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그것은 오해입니다

정우성이 말하는 난민에 대한 오해와 진실
등록 2019-06-25 10:10 수정 2020-05-03 04:29
정우성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가 지난 5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위치한 쿠투팔롱 난민캠프에서 로힝야 난민을 위한 교육센터를 방문한 모습. 유엔난민기구(UNHCR) 제공

정우성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가 지난 5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위치한 쿠투팔롱 난민캠프에서 로힝야 난민을 위한 교육센터를 방문한 모습. 유엔난민기구(UNHCR) 제공

지난해 제주도를 찾은 예멘 난민 신청자를 두고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가 떠돌았습니다. 오늘은 독자들께 그때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난민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정리해드리려 합니다.

오해1. 젊은 남성이 대부분인 예멘 난민은 가짜 난민이다.

예멘인들이 고향을 떠난 것은 내전 때문입니다. 전쟁이 격화하면서 예멘 정부와 후티 반군 양쪽에서 성인 남성을 마구잡이로 징집했습니다. 우리도 한국전쟁 때 젊은 남성들이 국군과 인민군 모두에 징집된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제주도를 찾은 예멘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원하지 않는 전쟁이기에 징집과 집총을 거부하면 가족이 볼모로 잡히고 협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예멘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난민 신청자 중 젊은 남성이 많은 것은 비단 한국에 국한되는 일이 아닙니다. 유럽도 비슷합니다. 유럽연합(EU) 공식 자료를 보면, 2018년 한 해 유럽연합에 속한 28개국에 난민 신청을 한 60만 명 중 38만 명이 남성이었습니다. 60%가 훌쩍 넘었죠. 전체 난민 신청자 중 79%는 35살 미만 젊은이였습니다. 결국 전쟁은 젊은 남성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이를 피해 고국을 떠나는 난민도 젊은 남성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배경을 안다면 예멘 난민 신청자의 다수가 젊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돈벌이하러 온 가짜 난민이라는 오해는 하지 않았겠죠.

오해2. 스마트폰을 가진 난민은 가짜 난민이다.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기 때문에 가짜 난민이라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난민은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라는 선입견에서 나온 주장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난민은 특별한 상황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필수품으로 여기듯, 난민도 스마트폰을 필수품으로 여깁니다. 우리보다 더 필사적으로 챙깁니다. 스마트폰이 고국에 남은 가족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죠. 안전을 찾아 떠나는 난민이 도착할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유엔난민기구가 전세계 각지에 있는 난민 보호 대상자를 설문조사했더니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스마트폰이 꼽혔습니다. 밥은 굶어도 스마트폰은 포기할 수 없다는데요, 그래서인지 스마트폰을 보유한 비율도 일반인과 비슷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난민들이 난리 통에 어떻게 비싼 로밍(통신업체끼리 서로 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까지 해서 외국에서 스마트폰을 쓸 수 있냐고 묻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이들은 보통 도착한 나라에서 가장 싼 심카드(개인 식별 정보가 담긴 IC카드)를 사서 씁니다. 되도록 무료 와이파이를 쓰려 하고요.

오해3. 난민 신청자들은 취업 브로커를 통해 난민으로 위장했다.

우리도 법률 지식이 없으면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습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에 온 예멘인들이 어떻게 혼자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난민 신청자들이 찾는 출입국·외국인청에는 난민신청서가 비치돼 있지 않고, 아랍어로는 소통도 어렵다고 합니다. 먼저 외국인청이 난민 신청자에 대한 정보 제공이나 소통 창구 등 기본적인 것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난민 사이에 소통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사람을 브로커라고 한다면, 브로커는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그중에 난민을 돕는 선한 브로커도 있고, 난민을 돕는 척하면서 위험에 빠뜨리는 나쁜 브로커도 있을 겁니다. 나쁜 브로커가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중간에서 돕는 모든 이를 불법적인 존재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나쁜 브로커가 만든 가짜 서류로는 한국 정부의 난민 심사 과정을 통과해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렇게 엉성하지 않습니다.

오해4. 우리는 이미 보호 중인 새터민 같은 난민이 있다.

한국에 자리잡은 새터민, 즉 북한이탈주민은 난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한반도 전체를 한국 영토로 규정하기 때문에 북한 사람도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아직 한국 국적을 부여하지 못한 것이지요. 이들은 한국 정부가 관할하는 영토에 들어오면 즉시 한국 국적을 받고 정착을 지원받는 등 국민 자격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반도를 떠나 다른 곳에 머물러 언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될지 모르는 탈북민이 있다면 이들은 난민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이들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면 생명의 위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강제 송환도 반대해왔습니다. 예멘 난민 신청자의 강제 송환에 반대하는 이유도 꼭 같습니다. 그들이 예멘으로 보내지면 그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해5. 난민은 제3국 정착을 희망한다.

난민은 경제적 목적으로 고국을 떠나는 이주민과 다릅니다. 갑작스러운 난리에 살 곳을 잃어버리고, 고국에서 계속 살면 삶의 지속이 보장되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떠난 사람들입니다. 안전하게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이주민과 다른 점입니다.

제가 캠프에서 만난 거의 모든 난민들의 꿈은 평화를 되찾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난민들은 현재의 삶을 일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잠시 머문다고 생각하지요. 하루빨리 잃어버린 삶을 되찾고 싶은 것이 난민들의 마음입니다.

우리 역사를 돌아봅니다.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만주, 연해주, 중국, 일본 등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간 사람들은 평생 그곳에서 살 생각으로 고향을 떠났을까요?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지못해 떠났고, 언젠가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올 것을 꿈꿨을 겁니다. ‘임시정부’라는 말에 이미 ‘일시적’이라는 뜻이 담겨 있지 않나요.

지금 난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난민은 자발적으로 이동하는 이주민이 아닙니다. 이 구분을 위해 엄격한 난민 심사 과정이 존재합니다.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배우)
*이 글은 정우성씨 동의 아래 그가 쓴 책 을 바탕으로 이재호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아래 '후원 하기' 링크를 누르시면 후원 방법과 절차를 알 수 있습니다.
후원 하기 http://naver.me/xKGU4rkW
문의 한겨레 출판마케팅부 02-710-0543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