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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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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류 연장했다가 외국인등록증을 뺏겼다

난민 신청자 삶 옥죄는 ‘비밀주의’ 출입국청
등록 2019-06-26 01:54 수정 2020-05-02 19:29
난민인권센터가 지난해 7월18일 난민 신청자의 면접 조서를 거짓으로 꾸민 사례를 발표하며, 법무부의 미온적 태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이 김연주 활동가(변호사). 박승화 기자

난민인권센터가 지난해 7월18일 난민 신청자의 면접 조서를 거짓으로 꾸민 사례를 발표하며, 법무부의 미온적 태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이 김연주 활동가(변호사). 박승화 기자

중동에서 온 마힘(가명)은 조국에서 정치 활동가였고, 한국에선 난민 신청자다.

조국의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정치적 탄압을 받고,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2017년 한국에 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난민 신청을 한 마힘은 출입국·외국인청(출입국청)의 난민 면접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외국인등록증에 적힌 체류 만료 날짜가 임박하면 출입국청에 가 체류 기한을 연장하며 버티고 있었다.

체류 만료 날짜는 다가오고 난민 면접 연락은 오지 않던 어느 날, 마힘은 출입국청을 찾아 체류 기한 연장을 신청했다. 마힘을 본 출입국 공무원이 이번에는 외국인등록증을 보여달라고 하더니 가져가버렸다. 신분증 대신 접수증 종이만 주고는 돌아가라고 했다. 한국어와 영어로 소통할 수 없는 마힘은 한국에서 만난 모국 출신 친구들에게 종이를 보여주며 물었지만 친구들도 처음 보는 문서였다.

“안 돼” “돌아가” 반복하는 출입국청

외국인등록증 없이 지내는 난민 신청자의 생활은 너무나 불안정했다. 마힘은 수중에 돈이 떨어졌고, 도움을 구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일자리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출입국청에서 취업 허가를 받으려면 미리 근로계약을 해야 하는데, 사전 근로계약을 맺어주는 일자리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길지 않은 한국 체류 기한에, 의사소통이 어려운 마힘에게 한국 사회는 일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구인사무소를 찾아 일용직 일자리에 연결됐지만, 일용직 일자리로는 취업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떡을 만드는 공장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이번엔 출입국청이 가져간 외국인등록증이 발목을 잡았다. 신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일할 수 없게 돼 속상한 마음에 마힘은 다시 출입국청을 찾았다. 외국인등록증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출입국청 직원은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라고만 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한 마힘은 출입국청을 떠나지 않았다.

경찰이 와 일단 집으로 돌아갔던 마힘은 며칠 뒤 다시 출입국청을 찾았다. 신분증을 돌려주지 않으려면, 대신 일자리를 구해달라고 했다. 출입국청 직원은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니 돌아가라고 했다. 답답했던 마힘은 일자리를 구해줄 때까지 집에 가지 않겠다며 버텼고 다시 한번 경찰이 왔다. 이번엔 경찰이 마힘을 경찰서로 데리고 가 조사했다.

3개월이 지난 뒤 마힘은 외국인등록증을 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왜 가져갔는지, 왜 돌려주는지 아무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얼마 뒤 출입국청에서 난민 면접을 받으라는 연락이 왔다. 난민 면접은 영상이 녹화되는 조사실에서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난민 신청과 관련한 모든 질문이 끝난 뒤 면접관은 녹화 장치를 끄고, 마힘에게 한국어로 된 서류 하나를 내밀며 서명하라고 했다. 제3국 범죄 경력과 마약 투약 여부 검사에 대한 동의서라고 했다. 마힘은 지금 이 상황도 녹화되고 있냐고 물었고, 면접관은 아니라고 했다.

마힘은 아무런 범죄·마약 혐의가 없는 자신에게 범죄 경력과 마약 투약 검사 동의서를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이의를 제기할 방법도 없었다. 마힘은 이 상황을 녹화해야만 동의서에 서명하겠다고 말했고, 면접관은 다시 녹화를 진행했다. 면접이 끝난 뒤 마힘은 출입국청에 자신의 면접 녹화 기록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출입국청에선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면접 기록 달라고 요구했더니 경찰에 입건돼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하는 출입국청 직원의 응대에 화가 난 마힘은 면접 녹화 기록을 줄 때까지 출입국청 자리를 떠나지 않고 버텼다. 출입국청이 경찰을 불렀고 마힘은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마힘을 조사한 경찰은 그를 입건했고, 출입국청은 마힘이 공공의 안전과 사회질서를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조사했다. 마힘의 행동이 정말 공공의 안전과 사회질서를 해쳤을까? 그는 처벌을 받아야 할까?

매년 난민 신청자가 늘어나면서 난민 심사의 적체가 심해지고 있다. 난민 신청자들은 제때 면접을 받지 못하고 생존권을 위협받으며 불안정한 체류를 이어가고 있다. 난민 신청자에 대한 정부의 생계·주거 지원은 거의 없는데, 체류 자격을 유지하려면 어떻게든 살 집을 구해서 출입국청에 주거확인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체류 연장 수수료도 내야 한다. 생존을 위해 일을 찾아야 하는데, 불안정한 체류 자격으로 정식 계약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난민 신청자의 삶은 이미 벼랑 끝에 놓여 있다. 출입국청은 이미 충분히 힘겨운 난민 신청자들의 삶을 불안케 하고, 더욱 옥죄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각 지방 출입국청의 체류 담당 부서는 본부의 지시를 받아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동향 조사’를 했다. 동향 조사는 일부 난민 신청자가 체류 연장을 위해 출입국청을 방문하면 체류 연장 허가를 보류하고, 외국인등록증을 돌려주지 않은 채로 3개월간 지켜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당국은 특정 문화권의 난민 신청자를 ‘특이 동향 대상자’로 분류해 관찰했다. 수시로 전화하거나, 갑자기 주거지로 방문해 집에 있는지 확인했다. 수시로 출입국청에 출석하게 하고, 통장 거래명세를 조사했으며 종교 활동도 물었다. 왜 이러한 조사를 하는지 설명은 조금도 없었다. 동향 조사의 배경과 목적, 기준과 대상 등 어떤 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난민인권네트워크 소속 단체들은 출입국청의 동향 조사가 특정 국가와 종교를 배경으로 가진 난민 신청자에 대한 차별이고 억압이라고 본다.

지난해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 난민 신청자는 심사 과정 중 모두 범죄 경력을 조회하고, 마약 투약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소변검사도 했다. 난민 신청자 전수조사는 전례 없는 것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말, 이것이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밝혔다. 앞으로 이런 조사는 범죄 혐의가 있는 용의자에게만 제한해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정당한 요구 묵살하는 공권력

마힘의 항의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당한 요구가 아닌 것이 없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마힘의 정당한 요구에 출입국청은 “안 된다. 돌아가”라고만 하며 경찰을 불렀지만 실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표현하는 난민 신청자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거나, 미비한 제도에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제안은 없었다.

난민 심사 현장에서 난민 신청자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통제와 처벌로 대응하는 출입국청의 행태를 자주 본다.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는 공권력의 행사가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활동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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