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높이려다 삶의 터전 잃습니다.”
‘주 40시간 근무제’(주 40시간제)가 한창 논의되던 2002년 10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5개 경제단체는 신문에 주 40시간제 반대 광고를 실었다. 이는 법정 근로시간을 1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는 제도로, 주로 토요일 오전 근무를 없앤다는 의미에서 ‘주 5일제’로 불렸다.
경제계와 보수언론은 주 40시간제가 도입될 당시 지금 ‘주 52시간 노동 상한제’를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종 우려를 쏟아냈다. 다음은 2001년 7월 나온 사설 ‘주 5일제의 조건’ 중 일부다. “경제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서 주 5일 근무제는 기업의 부담만 가중시킬 뿐 근로시간 단축의 실익을 확보하기 어렵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주 5일제가 되려면 휴가제도나 임금제도 등 그에 연관되는 근로기준과 제도도 동시에 조정해서 새 제도가 경제에 미칠 부작용과 부담을 합리적으로 제어할 수 있어야만 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취업자 267만 명 늘고 주당 6.5시간 적게 일해</font></font>
이런 반대 여론 때문에 주 40시간제는 2003년 법이 통과되고도 무려 8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금융·공공 부문 또는 1천 명 이상 사업체에는 2004년 적용됐고, 이후 300명 이상(2005년), 100명 이상(2006년), 50명 이상(2007년), 20명 이상(2008년), 5명 이상(2011년) 사업체로 확장됐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주 40시간제는 무사히 안착했다. 우려는 기우에 가까웠다. 2003년 3.1%였던 경제성장률은 이후 4년간 4.3~5.8%를 유지했다. 주 40시간제는 1인당 노동생산성을 1.5% 증가시켰다(한국개발연구원(KDI) 박윤수·박우람 연구위원이 2017년 11월1일 발표한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10명 이상 제조업체 1만1692곳 분석).
삶의 질을 높여도 삶의 터전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 5일제 시행의 효과로 취업자가 267만 명 증가했고 1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6.5시간씩 단축됐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12년 8월 자료).
노동시간은 민주화 이후 지속해서 줄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1980년 취업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811시간이었다. 그리고 1988년 2910시간으로 정점을 찍는다(2017년 1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시간 실태와 단축 방안’ 참조). 1989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법정 근로시간이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줄었고, 그 영향으로 1990년대 내내 노동시간이 줄어 2002년 2597시간이 됐다.
그래도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통계 비교가 가능해진 2000년부터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한동안 OECD 1위였다. 2008년 멕시코에 1위 자리를 넘겨줬고 2018년 코스타리카에 밀려 3위가 됐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주 52시간이 바꿀 미래는 어떨까</font></font>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선 새로운 제도가 필요했다. 2003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법정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으로 감축됐다(연장근로 포함 주 68시간 상한). 그 영향으로 노동시간은 2018년 2164시간까지 줄었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연 746시간(26%) 감소한 것이다. 그만큼 노동자들 삶의 질도 높아졌다.
2018년 연장근로를 포함한 법정 상한선이 주 52시간으로 바뀌었다. 삶의 질을 높이는 시도는 삶의 터전을 풍성하게 바꾼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연간 노동시간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까.
변지민 기자 d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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