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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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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촬’ 유죄, 전송 무죄?

20년 전 만들어진 법률로 디지털 범죄 판단…

지나치게 좁은 해석에 피해자만 늘어나
등록 2019-02-16 16:03 수정 2020-05-03 04:29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1월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에서 죽음에 이른 불법·비동의 촬영물 유포 피해자를 기리며 ‘이름 없는 추모제’를 진행했다. 한겨레 김효실 기자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1월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에서 죽음에 이른 불법·비동의 촬영물 유포 피해자를 기리며 ‘이름 없는 추모제’를 진행했다. 한겨레 김효실 기자

서울 시내 한 백화점 3층 여성 화장실 변기 위 천장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됐다. ‘도난 방지’를 이유로 백화점 방재실 직원들은 여성 화장실 천장 구멍에 설치한 3㎜ 크기의 특수렌즈로 여성 화장실 안의 모습을 지켜봤다. 백화점을 이용해온 여성 손님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1997년 서울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하지만 당시 관련자들은 현행법상 도촬(상대방 동의 없이 촬영하는 것) 행위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어떤 형사처분도 받지 않았다.

불법 촬영 범죄 10년 사이 10배 늘어

이듬해인 1998년 ‘카메라 기타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해 촬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법률 조항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그 후 22년이 지났다. 그사이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매체는 빠르게 발전했다. 불법 촬영의 범죄 수법, 대상, 장소 등도 다양해졌다. 실제 대검찰청이 집계한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 촬영 범죄 발생은 2007년 564건에서 2016년 5249건으로 최근 10년 사이 10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정작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은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에 대한 법률 조항을 새로 만든 1998년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원혜욱 인하대 대외부총장 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 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가 공동으로 꾸민 ‘#미투 판결 심사위원회’에서 “인터넷 환경의 발달과 스마트폰 사용 증가 등으로 디지털 성폭력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 판결은 불법 촬영의 대상과 범위 등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 디지털 성폭력의 유형과 특성 등을 제대로 인지했는지 의문이 든다”며 3건의 판결을 ‘성차별 판결’로 꼽은 이유를 설명했다.

법원이 인정한 불법 ‘촬영 대상’의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대법원은 2018년 8월30일 다른 사람의 신체를 찍은 영상을 촬영하는 행위는 성폭력 처벌법에서 정한 ‘촬영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성관계 도중 양쪽이 합의하고 촬영한 동영상 파일 가운데 일부 장면을 찍은 사진 3장을 상대방 배우자의 휴대전화로 전송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하는 행위’에는 신체 자체를 직접 찍는 행위만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최근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복제된 촬영물도 원본과 거의 비슷한 영상물로 기능한다는 점을 간과한 결정이었다.

박귀천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이나 영상물 재촬영의 용이성 등을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다. 피해자가 받을 피해는 원본 촬영물이든 복제된 촬영물이든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그나마 대법원 판결 이후 지난해 12월 성폭력 처벌법이 개정돼 촬영물 말고도 ‘복제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해도 처벌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1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찍은 사진을 피해자에게 보냈더라도 죄가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촬영물의 ‘제공’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이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신체를 촬영한 행위는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그 사진 가운데 한 장을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전송한 행위는 법률적 의미의 ‘제공’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실제 이런 법적 처벌의 공백 탓에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17년 진행한 유포 관련 중복 피해 상담 가운데 유포 또는 유포 협박을 겪었는데도 고소 전 단계에서 고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사례가 33건(51%)에 이른다.

‘애매한’ 기준 ‘성적 욕망’ ‘수치심’

