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도자의 베트남 방문은 55년 만에 처음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1964년 11월 베트남 방문길에 베이징부터 들렀다. 한 달 전에 핵실험에 성공한 중국에 축하의 말을 건네면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깜짝 방문’이었다. “피를 나눈 형제”가 찾아오자 마오쩌둥 주석은 환영 연회를 열었다. 그리고 인민해방군 책임자를 불러 “이번 핵실험에 비용이 얼마 들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책임자는 “20억달러”라고 했다 한다. 마오쩌둥은 본인도 잘 알고 있었을 핵개발 비용을 왜 굳이 책임자를 불러 김일성 앞에서 얘기하게 한 것일까?
중국도 러시아도 핵개발 조력 거절그건 당시 돈으로 “20억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핵개발을 북한은 단념하라는 취지였다. 김일성은 마오쩌둥에게 핵개발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려고 간 것인데, 보기 좋게 거절당한 셈이다. 두 사람의 이런 엇갈림은 이후 북-중 관계가 악화된 여러 가지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1966년 주북한 알바니아 대사관이 작성한 외교 전문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북한이 중국에게 원자탄의 비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양국 관계의 냉각을 가속화시켰다.”
55년 후 김일성의 손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을 출발해 중국 내륙을 관통해서 베트남까지 이르는 ‘66시간의 열차 대장정’에 나섰다. 이번엔 베이징에 들러 시진핑 주석을 만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 때의 기시감을 불러올 만한 여정이다. 하지만 그 목적은 다르다. 김일성의 목적은 대미 항전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절멸의 공포를 몰고 온 미국의 핵무기는 이미 남한에 대거 배치된 상태였다. 그래서 김일성은 소련의 흐루쇼프 서기장에게 핵개발 지원을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믿었던 마오쩌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김일성은 마오쩌둥이 내준 항공기를 타고 하노이로 향하면서 ‘자주국방’ 의지를 더욱 강하게 다졌을 것이다. 반제국주의 선봉에 선 북베트남을 지원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 대가는 혹독한 것이었다. 북한의 무기와 병력 수가 늘어날수록 인민 생활의 궁핍화는 가속화되었다.
한편 같은 길을 따라간 김정은의 목적은 다른 것이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온 70년간의 북-미 적대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남부럽지 않은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에 맞춰졌다. 긴 시간 기차 여행을 하면서 이미 40년 전에 미국과 국교를 수립한 중국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그리고 “미제”를 물리쳤지만 빈곤에 허덕였던 베트남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이후 어떻게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지 똑똑히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정의의 보검”이라고 치켜세웠던 “국가 핵무력”을 어떻게 포기할 것인지 골몰했을 것이다. 그는 하노이에서 “비핵화 의지가 없었다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음속 한켠에는 언젠가 아래와 같은 선언을 해보는 날도 상상해봤을 것이다. “70년 조-미 대결의 위대한 승리(적대 관계에서 평화 관계로 전환)를 가져온 국가 핵무력의 역사적 소임은 이것으로 끝났다. 이제 국가 핵무력의 완전한 폐기를 엄숙히 선포한다.”
덩샤오핑 양탄일성 코스 밟은 김정은이 말은 곧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하기 위해 “핵무력 건설”을 완성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안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정보기관 수장들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은 “김정은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들 가운데에는 북한에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거나 북핵 해결이 한반도 현상 변경을 일으킬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역지사지 관점으로 ‘내가 김정은이라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왜 그럴까? 북한은 부족한 살림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 그것도 온갖 핍박과 비난을 받으면서 핵무기를 만들었다. 미국도 있지만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등 만만치 않은 나라들로 둘러싸여 있다. 강대국들의 유인에 넘어가 핵무기 개발을 포기했던 리비아와 8천 개의 핵무기를 포기한 우크라이나의 비참한 결과도 있다. 핵보유국이 침공을 당한 사례도 없고, 그래서 핵무기는 가장 확실한 안보 수단으로 간주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하지만, 다음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김정은이 핵을 포기한다고? 많은 이들은 김정은이 미치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이들은 실제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면 두뇌가 해체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김정은의 비핵화 여정의 결말을 예단키는 어렵다. 하지만 수수께끼와 같은 그의 코드를 읽어볼 필요는 있다. 변증법이라는 잣대로 말이다. 김정은에게 ‘정’(正)은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이 물려준 선군정치였다. 북한은 김정일 사망 직후 선군정치 덕분에 “그 어떤 원수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되었다며 “핵보유국과 위성 발사”를 김정일의 최대 업적으로 부각시켰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김정은이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여겨지는 덩샤오핑이다. 우리는 그를 ‘개혁개방의 기수’ 정도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최대 업적을 양탄일성(兩彈一星), 즉 ‘원자탄과 수소탄 그리고 위성 보유’라고 찬양하면서 ‘중국식 국가 핵무력’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는 집권 초기에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영역, 즉 로켓과 핵무기에 모든 자원을 집중했다.” 그 결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과 시험에 성공했다.
