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008ABD">‘주 52시간 노동 상한제’(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노동시간 단축은 최저임금 인상과 더불어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노동정책으로 꼽힌다. 두 정책을 반대하는 경영계와 보수 야당에선 이 정책이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가중해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정부는 정책 추진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2020년 최저시급 1만원을 약속했던 정부는 2020년 최저임금을 전년보다 2.9% 오른 8590원으로 결정했다. 국회의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는 2018년 7월, 50~299명 사업장에서는 2020년 1월부터 시행해야 하는 주 52시간제는 계도 기간을 늘리며 사실상 시행을 미루고 있다.
더 근본적인 공통점은, 두 정책 모두 한국 경제구조의 근원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두 정책은 노동시장 양극화에 따라 더 취약한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중소·영세 기업 대부분이 원·하청 관계에서 대기업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노사관계에 따라 제도 수용성에서 차이가 나고, 자동화·스마트공장 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혁신 전략과도 얽혀 있다. 임금과 노동시간 모두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노동조건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은 주 52시간제 시행을 준비하거나 선제적으로 대응한 중소기업 여러 곳의 회사 관계자와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노사 양쪽이 장시간 노동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었고, 노동시간 단축 전후 변화된 삶의 모습도 관찰했다. 노동시간 단축을 하루라도 빨리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짚었으며, 제도상 남은 과제도 무엇인지 살펴봤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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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피스톤은 내연기관용 엔진피스톤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이다. 경기도 안산 단원구의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 제조업체가 으레 그러하듯 이 회사도 공장을 쉼 없이 돌려 대기업에 납품할 물건을 최대한 생산하는 게 주요 과제다. 장시간 노동은 경쟁력이자 생존 방식이다. 그래서 ‘주 52시간 노동 상한제’(이하 주 52시간제)는 동양피스톤을 뒤흔든 태풍이었다.
은 동양피스톤의 주 52시간제 도입 과정을 들여다봤다. 이 회사는 제조업-중견기업-완성차 업체의 1차 협력업체-장시간 노동이라는 속성을 띠고 있다. 주 52시간제가 중소기업 단위로 확장되는 단계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다.
취재 과정에서 동양피스톤의 노사 양쪽을 인터뷰했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노동자와 사용자가 어떤 인식의 차이를 보이는지 알아보려 했다. 노동자의 입장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동양피스톤분회의 황훈재 분회장 등 노조 간부들을 통해 들었고, 회사의 입장은 공충국 경영지원실장을 통해 들었다.
참고로 동양피스톤은 피스톤 시장에서 국내 1위, 세계 4위 점유율을 가진 강소기업이다. 현대·기아자동차, 쉐보레, BMW, 포드, 크라이슬러 등 국내외 완성차 업체에 피스톤을 납품한다. 1967년 ‘동양정공사’로 설립돼 빠르게 성장했다. 2018년 매출액은 2750억원, 영업이익은 108억원, 직원은 546명(정규직 517명), 연평균 임금은 7천만원이다. 매출액과 임금 등의 수치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등재된 동양피스톤 사업보고서 등을 참조했다.
<font color="#C21A1A"><font size="4">노 :</font></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1주일에 70시간 이상 일했다
</font></font>
‘체력이 허락하면 365일 일할 수 있는 회사’.
노동자들이 동양피스톤을 부르는 말이었다. 안산에서도 일이 많은 회사로 유명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도 불이 꺼지지 않는 회사였다. 체력이 버티는 사람만 남았다. 노동자들은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2018년 7월1일 주 52시간제 도입 전까지 동양피스톤에서 장시간 노동은 당연한 일이었다. 노사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만 회사는 법정 상한선인 1주 68시간을 지켰다고 하고, 노동자 쪽은 1주 70시간 이상 일했다고 해 인식 수준에 차이가 있긴 하다.
동양피스톤의 생산직은 2조2교대다. 주간조는 아침 7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일하고, 야간조는 저녁 7시30분부터 새벽 4시30분까지 일한다. 주간조와 야간조는 각각 2시간30분씩 연장노동(잔업)을 하기도 한다. 2018년 6월까지는 대부분 잔업에 참여해 사실상 12시간 주야 맞교대처럼 운영됐다. 노동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출근시간 전, 퇴근시간 뒤, 식사시간 중에도 수십 분씩 일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안산공장은 쉴 틈 없이 돌아갔다. 일요일을 빼면 1년에 4일(1월1일, 설 당일, 추석 당일, 창립기념일)만 쉬는 노동자도 많았다. 많이 일할수록 연장근로수당을 많이 받았다. 자녀가 있는 직원도 육아 참여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아이가 깨어 있는 모습을 보는 날이 일주일에 이틀에 불과했다. 동양피스톤 직원의 97%는 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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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C21A1A"><font size="4">사 :</font></font> <font size="4"> <font color="#008ABD">노동시간 줄이면 임금도 줄이자
</font></font>
변화는 외부에서 시작됐다. 2018년 2월28일 주 52시간제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회사는 노사협의회를 열어 근로자위원들과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노조가 없었다.
