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학교가 생겨났다. 계획된 탄생이었다. 학교는 1985년 확정된 ‘서울 중계지구 택지개발사업’의 일부였다. 1980년 취임 뒤 ‘500만호 주택 건설’을 내건 전두환 정권은 서울 고덕, 개포, 목동 등의 개발을 시작한 뒤 더는 삽을 꽂을 땅이 없자 동북부 끝자락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상계·중계·하계동에 걸친 너른 평야지대는 버려진 땅과도 같았다. 도심 택지개발로 강제 이주한 철거민들이 비닐하우스나 판잣집을 지어 살며 주변 공장에서 일했다. 거주민의 95%가 그랬다. 가장 가난한 동네는 ‘서울의 마지막 신시가지’로 빠르게 바뀌어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중계지구에서도 하천의 가장 아래에 있던 하계동은 주택 1만여 가구를 지어 상주 인원 4만~5만 명이 거주하는 부도심으로 육성됐다. 세부 계획에는 늘어날 학령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1200가구당 국민학교(‘초등학교’ 전 용어) 1개, 5천 가구당 중·고등학교 1개를 설립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계획에 맞춰 올림픽 개최 직전인 1988년 봄, 중평초등학교(30학급)가 문을 열었다. 이듬해 가을, 중현초등학교(24학급)도 뒤를 이었다. 600m 거리를 두고 이웃한 두 학교는 낯선 신시가지로 이사 온 아이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한 학교 200명, 다른 학교 1563명
32년. 형제처럼 태어난 두 학교의 일생은 달랐다. 개교 당시 엇비슷했던 중현초는 2020년 전교생 200명(16학급)으로 작아졌다. 1년 전보다 31명 줄었다. 그사이 중평초는 1563명(59학급)이 됐다. 7배 차이다. 서울시교육청 기준으로 보면 중현초는 소규모학교(240명 이하)가 됐고, 중평초는 과대학교(1680명 초과)에 육박한다. 11년 전인 2009년(중현초 597명, 중평초 2162명)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아파트가 운명을 갈랐다. 하계5단지는 1989년 입주한 최초의 영구임대아파트다. 가난한 철거민이 쫓겨난 자리에 다른 가난한 도시 빈곤층이 터를 잡았다. 13평짜리 작은 아파트에 생활보호대상자(현 기초생활수급자) 등 640가구가 입주했다. 10년 뒤에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안은 것도 중현초였다. 1999년 학여울청구아파트 중 재개발 지역 소유자와 세입자, 저소득 세대 864가구가 입주하는 50년임대아파트의 아이들 역시 중현초에 배정됐다. 전교생 227명 중 53명(2019년 기준·이경철 서울시 노원구의회 의장 제공)이 공공임대에 산다.
반면 중평초 통학구역 내 3994가구에는 임대아파트가 1가구도 없다. 전교생 1563명 대부분은 ‘분양아파트’에서 등교한다. 1988년 민간 건설회사가 분양한 극동건영벽산, 현대우성아파트다. “당시에도 입주자 저축제도에 따라 청약저축을 보유한 중산층들이 아파트를 분양”(박은철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받았다.
영구임대아파트와 중현초, 분양아파트와 중평초. 아파트와 학교는 이음동의어가 됐다. “비선호 학교와 선호 학교”(서울북부교육지원청 관계자)라고 완곡하게 표현됐으나, 사람들은 ‘임대 학교와 일반 학교’라고 구분해 불렀다. 거부감은 숫자로 표출됐다. 2019년엔 중현초 취학통지서를 받은 예비 초등학생 35명 중 4명이 다른 학교를 선택했다. 2018년에는 예비 신입생 57명 중 8명이 입학하지 않았다. 그해 8명이 중현초에 전학을 왔지만 22명이 전학을 갔다. 취학통지서를 받은 예비 신입생이 거의 그대로 입학하거나, 전출생보다 전입생이 더 많은 중평초와 확연히 다른 처지다.
