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만에 새 한 마리가 잡혔어. 새는 봉투 안에서 버둥버둥 날갯짓을 하며 애쓰더니 이내 조용해졌어. 코끼리. 그건 죽음이었어. 그런데도 큰오빠는 성공한 밀렵꾼마냥 우쭐댔고 작은오빠는 형을 자랑스러워하더군. 놈들은 봉투 속에 늘어진 새를 동네 애들한테 자랑하다 버렸어. -〈코끼리 가면〉, 노유다 작가
“나는 이불 속의 일을 떠올리지도 쓰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유사 강간을, 성기 삽입을, 가해자들의 끔찍한 가해를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말하면 나는 더 행복해지고, 가해자들은 처벌을 받게 될까? 현행법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살해당해 버려진 검은 봉투 안의 새 같았다.”
글그림책 〈코끼리 가면〉을 쓴 노유다(사진) 작가는 ‘오빠 성폭력’ 피해자다. 노 작가는 어린 시절 친오빠 2명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노 작가가 기억하는 최초의 피해 나이는 7살에서 초등학생으로 넘어가는 즈음이었다. 귀 큰 아기 코끼리 덤보를 좋아하던 7살 아이가 10살이 된 어느 날, 아이가 좋아하던 물건들이 안방에 모여 있었다. 아이가 전자키보드를 치려고 안방에 들어가자 숨어 있던 큰오빠가 옷을 벗으면서 이불 속에서 책을 보자고 했다. 책 속엔 벌거벗은 여자가 있었다. 작품 속 화자인 혜경은 ‘나는 봉투 속 새처럼 너무 쉽게 죽어버렸다’고 했다. 큰오빠에 의한 성폭력 피해는 수년간 지속됐고, 작은 오빠까지 이를 모방해 이어가자 “꺼져! 소리 지른다”고 간신히 외쳤다. 그리고 아이는 ‘무거운 비밀을 견디는 대신 닥치는 대로’ 먹었다. 코끼리처럼 몸을 불리면 ‘어떤 망할 자식도 함부로 덤비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족, 범죄 사건의 방관자로 만들다노 작가는 작품에서 자신의 피해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잿빛이 섞인 듯한 그림은 낮게 읊조리는 글만큼 덤덤하다. 이 책은 2016년 출간됐고, 2018년 한영병기판을 냈다. 노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까지는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단편소설 형식으로 이야기를 오래전에 써놓고도 망설였다. “내 피해가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했다. 많은 여성이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지만 친족 성폭력이나 오빠 성폭력을 겪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보편적이지 않은 이야기의 의미를 고민하다보니 출간까지 10년이 걸린 것 같다. 과연 책으로 나왔을 때 독자가 읽고 공감해줄까 하는 생각도 강했다.”
노 작가는 성폭력 피해에 대해 처음으로 입 밖에 꺼낼 수 있게 해주고 자신을 지지해준 반려인 나낮잠씨에게 이야기하듯 책을 썼다. 그리고 자신이 안전하게 독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낮잠씨와 독립출판사 ‘움직씨’를 차렸다.
노 작가는 많은 오빠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렇듯, 부모님한테 바로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가족이라는 족쇄가 ‘자신을 범죄 사건의 방관자’로 만들었다.
“경찰한테 이야기하거나, 날 도와줄 수 있는 어른을 찾아갈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가해자를 고발하면 내 인생도 끝날 것 같은 무서움이 있었다. 우리 집은 맏이인 남성에게 자원을 퍼주는 여느 경상도 집안과 마찬가지였고, 가해자를 신뢰하는 집이 과연 내 말을 믿어줄까, 법이 해결할 수 있을까 싶었다. 결론은 ‘아니, 나는 그 과정에서 죽임을 당할 것 같다’였다. 죽거나 쫓겨나거나, 가족에서 완전히 배제돼 원하던 학교 공부도 못 끝낼 거라고 생각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27살, 트라우마로 양극성장애(일명 조울증)가 생겼고,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가족 중 어머니한테 처음 피해 사실을 얘기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어머니는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며 “세상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될 더러운 이야기” “너를 죽이고 나도 함께 죽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옛날 집성촌에서는 원래 그런 일들이 많았다”며 침묵을 강요했다. 첫 번째 가해자(큰오빠)는 노 작가가 책을 쓰겠다고 하자 “설마 너 오빠가 변태라고 책에 쓰는 건 아니지?”라며 압박했고, 두 번째 가해자(작은오빠)는 돈 봉투만 내밀었다. 봉투는 받지 않았다. 가족 중에 노 작가 편은 없었다. 그렇게 노 작가는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이름도 ‘강물처럼 유유자적 부드럽게 살고 싶어’ 유다로 바꿨다.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뒤늦게 받고 빈소를 찾았지만 어머니는 상속포기각서를 내밀었다. “‘탈가정’ 하니까 더 이상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자유로워졌다. 혈연이라는 이유로 절대 옹호할 수 없는 범죄다. 가족 일이라고 해도 범죄자를 두둔할 순 없다.”
노 작가는 오빠들을 ‘가해자’라고 지칭했다. “오빠라는 호칭이 싫다. 인생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그 단어를 쓰지 않게 됐다. ‘오빠가 가해자였다’고 할 때는 지명해야 하니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호칭으로 엮이는 관계에 속하고 싶지 않다.”
