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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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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만의 돌파구 만들자”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에게 남북관계 개선의 가능성과 돌파구를 묻다
등록 2020-01-14 10:52 수정 2020-05-06 13:32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남북관계 개선의 가능성과 돌파구를 묻는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사진)는 ‘복기’부터 시작한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평화를 어떻게 만드는지 경험했다. 어떻게 식어버리는지도 봤다. 2017년 12월(문재인 대통령 한-미 군사훈련 연기 제안), 2018년 4월(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2018년 9월(평양 공동선언), 2019년 2월(베트남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2019년 5월(북한 발사체 발사 시작)… 희망찼고 실망했는데, 그만큼 냉정하게 의미를 곱씹지는 못했던 시간을 하나하나 되짚어갔다. 북한에 이 과정은 무엇이었을지도 다시 한번 헤아렸다. 가능성과 돌파구를 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억이었다.

1월8일 류이근 <한겨레21> 편집장이 최고 북한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인 구갑우 교수를 만났다. 변해버린 상황에 대한 고민, 무엇보다 <한겨레21> 독편3.0 단체대화방에 전날 밤 올라온 독자들의 질문을 쥔 채였다. 공교롭게도 이날과 1년 전 같은 날 신문 <한겨레> 1면은 모두 북한을 다뤘다.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중국으로 향한 김정은 국무위원장(2019년 1월8일치)과 김 위원장에게 답방을 제안하는 문재인 대통령(2020년 1월8일치)의 모습이 조금은 서글픈 감정과 함께 교차한다.

단계적이고 동시적으로 북핵에 접근했지만

지난해 오늘 치(2019년 1월8일) 북한 관련 뉴스가 인상적이다. ‘2차 북-미 회담 장소로 하노이가 거론된다’는 미국 방송 보도가 나왔고, 여당 원내대표는 김정은 답방 환영 결의를 국회에서 추진하자고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미 회담을 앞두고 베이징으로 향했다. 1년이 지났다. 롤러코스터로 따지면 지금은 하강기, 긍정보다는 부정, 낙관보다는 비관의 정서가 지배하고 있다. 지난 1년과 지금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2019년 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화체제를 위한 다자협상’을 이야기했다.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군사·정치적 문제 해결을 포함하는 평화체제, 그 과정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를 포함한 다자협상 방식을 이야기한 것은 지금 생각하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난 1년) 남북 경색 국면을 이야기할 때 2019년 1월 오늘 날짜만큼 중요한 대목은 2018년 9월일 것이다. ‘9·19 평양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합의문에 “북측은 미국이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비핵화 순서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단계적·동시적 접근이었다.

그런데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상응 조치를 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영변 핵시설 폐기 플러스알파(+α)’를 요구했다. 3월에는 작은 규모였지만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재개한다. 그리고 5월부터 북한은 발사체 발사를 시작한다.

북한 처지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9월 남북 합의가 작동하지 않았다. 그것이 2019년 내내 경색을 낳은 주요 요인이라고 본다.

북한은 전원회의 보고에서 정면돌파·자력갱생의 각오를 다진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가는 데 북한의 이런 태도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핵·경제 병진 노선으로 돌아갔다는 주장도 있지만 나는 모든 문장이 ‘조건부’로 읽혔다. 자력갱생으로 일단 버텨보겠지만, 대외 환경의 중요성도 스스로 알고 있다. 중대한 실험을 했다고 이야기하지, 그것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자신도 위험하다고 생각하니까. 북한은 언제든 기회가 닿으면 협상에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상응 조치다. 미국이 안 준다면 한국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라도 해줘야 한다. 북한 처지에서 2019년은 ‘안보 딜레마’(대립하는 국가의 군비 증강에 두려움을 느껴 함께 군사력을 높이는 현상) 상황이었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나왔듯 연합군사훈련과 한반도의 핵 관련 전략자산, 최소한 그 두 가지 정도는 중단돼야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 과정의 최소 규범이라고 본다. 돌파를 위해 우리가 결단을 내려야 할 부분이다. 이와 함께 2018년 9월 약속하고 한 번도 개최되지 않은 군사공동위원회를 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올려보자고 제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2017년 12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과 강원도 강릉을 잇는 KTX에서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지할 것을 미국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2017년 12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과 강원도 강릉을 잇는 KTX에서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지할 것을 미국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핵심 쟁점은 군사 분야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후퇴의 염려’까지 언급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북-미 관계에 종속돼 어쩔 수 없었다는 인식도 드러난다.
2019년 전반적으로 남북관계가 작동하지 않았고, 그것을 ‘선 북-미 관계, 후 남북관계’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하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북-미 관계 틀을 만들어준 것이 남북관계였다. 2017년 11월 북한이 핵무기 완성을 선언했는데,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강원도 강릉에서 돌아오는 케이티엑스(KTX) 안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하는데 한국 대통령은 연합 군사훈련을 연기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명분은 평창 겨울올림픽이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유엔에서는 (올림픽 전후로 군사적 적대 행동을 삼가자는)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매번 채택하고 있다.