경기가 안 좋아 주 52시간 넘게 일을 못 시키던 반월국가산업단지의 여러 기업들과 비교하면 행복한 고민인 셈이었다. 하지만 노사 협상 과정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노동시간 감소는 주요 쟁점이 아니었다. 토요일 주간조 잔업을 없애고, 평일 잔업 인원을 줄이고, 휴무일을 늘려 돌아가면서 쉬도록 조정하자 주 52시간 범위 내로 들어왔다. 다른 회사처럼 2조2교대를 3조3교대로 바꾸는 등의 큰 변화는 없었다.
진짜 쟁점은 임금 변화와 노동강도 변화였다. 노사 양쪽의 시각에 큰 차이가 있었다. 회사는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임금 감소, 노동강도 증가’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비용을 크게 늘리지 않고도 총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노동자들은 법의 취지에 맞게 ‘임금 유지, 노동강도 유지’를 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회사의 주장이 관철됐다. 우선 임금이 줄었다. 2018년 7월1일부터 1주 52시간 이하로 노동시간이 줄었고, 그에 비례해 1인당 월급도 수십만원씩 줄었다. 연장노동을 많이 하는 축에 속하던 일부는 월급이 100만원가량 줄기도 했다.
노동강도도 높아졌다. 회사는 유피에이치(UPH·Unit Per Hour, 단위시간당 생산량) 개선 제도를 도입해 잔업 때 1명이 기계 1대를 운영하던 방식을 2명이 3대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체감상으로 2배 이상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피로가 누적돼 크고 작은 사고가 벌어졌다.
노동조건이 너무 쉽게 나빠졌다는 인식이 쌓였다. 2018년 10월께, 직원들 사이에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다음해 3월 노조가 출범했다. 노조는 회사를 다시 테이블에 나오게 했고, 그해 4월부터 7월까지 논의가 이어졌다. 8월에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노조가 만든 변화의 폭은 컸다. 임금수준이 노동시간 단축 전으로 올라갔다. 노동시간을 늘릴 수는 없으니 시간당 임금을 끌어올렸다. 연장노동시간에 대한 가산수당이 통상임금의 10∼20%포인트씩 기존보다 더 높아졌다.
노동강도는 유피에이치 개선 제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토요일 야간조 운영을 멈춰 직원들의 피로가 더 줄었다. 단체협약이 이뤄지기까지 노사가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만 파업 등 큰 충돌 없이 비교적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노조의 성과이자 회사의 양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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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C21A1A"><font size="4">사 :</font></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직원 더 뽑아 인건비 늘었다
</font></font>
회사로선 큰 결단이었다. 회사는 노사 관계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노동자들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가 쌓여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홍순겸 동양피스톤 대표이사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아버지였던 직원이 회사에 나오지 않는데도 사표를 반려하고 7개월 이상 임금을 지급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최고경영자에 대한 신뢰가 있고 노사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점은 동양피스톤이 가진 특수성이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며 인원이 소폭 늘었다. 동양피스톤의 직원 수는 노동시간 단축 전 517명(2018년 6월30일 기준)에서 최근 589명(2019년 9월30일 기준)으로 변화했다. 여기엔 새로운 수소전기차 부품 생산을 위한 인력 충원, 도급직의 계약직 전환 등이 포함돼 실제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늘어난 인원은 6명 정도다.
인건비는 꽤 늘었다. 종업원 급여 총액을 비교해보면 2017년 3분기(7~9월) 130억7707만원이었다가 주 52시간제가 막 도입된 2018년 3분기 121억728만원으로 줄었다. 직원들의 반발로 노사 단체협약이 체결되고 난 직후인 2019년 3분기에는 193억1647만원으로 뛰었다. 다만 인건비 변화를 주 52시간제 도입의 영향으로 곧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회사는 전년보다 매출이 늘어 2019년 흑자를 달성하긴 했지만 과거보다 이익 규모가 줄었다. 납품하는 피스톤의 가격을 올려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 완성차 업체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 처지에서도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부품 비용이 늘어나면 결국 차량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소비자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비용 문제는 사회 전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사람을 더 뽑고 생산량을 늘려 매출을 높이는 방안도 쉽지 않다. 전세계적으로 피스톤을 사용하는 내연기관 차량이 줄어들고 친환경차가 부상하고 있다. 내연기관 부품을 생산하는 설비나 인력을 늘리기 조심스럽다.
