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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이 뭔가요?”

충남 공주 딸기농장에서 만난 공경숙씨
등록 2019-03-16 14:13 수정 2020-05-03 04:29

3월11일 충남 공주의 딸기농장에서 만난 독자 공경숙(61)씨는 기자와 인터뷰 도중에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왜 을 후원하겠다고 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세월호 희생자들과 #미투 피해자들을 떠올릴 때, 한국군에게 학살된 베트남 민간인 이야기를 할 때, 데모하다 끌려가서 고문당한 대학생 이야기를 하면서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물었다. 3월7일 경북 영천에서 만난 곽성순(55)씨와는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이력도 달랐지만, 누군가의 희생을 자기 일로 여기는 공감 능력과 감수성은 똑같았다.

“이 어렵다고 하니까, 이런 언론은 오래 살아남아야 하니까, 후원하고 싶다고 했죠. 나는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 한겨레 기자들 보면 부채의식 같은 게 있어요.” 공경숙씨는 설 퀴즈큰잔치 응모엽서에 “한겨레가 건재해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후원할 의향이 있으니 후원금 제도를 만들어주셨으면 한다”고 적었다. 3월11일 만난 그는 “그 말을 하려고 엽서를 썼다”고 했다.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기자가 #미투 기사를 많이 쓴 것을 알고, 자신이 겪은 성차별 경험도 털어놨다. “결혼하기 전에 지방공무원으로 면사무소에 여자로는 처음 발령을 받았어요. 여자는 갖고놀아도 되는 대상인 줄 알았나봐요. 나중에 들어보니 남자들끼리 나를 해치운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는 독자 응모엽서에서 제1245호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등 강제 수용 피해자들 이야기를 가장 인상 깊었던 기사로 꼽으며 “우리 사회가 아직도 인권에 둔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그는 성차별 문제를, 약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문제를 지나간 과거 또는 남의 불행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에 대한 그의 부채의식은 정확히 말하면 이 주목해온 사람들, 부정의와 불의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나의 안전이 남의 희생에 빚지고 있다는 사회적 민감성은 독자와 기자들이 공유하는 특성이다. 최근 고경태 전 편집장이 쓴 베트남 민간인 학살 보도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사람들 피 흘리게 한 대가로 우리가 잘 먹고 잘사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울었다. “노태우 정권 때인가 성균관대 근처에 살아서 데모하는 학생들 많이 봤죠. 아들이 다 커서 대학 다닐 때 되니까 정말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데모하다가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민주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요.”

디지털 저널리즘 시대는 누구나 미디어가 되는 시대를 열었고, 무능하고 부정했던 전직 대통령의 초고속 탄핵은 분명 그 시대에 빚지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역효과도 점점 분명해진다. 사회적 약자 혐오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의 문제는 ‘탈진실’이라는 희귀한 말까지 낳았다. 공경숙씨는 뉴스 소비의 경로로 전통 매체를 고집하고 있었다. 종이 매체로는 과 , 방송으로는 JTBC였다. 딸기 출하 시기, 밤에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고집스럽게 을 찾는다고 했다. “바쁠 때 막 쌓이잖아요. 그때는 중요한 거는 접어놓고 꼭 보려고 해요. 그게 내 유일한 취미예요. 하루라도 안 읽으면 허전하고, 할 일을 안 한 것 같아요.”

그가 딱 하나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한 것은 구독료 결제 방식이었다. “18만원 정기구독료를 석 달에 한꺼번에 내려고 하니까 벅차요. 작년에는 힘들었어요.” 딸기농장의 사무실이라고 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그를 대면해 이 말을 듣고서야 그가 구독료 말고 더 낼 수 있다고 했던 후원금 10만원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할 수 있었다. 그는 기자와 나눈 문자메시지에서 “후원 의사는 있지만 많이는 못한다. 연 10만원 정도 후원할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다른 건 아껴 쓰더라도, 꼭 필요한 돈은 써요. 그리고 후원은 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해요.”

2015년 충남 공주로 내려와 딸기 농사를 시작했다는 그는 “농사짓는 데 필요한 정보는 에서 얻는다”며 에서는 농업문제보다 환경문제를 다뤄주었으면 했다. “미세먼지 문제가 중국발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책임이 없을 수는 없잖아요. 귀농해보니 제일 문제가 폐비닐을 막 태우는 거예요. 환경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싶어요. 알 수 있는 데가 없어요. 환경 선진국 취재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일러줬으면 좋겠어요.” 귀농 4년차, 해마다 예측 못한 악재가 생겨서 농사가 잘되지 않았는데 올해는 전례 없이 ‘기형과’가 많이 생긴단다. 그는 기형과가 생기는 원인으로 농민들 사이에서는 ‘미세먼지 때문이 아닌가’ 한다는 걱정을 전해주었다.

공주=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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