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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주친 그도 프락치일까

국정원 프락치 폭로 ‘김 대표’ 진술조서로 본 국정원의 날조 방식
등록 2019-12-17 11:09 수정 2020-05-03 04:29
‘김 대표’는 공작을 위해 수십 차례 국가정보원 경기지부를 드나들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국정원 경기지부 모습. 박승화 기자

‘김 대표’는 공작을 위해 수십 차례 국가정보원 경기지부를 드나들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국정원 경기지부 모습. 박승화 기자

<font color="#008ABD">‘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김수영의 시 ‘김일성 만세’ 중

60년 전 김수영 시인이 썼다.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 국가정보원 ‘프락치’ 공작으로 알려진 지난 8월의 사건을 들여다보겠다고 했을 때 회의실 공기는 무거웠다. ‘그들이 간첩이라면.’
곤궁한 일반 시민을 금전으로 회유해 프락치(민간정보원)로 만들고, 주변인 수십 명을 대대적으로 사찰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시대착오적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국정과제 1호는 적폐 청산이었고 그중에서도 국정원 개혁은 국내 정보 수집 부서 폐지 등으로 나름의 성과를 인정받았다. 사찰 방법부터 대상까지, ‘유전자에 민간인 사찰이란 없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믿기 어렵다.
공작은 시작부터 거짓이었다. 지하혁명조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프락치를 통해 ‘없는’ 지하혁명조직의 가입서를 꾸며낸 뒤 법원의 영장을 받아냈다. 국정원 경기지부 공안2팀이 주역이다. 영장을 손에 쥔 그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국정원 본부의 대공 부문과 교감하며 서울, 충남, 경남, 전남, 광주 등 전국을 들쑤셨다. 서울대, 고려대 운동권 출신 지하혁명조직원이라는 올무에 묶인 사람들이 정당 관계자, 대기업 간부, 변호사, 교사 등 다양한 직업군에 걸쳐 있다.
“모두 허위다. 그런데 사찰 피해자들조차 조용하다. 이상하다.”
혁명조직은 조작된 것이라며 프락치는 용기를 내 외쳤지만, 예상 밖 침묵에 고발자조차 숨이 막힌다. 대학 시절 민주화를 위해 앞장선 것을 자랑으로 삼아왔던 여당 의원부터 몸을 사린다. 사찰 대상이던 변호사들은 자기 이름이 언급될까 조심스럽다. 이들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프락치는 5년 동안 펼쳐진 거짓 공작의 여진을 여전히 몸으로 느낀다. 거짓으로 채워진 ‘조작 사건’이 진실의 탈을 쓴 ‘조직 사건’으로 등장하는 악몽을 꾼다. 60년 뒤 ‘김수영’은 지금 이 사건을 어떻게 묘사할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font>

11월30일 토요일, 오전 10시께, 기자는 서울 한 대학교 인근 빌딩 앞을 바삐 걸었다. 여섯 살 아이를 운동 프로그램에 넣고, 간식을 사러 가는 참이었다. 저 멀리서 누군가 날 훑어본다. 누굴까.

“어디 가.”

경수(가명) 형이다. 학생회 활동을 함께 한 사이다. 환하게 웃는다. 20년이 지나 한 사람은 기자가 됐고, 한 사람은 대기업 간부가 됐다. 몇 년 만인가, 40대가 되더니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쌓여 금세 알아보기 힘든 정도가 됐다. 차나 한잔하자고 붙잡는 손이 반갑다.

기자는 이날의 우연한 만남을 복기한다. 문제될 만한 일은 없을까. 누군가, 그건 계획된 것이었다고 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국가정보원이 느닷없이 영장을 내밀며 ‘최경수씨는 혁명조직의 선전활동을 수행하는 조직원이고, 그래서 한겨레신문의 옛 친구를 찾아온 것’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그날 만남은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한다면.