덩샤오핑에게 양탄일성 완성은 두 가지 의미를 품고 있었다. 하나는 중국이 군사 대국이 된 만큼 다른 강대국의 침략을 걱정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양탄일성을 보유한 만큼, 재래식 군비 감축을 통해 경제 발전에 힘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덩샤오핑은 병력수를 절반 가까이 줄였고 국방비 지출도 최대한 억제했다. 역설적으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이 시작한 양탄일성을 완성함으로써 마오쩌둥 시대와 단절을 이루게 된 셈이다.
핵무력 완성 후 트럼프의 역할김정은이 집권 6년 동안 선보인 모습은 덩샤오핑과 놀라울 정도로 닮은 것이었다. 그는 이 기간 북한식 양탄일성을 완성하기 위해 전력질주했다. 여러 차례 실패에도 위성발사를 기어코 성공시켰다. 2016년 1월에 수소탄을 실험했다고 발표했다가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자, 2017년 9월에는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수소탄 실험을 강행했다. 또한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했고 “핵 억제력에 관한 법”도 제정했다. 이 사이에 재래식 군사력의 비중은 낮췄다. 북한 정부예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6.0%(2013년), 15.9%(2014·2015년), 15.8%(2016·2017년)로 소폭이나마 줄어든 것이다. 동시에 김정은은 국방비를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중 투입했는데, 이는 재래식 군사력의 비중은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여러 가지 경제관리 개선조치도 병행 추진해 일정 정도의 성과를 낳기도 했다.
이렇듯 김정은은 선군정치라는 ‘정’(正)을 극복하기 위해 이것을 완성하는 길을 선택했다.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은 이를 위한 과도기적 전략이었다. 핵무력 건설을 통해 선군정치를 완성하는 동시에 경제 건설이라는 선군정치 시대의 모순을 전면화시킨 것이다. 2017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보여준 모습은 그 백미에 해당된다. 김정은은 2017년 11월에 ICBM에 해당하는 ‘화성 15형’을 발사하고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북-미관계에서 미국의 핵 독점을 깨뜨려 “힘의 균형”을 이루는 “전략 국가”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5개월 후에는 병진노선의 승리를 선언하면서 경제 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새로운 전략 노선” 발표를 통해 사실상 선군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선경정치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적처럼 ‘반’(反)의 시대가 도래했다. 여기서 반은 대담판을 가리키고 그 중심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 대통령과 담판은 사상 최초다. 김일성도, 김정일도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김정은도 2013년에 NBA 스타이자 그의 친구인 데니스 로드맨를 통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로드맨이 미국에서 왕따당하는 모습만 속절없이 지켜봤을 뿐이다. 그런데 작년 3월 문재인 정부의 특별사절단을 통해 트럼프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했는데, 이게 받아들여졌다. 김정은은 그 힘이 “국가 핵무력 완성”에서 나왔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대담판이 성공을 거둔다면 “국가 핵무력”의 역사적 소임이 끝났다고 선언할 수 있게 된다.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이는 곧 ‘합’(合)의 시대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합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들이 완전히 이행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 관계 정상화, 그리고 평화체제 수립 등 ‘다른 방식에 의한 안보’를 달성하고 개혁개방과 제재 해제에 힘입어 경제 발전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굳이 트럼프의 덕담이 아니더라도, 북한의 경제 발전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변증법적 비핵화가 성공한다면, 북한이 ‘가난한 핵보유국’에서 ‘부유한 비핵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은이 이러한 ‘변증법적 비핵화’를 애초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이게 실현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다만 분명한 게 있다. 김정은이 “리틀 로켓맨”에서 ‘피스 메이커’로 변신하고 있는 데에는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 등 여러 정상들과의 상호작용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증법적 비핵화의 완성은 김정은만은 몫은 아니다. 한반도 문제 당사자들이 힘과 지혜를 함께 모아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공동의 과업’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되었지만,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고자 하는 도전은 멈춰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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