉으로 드러나 있다면 말이다. 그러면 그 멋졌던 선배처럼 한 방에 명의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대부분의 호흡기 질환은 결정적 단서가 될 만한 증상이 없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발열. 열이 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인후두염, 기관지염, 모세기관지염 그리고 폐렴까지 호흡기 감염증을 비롯해, 신우신염·간염·봉와직염·뇌염 등 몸의 여러 부위 뒤에 ‘염’이란 글자를 붙이면 모두 발열의 원인이 된다.

둘째, 인후통. 말 그대로 목이 아픈 것이다. ‘목이 칼칼하다’부터 ‘침을 못 삼키겠다’ 또는 ‘목이 찢어질 것 같다’는 표현까지 모두 차트에 인후통이라고 받아적는다. 바이러스가 목으로 들어왔다는 말이다. 가끔 목구멍에 생선 가시가 걸려도 목이 아프다고 표현하니까 주의할 필요는 있다.

셋째, 콧물. 바이러스가 코로 들어왔다는 말이다. 간혹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 없이 생길 수 있는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혈관성 비염만 구별해주면 된다.

그리고 호흡곤란. 가볍게 넘기면 안 되는 증상이다. 폐렴이나 천식 등 주요 호흡기 질환이 악화된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호흡기 질환이 없는 호흡곤란도 많다. ‘가슴이 답답해요’ ‘숨이 모자란 것 같아요’ ‘자꾸 크게 숨을 쉬게 돼요’ ‘가슴에서 뭐가 콕 막힌 것 같아요’ 등의 표현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흔히 한다.

요즘 이런 심인성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부쩍 많아졌다. 여러분도 쉽게 해볼 수 있다. 먼저 바이러스 모양(요즘 뉴스에서 많이 보니까 어렵지 않다)을 머리에 떠올린 뒤, 그것이 목 안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자. 한 1분 정도 다른 생각은 내려놓고 바이러스만 떠올리자. 그런 뒤 침을 꼴깍 삼킨다. 뭔가 걸린 듯하고 아픈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증상도 같은 방식으로 해볼 수 있다.

국내 확진자가 7천 명이 넘었다. 전세계에 확진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일부 지역을 봉쇄했다. 여러 나라에서 지역 봉쇄가 확산되는 추세다. 코로나19 증상이 일반 감기 증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대응하는 데 어려운 점이 아닐까 싶다. 어제는 중2 아들이 열이 나기에, 아들을 방 안에 격리하는 작은 소동을 벌였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만져보니 뜨끈뜨끈했다. 아빠 말 안 듣고 옷을 얇게 입고 나가서 노니까 감기 걸린 거 아니냐. 아빠 열나면 출근도 못한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아빠의 환자들은 누가 돌보냐며, 나는 준엄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격리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손을 씻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격리는 해제됐다. 첫째 이유는 밖에서 몇 시간이나 농구를 하다가 들어왔으니 몸에 열이 날만 했고, 둘째는 휴대전화와 컴퓨터가 있는 방 안에만 꼼짝 않고 있는 녀석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요즘 내가 조금 예민해진 것 같다.

3월10일 사이토카인 스톰

새벽에 잠을 설쳤다. 캄캄한 어둠 속에 눈을 떴다.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찾았다. 그렇지, 감염관리실장이 보낸 카톡이 도착해 있었다. “중환자실 ○○○ 환자, 음성입니다.” 다행이다. 폐렴 때문에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인데, 폐렴 진행 과정이 비전형적이고 항생제가 반응하지 않는 상태였다. 퇴근 전에 코로나19 검사를 보냈고, 다음날 새벽에 검사 결과가 보고될 예정이었다. 이미 입원한 지 나흘째라서 ‘양성’이라는 보고를 받으면 중환자실을 비롯한 병원의 많은 공간이 폐쇄될 것이었다. 양성이 나올 가능성은 적었지만, 검사한 이상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카톡 보낸 시각이 새벽 5시30분이었고, 다행이라는 댓글도 몇 개 이어졌다. 관련되는 분들이 잠을 설친 모양이다. 특히 감염관리실 직원들의 눈이 퀭하다. 한 달 넘도록 주말도 없이 일하고 있다. 체력은 이미 소진됐고,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 검사실이 밤낮없이 돌아가니 정신이 곤두선 채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보건소·시청 등 관과 병원 내부 직원들과도 계속 대화해야 한다. 아마 사태가 진정되면 호된 몸살이 지나가지 않을까. 나 역시 오늘 하루 피곤하겠지만, 괜찮다. 오후에는 안심진료소 진료로 바쁠 테지만, 오전에는 회진하고 나면 쉴 시간이 조금 있을 것이다.

“선생님 협진 환자가 있는데 상태가 안 좋아요. 봐주시겠어요?”

아침 회진을 하고 내려오다가 마지막 병동에서 간호사가 나를 붙들었다. 재활의학과에서 협진을 의뢰한 환자였다. 70대 후반 환자로 어젯밤 발열이 시작됐는데, 오늘 아침 혈압이 떨어지고 있었다. 의식이 처지고, 호흡이 가빴다. 청진해보니 폐렴이 진행하는 것 같지는 않고, 뭔가 다른 곳에서 시작된 감염증이 원인이었다. 문제는 속도였다. 어제까지 컨디션이 좋았다고 하니, 밤새 감염증으로 인한 패혈증이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는데 이른바 ‘사이토카인 스톰’이 원인이다.

