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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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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평범을 찾을 때까지

친족 성폭력, 산재와 암 경험을 말한 #용기있는사람들
등록 2019-12-24 12:49 수정 2020-05-03 04:29
제1277호 ‘작은 목소리라도, 말해야 산다’에 등장한 푸른나비(활동명)가 한국성폭력상담소로부터 받은 ‘용감한 생존자상’. 푸른나비 제공

제1277호 ‘작은 목소리라도, 말해야 산다’에 등장한 푸른나비(활동명)가 한국성폭력상담소로부터 받은 ‘용감한 생존자상’. 푸른나비 제공

이름씨(명사). 삶에 이름 붙이는 일의 무서움을 알면서도, 은 2019년에도 끝내 숱한 삶을 몇 단어로 이르고 말았다. 주저하고 있을 때, 먼저 자기를 ‘암 경험자’로, ‘사고 목격 트라우마 피해자’로, ‘장애인 노동자’로 불러달라고 말해준 이들이 있었다. 거대한 것들의 목록 안에서 이름 없이 존재마저 감춰질까 두려워, 이름에 갇히는 두려움을 놓기로 한 사람들. 드러내준 이름 안고 같이 고민하면 그 이름이, 아무렇지 않은 그저 이름일 뿐인 세상도 언젠가 오지 않을까.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침묵의 카르텔에 생긴 균열
제1273호와 제1277호 표지이야기 ‘#오빠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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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의 ‘#오빠미투’(제1273호와 제1277호) 보도 이후 여러 언론에서 에 취재 협조를 요청해왔다. 은 친족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되길 바라며 SBS (이하 )에 인터뷰이를 소개했다. 흔쾌히 취재에 응한 인터뷰이와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해 말하는 사람들 모임’(공폐단단) 관계자들은 그러나, ‘부성애의 두 얼굴’이 방송된 뒤 고통과 분노의 시간을 보냈다. 제작팀의 취재 과정과 방송 내용이 기대와 달리 “친족 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12월17일 한국성폭력상담소 누리집에 올라온 성명을 보면 “제작팀이 피해자와의 첫 번째 통화에서 ‘그러니까 어떤 행위였냐, 삽입이었냐 ○○이었냐?’ 등 (2차 가해에 해당하는) 질문”을 했고, “(그런 질문까지 해놓고) 해당자는 결국 에 못/안 나갔다”고 했다. 또 방송된 내용 역시 “피해자를 ‘믿고 싶지 않은 성적 충격’을 경험한 몸으로만 보고자 했다”고 비판했다.

친족 성폭력은 평범한 가정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가족이라는 사회적 기능과 상징이 개인의 생애 대소사를 부당하게 좌우하는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은폐된다. 처럼 친족 성폭력을 “충격”적인 소재로만 다루면 오히려 그 일상성과 평범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성명의 골자다.

공폐단단은 “친족 성폭력은 평범한 가족에서 일어나고, 그 평범이 친족 성폭력을 은폐하고 지속시켜왔으며, 그 평범이 유지되는 한 친족 성폭력은 지속된다”며 “그 평범을 깨고 우리의 평범을 찾자”고 외쳤다. 그 다짐의 첫 단추로 12월21일 오후 서울 여의도와 영등포의 ‘평범한 장소’에서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외치는 손팻말을 들기로 했다.

생존자 상담·치료 지원 확대해야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침묵의 가부장제 카르텔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지만, 생존자가 그 평범을 깨고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까지는 지난한 고통의 여정이 수반된다. ‘청소년 자해’(제1237~1239호) 인터뷰이였다가, 자해의 원인이 된 오빠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고 집을 나온 아이 Y 역시 그 가혹한 여정 중에 있다.