한 가지 긍정적인 변화는 유피에이치 개선 제도를 없애고도 직원 1인당 생산성이 10% 이상 높아졌다는 점이다. 주 52시간제로 피로도가 낮아져 고장이 났을 때 더 빨리 대응할 수 있게 됐다. 결과적으로 불량률이 줄어 완성차 업체의 문제 제기도 줄었다. 일부 병목현상이 생기는 라인을 개조한 것도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됐다. 피로도가 줄자 사업장은 더 안전해졌다. 회사는 2019년 안전사고가 전년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font color="#C21A1A"><font size="4">노 :</font></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휴가를 쓰게 됐다
</font></font>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현장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쉼 없이 돌아가던 기계들이 지금은 중간중간 멈춰 선다. 특히 잔업을 하는 인원이 많이 줄었다. 직원들은 휴가를 쓰기 시작했다. 일부 공정의 직원들은 올해 크리스마스에 단체로 쉬기도 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출근시간 전, 퇴근시간 뒤, 식사시간 중 노동이 사라졌다. 원치 않는 잔업을 강요당하는 일이 사라지고 노동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간판만 걸어놓고 유명무실했던 회사 동호회가 활성화됐다. 일만 하느라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던 직원들은 서로에게 “어디로 놀러 가면 되냐”고 묻기 시작했다. 주말에 회사 동료들과 산행을 하고 가족과 캠핑을 갈 수 있게 됐다.
모든 직원이 만족하는 건 아니다. 황훈재 분회장은 법을 피해 일을 더 하게 해달라는 일부 조합원의 요구를 거절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고 싶은 노동자도 있다. 또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렇게 해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사람도 있다.
동양피스톤의 노동조건은 과거보다 좋아졌지만 다른 회사로 일반화하긴 어렵다. 황 분회장은 “노조가 없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에선 주 52시간제가 임금 감소와 단위 시간당 노동강도를 높여 되레 임금수준과 노동환경을 악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주 52시간제가 중소·중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대기업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원·하청 관계, 노동시장 양극화 등 기업을 둘러싼 사회구조와 함께 봐야 보완할 방법도 보인다. 다음 기사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룬다.
<font color="#008ABD">글</font> 변지민 기자 dr@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font>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더 근본적인 공통점은, 두 정책 모두 한국 경제구조의 근원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두 정책은 노동시장 양극화에 따라 더 취약한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중소·영세 기업 대부분이 원·하청 관계에서 대기업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노사관계에 따라 제도 수용성에서 차이가 나고, 자동화·스마트공장 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혁신 전략과도 얽혀 있다. 임금과 노동시간 모두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노동조건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은 주 52시간제 시행을 준비하거나 선제적으로 대응한 중소기업 여러 곳의 회사 관계자와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노사 양쪽이 장시간 노동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었고, 노동시간 단축 전후 변화된 삶의 모습도 관찰했다. 노동시간 단축을 하루라도 빨리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짚었으며, 제도상 남은 과제도 무엇인지 살펴봤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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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피스톤은 내연기관용 엔진피스톤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이다. 경기도 안산 단원구의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 제조업체가 으레 그러하듯 이 회사도 공장을 쉼 없이 돌려 대기업에 납품할 물건을 최대한 생산하는 게 주요 과제다. 장시간 노동은 경쟁력이자 생존 방식이다. 그래서 ‘주 52시간 노동 상한제’(이하 주 52시간제)는 동양피스톤을 뒤흔든 태풍이었다.
은 동양피스톤의 주 52시간제 도입 과정을 들여다봤다. 이 회사는 제조업-중견기업-완성차 업체의 1차 협력업체-장시간 노동이라는 속성을 띠고 있다. 주 52시간제가 중소기업 단위로 확장되는 단계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다.
취재 과정에서 동양피스톤의 노사 양쪽을 인터뷰했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노동자와 사용자가 어떤 인식의 차이를 보이는지 알아보려 했다. 노동자의 입장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동양피스톤분회의 황훈재 분회장 등 노조 간부들을 통해 들었고, 회사의 입장은 공충국 경영지원실장을 통해 들었다.
