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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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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이 떠난 도시 군산 ⑤ 불완전한 희망

2019년 5월, 그래도 기계 다섯 대는 돈다
등록 2019-07-04 10:25 수정 2020-05-07 16:16

4월23일부터 5월31일까지 약 6주동안 <한겨레 21>은 전북 군산에 머물렀다. 군산 사람 30명과 이야기했다. 모은 이야기들은 A4용지 170쪽 분량, 7만 단어 정도가 된다. ‘한국지엠과 현대중공업 공장이 떠나갔고 군산은 위기를 겪고 있다’는 한 문장을 풀어내는 데 그만한 단어가 필요했다. 야속하다고 말했다. 반성한다고 말했다. 고민한다고 말했다. 포기했다고 말했다. 바란다고 말했다. 서로 위로했다. 때로 불신했다.

‘국가’를 주어로 놓아서는 보이지 않는, 지역에만 절체절명인 위기 앞에 군산은 당혹스럽다. 군산만의 일은 아니다. 쨍강대는 쇳소리, 굴뚝 연기가 성장의 전부인 도시는 국토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집적, 창의성, 4차 산업혁명, 슈퍼스타 도시의 부상 같은 세련된 단어들 앞에 내세울 것 마땅찮은 도시들은, 함께 초라하다.

이야기는 도시의 질서가 만들어져 정점에 이르고 해체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각 순간 그 질서 어느 자리엔가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을 모으고, 서문과 다섯 개 장으로 나눠 정리했다.



• 서문

• 1장 살아남자 : 2018년 2월

• 2장 하늘엔 애드벌룬 떠 있고 : 2008년 5월

• 3장 이제는 놓아야 한다 : 2016년 12월

• 4장 180만원 입금마저 끊기고 : 2019년 4월

• 5장 그래도 기계 다섯 대는 돈다 : 2019년 5월
문 닫은 한국지엠 협력업체 오토젠 군산공장

문 닫은 한국지엠 협력업체 오토젠 군산공장

“지금 광주형 일자리 반대 대표가 민주노총이다. 이건 내부 권력투쟁일 뿐이다. …지금 현대차 노조에서 노동 적폐 1호가 광주형 일자리라고 하는데 망국 십적 1호가 민주노총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시민들이 어느 주장에 동의하겠는가.”(박병규 광주광역시 일자리 특보, 4월25일 전북 상생형 일자리 만들기 심포지엄)

혼란스러운 상생형 일자리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심포지엄장을 가득 메웠다. 한때 광주 지역 자동차 공장의 전설적인 노조 활동가였던 이의 입에서 거침없는 비판이 쏟아졌다. 최재춘은 뒤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아 묵묵히 모든 말을 들어낸다. 한참 동안 눈을 감았다가 가끔 뜬다. 다리 꼬는 방향을 바꾼다. 체격이 큰 편이다. 동작은 유난하지 않고 잠잠하다. 그를 알아채는 이가 인사를 건네도 말없이 미소만 짓는다. 다소 무뚝뚝한 인상이다. 그는 민주노총 군산시 지부장이다. 군산 비정규직 노동자 대부분이 노조에 속하지 않은 상황이니, 군산의 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한다고 해도 딱히 부정할 수 없는 처지다.

최재춘은 군산 노동계와 학계에서 가장 먼저 짚는 이름이다. 그를 ‘아이디어 뱅크’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유연한 노조 활동가’라고 평하는 이도 있다. 사실 그가 누구라도, 그의 자리는 군산으로 대표되는 전북의 위기 앞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날 최재춘은 그저 방청객으로 심포지엄에 들렀다. “소속된 민주노총이 보이콧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주관하는 행사라 토론 참석이 어려웠던 모양”이라고 참석자들이 귀띔한다.

공장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는 건 최재춘에게도 아픈 일이었다. 모종의 죄책감도 뒤섞였다. 현대중공업이 들어오던 그 축제의 날, 그 역시 기공식 현장에 모인 2천 명처럼 기대했다. 조선소는 잘나갈 때조차 노동자 4천여 명 가운데 3천 명 이상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웠다. 조선소가 나가는 길목, 기업은 소수 정규직만 설득하면 됐다. 정규직은 대부분 울산으로 안전하게 옮겨갔다. 지역의 산업과 노동은 초토화됐지만 별다른 잡음은 없었다.

한국지엠이 군산을 떠나는 순간에는 정규직 혐오까지 번졌다. 군산을 일궈온 노동자들 사이 격차가 현격했다. 정부가 격차를 용인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르는 임금에 만족해 눈감았다. 익숙한 위기론에 노동자에 대한 가혹한 여론까지 업고 기업이 떠났다. 어이없을 정도로 손쉬웠다. 갈리고 벌어진 격차와 불신이 대공장이 지역을 박차는 데 얼마간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그는 인정해 고통스럽다.

중앙정부 관심 멀어지면 어쩌나

그리고 1년. 군산과 지역 곳곳, 중앙정부에서 이제 상생형 일자리를 말한다. 최재춘 역시 바랐던 일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이 지금이라도 5년이든 10년이든 임금 안 올릴 테니 그 임금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에 나눠주라고 책임 있게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도 높여본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이 견고한 질서를 흩트리는 일을 설득하고 실행할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서 그저 아득해질 뿐이다.

