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29일 오전 일본 오사카에서 쓴 트윗의 의미를 해석하고 수수께끼를 푸느라 한국 정부와 언론은 분주했다. 영어 문법을 지키지 않고 국경의 ‘B’와 인사의 ‘H’를 대문자로 쓴 것은 트럼프식 트위터 작성법이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으나, 그가 대문자로 쓴 두 글자 BH는 한국에서 청와대(Blue House)를 지칭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강조하고 싶은 단어의 첫 알파벳을 대문자로 쓴다. 국경(Border), 범죄(Crime) 등 특정 단어도 대문자로 쓰는 경향이 있다. 가 아닌 ‘트럼프 트위터 영어’로 해석해보면 위 문장은 “국경에서 인사하자”로 요약된다. 트위터로 북-미 정상회담의 불을 지핀 트럼프 대통령은 6월의 마지막 날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북한 땅을 밟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트위터 외교’의 잘된 사례를 기록했지만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깊은 감동과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의 바름, 절제, 모호함 등의 외교 문법을 완전히 파괴하고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 모습이 낯설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국제사회에서 트위터는 외교적 메시지 전달 도구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트위터(Tweeter)와 외교(Diplomacy)를 합성한 신조어 ‘트위플로머시’(Twiplomacy)가 탄생한 것은 2011년이다. 선두 주자는 2007년 3월 트위터 계정을 만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오바마의 트위터 계정 팔로어는 현재 1억700만 명이다. 계정 생성이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2년 늦은 트럼프 대통령의 팔로어는 6165만 명이다. 팔로어 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적지만, 살아 있는 권력이라 영향력은 훨씬 크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공공외교센터가 해마다 발행하는 ‘트위플로머시 연구’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는 평균 2만 번 이상 리트윗(재전송)된다. 트럼프 대통령 트윗의 강한 영향력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트위터를 통해 외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국가도 늘어나고 있다. USC 분석을 보면 유엔 193개 회원국 중 정부의 공식 트위터 계정이 있는 국가는 97%에 이른다.
리트윗으로 의제 설정 여부 가늠할 수 있어트위터가 외교 소통의 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5월20일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벨퍼국제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보고서 ‘트위터 외교’는 ‘광범위한 접근성’과 ‘메시지 통제 가능성’,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 세 가지를 꼽는다.
먼저 트위터는 정치 지도자가 수천만 명(트럼프의 경우) 독자에게 직접 바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강점이 있다. 기존 외교 문법에선 대외정책 결정 과정에 관료 조직과 다양한 의사결정권자들이 참여해 논의하고, 언론 보도로 의미를 전달하는 데 지난한 시간이 필요했다.
메시지 통제 가능성은 정치 지도자가 대중과 직접 소통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다. 언론의 해석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문장에 담긴 의미와 메시지 강도 등을 통제할 수 있다. 네트워크 효과는 외교정책 담당자 사이의 소통 거리가 짧아지는 것에서 비롯된다. 정치 지도자들이 트위터라는 소통의 마당에서 리트윗되는 횟수와 과정을 보면서 자기가 던진 메시지가 의제로 설정됐는지 안 됐는지 가늠할 수도 있다.
이번 북-미 정상회동 성사는 트위플로머시의 장점이 발휘된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존의 외교 문법에서 생각하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적인 제안과 (김 위원장의) 과감한 호응은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었다”고 평가했다.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은 한국 쪽에선 잘된 사례로 기록되겠지만 트위플로머시는 양날의 칼이다. 트위플로머시가 문제가 된 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시리아 철군’ 사건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12월19일 트위터에 “우리는 이슬람국가(IS)와 벌인 전쟁에서 승리했다. 시리아에 주둔한 미군 2천 명은 철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영상을 업로드했다. 쿠르드 민병대를 도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 격퇴를 위해 노력했던 미군의 주둔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국방장관인 제임스 매티스는 트럼프의 일방적인 트위터 선언에 강하게 반발해 사표를 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반발이 심했다. 반년이 지난 지금 매티스는 결국 장관 직위를 떠났고, 미군 일부는 여전히 시리아에 주둔한다. 이처럼 정치 지도자의 트위플로머시는 정부 내에서 조율되지 않은 문제를 이른 시기에 잘못 드러낼 우려가 있다. ‘톱다운’(하향식) 의사 결정과 정책 전달을 좋아하는 지도자는 트위플로머시를 적극 활용하고 싶겠지만 그것이 항상 성공할 수는 없다.
트위플로머시는 전통 외교 방식보다 반응이 즉각 일어나기 때문에 관계를 악화하기도 쉽다. 2018년 8월 캐나다의 크리스티나 프릴랜드 외교장관이 트위터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활동가 체포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자, 사우디 정부는 수도 리야드에서 캐나다 외교관을 추방하고, 유학생을 출국시키는 등 바로 보복했다. 트위터는 작성자의 개성이 들어가기 때문에 메시지를 뚜렷하게 전달할 수 있지만, 발화자의 단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벨퍼국제문제연구소 보고서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꾸준히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은 트위터를 공적 채널로는 부정적으로 봐한국 사회는 트럼프의 트위플로머시를 반신반의하며 지켜봤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한 외교는 이미 국제사회가 당면한 현실이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트럼프는 이번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서 트위터 외교의 순기능을 보여줬다. 한국 사회에선 트위터를 공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부적절한 채널로 낮춰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SNS를 통해 공적인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혁신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셜미디어 전문가인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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