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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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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노인, 플라스틱, 난민 #떠밀린변화
등록 2019-12-26 13:42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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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씨(동사). 속도를 더해 변해가는 세계 속에서 움직이기도, 움직여지기도 하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움직일 수 있는 속도가 저마다 달라 북적임 어딘가 비애가 녹아 있다. 플랫폼, 4차산업, 혁신 같은 현란한 단어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어리둥절 선 사람들, 자세는 초라하고 표정은 쓸쓸했다. 그들을 두고 우리는 다시 민첩하게 움직였다. 떠밀려 달리느라 부쩍 늘어난 노인과 다양한 민족을 향해 충분히 손 내밀지 못했다. 편리함과 환경 사이 끝내 편리 쪽으로 기울고 마는 마음을 다잡을 여유도 없었다. 이대로는 이상한데, 싶어도 멈출 수는 없었다. 움직임을 재촉하는 미래와 움직이느라 놓쳐버린 사람과 가치 사이에서, 적당한 움직임의 속도는 얼마인 걸까.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빠르게 느는 노인, 더 빨라야 할 정책
제1285호 표지이야기 ‘늙었다 일한다 다친다 가난하다’

2020년은 입구다. 한국전쟁 뒤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노인(만 65살 이상)으로 진입하는 해다.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주도했던 베이비부머가 이제 노인이 된다.

한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한겨레21>은 10월 보도한 ‘늙었다 일한다 다친다 가난하다’(제1285호) 기사에서 전체 인구의 14.9%에 이르는 768만5천 명의 노인 중 상당수가 노동시장에서 떠나지 못하는 현상을 다뤘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던 전통은 사라졌고 공적연금은 아직 성장하지 못한 사이 수명은 급격히 늘어났다. 가난한 노인들은 생계를 위해 노동시장 밑바닥을 전전하다 산업재해를 입고 빈곤에 빠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에서 우리나라는 노인 고용률 1위, 빈곤율 1위, 자살률 1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늘고 있는 고령화율, 모든 수치가 비관적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노력하지 않았다고 탓하기는 조심스럽다. 한국의 노인 관련 예산은 절대 적지 않다. 12월10일 국회를 통과한 2020년 정부 예산은 789가지 세부 항목(‘항’)으로 구성됐는데, 그중 네 번째로 큰 항이 ‘노인생활 안정’이다. 2020년 정부 예산이 512조3천억원이고 보건복지부 예산이 51조8512억9300만원인데, 그중 노인생활 안정 예산이 14조8950억100만원이다.

비참한 노후 될라, 청년들의 두려움

예산의 증가 속도도 그리 느리지 않다. 보건복지부의 노인 관련 예산은 2019년 13조9776억원에서 2020년 16조6323억원으로 2조6547억원 늘었다. 증가율이 19%로 보건복지부의 예산 중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국고 지원이 확대됐고 노인 일자리가 대폭 늘었다. 정부와 정치권도 나름대로 노력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노인이 무척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만 65살이 되는 1955년생은 70만5132명(2019년 11월 기준)이다. 참고로 2018년 한 해 태어난 아기 수는 32만6900명. 매년 출생아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사람이 노인이 된다.

공적연금 확대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1988년 시행된 국민연금은 수급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2013년에는 65살 이상 인구 중 32.5%만 국민연금을 받았는데, 2018년에는 40.8%가 받았다. 월 최대 30만원인 기초연금도 지급 대상과 액수가 꾸준히 커지고 있다. 노인이 존엄한 삶을 이어가기엔 여전히 모자란 금액이지만 말이다.

베이비부머가 살아온 60여 년간 한국 사회는 놀랍게 변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나 시민들의 인식 변화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자산과 소득이 없는 노인, 자식이 없거나 부양을 못 받는 노인은 삶의 끝에서 비참함을 피하지 못한다.

노인 빈곤은 저출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청년들이 비참한 노후가 될까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가 돼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대에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큰 물줄기의 방향을 틀 수 있을까. 2020년은 입구이자 갈림길이다.

[%%IMAGE2%%]결국 줄여야 한다
제1265호 표지이야기 ‘플라스틱 로드’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황폐한 미래를 다룬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처럼, 2019년은 전세계가 플라스틱 문제의 해법을 찾는 데 골몰한 시간이었다. 제1265호 ‘플라스틱 로드’는 이 흐름 속에 나왔다. 매일 쌓여만 가는 플라스틱이 초래할 재앙을 더는 두고 보지 않겠다는 독자 25명이 기획과 취재, 기사 작성 과정에 참여했다. 정부는 다양한 대책을 발표했고,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유통하는 기업들도 나름대로 노력했다. 시민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분리수거에 신경 썼다. 모두 답은 찾았다. 플라스틱 생산과 사용을 줄이고, 있는 플라스틱은 재활용하는 것. 물론 답을 안다고 얽히고설킨 문제가 한번에 풀리지 않는다. 플라스틱과의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2030년 모든 업종 비닐봉투 사용 금지

