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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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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과 함께한 377일 난민과 함께할 377일+α

기획연재 #난민과함께의 쉼표를 찍으며
등록 2019-06-26 10:50 수정 2020-05-03 04:29
이재호 기자가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들을 취재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이재호 기자가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들을 취재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2018년 6월15일 금요일 밤 9시, 제주도 제주시 탑동공원
흥겨운 아랍어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예멘인과 한국인, 그리고 또 다른 외국인들이 한데 어울려 춤추고 있었다. 우줄우줄 익숙하지 않은 어깨춤을 추는 서로를 보며 깔깔 웃었다. 60명 정도가 모였는데 예멘인이 대부분이었고, 한국인과 제주도에 사는 외국인이 10명 정도 됐다. 예멘인들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일부 예멘인은 광장 코트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젊은 남성이 대부분이었지만 여성과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샐쭉 웃으며 처음 보는 내게 인사를 건넸다.
‘전쟁을 피해 떠나온 난민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제주도로 오면서 고심했던 질문들이 바닷바람에 흩어졌다. 탑동공원에서 벌어진 예멘인들의 축제를 한참 동안 넋 놓고 바라봤다. 6월의 제주도는 생각보다 추웠다. 가벼운 외투 하나만 걸쳤는데 몸이 움츠러들었다.
처음 제주도에 예멘인이 들어와 난민 신청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5월 말이었다. 타이에서 왕실모독죄로 기소 위기에 처하자 한국으로 피신해 망명한 차노끄난 루암삽(26)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난민’을 입력했는데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 기사가 쏟아졌다. 기사를 읽고도 이들이 한국으로 온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한국에 왜 온 걸까?’
하루 전인 6월14일 목요일 밤. 편집장이 회의실에서 나를 불렀다.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들을 취재해서 표지로 한번 써보자.” 금요일 저녁 예멘인들 모임을 취재하기 위해 제주행 비행기표를 찾았지만, 벌써부터 피서객이 몰리는지 쉽지 않았다. 늦은 오후 겨우 표를 구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랍어를 쓰는 예멘인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주행 비행기 안 분위기는 밝았다. 대부분 피서를 떠나는 관광객처럼 보였다. 나 혼자만 근심이 가득했다. 제주도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져 어두웠다. 숙소에 짐을 풀고, 예멘인들이 모여 있다는 탑동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 어떤 질문을 할지 수첩에 정리했다. 밤이 깊어 취재가 어려울 수 있으니 예멘인이 묵는 숙소를 최대한 많이 알아내서 내일 취재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웠다. 먼저 영어로 통역해줄 수 있는 예멘인을 찾아야 했다.
‘어떤 모습일까?’ 탑동공원으로 가는 길에 생각했다. 앞선 보도에선 모두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돼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음울한 분위기를 예상했다. 내전을 피해 여러 국가를 떠돌다 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나는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 고민하면서 현장에 다다랐다. 탑동공원엔 ‘단짠’(달고 짠) 향기가 가득했다. 바다 내음에 커리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입에 침이 가득 고였다. 춤추지 않는 사람들은 돗자리를 펴고 앉아 음식을 나눠 먹었다. 비앙카와 케이티 등 제주도에 사는 외국인들이 페이스북에서 행사 일정을 보고 준비해온 것이었다. 비앙카는 “인터넷에서 예멘인이 좋아하는 커리와 볶음밥 등의 조리법을 보고 요리했다”고 말했다.
“예멘인들이 상당히 기분이 좋은 상황이에요. 한국 정부가 이들의 난민 신청을 받아줬고, 어제 라마단이 끝났기 때문이에요.” 제주도 천주교구 이주사목센터 관계자가 귀띔했다. 라마단은 이슬람 달력의 아홉 번째 달로, 단식을 하는 달이다. 라마단이 되면 이슬람교 신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식사와 흡연 등을 금한다. 예멘인들은 “이 기간 동안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금식을 통해 제때 식사하지 못하는 우리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다”고 했다.
그때 한 예멘인이 다가와 음식이 가득 든 접시를 건넸다. “저녁은 먹었어? 이거 좀 먹어볼래?” 음식은 기막히게 맛있었다. 허겁지겁 이동하느라 점심을 거르고, 밤 10시 되도록 저녁을 먹지 못한 나는 한 접시를 뚝딱 비웠다. 11시쯤 숙소로 돌아간다는 예멘인들을 붙잡고 수소문한 끝에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살라를 소개받았다. 내일 제주 시내에 있는 한 호텔로 오면 취재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예멘인들이 떠난 광장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지난 주말에 디즈니 만화를 영화로 재탄생시킨 을 봤다.

가상의 국가 아바브와 알리 왕자로 변신한 알라딘이 궁전에서 자스민 공주와 우줄우줄 춤추는 장면을 보며, 1년 전 제주도 탑동공원에서 춤추던 예멘인들이 떠올라 그때 일기를 펴봤다. 중동 아랍권의 고전소설 일부분을 만화로 만든 을 보며 예멘 난민을 떠올린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화에서 알라딘 역을 맡은 메나 마수드는 이집트계 캐나다인이지만 제주도에서 만났던 예멘인들과 닮은 구석이 많았다.

1년 전 예멘인 무리에서 함께 춤을 췄던 한 제주도민은 지난 4월 예멘 난민과 결혼했다. 마치 알라딘과 자스민처럼. 그들이 양탄자를 타고 밤하늘을 날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서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서 깊이 사랑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제주도를 찾은 예멘인을 바라본 건 아니었다. 일부는 혐오와 경멸에 가득 찬 눈으로 보았다.

“우리가 누군가를 혐오한다면, 그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우리의 모습을 타인에게서 볼 때 우리는 비로소 분노한다. 우리 안에 있지 않은 것은 우리를 화나게 하지 못한다.” 헤르만 헤세의 문장에서 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온 난민을 혐오했던 이유를 찾았다. 그들에게서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욕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서울 변두리에서 강남으로 이주하려는 욕망. 자신이 태어난 지역을 벗어나 더욱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이동하고, 귀속적으로 얻은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려는 욕망은 보편적이다.

이런 욕망의 존재는 우리 사회가 평등하지 않음을 방증한다. 혐오하고 바꿔야 할 것은 불평등이지만, 우리는 이 불평등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체념한다. 평등한 사회를 꿈꿀 수 없는 사람들은 불평등 대신 안전과 평화를 갈망하는 난민에게 “나가”라고 등 떠밀었다.

#난민과함께 기획연재를 했던 2018년에 사상 가장 많은 난민(1만6173명)이 한국 사회를 찾았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그들의 삶은 위태롭고, 한국 밖에도 무수히 많은 난민이 존재한다. 유엔난민기구는 2019년 현재 전세계 7천만 명 넘는 난민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고 파악했다. 배우이자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정우성씨 말처럼 단 한 명의 난민도 생기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난민이 있는 한 #난민과함께도 계속되었으면….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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