원혜욱 교수는 “법원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의 심각성을 안이하게 판단했다. 실제로 상대방이 사진이나 영상을 유포하지 않았어도 피해자는 ‘상대방이 언제든지 자신이 소지한 사진이나 영상을 유포할 수 있다’며 불안을 호소한다. 피해자들이 겪는 전형적인 2차 피해다. 피해자가 상당한 성적 수치심과 불안을 느낄 수 있는데도 정신적 고통과 상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여성들의 허벅지 부위를 몰래 찍었는데도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해 11월15일 ‘그 촬영 각도와 거리, 특정 신체 부위의 부각 여부 등을 비춰볼 때 육안으로 통상적인 방법을 통해 볼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게 촬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남성 중심적 관점에서 여성의 어떤 신체 부위가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지 판단했다. 치마 길이나 자세가 특정 상태에 미치지 못하면 몰래 사진을 찍어도 범죄가 안 된다는 면죄부를 준 거다. 불법 촬영된 영상이나 사진이 인터넷에서 어떻게 합성돼 유포되고 소비되는지 디지털 성폭력의 유형과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법원은 성적 자기결정권이 취약한 아동과 청소년의 디지털 성폭력 피해에는 비교적 우호적인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8일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기존에 받은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의 신체 사진 등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촬영·전송하도록 한 가해자를 강제추행죄의 간접 정범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또 대법원은 지난해 9월13일 아동과 청소년에게 돈을 주겠다고 말한 다음 음란 행위 장면을 스스로 찍도록 지시했다면 아동·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인터넷 등의 정보통신매체 발달로 음란물이 일단 제작되면 이후 언제라도 무분별하게 유통될 가능성이 있어 아동·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을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6월28일 웹하드 사업자에게 불법 음란 정보의 광범위한 유통·확산 방지를 위한 기술적 조처를 요구하는 정보통신사업법이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같은 날 헌법재판소는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가 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서 아동과 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을 즉시 삭제하고 전송을 방지 또는 중단하는 기술적 조처의 책임을 강조하고 규제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언제라도 어디서든 피해자가 되는 시대
서승희 한사성 대표. 박승화 기자

서승희 한사성 대표. 박승화 기자

디지털 성폭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특성이 있다.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불특정 다수에게 대량 전송할 수 있어 온라인과 오프라인 피해의 경계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피해의 광역성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느낄 정신적 고통과 상처는 상당히 크다. 그동안 일어난 성폭력은 실제 오프라인 공간에서 당하는 피해였다면, 디지털 성폭력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되지 않고 지속적이고 상시적인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디지털 성폭력의 유형과 심각성을 고려한 법과 제도의 손질이 시급하다.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촬영물을 유포할 것처럼 피해자를 협박하더라도 성폭력 처벌법으로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 경우 피해자들은 국선변호인 지정 등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기 어렵다. 게다가 법원이 불법 촬영의 대상과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다면 불법 촬영물을 무분별하게 보는 사람들에게 왜곡된 성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미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한국 사회가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미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미투에 한국 사회 전반이 반응했고, 사법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과 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선정한 ‘#미투 판결 10’을 보면 그 불가역적인 변화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폭력·노동·가족·헌법 분야 전문가 10명으로 꾸린 ‘#미투 판결 심사위원회’는 2018년 한 해 나온 젠더 관련 판결들 가운데 성평등 판결과 성차별 판결을 추천했다. 대법원 젠더법연구회와 헌법재판소, 대한변호사협회도 추천에 참여했다. 그 결과 성평등 판결로 16건, 성차별 판결로 10건이 추천됐다. 지난 1월15일 이화여대 법학관에서 열린 심사위원회는 성평등 5건, 성차별 판결 5건을 선정해, 이들 가운데 최고와 최악을 가리는 자리였다. 최고의 #미투 판결은 지난해 4월 대법원이 내놓은 ‘ㅇ대 성희롱 교수 해임 사건’ 판결이, 최악의 #미투 판결은 지난해 8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수행비서 성폭행 사건에 대한 서울서부지법의 판결이 선정됐다. 은 1부(최고의 판결)와 2부(최악의 판결)로 나눠 #미투를 이해하는 법의 열쇳말을 살핀다. 성평등의 열쇳말은 ‘성인지 감수성’, 성차별의 열쇳말은 ‘위력’이다.

#미투 판결 심사위원회
위원장 김유니스 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 소장(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박귀천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신옥주 한국젠더법학회 회장(전북대 로스쿨 교수)
오선희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전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 위원)
원혜욱 인하대 부총장(인하대 로스쿨 교수)
이경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정구태 조선대 법과대학 교수
최미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대표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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