참고로 동양피스톤은 피스톤 시장에서 국내 1위, 세계 4위 점유율을 가진 강소기업이다. 현대·기아자동차, 쉐보레, BMW, 포드, 크라이슬러 등 국내외 완성차 업체에 피스톤을 납품한다. 1967년 ‘동양정공사’로 설립돼 빠르게 성장했다. 2018년 매출액은 2750억원, 영업이익은 108억원, 직원은 546명(정규직 517명), 연평균 임금은 7천만원이다. 매출액과 임금 등의 수치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등재된 동양피스톤 사업보고서 등을 참조했다.
<font color="#C21A1A"><font size="4">노 :</font></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1주일에 70시간 이상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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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허락하면 365일 일할 수 있는 회사’.
노동자들이 동양피스톤을 부르는 말이었다. 안산에서도 일이 많은 회사로 유명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도 불이 꺼지지 않는 회사였다. 체력이 버티는 사람만 남았다. 노동자들은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2018년 7월1일 주 52시간제 도입 전까지 동양피스톤에서 장시간 노동은 당연한 일이었다. 노사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만 회사는 법정 상한선인 1주 68시간을 지켰다고 하고, 노동자 쪽은 1주 70시간 이상 일했다고 해 인식 수준에 차이가 있긴 하다.
동양피스톤의 생산직은 2조2교대다. 주간조는 아침 7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일하고, 야간조는 저녁 7시30분부터 새벽 4시30분까지 일한다. 주간조와 야간조는 각각 2시간30분씩 연장노동(잔업)을 하기도 한다. 2018년 6월까지는 대부분 잔업에 참여해 사실상 12시간 주야 맞교대처럼 운영됐다. 노동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출근시간 전, 퇴근시간 뒤, 식사시간 중에도 수십 분씩 일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안산공장은 쉴 틈 없이 돌아갔다. 일요일을 빼면 1년에 4일(1월1일, 설 당일, 추석 당일, 창립기념일)만 쉬는 노동자도 많았다. 많이 일할수록 연장근로수당을 많이 받았다. 자녀가 있는 직원도 육아 참여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아이가 깨어 있는 모습을 보는 날이 일주일에 이틀에 불과했다. 동양피스톤 직원의 97%는 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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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C21A1A"><font size="4">사 :</font></font> <font size="4"> <font color="#008ABD">노동시간 줄이면 임금도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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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외부에서 시작됐다. 2018년 2월28일 주 52시간제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회사는 노사협의회를 열어 근로자위원들과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노조가 없었다.
경기가 안 좋아 주 52시간 넘게 일을 못 시키던 반월국가산업단지의 여러 기업들과 비교하면 행복한 고민인 셈이었다. 하지만 노사 협상 과정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노동시간 감소는 주요 쟁점이 아니었다. 토요일 주간조 잔업을 없애고, 평일 잔업 인원을 줄이고, 휴무일을 늘려 돌아가면서 쉬도록 조정하자 주 52시간 범위 내로 들어왔다. 다른 회사처럼 2조2교대를 3조3교대로 바꾸는 등의 큰 변화는 없었다.
진짜 쟁점은 임금 변화와 노동강도 변화였다. 노사 양쪽의 시각에 큰 차이가 있었다. 회사는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임금 감소, 노동강도 증가’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비용을 크게 늘리지 않고도 총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노동자들은 법의 취지에 맞게 ‘임금 유지, 노동강도 유지’를 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회사의 주장이 관철됐다. 우선 임금이 줄었다. 2018년 7월1일부터 1주 52시간 이하로 노동시간이 줄었고, 그에 비례해 1인당 월급도 수십만원씩 줄었다. 연장노동을 많이 하는 축에 속하던 일부는 월급이 100만원가량 줄기도 했다.
노동강도도 높아졌다. 회사는 유피에이치(UPH·Unit Per Hour, 단위시간당 생산량) 개선 제도를 도입해 잔업 때 1명이 기계 1대를 운영하던 방식을 2명이 3대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체감상으로 2배 이상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피로가 누적돼 크고 작은 사고가 벌어졌다.
노동조건이 너무 쉽게 나빠졌다는 인식이 쌓였다. 2018년 10월께, 직원들 사이에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다음해 3월 노조가 출범했다. 노조는 회사를 다시 테이블에 나오게 했고, 그해 4월부터 7월까지 논의가 이어졌다. 8월에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노조가 만든 변화의 폭은 컸다. 임금수준이 노동시간 단축 전으로 올라갔다. 노동시간을 늘릴 수는 없으니 시간당 임금을 끌어올렸다. 연장노동시간에 대한 가산수당이 통상임금의 10∼20%포인트씩 기존보다 더 높아졌다.