의 #오빠미투는 열여섯 살 Y의 비극에서 출발한 기사였다. 최근 연락이 닿지 않던 Y의 소식은 경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12월16일 과 한 통화에서 “집으로 돌아갔던 Y가 다시 (정신과)병원에 입원하길 원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수험생이던 Y의 오빠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겠다고 했으나, 수능이 끝나자 변호사를 통해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11월 말 병원에서 Y를 면담했을 때 분명히 피해가 있었다는 판단이 들어 오빠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성년자인 Y가 #오빠미투 이후 큰 부침을 겪는 것과 달리, 어른이 된 생존자들은 #오빠미투 이후 스스로 인생의 조타기를 움켜쥔 채 서서히 정상 항로를 향해 삶의 방향을 틀고 있다. 제1277호 ‘저는 8살 영혼 그대롭니다’의 M(39)은 보도 이후 임상심리검사를 받았고, 어린 시절 성폭력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을 받았다. 적잖이 놀랐지만 한편으론 스스로를 괴롭혔던 이상행동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직면할 용기가 생겼다.

M은 요즘 주 1회 심리상담을 받고 월 1~2회 병원 진료를 받는다. 여전히 상담 때마다 두세 시간씩 울지만, 확연히 안정을 되찾고 있다. 그는 성폭력 생존자에 대한 정부의 상담·치료 지원이 늘어야 하고, 기관·단체를 통한 지원 이외에 피해자 개인에 대한 지원도 늘려야 한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 했다.

M은 임상심리검사에만 100만원 가까운 병원비를 지출했다. 상담비도 시간당 최소 5만원으로, 주 1회만 받아도 한 달 60만원이다. M은 “의사가 스마일센터(범죄피해 트라우마 통합지원기관) 무료 상담을 권했지만, 상담 시간이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라 직장인에겐 제약이 많다”며 아쉬워했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과 단체를 통해 무료 상담·치료를 받는 길도 있다. M은 “이 경우 피해자가 상담·치료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제한적인데다 서울·수도권과 다른 지역의 편차가 커서 개인 치료를 선택하는 피해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오빠미투 소재 창작 공연 준비 중”

제1273호 ‘그날 새벽 오빠가 내 방에 들어왔습니다’의 주인공 A(50대 여성)는 40여 년 만에 큰오빠에게 당한 성폭력을 세상에 공개했다. “수풀을 헤치고 날카로운 풀에 베이며 돌아돌아 혼자 여기까지” 40년을 버티는 동안 마음에 굳은살이 박일 만큼 박여 괜찮을 줄 알았다. 뜻밖에 A는 기자를 앞에 놓고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크게 당황했다. 그랬던 그가 ‘감정의 클라이맥스’ 이후 다시 찾아온 평온을 누리기까지 격동의 4개월, 근황이 궁금했다.

인정 없이 흐르는 시간과 사정없이 이어지는 일상은 오히려 A를 버티게 하고 이기게 하는 힘이 된 듯 보였다. A는 수화기 너머에서 깔깔깔깔 웃으며 어마어마한 월동 준비 소식을 전했다. “쉼터 아이들 먹일 김장김치 담그고 있었어요. 한 200포기는 담가야 해요. 원래 내일 담그려 했는데, 아휴 일기예보에 내일 비 온다잖아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돌보는 마음으로 친족 성폭력 피해 아이들을 돕고 있는 A는 생존자 아이들과 함께 꽉 찬 일상을 살고 있었다.

보도 이후 여러 오빠 성폭력 생존자들이 A를 만나 조언을 듣고자 했다. A는 매번 정중하게 요청을 거절했다. 그는 개인사적으로 의미가 컸던 올해를 정리하면서, ‘응답할 수 없었던 이메일’이 가장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는 “생존자들의 절절한 메일을 보고 일일이 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전문가도 아닌 제가 섣불리 그분들의 삶에 개입할 수 없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대신 직접 만나지 못한 생존자들에게 지면으로나마 자신의 #오빠미투 경험에서 건진 희망의 말을 전했다. “진실은 통하고, 사람은 선하며,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A의 이 말을 극적으로 보여준 생존자가 있다. 제1277호 ‘나의 #오빠미투, 적어도 해피엔딩’의 조이(가명·40대 초반)다. 조이는 남편과 지인들의 전폭적인 #미투 지지로 부부생활과 일상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조이는 그것을 “삶의 밸런스(균형)가 맞춰졌다”는 말로 표현했다.