오빠가 아니라 가해자가해자들은 가해 사실을 인정했다. 퇴원하고 몇 개월 뒤 노 작가가 가해자들에게 전화해서 따져 물었을 때 지나가듯 사과했다. 노 작가는 친척들 앞에서 제대로 된 사과를 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때 가해자들을 고소하려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없어진 건 2011년이기 때문에 그 이전 사건은 소급해 적용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현행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포기했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 아동 성폭력 생존자들이 자기 트라우마를 뒤늦게 인지한다. 어릴 때는 자기 사건을 당장 해결할 수 없고, 정신적 외상이 자각되는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데 공소시효가 있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암수율’을 높이고 범죄 상황을 지속하는 것밖에 안 된다. 사건이 해결된 판례가 많아져야 가해자도 두려워하고 부모도 사회도 성교육을 하지 않을까.”
책엔 노 작가가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가족들은 마치 책을 보지 않은 것처럼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영병기판을 낼 때는 외국에 책을 알리려고 하니 인쇄비를 보태라고 했다. 2018년 한영병기판이 나오자 어머니는 200만원을 입금하면서 말했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대신 우리한테 연락하지 마.” 돈으로 상황을 무마하고 피해자인 딸을 배제하려 하는 건 흔한 일이다. “어머니는 (딸이 성장하고 치유하는 데 줄 수 있는) 지지 비용을 마치 합의금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용기 내어 세상에 고백한 일을 자랑스러워한다면 또 모를까, 돈 몇 푼으로 상처가 사라질 리 없다.”
피해를 공개했을 때 주변 반응에 상처받기도 했다. 노 작가의 고백이 “불행 포르노”라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불행을 얘기한다는 뜻이었다. 소셜네트워크에서는 여성의 불행 서사를 생산하지 말라는 비난도 나왔다. 오빠 성폭력, 친족 성폭력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피해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고, 한때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고 해서 ‘불행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온당치 않다. 어쩌면 사람들은 오빠 성폭력이 전근대적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치부하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일은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에서 일어난 가깝고 일상적인 범죄였다. 불행 포르노가 아니라.”
노 작가는 책을 낸 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에게 많은 연락을 받았다. 전자우편 속 상황마다 노 작가가 경험한 일을 토대로 답장했다. 책을 보내기도, 위로나 지지를 하기도 했다. “피해 당사자들은 삶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전자우편을 쓴 거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다급한 SOS였다.” 최근 다른 친족 성폭력 피해자를 책 행사에서 만났다. 피해자는 을 이야기하면서 ‘나도 피해자’라며 울었다.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한테 이야기하는 게 더 안심될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많이 들어드리려고 한다.”
작가로서 무력감과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책을 쓰는 게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됐다. 여전히 말하기 어렵지만 내게 있었던 일을 바로 보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현 시스템에서는 (피해자들이 회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친족 성범죄가 심각한 일이기에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면 공소시효 폐지도 쉬운 일 같은데 잘 안 된다. 피해자 한 분이 용기 있게 국민청원을 올렸는데, 4500명 정도 공감하고 그쳤다. 아직 적은 수다. 다른 여성주의 이슈는 사람들이 화력 있게 대응하는 경우도 많아졌는데 친족 성폭력, 여전히 멀게만 느끼는 것 같다.”
오빠 성폭력은 자신만 겪은 특수한 사례라고 여겼던 처음 생각은 달라졌다. “일간베스트(일베) 사이트를 들락거리는 오빠가 여동생 방에 들어와서 몰래 사진 찍고 인증하는 것처럼, 강간·성희롱·불법촬영 등 다른 명칭으로 가까운 사람이 성폭력을 저지르고 있다. 가부장제 사회인 한국에서 아버지 다음으로 권력을 갖게 되는 오빠에 의해 일어나는 성폭력이 많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기 코끼리 덤보를 좋아했던 7살 아이는 책에서 코끼리가 되고 싶다고 썼다. 왜 코끼리일까. “다큐멘터리에서 코끼리 세계가 가모장 사회라고 하더라. 길을 가장 잘 찾는 할머니가 우두머리가 되고, 수컷은 10살 정도 지나면 알아서 가족을 떠나서 산다. 현명한 여성 공동체가 함께 함정을 피해가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에 코끼리라는 상징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노 작가는 현명한 할머니 코끼리 역할을 하고 싶을까, 아니면 그 사회에서 보호받는 어린 코끼리가 되고 싶을까.
“현명한 할머니 코끼리는 깜냥이 안 되고, 지금은 이모 코끼리 정도일까? (웃음) 어리다면 보호받고 싶고 의지할 대상을 찾았을 텐데, 지금은 곁에 든든한 배우자가 있어서인지 내가 좀더 믿을 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내가 나를 방치했던 것처럼 살지 않고 자신과 주변 구제에 좀더 적극적인 사람이고 싶다.”
“나는 더 안녕히 살아갈 것이다”〈코끼리 가면〉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우리는 살아남았고 앞으로 더 안녕히 살아갈 것이다.” 노 작가가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나는 꿈을 생각하기 전에 암흑부터 겪었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피해 이후의 삶이 분명히 있다. 글 쓰고 창작하고 사랑하는 내 삶도 상당히 안녕하다. 그러니 여러분. 매일 조금씩 이기는 꿈을 꾸며 꼭 함께 살아남아주시길.”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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