쉽게 답 찾지 못할 질문 앞에 상생형 일자리 논의도 혼란스럽다. 전기차든, 신재생에너지든, 수소차든 그럴듯해 보이는 새 산업을 유치하는 일이라면 일단 ‘상생형 일자리’라고 적어넣고 보기도 한다. 정부 지원과 들어올 산업에만 관심이 쏠린다. 중심이 될 공장과 협력업체의 관계, 산업단지를 갈라온 노동 격차 해소, 지역에 어울리는 일자리 같은 진짜 고민거리는 뒷자리로 밀린다. 혼란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도시들은 다급하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중앙정부 관심에서 멀어질까 두렵다. 예전 같은 질서 속에 또 새로운 공장이 들어온다 한들, 비슷한 위기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지금 바람을 타야 한다는 생각을 포기할 수 없다. “그리하여 꽉 막히고 답답한 상황이라 노조 탓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그날 박병규 특보의 말은 조금 심했다.” 심각했던 최재춘 얼굴에 장난기가 조금 내비친다.

한국지엠이 군산을 떠난 지 1년

5월31일 한국지엠이 완전히 군산을 떠나버린 지 1년 되는 날이다. 바람이 적당히 시원했고, 전날 저녁 조금 내린 비로 씻긴 하늘이 쾌청했다. 공장이 사라진 1년을 되새기는 행사는 없었다.

김성우는 이날 산북동에 있는 25평짜리 아파트를 청소하고 있다. 다행히 집 상태가 깨끗하다. “오늘이 그날인지 생각도 못했네.” 잠깐 말을 멈춘다. 이내 기쁜 소식을 전한다. “경비 떨어졌던 동료가 페인트 공장에 취직했다. 직원 10명도 안 되는 작은 회사이긴 해도 출근길에 좋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줄어든 희망의 크기에 맞춰 각자 자리를 찾았다. 이 자리를 또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은 없다. “체력이 부쳐. 좀더 나이 먹으면 못할 것 같아.” 창틀을 닦던 김성우가 이내 지친 표정으로 웃는다.

이정권 창원금속 이사는 6월 첫쨋주에 있을 새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공장에는 노동자 대여섯 명이 금형에 철판을 눌러찍고,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다. 대당 6천만원 넘는 기계 56대 중에 움직이는 기계는 5대 정도다. 그래도 그나마 움직이는 공장이 고맙다.

창원금속은 ‘우리 스스로 할 만한 일’로 ‘대체부품’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완성차 업체의 순정품이 전부인 국내 부품 시장에 그와 비슷하거나 좀더 나은 부품을 만들어 더 싼값에 공급하는 일이다. 대기업 눈치 보는 하청업체로 꽉 짜인 자동차 산업 구조를 비집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여기는 눈치 볼 대기업도 없으니까.”

김광중 번영중공업 대표는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에서 시선을 거둔다. 그 주변 점점이 서 있는 풍력발전기를 바라본다. “저거(골리앗 크레인) 없이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일, 그게 풍력발전기 구조물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조선소 협력사들은 신재생에너지에 기대를 걸고 있다.

조선소가 멈추고 2년이 지난 지난해에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협력사들이 의기투합했다. 풍력·태양열 발전기 구조물 같은 새 일감을 찾기 위해 ‘군산 조선해양기술사업 협동조합’이라는 단체를 꾸렸다.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군산에 신재생에너지 단지 개발이 언제 본격적으로 이뤄질지도 불확실하다. 불안한 희망을 이야기하다 그가 묻는다. “그런데 울산에서도 난리가 났다죠?”

“세계 정상급 제조업 쇠퇴는 우리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위기다. 제조업 위기는 과거의 국가적이고 보편적인 위기와 달리 지역적이고 개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형화된 응급처치는 해놓았는데,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두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이상호 고용정보원 연구위원)

그 지역적이고 개별적인 위기의 현장이 군산이 된 것을 두고 군산 사람들은 “정치적 수완이 모자라서” “사람들이 착해빠져서”라고 말하다가, 이내 “결국 우리 탓”이라고 읊조리곤 했다. 정치적 수완이 좋고 사람들이 좀더 억셌어도 피할 수 없었던 일이라는 것쯤은 군산 사람들도 알고 있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도시가 성장해온 결을 따라 위기가 번진다. 그래서 정신없이 달려온 30년 가까운 성장의 시간 속에 담겨 있었던 위기의 씨앗들을 사람들은 뒤늦게 더듬는다. 대기업 공장 유치가 전부라고 믿고 마냥 축제에 들떴던 시절, 회사 사정에 맞춰 노동을 가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애써 참아버렸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래도 그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고, 그때처럼 다시 한번 내달리고 싶다는 마음도 쉽게 놓을 수가 없다. 그래 봤자 기름때 묻힌 땀보다 창의성과 인재의 집적이 핵심이라는 4차 산업혁명, 자동화 같은 시대의 구호 속에서, 이 유서 깊은 지역 도시가 막상 자신 있게 내걸 장점은 별달리 없다. 그런 생각에 이르면 군산 사람들은 이내 또다시 주눅 든다.

군산의 위기는 또 다른 도시에서도

한국지엠 공장이 군산을 떠난 지 1년째 되는 날. 울산에서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합병을 위한 물적 분할을 승인했다. 사흘 전 울산시장은 삭발했다. 노동자들은 주주총회장으로 몰려갔다. ‘순진한 군산’보다 격렬한 모습으로 투쟁했다. 소용없었다. 끝내 연구개발센터를 포함해 본사를 나누고 서울로 옮기는 안건은 통과됐다. 격렬한 노동자 사진이 주로 다음날 대부분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대우조선까지 합병한다는 이 와중에 군산까지 일감이 돌아오는 건 더 어려워지겠다”고 김광중은 그래도, 혹시나 했던 생각을 곧 다시 접는다. 위기는 그 대단해 보였던 또 다른 제조업 도시에서도 펼쳐지고 있었다.

*다음호 ‘공장이 떠난 도시-울산 동구 편’으로 이어집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만화 이윤희
그래픽 디자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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