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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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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대부분에게 아파트는 ‘남일’

대다수 20~30대의 주거 형태는 ‘단독주택의 지상 원룸에서

보증금을 낀 월세로 1년도 채 못 살고 또다시 이사하는 청년 가구’
등록 2019-11-13 10:46 수정 2020-05-03 04:29
대다수 20~30대는 단독주택의 지상 원룸에서 보증금을 낀 월세로 1년도 채 못 살고 다시 이사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대다수 20~30대는 단독주택의 지상 원룸에서 보증금을 낀 월세로 1년도 채 못 살고 다시 이사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스물넷 이승희(여·가명)씨는 서울에 혼자 산다. 그보다 네 살 많은 다세대주택은 벌써 수명을 다한 듯했다. 끼익 소리를 내며 겨우 열리는 갈색 철제 새시는 바람을 막지 못하고, 언젠가 보일러 공사를 한 뒤 대충 마감한 방바닥은 꺼져 있다. 그래서 승희씨는 포기하는 것이 많다. 집 문을 열면 옆 다세대주택의 거실이 훤히 보여 환기를 포기했다.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서서 세수를 하는 것도 포기했다. 괴이한 집 구조를 볼 때마다 “예전 집주인이 하나이던 집을 여러 개 원룸으로 쪼개 팔고 나갔다”는 소문을 떠올린다. “그럴 만도 하다”고 승희씨는 고개를 끄덕인다.

청년의 56.0%가 40㎡ 이하 집에서 살아

그나마 찬 바람이 불 때면 살 만하다. “봄과 여름에는 꼽등이며 바퀴벌레며 혐오스러운 벌레들과 집을 같이 써야 해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다. 승희씨 집에 꼽등이가 기생하는 것인지, 승희씨가 집에 기생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전체 청년 가구 가운데 14%의 ‘승희씨’들이 자신의 주거 환경을 불만족스러워했다(2018년도 주거실태조사, 국토교통부). 그래도 월세 30만원짜리 다세대주택 2층은 보증금 2천만원도 있는 집이다. 대학 입학으로 지방에서 올라와 구했던 첫 집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 옥탑방이었다. “더울 때는 더 덥고 추울 때는 더 추운” 집이었다. “대학에 다니며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1천만원을 모았고 부모님에게 1천만원을 받아”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다.

내년 1월이면 승희씨는 드디어 세면대가 있는 집으로 이사한다. 지방에 있던 언니가 서울로 올라와 집을 합치면서 목돈이 만들어진 덕분이다. 취업 준비 중인 언니가 정부 정책 대출 7천만원을 받아 보증금 9천만원에 월세 20만원의 다세대주택에 들어가게 됐다. 자매는 “그래도 하나(세면대)는 이뤘다”고 기뻐한다. 언니와 살면 예전처럼 “월세를 석 달 밀려 집주인의 전화를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다만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깨끗한 집을 선택하고 빛은 포기한” 승희씨 자매는 반지하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부모와 따로 사는 대다수 20~30대의 주거 형태와 환경은 승희씨 자매와 크게 차이가 없다. ‘단독주택의 지상 원룸에서 보증금을 낀 월세로 1년도 채 못 살고 또다시 이사하는 청년 가구’. 이는 20~30대 가구의 주거 형태를 대표한다. 실제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8년도 주거실태조사’에서 만 20살에서 만 34살 이하 청년 가구가 가장 많이 응답한 내용만을 모아 거칠게 재구성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보면 20~30대(극히 일부 20대 미만 포함) 1444만 명 가운데 14.1%(205만 명)가 주택(단독·다세대·연립 포함)을, 10.7%(155만 명)만이 아파트를 소유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싼 서울 아파트를 가진 20~30대는 10명 중 1명도 안 될 것으로 추정된다.