오래 전 두 자녀를 중현초에 보냈던 이미희(가명)씨는 두 학교가 한 번도 섞인 적 없었다고 기억한다. “(10년, 20년 전) 아이들을 보낼 때도 ‘임대아파트’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래도 학교가 좋았어요. 분위기도 가족적이고. 그런데 엄마들 인식이 그리되다보니 갈수록 (중평초와) 격차가 벌어지는 거예요. 아이들 학교 보낼 때가 되면 그곳(중현초 통학구역 중 영구임대아파트가 아닌 분양아파트) 단지에서 자기 집 전세를 주고 여기(중평초가 있는 분양아파트) 전세를 와요.”
영구임대아파트에 살지만, 자녀를 어떻게든 중평초에 보내려는 부모들도 있다. 중현초 4학년 준기(가명)는 입학 전 아빠가 한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중현초는 학생 수가 아주 적고, 중평초는 학생 수가 아주 많아. 어디 갈래?” 아들이 ‘임대아파트 아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걱정하는 아빠의 마음을 눈치챘던 걸까. 준기의 대답이 아빠의 고민을 덜어줬다. “중현. 시끌벅적한 거 싫어.”
통합, 한쪽은 찬성 다른 쪽은 반대
분리된 학교를 만나게 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계2동을 지역구로 둔 이경철 노원구의회 의장은 2018년부터 4~6학년 고학년은 중현초에서, 저학년은 중평초에서 통합해 교육하는 방안을 학부모들에게 제시해왔다. “중현초 학부모에게는 학교가 폐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어요. 중평초 학부모에게는 과대학급으로 교육환경이 나빠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고요. 그래서 두 의견을 절충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통합 방안을) 제안했는데 중현초 학부모는 찬성하고, 중평초 학부모는 반대했어요.”
최초 영구임대아파트를 품은 최초 ‘임대아파트 통학구역 학교’의 비극은 전국에서 재현됐다. 1993년 신자유주의 정부인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며 영구임대주택 건설 기조는 잠시 중단됐으나, 입주는 2001년까지 계속됐기 때문이다. 특히 대단위 주거 타운을 조성하며 도심 한복판에 대단지 영구임대아파트를 건설한 경기도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에서 ‘두 학교’의 차이가 도드라진다. 분당에서만 똑같이 1994년생인 오리초(125명·전체 6학급), 한솔초(144명·전체 6학급), 청솔초(178명·전체 8학급)는 ‘한 학년당 1학급’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3월11일 각 학교 누리집 기준). 반면 오리초와 통학구역을 이웃한 미금초(814명·전체 30학급), 한솔초와 가까운 수내초(1298명·전체 45학급), 청솔초 곁에 있는 늘푸른초(1242명·전체 44학급)는 ‘한 학년당 5~7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영구임대아파트나 50년임대아파트가 통학구역에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다.
임대아파트 통학구역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영구임대아파트의 시간은 멈춰 있다는 것을 부모들은 오랫동안 경험했다. 기초생활수급자 등이 주변 시세 30%의 임대료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한 영구임대아파트 관리자) 사는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는 아주 가끔 들릴 뿐이다. 7년 전 분당 영구임대아파트 한솔7단지에 갓난아이를 안고 들어온 김영임(가명)씨는 “(단지에서) 혼자 사는 어르신이 80%라,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한솔7단지 아이들이 다니는 한솔초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으리라 각오했던 엄마도 실제 너무나 적은 학생 수를 확인하고 나서는 속이 상했다. 어린 아기였던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올해 초 예비소집일, 엄마가 학교에서 만난 부모나 할머니는 20명이 채 안 됐다. 그만큼 입학 희망자가 적었다. 그중 한솔7단지 아이들은 6명이었다. 2019년 신입생 25명보다도 적었다. 선생님은 “3월에 입학식을 해봐야 (최종 입학생 수를) 알 수 있다”고 했으나, 아이의 친구들이 크게 늘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제야 엄마는 분양아파트 부모들이 한솔초를 꺼리고 있음을 확신했다. 영구임대아파트의 학령인구가 적은 탓이라고만 하기엔 인근 학교와 격차가 너무 컸다. 한솔초를 둘러싼 수내초·불정초·탄천초·성남신기초의 경우 60~200명이 입학할 예정이다. “여기 들어올 때부터 다른 (분양아파트) 단지 엄마들이 여기(한솔초)에 보내야 하는데도 안 보낸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정말로 아침 등교 시간에 보면 한솔초에 와야 하는 아이인데, 다른 학교로 다니더라고요. (우리 아이들과) 격을 두자는 거잖아요. 우리가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아이까지) 그렇게 취급할 것은 아닌데, 너무 분리됐어요. 차별받을까봐 걱정돼요.”