조이의 #오빠미투 기사 댓글에는 “남편이 무슨 죄냐, 결혼하기 전에 말했어야지” 같은 생면부지 누리꾼의 질책도 눈에 띄었다. 정작 남편은 ‘아내는 피해자이고, 남편으로서 아내의 치유를 도와야 한다’는 사실과 상식에 입각해 조이를 품었다. 조이는 “인터뷰 뒤에도 남편과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으며 “#오빠미투를 소재로 창작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작가 섭외까지 마친 상태지만, 펀딩과 배우 섭외 등 남은 절차가 많아 공연 일정은 미지수다. 조이는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그날, 을 통해 꼭 소개하겠다고 약속했다.

6월 열린 <나, 조선소 노동자> 북콘서트 모습(위). 쌍둥이를 임신한 암 경험자 송민서씨는 내년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제공

6월 열린 <나, 조선소 노동자> 북콘서트 모습(위). 쌍둥이를 임신한 암 경험자 송민서씨는 내년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제공

내 잘못이 아닌 기억을 위하여
제1258호 표지이야기 ‘2년 전 그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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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기자 jyy@hani.co.kr
4월23일, 배 만들던 사람들의 인생·노동·상처가 담긴 책 가 나왔다. 2017년 5월1일 경남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일어난 크레인 충돌 사고를 목격한 이후 ‘사고 목격 트라우마’를 겪는 노동자 9명의 이야기를 담은 구술기록집이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들을 것” 같아도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말해줄 수 있는 환경”이 되길 기대하며 조선소 노동자 9명이 남긴 증언이었다. 제1258호 표지이야기 ‘2년 전 그날 이후’를 사전 취재하면서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에서 책 초안을 받아 취재와 기사 작성에 일부 참고하기도 했다.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은 책 출판 뒤 “희생 노동자를 추모”하고 “남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을 함께 확인”하는 북콘서트를 이어가고 있다. 북콘서트에 참석한 생존 노동자들은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씩 그날 이후의 삶을 말했다.

사회 통합적인 지원은 여전히 부족

정신적 외상을 입고도 아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집안에 스스로를 가둔 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일이 반복되지 않길 누구보다 소망했다. 하지만 사고 때 기억이 떠올라 원래 다니던 직장에 복직하는 데도 어려워하는 노동자를 위한 ‘치료→보상→고용→사회 복귀’로 이어지는 사회 통합적인 지원은 여전히 부족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산업재해라는 인지가 부족하고, 잘못된 사회 인식과 홍보 부족 등은 충격적인 산재를 목격한 뒤 트라우마를 겪는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부터 가로막았다.

문진국 자유한국당 의원은 10월15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서 “산재 외상은 무엇보다 중대 재해 사고 발생시 사고 초기부터 피해 대상자를 신속하게 파악해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요양·치료 관리의 전반적 부실을 지적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올해 시범 운영한 인천병원 내 ‘산재트라우마치료센터’를 내년까지 공단 소속 안산·창원·대전 병원에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안전보건공단 역시 단 한 곳뿐인 대구근로자건강센터 내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를 내년까지 8곳으로 늘린다. 중대 산업재해가 일어난 지역 내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에서 위험군으로 분류된 사고 목격 노동자들이 산재트라우마치료센터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과 한 통화에서 “사고 목격 트라우마 상담도 받고 병원 치료도 받을 수 있게 연계성을 높일 계획이다.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에서 위험군으로 분류된 노동자들이 산재트라우마치료센터에 방문할 경우 진단에 드는 진료비를 부담해 노동자의 비용 부담을 덜 예정이다”라고 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노동통계’를 보면 2017년 한 해에만 산재로 노동자 8만9848명이 다쳤고, 1957명이 목숨을 잃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의 사망과 부상을 바로 눈앞에서 본 노동자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집계조차 안 되는 사고 목격 트라우마 노동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송민서 제공