미생물에 대항하기 위해 면역세포가 분비하는 사이토카인이 폭풍처럼 흘러나왔고, 이것이 전신적인 혈관 확장을 일으켰다. 비유하자면, 물이 흐르는 파이프(관)의 직경이 넓어진 것이다. 그럼 상대적으로 파이프 안의 물이 적어지고 좁은 계곡을 빠르게 흐르던 물이 수로가 넓어지면 물살이 느려지는 것처럼, 혈관을 통과하는 혈액의 흐름이 느려진다. 혈관은 우리 몸 전체에 뻗어 있고 조직과 장기를 먹여 살리는 혈액을 공급한다. 혈압이 떨어지면 곧이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 장기가 손상되기 시작한다. 감염증을 일으킨 미생물과 그것에 대응하는 면역계의 과도한 반응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빨리 수를 써야 한다. 수액을 공급하고 필요하면 승압제를 써서 혈압을 유지해야 한다. 감염원을 찾아내기 위한 검사와 항생제 투여는 이미 주치의가 시작했다. 회진만 끝나면 달콤한 휴식을 하겠노라 다짐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이런 중환자는 옆에 붙어 있어야 하고 수시로 환자의 활력 상태와 피 검사를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휴식은? 아, 마음이 뭔가로 들끓는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휴식은 포기한다. 포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을 권리가 있을 때 포기란 말이 의미 있는 것이다. 아무리 휴식이 달콤한들, 목숨과 그 무게를 갈음할 수는 없으니까.

3월18일 수도 이름 맞히기

지난 2주간 한국에 대한 외신 보도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이 출렁였다. 한국은 바이러스가 통제되지 않는 위험 국가에서 불과 한두 주 만에 방역 선진국으로 탈바꿈했다. 유럽과 미국이 코로나19 확산세에 놀라 도시를 통제하는 데 반해, 한국은 강제적 도시 봉쇄 없이 효과적으로 바이러스 질환을 차단하는 경로를 밟아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이 코로나19를 진압하며 자신들의 권위주의 체제를 홍보한 것도 한국에 대한 평가가 반전된 이유 중 하나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대규모 검사,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민주적으로 방역에 성공한 것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롤모델이 될 만하다고 평가받는다. 방역에 성공했다고 권위주의 정권을 옹호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보도에 어깨가 으쓱해지지만 무엇보다 안도감이 든다. 감염병에 훌륭하게 대응했다는 국제적 칭찬에 기분 좋아지는 것보다 자칫 ‘큰일 날 뻔했다’는 안도가 더 크게 밀려든다. 감염성 질환을 보는 의사인 나도 간과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반성한다. 환자 수가 의료시스템의 한계를 초과할 때 생기는 혼란과 불안은 심각하다는 점이다. 의료진이 감염되고, 병원 진료가 가동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현상은 감염병 환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다른 질환 환자들이 치료받지 못하면서 사망률이 급증하고, 불안은 확산돼 사재기와 혐오로 인한 갈등 등 사회 전체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도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는 혼란을 그대로 겪고 지나갈 뻔했지 않은가. 코로나19의 위력은 대부분 사람이 예상한 것을 벗어났을 거다. 감염병이 한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전파력, 치명률 같은 병원균의 물리적 특성과 더불어 그 사회가 가진 의료시스템, 시민의식, 더 크게는 정치체제 등이 더해져 결정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어제는 모처럼 야외에서 꽃구경을 했다. 남쪽에서 들려오는 봄소식을 전하느라 산수유는 바람에 맞춰 손을 흔들어댔다. 가까이서 바라본 산수유는 그냥 노란 꽃이 아니었다. 봄바람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모가지를 쳐들고 머리칼을 깔끔히 빗어넘긴 모습이 앙증맞고 도도해 보였다. 꽃축제는 취소됐지만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봄맞이 나들이를 했다.

저녁에 찾은 식당은 아직 한산했다. 넓은 홀에 몇 테이블만 식사하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식사하는 가족이 있었다. 남매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말놀이하는 것 같았다. 들어보니 수도 이름 맞히기였다. 캐나다 오타와, 베트남 하노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영국 런던…. 작은아이가 수도 이름이 기억이 안 나 끙끙대면서 엄마 얼굴을 바라보지만 엄마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면 건너편에 앉은 큰아이가 힌트를 주었다. 깔깔거리면서 게임은 계속됐다. 외국 아이들은 대한민국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어떤 느낌으로 알고 있을까? 한류와 케이팝 등 긍정적인 이미지도 있을 것이고, 전쟁 위험이 도사리는 분단국가 이미지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고 지나간 세계에 대한민국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가 새겨졌으면 좋겠다. ‘민주주의로 위기를 극복한 나라’라는 이미지라면 더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수도 이름 맞히기를 하는 세계 어린이들 입에 코리아가 자주 오르내릴 것이고, 서방국가에서 동양인이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뉴스가 없어지지 않을까. (끝)

이낙원 나은병원 호흡기내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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