공공임대주택에 부정적인 자녀교육기
유난히 가파른 학령인구 감소, 저소득층에 대한 구분과 배제. 여기에 한솔초에는 ‘학군’(지역별로 나눈 중·고등학교 무리) 요인이 더해진다. 하필 한솔초는 서울 ‘대치 학군’과 ‘목동 학군’에 버금가는 ‘분당 학군’의 한복판에 있다. 한솔초가 있는 정자동, 정자동과 바로 붙어 있는 수내동은 분당 학군의 핵심이다. 2019년 경기도 성남 소재 중학교의 ‘특수목적고·자율형사립고 합계 진학 순위’ 상위 5위 안에 드는 내정중, 수내중, 백현중이 이 지역에 있다(종로학원 제공). 나머지 서현중과 이매중도 수내동과 가깝다. 이들 학교는 전국 3195개 중학교 중에서도 250등(특목고·자사고 합계 입학 기준) 안에 드는 이른바 전국적인 ‘명문중’이다. 또 특목고·자사고는 성남외고가 유일하지만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일반고도 많다. 전국에서 교육에 관심 많은 부모들이 정자동, 수내동에 몰리는 이유다.
‘학세권 수요’는 집값을 밀어올린다. 더군다나 성남의 경우 ‘근거리 배정 원칙’에 따라 주거지에서 학교가 가까울수록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명문’ 중학교에 입학할 가능성이 높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정자동·수내동의 웬만한 아파트 매매가는 평당 3천만원을 웃돈다. 이 지역엔 중대형 평수가 많은데, 33평이면 매매가 10억원, 전세가는 6억~7억원 정도다. 부동산 자산이 늘어날 리 없는 영구임대아파트 부모들의 상대적 빈곤이 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육 열망이 강한 중산층 지역에서 한솔초는 점점 고립돼간다. 일부 부모에게 ‘영구임대 아이들과 섞일 수 있다’는 사실은 막연한 편견과 배제가 아니라, 현실적 위협이다. 정자동에 사는 하미진(가명)씨는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며 영구임대아파트와 그곳 아이들이 배정되는 학교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안타깝지만 어떤 중학교에서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이 임대아파트 출신이라고 하더라고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아무래도 (부모들이) 관리하기 힘들다보니 입도 좀 거칠고요. 또, 성범죄자 거주지를 알리는 우편물이 집에 배달되는데, 그 주소가 영구임대아파트인 경우가 있었어요. 인근에 살며 딸 가진 부모들은 어떻게든 이사 가려고 해요.”
영구임대라는 주거환경, 영구임대 통학구역 학교라는 교육환경이 자녀에게 위험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부동산 거래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다른 분당 지역에) 새 아파트가 생겼는데 주거환경이 뛰어났거든요. 그런데 젊은 세대는 입주를 꺼렸어요. 근처 (영구)임대아파트가 있는데, 거기 학교로 아이가 배정되니까요. 아이를 키우며 오래 살 만한 곳이라고는 사람들이 생각 안 하는 거예요.”
분당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 영구임대주택을 포함한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광범위하게 깔려 있다. 2017년 발표된 ‘가족생애주기별 공공임대주택의 인식 비교연구’는 2015년 서울시민 1만 명을 설문조사한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서울시민 인식조사’를 실증 분석해 이런 결과를 내놓았다. ‘가족진입기-가족형성기-자녀교육기-가족축소기’라는 4개 생애주기 가운데, 공공임대주택에 가장 부정적인 인식을 지닌 생애주기는, 초·중·고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자녀교육기’였다. 특히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뉴스테이(민간 기업형 임대주택)는 찬성하지만, 저소득층을 포함하는 공공임대주택이나 행복주택(신혼부부, 사회초년생에게 저렴한 임차료로 공급되는 도심형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컸다. 반면 가족축소기에선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긍정적 인식 비율이 가장 높았다. 논문은 “자녀의 교육이 생애주기에 있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수록, 공공임대주택이 교육환경에 미치는 외부효과의 가능성으로 인해 더 큰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반면, 자녀가 있지만 성장했거나 교육이 덜 중요한 생애주기에 속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공공임대에 더 관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계층 이동이 어려운 사회에서 통합교육이란
임대아파트 통학구역 학교의 교육환경에 학부모들이 우려할 만한 점도 있다. 학교 체제에 순응하는 기준으로 아이들을 평가한다면,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규칙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질서에서 이탈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괜찮지만, 아이가 정체성을 찾아가고 또래 집단에 관심이 많아지는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고등학교에서는 잦은 무단 지각, 결석, 조퇴, 용모 규정 미준수 등 문제 행동도 나타난다고 일부 교사는 말한다.