되짚어보니 경수 형의 등장은 기묘한 우연이었다. 며칠 전 최경수라는 이름을 ‘프락치 공작 사건’의 서류에서 발견했다. 흔한 이름이니 당시는 그러려니 했는데, 결국 그가 그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 “일단 조직에 들어가는 것부터 연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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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국가정보원 프락치 공작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지 석 달여가 지났다. 국정원이 경제적으로 곤궁한 서울대 출신의 한 사업가인 ‘김 대표’(가명)에게 접근해 5년 동안 서울대, 고려대 운동권 그룹 출신 30~40대 40여 명을 사찰했다는 내용이다. 국정원은 이들을 엮어 북한과 연계된 지하혁명조직 사건을 기획했다.

12월9일 이번 사건의 제보자인 김 대표를 만났다. 국정원이 ‘공작’한 조직 사건의 실체를 좀더 자세히 듣기 위해서였다. 은 김 대표 인터뷰, 김 대표에게서 확인한 검찰 진술조서, 국정원감시네트워크 자료 등을 바탕으로 이번 사건을 다시 들여다봤다. 국정원은 처음 김 대표에게 접근했을 때부터 북한과 연계된 혁명(정당)조직 사건을 만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이 사업 실패로 빚에 허덕이던 김 대표를 찾은 것은 2014년 10월이었다. “김 대표, 이상규(현 민중당 대표)와 홍성규(현 민중당 사무총장)를 알아?” 고개를 끄덕이자 이튿날 다시 김 대표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사진을 내밀었다.

“이 사람 알아?”

1990년대 후반 대표적인 공안 사건인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사건’의 핵심 인물 하영옥이었다. 그림은 곧바로 그려졌다. 하씨를 정점에 두고 이상규 대표, 홍성규 사무총장을 그 아래 뒀다. 초기 그림에는 민중당이 기본 골격을 이뤘다. 수사관은 자신은 국정원 경기지부 공안2팀이며 ‘아르오(RO·지하혁명조직) 사건’을 만든 국정원의 ‘에이스’(우수 요원)라고 했다.

“그림을 잘 그려서 영장을 받아내는 것이 중요해. 일단 조직에 들어가는 것부터 연출하자.”

김 대표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사촌동생의 도움을 받아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온 듯한 대화를 녹음했다. 대화 속 누군가는 혁명조직의 고위급 간부로 설정했다. 그다음 친구인 ㅊ기자 모르게 그를 도우미로 썼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설펐지만 이 대화는 김 대표가 지하혁명조직에 가입했다는 증거가 됐고, 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영장을 발부했다. ‘서울대, 고려대 중심 지하혁명조직 사건’은 이렇게 시작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2. 만날 인물, 나눌 대화도 정해준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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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우선 김 대표에게 가까운 지인부터 만난 뒤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2015년 4월 시작해 2019년 8월까지 김 대표는 국정원 지시에 따라 가능한 한 모든 만남을 녹음했다. 처음에는 녹음기, 나중에는 녹음 앱을 이용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수사관이 말하는 대로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이었어요.”

초기부터 국정원은 만나는 대상, 대화 주제 등을 정했다. 친구인 ㅊ기자를 만났고, 이를 통해 ㄴ변호사를 만났다. 친구의 친구, 그 가족 그리고 그 지인 등 국정원의 그림에 따라 범위를 넓혀갔다. 최승제 통일경제포럼 대표를 만난 것도 이때다. 국정원은 2015년 가을 설립된 통일경제포럼을 서울대, 고려대 운동권 출신이 주축이 된 지하혁명조직의 싱크탱크로 규정했다. 광범위한 사찰이 일어난 것은 통일경제포럼이 본격적으로 운영되면서부터로 추정된다. 김 대표가 사찰해야 할 대상으로 임무를 받은 단체는 통일경제포럼을 포함해 ‘지방소멸극복청년네트워크’ ‘포럼99’ 등 세 곳이다.