제1265호에서 다룬 경북 의성군의 쓰레기산(17만t 규모)은 어떻게 됐을까? 아직도 쓰레기산은 존재한다. 약 20%의 쓰레기가 소각장이나 매립지로 이동해 처리됐다고 한다. 환경부는 지난 2월 의성을 비롯해 전국에 방치된 불법폐기물(쓰레기산) 120.3만t을 올해 안에 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1월 말까지 72만6천t(60.3%)의 쓰레기만 처리돼 나머지는 해를 넘겨 처리될 예정이다. 환경부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대부분 지자체에서 불법폐기물을 공공 소각·매립 시설에 반입하는 것에 대해 지역주민과 협의가 원활히 진행되지 못했다. 5월로 예상했던, 추가경정예산이 8월에 확정돼 시기를 놓쳤다”고 설명한다. 현재 소각·매립 시설의 처리 능력이 불법폐기물을 소화하기에 벅찬 것도 사실이다.

결국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22년까지 일회용품 사용량의 35%를 줄이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11월22일 발표했다. 특히 정부는 국내 플라스틱 사용량의 8.5%(53만5천t·2018년 기준)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 감축에 방점을 찍고 있다. 2021년부터 포장·배달 음식에 사용되는 일회용 식기(수저·포크·나이프 등) 사용을 금지한다.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 금지 매장도 확대해, 2030년에는 전 업종에서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된다. 플라스틱 빨대와 막대는 2022년부터 사용을 금지하고, 택배 스티로폼 상자도 재사용 상자로 바꾸는 것을 관련 업체에 유도할 예정이다. 현재 영국·프랑스·미국 등에서도 비슷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계획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2030년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이 64%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한다.

물론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정부·기업·시민 모두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고, 플라스틱 대체품 개발,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 기술 연구 등이 계속 진행돼야 한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말은 2020년에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답은 찾았다. 실천만 남았다. 늘 그랬듯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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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로 볼게 아니라 인권으로
제1264와 제1268호 ‘난민’ 표지이야기, 기획연재 ‘난민과 함께’

“기자님, 우리 주니가 학군단(ROTC)에 합격했습니다.”

줌머 난민 이나니(로넬 나니 차크마)씨가 메시지를 보내 소식을 알렸다. 아들의 합격 소식에 기뻐하는 아버지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난민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난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기도 한다지만, 난민 2세인 나니씨의 아들 주니는 테러를 진압하는 경찰관이 되고 싶어 했다. 학군단은 그에게 경찰관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한국사 시험, 인지능력 평가, 신체검사, 체력검사, 면접 등 선발 절차를 준비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지만 묵묵히 참고 견뎠다.

일부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한국 젊은이들은 병역을 ‘청춘의 낭비’로 치부한다지만 공동체에서 누리는 권리는 부담하는 의무와 떼놓고 논할 수 없다. 병역을 마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병역은 때론 ‘권리’다. 난민 2세이자 귀화 외국인인 주니는 피할 수도 있었던 병역의 의무를 자발적으로 이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국방부는 한국인 인구 감소로 줄어드는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주니처럼 귀화한 외국인의 병역 이행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을 내년에 추진할 예정이다. 병역 의무 이행 대상이 되는 35살 이하 귀화 외국인은 연간 1천 명 수준으로, 중국 동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병무청 관계자는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 남성의 경우, 병역 의무를 이행할 나이가 돼도 스스로 원할 때만 군에 입대했지만 귀화자의 권리·책임 의식을 강화하고, 내국인과 귀화자 간의 병역 형평성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법무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제기해온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란 출신 김민혁군은 난민 인정 받았지만…

이렇듯 정부 정책은 인구 감소에 맞춰 이주민을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의 삶은 여전히 냉혹한 겨울이다. 지난 7월에는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 가정폭력을 당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공분을 샀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를 보면 이주여성 10명 중 4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파악됐다. 농장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여성 노동자들도 성폭력에 노출됐다는 보도가 무수히 쏟아졌다.

그러나 이주민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제1야당 대표는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 차등 적용’안을 언급하며 차별 여론을 조성했다. 이주노동자는 한국 사람들이 하지 않는,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노동을 하면서도 후진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숨죽여야 했다.

이주민 중에서도 난민에게 2019년은 더욱 가혹한 해였다. 2018년이 제주도에 당도한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주목받으면서 한국 사회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해였다면, 2019년은 난민 차별이 본격화한 해였다. 난민 신청자와 인도적 체류자의 건설업 취업 금지, 인도적 체류자의 귀화 제한, 난민 면접 조작, 국회와 정부의 난민법 개악 시도, 지역주민 반대에 부딪혀 천주교 의정부교구 가톨릭난민센터 개소 연기 등 주로 난민에게 차가운 소식이 ‘난민인권네트워크가 선정한 2019년 올해의 난민 뉴스’에 꼽혔다.

반가운 소식도 없지는 않다. 지난해 말 난민으로 인정된 이란 출신 중학생 김민혁군을 도왔던 같은 학교 친구들이 김군 아버지의 난민 인정을 위해 활동해 주목받았다. 난민 심사 기회를 받지 못하고 인천공항 환승 구역에서 287일을 버텼던 ‘루렌도 가족’이 난민자격 심사 기회조차 받지 못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2020년엔 따뜻한 소식을 더 많이 들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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