청년의 56.0%가 40㎡ 이하 집에서 산다. 김형민(29·가명)씨도 그렇다. 서울 강남구 한 단독주택 원룸이 형민씨의 첫 전셋집이다. 화장실이 딸린 26㎡(8평)짜리 단칸방이지만 그래도 그가 20살 때부터 산 집들 가운데 가장 넓다. 그의 집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원하는 ‘청년 전세임대주택’이다. 그는 LH에서 전세금 6900만원(임대보증금 가운데 자기 부담 100만원 제외)을 지원받아 2018년 12월 집을 구했다. 이 제도로 전세지원금을 최대 9천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세지원금의 연 1∼3% 이자에 해당하는 월임대료는 자기 부담이어서 전세금을 낮췄다. 지원금이 클수록 이자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전세임대주택, 직접 찾고 지원도 확인해야

첫 전셋집의 한 달 평균 주거비는 관리비 6만원과 월임대료 11만8천원이었다. 바로 직전 강남구 한 고시원에서 월세 26만원을 주고 살 때보다 저렴하다. 그는 대학 기숙사, 다세대주택 원룸, 고시원보다 넓지만 원룸보다 좁은 ‘미니 원룸’, 셰어하우스(공유주택), 고시원으로 유목민처럼 떠돌았다. 월세가 싼 집으로 짧게는 두 달 만에 이사했다. 지금 사는 청년 전세임대주택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강남구에서 일한 그는 석 달 동안 열 군데 넘는 부동산을 찾아다녔다. 청년 전세임대주택을 신청하려면 신청자가 직접 매물을 찾고 지원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어떤 다세대주택은 임대수익을 늘리려고 방을 ‘쪼개기’한 불법 건축물이어서 자격이 안 됐고, 자격이 되는 어떤 주택의 임대인은 개인정보 공개 등을 꺼려 신청을 동의하지 않았다.

LH에서 대학생, 청년, 혼인 기간 7년 이내 또는 예비 신혼부부 등에게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인 ‘행복주택’이 있지만 문턱은 높았다. 2017년 11월 취직해 자산과 소득이 적은 형민씨가 시세 대비 60∼80% 수준의 행복주택 임대료를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실제로 올해 모집하는 행복주택의 보증금은 청년 계층의 경우 전남 영암용앙 지구는 835만9천원, 가장 비싼 서울 마포자이3차 지구는 8528만5천원에 이른다. 하지만 어렵사리 구한 그의 전셋집 역시 2년짜리 시한부다. 그는 과 한 통화에서 “임대 기간이 끝나면 또 이사해야 할까봐 벌써 불안하다. 두 차례 재계약할 수는 있지만 집주인이 재계약을 원하지 않으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거주 기간이 불안정해 주거 환경의 열악성이 가중되는 현실이다.

청년 10명 중 4명꼴로 단독주택에 산다. 말이 좋아 단독주택이지 대개 다가구 형태다. 서울 관악구에서 친구와 함께 사는 박선희(29·여)씨 집 역시 형민씨 같은 단독주택이었다. 그가 사는 집은 삼층집이라고 소개됐지만, 실제로는 이층집이었다. 지하층보다는 높고 1층보다는 낮은 ‘지층’, 1층, 그리고 2층에 그의 집이 있었다. 거실 하나에 방이 세 칸이지만 40여㎡(14평) 집에 잠자는 방을 뺀 나머지 방 두 개는 잠잘 크기의 넓은 공간이 아니었다. 그의 집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5만원을 내는 반전셋집이었다.

원래 선희씨의 첫 전셋집은 2층이 아니라 같은 주택의 ‘지층’이었다. 2018년 7월 대기업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대학원에 입학한 그가 월세 20만원씩 내고 친구와 구한 첫 전셋집이었다. 하지만 이사 직후 장마철에 비가 오자 방바닥에서 물이 새고 빗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벽에는 온통 곰팡이가 슬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게 서글프다. 불행 중 다행인지 같은 주택의 이층집으로 옮겼다.” 이층집에서는 물이 새지도, 빗물이 고이지도, 곰팡이가 슬지도 않았다.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로 일컫는 집에 살다가 월세 15만원의 웃돈을 얹어주고서야 지상에 사는 청년의 삶으로 바꿀 수 있었다.