사찰이 본격화하면서 첫 만남에서 그린 조직도가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조직의 꼭대기에 민혁당의 핵심 인물을 상수로 두고 그 아래에 정치권(민중당 등 진보정당), 시민단체(통일경제포럼 등)의 인물들을 그려넣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핵심 그룹의 성격은 김 대표를 통한 사찰의 성과에 따라 질과 양이 발전했다. 검찰조서 등을 종합해보면, 처음에는 서울대, 고려대 출신의 척결되지 않은 ‘RO 잔당’이라고 했다가 이들이 시민단체를 만들고 대중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자 ‘북과 연계해 (지령을 받고) 여러 시민단체를 이끄는 그룹’으로 보고 공작의 규모를 키웠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기업, 정당, 학원가, 사회단체 등에서 점조직으로 암약하며 진보 진영 내 민족해방 계열을 지도하는 엘리트 그룹으로 몰고 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9월2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국정원 프락치 공작사건 진상조사 결과 발표 및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9월2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국정원 프락치 공작사건 진상조사 결과 발표 및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font size="4"><font color="#008ABD">#3. “네 생각을 써라”는 다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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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어떻게 그림을 그려갈 수 있었을까. 국정원은 김 대표에게 대화 주제부터 정해줬다. 예를 들어 어떤 주제의 책을 읽는지부터 북한 미사일 발사나 주체사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도록 하는 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국정원은 김 대표의 주변 인물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촘촘히 옭아매려 했다. 예를 들어 ㄴ변호사가 지역에 사무실을 낸 즈음 국정원은 김 대표에게 그와의 만남을 종용했다. ㄴ변호사가 지역에 내려온 이유를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함께 일하던 사무장이 연고가 있어서, 괜찮다 싶어 내려왔어.”

“내려오기 전에 승제(통일경제포럼 대표) 형은 만났어?”

“응.”

친한 친구끼리 나눌 수 있는 일상적인 대화였다. 하지만 진술서에는 지하혁명조직의 사업 내용이 담겼다. ‘ㄴ변호사가 최승제씨에게 분공(업무 분담)을 받아 지역에 사무실을 차렸다’고 기록한 것이다.

국정원 입장에선 진술서 ‘관리’가 조직 사건 기획의 중요한 업무이기도 했다. 김 대표의 진술서가 ‘약할 때’는 수사관에게 보고받는 윗선(김 대표는 ‘과장’이라고 표현)에서 내려와 김 대표에게 “네 생각을 써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물론 말 그대로 김 대표의 생각을 쓰라는 것은 아니었다. 김 대표는 자신이 만나는 인물들이 보안법 위반이 되려면 그들이 어떤 말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하는지 (과장해서라도 알아서) 쓰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국정원에 들어가 처음 1시간 정도 면담하고 그 진술을 요약한 서류를 저에게 주면서 그대로 쓰라고 했죠. 녹음된 것과 다른 사실관계를 쓸 수는 없었지만 예를 들면 지하혁명조직과 연관된 것으로 의심된다, 조직의 누구를 만나러 간 것으로 보인다는 식으로 국정원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진술서를 쓰도록 했어요.”

김 대표는 자신의 진술서에서 혁명조직과 관련된 내용은 “모두 허위”라고 했다. 기자와 만난 최경수씨도 그 진술서 탓에 ‘조직원’이 됐다. 김 대표의 진술서에 등장하는 최경수씨는 “(혁명) 임무를 받아 북한을 찬양, 고무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업무를 받은 사람”으로 둔갑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4. 국정원이 작성한 답 외워 진술조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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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형이 개설한 유튜브 채널을 보면 민중가요가 수백 건 올라와 있고 이를 들은 사람들의 칭찬하는 댓글이 달려 있거든요. 진술서에는 (국정원 지시로) ‘북한 공작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디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댓글이 달려 있다. 그는 북한 공작원에게 격려를 받고 있다’고 썼죠.”