이 과정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이른바 ‘쌍중단’이라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을 맞바꾸자’는 주장을 2015년부터 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강조하지는 않지만, 북한의 쌍중단 주장을 우리가 받아줬다. 정치·군사적 협력부터 시작한다는 태도다. (연합군사훈련 연기 주장으로 시작해) 이듬해 4월 판문점선언에 군축과 비핵화가 포함됐고, 평양 공동선언에는 군사 분야 합의가 들어 있다. 그 (정치·군사적 협력) 틀이 흔들리면서 2019년은 경색됐다. 2020년 남북관계 돌파구를 다시 만든다고 할 때도 핵심 쟁점은 군사 분야일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평창올림픽처럼, 도쿄올림픽을 이야기하면서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희망사항이지만 일본을 통해서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이야기를 꺼내게끔 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군사적 협력 이외의 또 다른 축으로 여전히 중요한 것은 현재 대북제재에서 한국이 이탈해, 예를 들어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정도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그 대목을 많은 독자가 궁금해할 것 같다. 2017~2018년 평화·화해 분위기 속에 남북 사이만큼은 대북제재의 예외로 인정받을 만한 무언가를 작게나마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남은 것이 없다.
제재를 돌파하는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 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냈다. 러시아도 남·북·러 협력과 관련해 제재에서 빼고 싶은 생각이 있고 중국도 그렇다. 남·북·러, 남·북·중 같은 소다자협력을 통해 부분적으로 제재 유예를 받는 것을 시도해볼 수 있다. 결국 사안별로 제재 유예 판정을 끌어내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일본의 역할도 좀 적극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유인이 북한에도 있을 것 같다.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제재 완화 결의에는 6자회담 재개도 담겼고, 이는 일본을 한반도 문제의 행위자로 불러오는 측면도 있다.

다자회담·소다자협력 가능성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중동 문제가 불거지는 상황에서 대북문제는 뒷순위로 밀리지 않을까.
중동과 동북아시아에서 두 개의 전선을 가져가는 것은 미국에도 어려운 문제다. 반면 이란과 미국 사이 폭력적인 갈등이 생길수록 북한은 핵억제력에 대한 유혹을 느낀다. 그렇게 보면 이 상황에서 일종의 아웃소싱(외주)처럼 6자회담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맡기기 부담스럽다면 일본이 나설 수도 있다. 이란 갈등이 오히려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기회의 창을 줄 수 있지 않을지, 다자회담 중심, 혹은 소다자협력 가능성이 있지 않을지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독편3.0의 질문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한반도 문제는 <한겨레21> 독자 마음 한쪽에 늘 얹혀 있는 응어리, 희망, 궁금증이다. 구갑우 교수를 만나기 전날 밤 ‘독자편집위원회(독편)3.0’ 단체대화방에 남북관계 전문가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물었다. 기다린 듯, 시간은 아랑곳없이 그간 쌓아둔 고민이 쏟아졌다. 류이근 편집장이 추려서 묻고 구갑우 교수가 답했다.
남북관계는 한-미 외교 성과에 따라 갈릴 것 같다. 우리한테 미국에 내보일 만한 협상 카드가 있나.
방위비 분담금을 올려주면 한국에 자율성을 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돌파구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갈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점을 인정한 채, 그럼에도 미국을 끈질기게 설득할 수밖에 없다.
3월 합동군사훈련을 어떻게 봐야 하나. 미국은 강행하려 할 텐데.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목적은 인도·태평양 전략 아래서 중국 견제로 바뀌었지만, 북한은 위협으로 생각한다. 한국 정부가 중단 또는 연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남북관계를 개선할 돌파구가 없다.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제안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인도적 지원? GP(감시초소) 추가 철수?
북한은 인도적 지원을 거부한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이유다. 북한이 받고 싶은 것은, 간단히 말해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핵 관련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금지다. 경제적으로는 인도적 지원이 아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다.
과거 엄혹했던 시절에도 시민사회단체 중심으로 ‘자유왕래 전면개방’ ‘상호감군 군비축소’ 같은 구호를 말했는데, 지금은 단체들이 적극적인 구호 없이 정부를 응원하기만 하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지금 남북관계가 톱다운(위에서 아래)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장단점이 명확하다. 기획이 불가능하고 즉흥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만, 하노이 회담처럼 즉흥적으로 결렬도 된다. 그런데도 톱다운 방식인 이유는 과거와 달리 군사적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민간 교류도 풀리지 않는 상황이다.
금강산 관광을 포함해,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없을까.
미국의 허용 범위, 또는 미국의 반대에도 한국이 대북제재 전선을 돌파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미국을 설득하거나 미국과 갈등할 수밖에 없는 틀이다. 중국, 러시아, 일본과 같이 주장할 수 있는 대북제재 유예를 사안별로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행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정리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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