분당의 영구임대아파트 인근 중학교에서 근무한 적 있는 박미혜(가명) 교사는 “분당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돌봄이 평균 수준보다 과잉돼 있어 학교 체제에 비교적 순응적이지만, 임대아파트 아이들은 부모의 돌봄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질서와 통제가 많은 학교생활을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박미혜 교사는 아이들이 임대아파트 통학구역의 과소학교와 인근 과대학교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을 우려하면서도 “분당처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교육 열의가) 매우 표준화된 지역에서 통합교육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계층 이동이 쉬운 사회라면,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중산층 이상의 아이들을 보며)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에선) 자신이 빈곤층이라는 사실을 매일 공기처럼 느끼며, 상대적 박탈감만 키울 수 있다.”
아이들이 사는 영구임대아파트의 주거환경이 위험하다고 인근 부모들이 느낄 만도 하다. “어르신들이 (일을 안 나가니까) 낮이고 밤이고 동네 한복판에서 술도 마시고 소리도 지르는 모습을 보면 교육적으로 안 좋긴 하다”(김영임씨)고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학부모들도 안타까워한다.
임대아파트 통학구역 학교에서 나타나는 일부 아이의 문제 행동이 과도하게 부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분당의 분양아파트에 사는 이혜정(가명)씨도 과거에 영구임대아파트 근처 소규모 초등학교에 다니던 자녀를 “(같은 임대아파트 단지) 형들에게서 나쁜 걸 빨리 배울 수 있다”는 걱정에 인근 학교로 전학시킨 경험이 있다. 이후 아이가 진학한 중학교에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일부 입학했다. 그런데도 “특별히 (그곳)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학생 수가 워낙 많은 학교에선 (일부 문제 행동이 있더라도) 묻혀서 특별히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학생 수가 적은 (임대 통학구역) 학교에선 일부 문제 행동이 더 주목받는다.” 이혜정씨가 내린 결론이다.
영구임대아파트, 다세대·다가구·달동네 같은 도시형 빈곤층 밀집 지역에서 범죄가 많이 발생한다는 뚜렷한 근거는 없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지난해 전국 3470개 행정동(행정구역 단위)을 기초생활수급자 가구 비율을 기준으로 빈곤층 밀집 지역과 비밀집 지역으로 나눈 뒤, 이 지역과 범죄 발생률의 상관율을 분석했다(‘빈곤층 밀집 지역의 안전 실태와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 연구를 수행한 박준휘 법무사법개혁연구실장은 “빈곤층 밀집 지역의 밀집도가 올라갈수록 주요 범죄 발생률(강도, 강간·강제추행, 절도, 폭력, 살인 등)도 올라가지만, 오히려 밀집도가 가장 높은 영구임대아파트의 경우 범죄 발생률이 뚝 떨어진다”며 “영구임대가 다가구·다세대에 비해 주거환경이 좋고, 질서가 잡혀 있으며, 사회복지시설 접근성이 높은 영향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7학급 이상이어야 2명이 배치되는 ‘전담 교사’
어른들의 걱정스러운 시선에도, 아이들은 잘 지낸다. 소규모 학교라서 좋은 점도 있다. 학생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교사·친구들과 유대를 다지고 안정을 느끼며 공동체성을 키우기도 한다고 <교육적 공간으로서 농촌 소규모 초등학교에 관한 문화기술적 연구> 등의 여러 연구 결과가 말해준다. 한 학급의 학생 수가 적어 교사가 개별 학생들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춰 교육과 돌봄을 제공할 수 있다고도 알려졌다. 교사가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에게 관심을 더 둘 수 있고, 실험적으로 수업을 이끌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전교생이 125명인 오리초 학부모 오윤정(가명)씨는 “아이가 학교에서 소수정예의 특혜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만족한다. “소규모 수업도 좋고, 교장 선생님이 전교생 이름을 한명 한명 불러주는 것도 좋고, 부모들도 친구들 개인 특성을 서로 잘 아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 잘 해결되는 것도 좋아요. 저도 아이가 입학할 때 주변에서 (오리초를 피해) 다른 학교로 간다는 아이가 많아 고민했는데, 들어오니까 학교가 (그런 생각을) 다 버리게 해주더라고요.”