김 대표 기억대로라면, 흘러간 민중가요 450개를 올려놓은 것이 혁명조직의 선전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된 셈이다. 문제가 된 계정은 12월12일 현재 운영 중이다. 국정원이 이렇게 경수씨 말고도 통일경제포럼에서 사찰 대상으로 지시한 주요 인물은 최승제 대표를 포함해 두 자리 숫자다. 김 대표가 통일경제포럼에서 국정원 지시로 경수씨를 만날 때, 그는 국정원의 자금 지원을 받아 시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김 대표가 썼다는 진술서로는 경수씨나 ㄴ변호사 등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에 허술해 보였다.

“진술서의 정확성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서울대, 고려대 중심 지하혁명조직 사건’이라는 그림에 끼워넣을 만한 정황만 있으면 돼요. 오히려 정확한 내용이 나오지 않길 바랄 때도 있었어요.”

김 대표의 진술서와는 별개로 ‘진술조서’가 작성되기도 했다. 진술서는 형식상 작성 주체가 당사자인 김 대표이지만, 진술조서는 김씨와 한 문답을 바탕으로 국정원이 작성한다. 조서는 공문서에 해당한다. 영장을 청구할 때 좀더 신뢰도가 높은 서류가 된다. 진술서를 쓸 때와는 달리, 국정원은 김 대표에게 진술조서를 받는 과정을 모두 캠코더로 촬영했다. 진술조서는 국정원의 공작에 협조하기 시작한 초기인 2015년 5월, 국정원이 혁명조직 싱크탱크로 몰아간 통일경제포럼 창립총회 뒤인 2015년 가을, 수사관이 교체된 2016년 여름 등 모두 세 번 작성됐다. 진술조서는 원래 정보원 진술의 증거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 또한 ‘각본’에 따랐다. 조서 작성 전 질문과 간단한 대답이 적힌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고, 그 내용을 다 습득시킨 뒤 녹화했다. 물론 김 대표에게 미리 보여준 진술조서의 내용도 객관적인 사실과 달랐다. 거짓으로 진술조서를 작성했다면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다.

국정원이 진술서, 진술조서만으로도 사건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일까. 김 대표는 국정원이 RO 사건의 프락치였던 이아무개씨 얘기를 5년 내내 강조했다고 했다. RO 사건의 시작은 이씨 발언을 녹음한 것과 그 뒤 작성된 진술서였으며, 결국 그 사건처럼 김 대표가 재판이 끝날 때까지만 ‘버티면’ 조직 사건 규모에 따라 10억원 넘는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5. 주요 관심 대상자는 변호사, 특히 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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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의 진술서를 바탕으로 엮기 시작한 지하혁명조직은 사회 각계각층 인사를 망라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본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소속된 누군가를 만나고 나면 혁명조직에서 암약하는 조직원으로 지목됐다. 국정원은 이 과정에서 접촉해야 할 대상으로 서울대민주동문회, 고려대민주동문회 등 운동권 출신 유력 인사를 포함한 명단을 김 대표에게 넘겼다.

국정원이 관심을 기울인 직업군도 있었다. 바로 변호사다. 그중에서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올해 들어 특히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자신과 관련된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에 출석해 “민변 소속 변호사 가운데 특히 ㅎ, ㅅ, ㅅ, ㅇ, ㄴ, ㄱ 변호사 등에 관심이 많았다”고 진술했다. 시민단체 국정원감시네트워크 등은 지난 10월 김 대표 사건과 관련해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 등으로 전·현직 국정원장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국정원은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 뒤 김 대표에게 ‘이들이 어떤 특정한 의도(북한 추종 등)를 가진 만남으로 들었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쓰도록 하기도 했다. 대개의 진술서가 사실과 허위가 섞이도록 만들어졌지만 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전혀 모르는 허위 사실을 ‘들었다’는 식으로 구성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국정원이 민변에 유달리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 대표는 “(혁명조직 사건에) 여러 분야의 사람이 많아야 했다”고 했다. 변호사가 혁명조직 일원으로 사회에서 암약하고 있었다는 의혹만으로도 폭발력이 크기 때문이다. 앞선 경수씨 사례와 같은 대기업 간부나 민주노총 고위직 이상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다. 김 대표는 수사관들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최근 RO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등 대표적인 공안 사건에 변론했던 민변 변호사들을 예로 들어 수사관들은 적의를 드러냈다. “혐의가 있는 놈들이 나와서 왜 변호를 하냐”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짜증나게만 군다” “우리한테 탈탈 털렸다. 처벌할 건더기만 있으면 가만 안 둔다.”