송민서 제공

“일을 하고 싶어요, 뭐든…”
제1272호 표지이야기, 제1273호 특집 ‘또, 다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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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5개월 만에 전화를 걸었다. “민서씨, 잘 지내셨어요?” “미용실 그만두고 쉬고 있어요.”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그는 송민서씨다. 암 치료 뒤 재발이나 전이 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암 경험자다. 제1273호 암 경험자들의 암 이후의 삶을 다룬 ‘또, 다시 봄’ 기사에 등장했다. 헤어디자이너인 그가 일을 쉬고 있다는 대답에 혹시라도 몸이 안 좋은 상황인가 싶어 다음 대답을 듣기 겁났다. 이내 그가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쌍둥이 임신했어요. 지금 5개월이에요.(웃음)” 쌍둥이 태명은 꽃댕이와 꿀댕이다.

송씨는 임신 계획을 세우기까지 많이 고민했단다. 실은 임신으로 몸 상태가 안 좋아질까봐 걱정했다. 위암 수술을 한 분들의 임신과 출산에 관한 정보를 알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임신하면 어떻게 건강관리를 해야 할지 궁금한 게 많았어요. 일반 산모들과는 다르잖아요. 이제는 저처럼 첫 임신으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송씨는 임신으로 수화통역사의 꿈을 잠시 보류했다. “지난 7월 처음 수화통역 시험을 봤는데 아주 낮은 점수로 떨어졌어요. (웃음) 지금은 임신해서 (수화통역 시험) 준비를 못하지만 언젠가 다시 해야죠.”

송씨에게 2020년은 특별한 해다. 5월이 쌍둥이 출산 예정달이다. “임신하고 삶이 많이 바뀌었어요. 일단 산부인과에 자주 가고 매일 아기 초음파 사진을 봐요. 사진을 볼 때마다 좋아요. 소소한 행복이 생겼어요. 사실 몸이 힘들고 아이 낳는 게 두렵지만 그 행복으로 다 이겨낼 수 있어요.”

심리사회적 돌봄 필요해

또 한 명의 암 경험자는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제1272호 표지이야기 ‘몸이 완쾌되고 사회에 내팽개쳐졌다’에 등장하는 암 경험자 이경숙(가명)씨는 암 수술과 치료로 중단된 경제활동을 다시 하고 싶단다. “일을 하고 싶어요, 뭐든…. 사무직이면 좋을 것 같은데. 알바 자리도 좋고요. 기자님, (일)자리 있으면 소개해주세요.(웃음)”

이씨는 7월 기자와 만났던 때와 자신의 일상은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산책하고 장을 보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다. 그러나 세상은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단다. 최근 지상파 방송에서 암 경험자가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봤단다. “이제 방송에서 그동안 드러내 이야기하지 않았던 암 경험자의 사회 복귀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보니 좋았어요.”

그러나 정부 정책은 암 치료에만 무게중심이 가 있고 사회 복귀 지원 등은 미흡한 실정이다. 그나마 2017년 7월부터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시범사업을 통해 전국 12개 지역암센터에서 암 경험자들에게 심리·육체적 건강관리 서비스, 지역별 복지센터 연계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암 경험자들의 건강관리 프로그램, 상담에만 국한돼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암 치료 이후 삶의 질을 높이는 심리사회적 돌봄, 재취업 교육, 일자리 알선 등이 필요한 상황이다. ‘몸이 완쾌되고 사회에 내팽개쳐졌다’라는 암 경험자의 외침이 반복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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