고소득과 저소득 내 집 마련, 18년 차이

아직 20대이지만 그는 이미 같은 세대 안에서 주거 격차를 느낀다. 그보다 두세 살 많은 전 직장 동료들 중 일부는 30대 초반 서울 아파트를 샀다. 교통 등이 편리해 장기적으로 집값이 더 오를 집들이었다. 반대로 중소기업에 다니는 그의 친구들은 한 달에 100만원을 모으기도 버거워했다. 학자금 대출까지 2∼3년 갚고 나서 한 해에 1천만원씩 모아도 내 집 장만에는 10년 넘게 걸릴 월급이었다. 실제로 고소득층 가구와 저소득층 가구가 내 집을 마련하는 데 평균 18년 넘게 차이가 난다는 분석도 있었다(2016~2019년 소득분위별 아파트 PIR(집을 소유한 가구의 연 소득 대비 주택 구매가격 배수), 국토교통부).

새로 가정을 꾸리는 신혼부부에겐 집값이 더 버겁다. 박정은(29·가명)씨와 김수현(37·가명)씨는 지난해 11월 결혼했지만 아직 두 집 살림을 한다. 평일은 정은씨가 사는 전세 6천만원짜리 다세대주택에서, 주말은 수현씨가 사는 2억9천만원짜리 오피스텔에서 보낸다. 각자 전세 대출을 갚고 나면 남는 돈은 1억원 남짓이다. 개인 운동 강습을 하는 정은씨의 일 때문에 서울에서 신혼집을 얻어야 하지만, 서울 평당 평균 시세를 고려하면 24평 아파트 전세에는 3억5천만원, 18평 오피스텔에는 2억1천만원이 든다.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이나 주택 금융도 알아봤지만 부부 합산 소득 기준(연소득 7천만원)을 조금 넘겨 혜택을 보기는 어렵다. “이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벌써 우울하기만 한” 부부다.

청년 형민씨와 선희씨가 꼽은 주거 정책은 임대료가 낮고 일정 기간 주거 안정성이 높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라면, 신혼부부 정은·수현씨는 전세자금 대출 지원을 꼽았다. 최근 청년 가구가 꼽은 ‘가장 필요한 주거지원 프로그램’은 전세자금 대출 지원(32.2%), 주택 구매 자금 대출 지원(24.3%), 월세 보조금 지원(16.4%) 순으로 집계됐다. 소득 수준이 낮아질수록 청년과 신혼부부의 정책 수요는 주택 구매 자금 대출 지원→전세자금 대출 지원→월세 보조금 지원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정책 기조는 청년들의 희망과는 거꾸로 움직였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7 회계연도 결산 검토 보고와 2018 회계연도 결산 및 예비비지출 승인의 건 검토 보고 자료를 살펴보면, 주택도시기금에서 LH로 출자하는 기금이 국민임대주택의 경우 2013년 3196억원에서 2017년 0원으로 준다. 소득 최하위 계층을 위한 영구임대주택도 같은 기간 1512억원에서 356억원으로, 4분의 1 토막이 났다. 반면 임대료가 시세 대비 60∼80% 수준의 행복주택은 같은 기간 20억원에서 7935억원으로 400배 가까이 뛰었다. 문재인 정부 이후 전체 공공임대주택 지원액은 전보다 늘었지만 정작 임대료 부담이 큰 공공임대주택 위주로 공급하면서 주거 환경이 열악한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비 경감에도 제한적이었다. 주거 취약계층을 소외시키는 이 같은 정책 기조는 감사원에서도 꾸준히 지적돼왔다.

임대료 부담 큰 공공임대주택 많아져

권지웅 ‘새로운 사회를 여는 주택’ 이사는 과 한 통화에서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총공급량은 늘었지만 공공성은 후퇴했다. 청년에게 주택을 많이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생긴 행복주택, 역세권 청년주택 등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가 비싸 되레 저소득층 청년이 실질적으로 들어가 살 집이 줄었다. 단순히 청년에게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을 양적으로 늘리기보다 어느 소득 수준의 청년이 들어가 사는 것이 우선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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