당사자들은 어떨까. 언급된 변호사 가운데 일부는 “민변 소속”으로 불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다. 2020년을 며칠 앞둔 지금 북한과 연계된 혁명조직이란 낙인은, 의혹만으로도 큰 오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1월22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재판을 위해 대법원에 들어서고 있다(왼쪽). 2014년 12월26일 이상규 전 통합진보당 의원(현 민중당 대표)과 김미희 의원이 조사받기 위해 검찰청사에 들어서고 있다(가운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현판.

2015년 1월22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재판을 위해 대법원에 들어서고 있다(왼쪽). 2014년 12월26일 이상규 전 통합진보당 의원(현 민중당 대표)과 김미희 의원이 조사받기 위해 검찰청사에 들어서고 있다(가운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현판.

<font size="4"><font color="#008ABD">#6. 곳곳에 프락치, 의심은 의심을 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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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차 프락치 생활. 끝은 있을까. 김 대표는 멈추지 않았다면 국정원이 원하는 결정적 순간까지 계속됐을 것이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업무는 계속 확대돼야 한다고 했어요. 위법행위의 낌새가 있건 없건 간에 제 진술서에 이름이 나오면 내사를 다 할 수 있으니까, 저한테 요구하는 게 늘어났고, 제가 받는 스트레스도 점점 더 커졌죠.”

지난 8월 폭로 직전에는 아침마다 욕설 섞인 주문이 이어졌다. 스트레스로 김 대표의 얼굴에 안면마비가 왔다. 김 대표는 그 순간 기로에 섰다. 국정원에서 말해온 대로 ‘끝이 나려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강연으로 알려진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교육수사회에서의 회합과 거기에서 나온 발언과 같은 증거가 필요했다. 당시 이아무개씨 발언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됐고, 이후 RO 사건의 증거로 쓰였다. 문제는 그런 회합이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런 게 있는지도 불분명했다). 김 대표가 몸담은 통일경제포럼이 국정원이 그려놓은 혁명조직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2017년 5월 중국 단둥 기행이나 2019년 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답사를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진술서에 남겼지만 뻔한 거짓말이었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수사관에게 “없는 일인데 이렇게 써도 되냐”고 물으니, 수사관은 “불법이지만 김 대표가 진술하면 합법이 된다”고 했다. 블라디보스토크 답사는 아예 국정원이 진술을 작성해온 대로 썼다. 결국 김 대표는 스스로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국정원은 지하혁명조직 사건은 반드시 사건화하려고 할 거예요.”

김 대표는 “자신이 제보하지 않았으면 100% 조직 사건으로 공개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정원이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국정원 입장에서 볼 때 지하혁명조직 사건이 사실로 드러나야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 사찰이나 거짓 공작이 국가를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조직 사건을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김 대표가 보는 이유는 또 있다. 자신 말고도 프락치가 더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수사관에게서 수차례 직접 들은 내용이다.

“인사이동으로 담당 수사관이 여섯 번 정도 교체됐는데, 마지막 수사관이 다른 협조자가 이 사건과 관련돼 있다고 했어요. 어느 날은 인천 쪽에 출장을 간다고, 특히 고급 정보가 들어온다고, 그런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저를 채근하면서요.”

