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기획연재 #난민과함께 보도 1년을 맞아 이 만났던 난민 다섯 명에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어가 익숙지 않아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 기사가 자신들의 상황을 대신 설명해줬다며 고마워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읽고 깊이 공감해준 독자에게도 큰 감사를 전했다. 하지만 떠나온 고국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는 일도 녹록지 않아 보였다.
예멘인 아흐마드: 인도적 체류 지위
“나와 예멘인은 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난민으로 살지 않을 것이고, 내전이 끝나면 꼭 돌아가 예멘을 다시 세울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한국 친구들도 꼭 예멘에 놀러 와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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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6일 제주시민회관에서 열린 전국킥복싱대회에서 승리를 거둔 아흐마드 아스카르(29·사진)가 말했다. 그가 한국에서 거둔 두 번째 승리였다.(제1239호 ‘난민의 첫 번째 승리’ 참조)
아흐마드는 지난해 난민 심사를 받고 인도적 체류 지위를 인정받아 제주도를 떠났다. 체육관에서 코치로 일하며 운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서울에서 만난 대한킥복싱협회 관계자에게서 일자리를 소개받고 전남 순천의 한 체육관으로 향했다. 아흐마드는 운동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그곳 체육관 관장은 무슬림인 아흐마드에게 돼지고기와 술을 강권했다. ‘난민’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무시까지 당한 그는 결국 순천도 떠났다.
일자리를 찾아헤매던 아흐마드는 전남 목포의 대기업 조선소에 일자리를 얻었다. 이곳에는 이미 100명에 가까운 예멘인이 일하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함께 난민 심사를 받은 친구들이었다. “제주도에 있을 때 보살펴줬던 코치가 시합하러 오라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지난 주말에 제주도에 다녀왔고, 지금은 다시 목포 조선소로 돌아왔다. 조선소에서 일하며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있고, 고국으로 조금씩 보내 가족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다. 시간 나는 대로 운동하며 내 꿈도 키우고 있다.”
꿈이 많은 아흐마드는 연락이 닿을 때마다 새로운 꿈을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꼭 챔피언이 된 뒤 내전이 끝난 예멘으로 돌아가 스포츠 관련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흐마드의 바람은 아직 이루기 어렵다. 6월14일 통신은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남부 지역 압하 공항을 드론(무인기)으로 공격하면서 교전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예멘은 언제쯤 평화를 되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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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인 오마르: 난민 지위 불인정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지지자들이 모스크에서 추모 기도를 올리려고 하지만 압둘팟타흐 시시 현 대통령과 정부는 이를 감시하고 탄압한다. 카이로 시내에 배치되는 군대와 경찰 수가 나날이 늘며 분위기가 삼엄하다고 한다.” 6월19일 과 한 통화에서 이집트 분위기를 전하는 오마르(27·가명·사진)의 목소리는 어두웠다.
2011년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정부를 끌어내리고 첫 민선 지도자가 됐던 무르시 전 대통령이 6월17일(현지시각) 재판 도중 숨을 거두면서 오마르의 조국 이집트는 다시 한번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제1233호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어요’ 참조)
오마르 가족은 시시 정부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남동생이 실종됐는데 최근에야 감옥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이집트에 있는 가족도 동생과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하고 있다. 3개월 전쯤 카이로의 고향집에 군인이 들이닥쳐 집기들을 닥치는 대로 부쉈다. 가족은 집을 떠나 이집트 곳곳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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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르는 법적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불안한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몸까지 다쳤다. “6개월 전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다 물건을 떨어뜨렸는데 발가락뼈가 부러졌다.” 서울 용산구 이슬람 사원에서 노숙했던 그는 최근 충북 음성군으로 가 친구의 도움을 받고 있다. 난민 불인정 판단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했다. “이집트의 이야기를 들으면 혼자 이렇게 떠나와 있는 게 너무 미안하다. 나, 그리고 이집트는 자유만을 원한다.”