노동강도는 유피에이치 개선 제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토요일 야간조 운영을 멈춰 직원들의 피로가 더 줄었다. 단체협약이 이뤄지기까지 노사가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만 파업 등 큰 충돌 없이 비교적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노조의 성과이자 회사의 양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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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C21A1A"><font size="4">사 :</font></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직원 더 뽑아 인건비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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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로선 큰 결단이었다. 회사는 노사 관계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노동자들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가 쌓여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홍순겸 동양피스톤 대표이사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아버지였던 직원이 회사에 나오지 않는데도 사표를 반려하고 7개월 이상 임금을 지급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최고경영자에 대한 신뢰가 있고 노사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점은 동양피스톤이 가진 특수성이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며 인원이 소폭 늘었다. 동양피스톤의 직원 수는 노동시간 단축 전 517명(2018년 6월30일 기준)에서 최근 589명(2019년 9월30일 기준)으로 변화했다. 여기엔 새로운 수소전기차 부품 생산을 위한 인력 충원, 도급직의 계약직 전환 등이 포함돼 실제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늘어난 인원은 6명 정도다.
인건비는 꽤 늘었다. 종업원 급여 총액을 비교해보면 2017년 3분기(7~9월) 130억7707만원이었다가 주 52시간제가 막 도입된 2018년 3분기 121억728만원으로 줄었다. 직원들의 반발로 노사 단체협약이 체결되고 난 직후인 2019년 3분기에는 193억1647만원으로 뛰었다. 다만 인건비 변화를 주 52시간제 도입의 영향으로 곧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회사는 전년보다 매출이 늘어 2019년 흑자를 달성하긴 했지만 과거보다 이익 규모가 줄었다. 납품하는 피스톤의 가격을 올려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 완성차 업체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 처지에서도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부품 비용이 늘어나면 결국 차량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소비자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비용 문제는 사회 전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사람을 더 뽑고 생산량을 늘려 매출을 높이는 방안도 쉽지 않다. 전세계적으로 피스톤을 사용하는 내연기관 차량이 줄어들고 친환경차가 부상하고 있다. 내연기관 부품을 생산하는 설비나 인력을 늘리기 조심스럽다.
한 가지 긍정적인 변화는 유피에이치 개선 제도를 없애고도 직원 1인당 생산성이 10% 이상 높아졌다는 점이다. 주 52시간제로 피로도가 낮아져 고장이 났을 때 더 빨리 대응할 수 있게 됐다. 결과적으로 불량률이 줄어 완성차 업체의 문제 제기도 줄었다. 일부 병목현상이 생기는 라인을 개조한 것도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됐다. 피로도가 줄자 사업장은 더 안전해졌다. 회사는 2019년 안전사고가 전년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font color="#C21A1A"><font size="4">노 :</font></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휴가를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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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도입으로 현장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쉼 없이 돌아가던 기계들이 지금은 중간중간 멈춰 선다. 특히 잔업을 하는 인원이 많이 줄었다. 직원들은 휴가를 쓰기 시작했다. 일부 공정의 직원들은 올해 크리스마스에 단체로 쉬기도 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출근시간 전, 퇴근시간 뒤, 식사시간 중 노동이 사라졌다. 원치 않는 잔업을 강요당하는 일이 사라지고 노동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간판만 걸어놓고 유명무실했던 회사 동호회가 활성화됐다. 일만 하느라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던 직원들은 서로에게 “어디로 놀러 가면 되냐”고 묻기 시작했다. 주말에 회사 동료들과 산행을 하고 가족과 캠핑을 갈 수 있게 됐다.
모든 직원이 만족하는 건 아니다. 황훈재 분회장은 법을 피해 일을 더 하게 해달라는 일부 조합원의 요구를 거절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고 싶은 노동자도 있다. 또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렇게 해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사람도 있다.
동양피스톤의 노동조건은 과거보다 좋아졌지만 다른 회사로 일반화하긴 어렵다. 황 분회장은 “노조가 없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에선 주 52시간제가 임금 감소와 단위 시간당 노동강도를 높여 되레 임금수준과 노동환경을 악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주 52시간제가 중소·중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대기업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원·하청 관계, 노동시장 양극화 등 기업을 둘러싼 사회구조와 함께 봐야 보완할 방법도 보인다. 다음 기사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룬다.
<font color="#008ABD">글</font> 변지민 기자 dr@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font>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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