김 대표가 느끼기에 프락치는 곳곳에 있었다. 국정원은 공작 초기부터 김 대표에게 민중당 사찰을 지시했다. 2017년 김 대표가 충남 지역에 내려갔을 때는 충남도당 간부들을 만나거나 당진시당 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녹음을하고 국정원에 가서 진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민중당 내부 고위직에게서 고급 정보가 들어온다며 더는 사찰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다른 정보원이 생겼다는 뜻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7. 명문대, 과거 운동권, 결핍… 국정원이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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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프락치 활용과 관련해 김 대표에게 직접 명단을 건네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김 대표처럼 이른바 명문대 출신이면서, 과거 운동권이었다. 무엇보다 ‘결핍’이 있어야 한다. 김 대표처럼 꼭 경제적 문제일 필요는 없다.

이번 사건을 보는 국정원의 공식적인 입장은 무엇일까. 국정원은 과 한 통화에서 “이번 사건은 언론 제보자(김 대표)의 자발적 신고로 시작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조직에 대한 내사 사건”이라며 “제보자가 제기한 주장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구체적으로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수사에서) 문제가 확인될 경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와 별도로 내부 심사위를 가동해 엄격한 기준 아래 신규 내사 착수, 내사 지속 필요성 정기 평가 및 일정 기간 경과시 종결 등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겠다”며 “이뿐만 아니라 사생활 인권보호 기준에 맞춰 수사 업무 체계 전반을 점검해 재정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font color="#A6CA37">국정원 프락치 사건은</font>


5년간 수십명 동향 보고… 대가로 1억6천만원 건네


국가정보원의 ‘프락치 수사’ 논란은 2014년 10월부터 국정원 경기지부의 정보원이 된 ‘김 대표’가 지난 8월 에 자신이 진행해온 ‘민간인 사찰’ 활동을 털어놓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참여연대·천주교인권위원회·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참여한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김 대표의 폭로를 기반으로 진상을 조사해 9월24일 ‘국정원 프락치 공작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보면 학생운동 경험이 있는 김 대표는 2014년 10월부터 2019년 8월까지 국정원 정보원으로 시민단체 관계자를 비롯한 특정 대학 출신 인사 수십 명의 동향을 파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대표는 회원 1500여 명으로 구성된 시민사회단체 ‘통일경제포럼’에 가입해 운영진으로 활동하면서 5년 동안 모든 모임과 뒤풀이, 개인적인 대화를 녹음해 국정원에 제공했다. 녹음파일을 건네줄 때마다 국정원 경기지부에서 진술서도 작성했다. 김 대표는 등 언론과 감시네트워크에 “진술서는 국정원이 미리 메모해온 대로 작성됐고, 사실과 다르게 국정원이 ‘그림 그리는 대로’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국정원 직원들에게서 ‘지하혁명 조직’이 있는 것처럼 진술서를 작성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생활고를 겪던 김 대표는 ‘프락치’ 대가로 매달 200만원을 받고 진술서를 쓸 때마다 50만~80만원을 받으며 활동을 그만두지 못했다고 감시네트워크에 털어놨다. 김 대표의 폭로에 따르면 5년 동안 그가 국정원에서 받은 돈은 약 1억6천만원에 이른다.
감시네트워크와 ‘국정원 프락치 공작사건 대책위원회’는 10월7일 전·현직 국정원장, 경기지부장 등 국정원 관계자 15명을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손실, 허위 공문서 작성,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고발했다.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김 대표의 폭로에 국정원 쪽은 “적법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내사”라며 불법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김 대표가 국정원 지시를 받아 사찰했다고 주장한 대상자 대부분도 본인(김 대표)이 직접 제보한 사람들”이라며 김 대표가 강요나 회유가 아닌 자발적으로 활동해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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