그래도 정부가 적정 규모의 학교를 육성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 꺼리는 학교에 다닌다는 열패감, 낮은 자존감, 우울감 외에 과소학교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 많다. 소수의 ‘친밀한 관계’는 ‘고착화된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1학년-1학급’인 학교에서 스무 명 남짓 아이들은 졸업할 때까지 6년 동안 같은 반에 배정된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많은 친구와 관계를 형성해가고, 다양한 갈등을 풀고, 새로운 자극을 얻을 기회가 적다. “제한된 인간관계 속에 사회성을 키우기 힘들고, 문화적으로 풍부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기도 한다. 인간관계가 고착되어 관계 내에서 변화와 성장 같은 역동성을 경험할 수 없는 한계도 나타낸다”고 <경기도 농어촌학교 실태와 발전 방향>(2019) 보고서는 과소학교의 한계를 짚는다.
아이들이 똑같은 교육환경에서 지낼 권리도 제한될 수 있다. 교원과 예산은 학교 규모에 따라 배정된다. 전체 35학급 미만 학교에서 영어, 음악, 미술, 체육 등 특정 과목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교과 전담 교사’는 7학급 이상이어야 2명이 배치된다. 또 12학급이면 3명, 18학급이면 4명, 24학급이면 5명의 교과 전담 교사를 두는 식이다. 12학급 이상인 학교에만 ‘비교과 전담 교사’인 보건교사가 배치된다. ‘방과후 교육’의 종류와 수에도 제약이 있다. “우리 학교가 12학급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교사와 학부모가 학교 홍보도 열심히 하고 ‘특수학급’을 열기도 했는데, 올해 1학년들이 1개 학급만 들어왔어요.” 임대아파트 통학구역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문성희(가명)씨가 낙담한 이유다.
2015년부터 다시 인허가한 영구임대아파트
과소학교는 교사들에게 피하고 싶은 일터가 되기도 한다. 수십 명의 교사가 하는 수업이나 행정 업무를 십수 명이 나눠서 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 양천구의 임대아파트 통학구역 학교에서 근무했던 교사 김정숙(가명)씨는 “힘들어 우는 선생님”도 만났다. “밥상을 차릴 때도 두 명이 오든 다섯 명이 오든 숟가락 놓는 일부터 똑같이 다 해야 하잖아요. 큰 학교에선 맡지 않아도 될 업무까지 해야 하다보니 업무량이 과도한 선생님도 많아요. 그래서 상당수는 소규모 학교를 기피해요.”
‘두 학교’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새로운 ‘두 학교’들이 생겨나고 있다. 무대는 2기 신도시인 경기도 성남 판교, 서울 송파와 성남에 걸쳐 있는 위례, 양주 옥정 등으로 옮겨졌다. 이곳을 중심으로 2015년부터 이명박 정부가 다시 인허가한 영구임대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신도시가 아닌 서울 도심에도 서울시의 50년임대아파트가 지속해서 공급됐다.
화려한 신도시에 세운 영구임대아파트는 안정적인 주거를 절실하게 원하는 누군가에게는 분명 기회다. 동시에 많은 친구와 뛰어놀고 다양한 공부를 하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상처다. 위례신도시에서 2016년 문을 연 위례고운초는 올해 26명의 신입생이 들어와 전교생 203명이 됐다. 1년 전보다 11명 줄었다. 같이 시작한 위례한빛초(1238명), 위례푸른초(965명), 위례중앙초(509명)에는 아이들이 차고 넘친다. 어김없이, 위례고운초 통학구역에는 영구임대(550가구)와 국민임대(2018가구) 아파트가 함께 있는 ‘위례35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5년, 한 학교가 폐교 위기를 맞이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글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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