타이인 차노끄난: 난민 지위 인정
“지난 5년의 군부정치에 지친 타이 국민이 고대하던 총선이 지난 3월 치러졌지만, 선거는 꼼수로 얼룩졌다. 군부는 다시 한번 집권에 성공했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활동가와 정치인에게 인권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 정치적 망명자로 첫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타이인 차노끄난 루암삽(26·위 사진)은 여전히 안테나를 세우고 타이 소식을 빠르게 듣고 있다.(제1214호 ‘민주천사 난민을 한국은 안아줄 수 있을까’ 참조) 체포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떠날 수밖에 없었던 조국이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동료 활동가들이 여전히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보도로 자신의 이야기와 타이의 군부독재 실태가 한국 사회의 관심을 받은 것에 깊은 감사를 표하면서도, 자신이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다른 난민 신청자보다 빠르게 난민 심사를 받고 난민 인정까지 받은 것에 미안함을 나타냈다. 정부 난민 정책이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도 표했다. “한국에선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 더 빠르게 법 절차를 진행해주는데 이는 공정하지 않다. 다른 평범한 난민 신청자들은 기간 내 난민 심사를 받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차노끄난은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한국어 교육과정에 등록해 수업을 듣고 있다. 한국어 공부를 마친 뒤 시민단체에서 일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해 더 공부할 계획이다. 차노끄난은 외국인에게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당장 내일 한국에 있는 모든 외국인이 한국을 떠난다면 어떻게 될까? 공장과 농장은 멈출 것이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는 누가 가르칠 것인가? 한국은 고립된 채 살아갈 수 없는 국제사회의 일원이다.”
수단인 아담: 난민 지위 인정
지난 4월6일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선 수십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군 사령부를 둘러싸고 연좌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자유, 정의, 국민은 하나. 군대도 하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알바시르는 군인 출신으로, 198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다. 그는 2003~2010년 다르푸르에서 터진 내전에서 이슬람 민병대를 지원해 살인, 성폭행, 고문, 강제 추방, 약탈 등을 저지른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 대상이 됐다.
알바시르 정부는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평범한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알바시르는 무력 탄압에 나서면서 자리를 지키려 했지만 4월11일 결국 축출당했다. 수단 민중은 “우리가 이겼다”며 환호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알바시르 군부가 물러난 자리에 또 다른 군부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신임 군부는 쿠데타 직후 과도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대표들과 만나 “2년 내 민정 이양”을 약속했지만 수단 민중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도둑을 다른 도둑으로 대체하지 않겠다”며 시위를 계속하는 이유다.
다르푸르 내전에서 박해를 받고 2011년 한국에 온 아담(33·왼쪽 아래 사진)은 7년 만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제1226호 ‘나는 보통 사람이다’ 참조) 그사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정도로 한국 사회에 적응한 그는 영어와 아랍어, 한국어의 통번역가로 일하며 난민과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있다. 아담은 한국 사회와 가까워질수록 한국 사회의 아픈 역사를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역사적으로 큰 상처와 핍박을 받았음을 알게 됐다. 한국인들이 외국인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이유가 아닐까 짐작한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 일본이 아니다. 조국에서 폭력과 위협을 피해 평화를 찾아 온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에티오피아인 베레켓: 난민 재신청 절차
“에티오피아 정부가 내 부족인 ‘오로모’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2016년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딴 페이사 릴레사는 결승점을 통과하면서 두 팔을 엇갈려 엑스(X)자를 그려 보였다. 경기가 끝난 뒤 시상대에 올라서도 같은 포즈를 했다.
조국의 탄압 현실을 고발한 뒤 미국으로 몸을 피했던 릴레사는 지난해 10월 에티오피아 정부로부터 박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부족을 묻지 말라”고 했던 베레켓 알레마예후(39·오른쪽 위 사진)는 아직 한국 땅에 머물고 있다. (제1238호 ‘부족을 묻지 말라’ 참조)
2014년 9월 한국에 와 난민 신청을 했지만 법적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베레켓은 난민 재신청 절차를 밟고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이후 정식 일자리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활동가로서 한국 비정부기구(NGO), 시민사회단체 등과 함께 일하고 있다.
베레켓은 “에티오피아에서 종족 갈등이 워낙 뿌리가 깊어서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더욱 긴장감이 높아진 상태다”라고 설명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전세계에 100만 명 넘는 에티오피아인이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고 파악한다. 베레켓은 자신도 신분이 불안정한 난민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해 두 가지 걱정을 전했다. “한반도 정세가 격변기에 접어들고 있다. 한국은 오랜 남북 대치를 끝내고 평화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을 너무 많이 쓴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선 플라스틱을 그만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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