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22일 광주지방법원은 아이돌보미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등의 법정 수당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아이돌보미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이날 광주지방법원에 함께 참석했던 아이돌보미 노동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2016년 광주의 아이돌봄 서비스 제공 기관 4곳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지 2년 만이었다. 168명의 아이돌보미 노동자들이 참여한 민사사건이었다. 당시 광주에서 일한 아이돌보미 노동자들의 3분의 1에 이르는 수다.
2014년 문자메시지로 전해진 교통비 삭감박귀천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 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가 공동으로 꾸린 ‘#미투 판결 심사위원회’에서 “아이돌보미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법정 수당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에 해당하는지가 법률상의 쟁점이었다.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인 돌봄노동 종사자들의 노동 가치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여러 해 동안 노동자성 여부를 다퉜던 아이돌보미 노동자들이 (법적) 노동자로 인정돼 의의가 크다. 젠더 이슈를 노동 문제 등 다양한 영역으로 넓혀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며 이 판결을 ‘성평등 판결’로 꼽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 소송에 참여한 아이돌보미 노동자 168명 가운데 5명을 2월10일 오후 2시께 광주 광산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여성가족부가 아이돌봄 서비스를 처음 지원한 2007년부터 지금까지 1기 아이돌보미 노동자로 일한 권아무개(64)씨는 “아이돌보미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존중해달라고 시작한 싸움이 성평등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으니까 보람을 느낀다”며 웃었다.
아이돌봄 서비스는 아이돌보미 노동자가 만 12살 이하 아동을 둔 맞벌이 가정 등에 방문해 일대일로 아동을 돌보는 것이다. 이용자는 야간과 공휴일에 상관없이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만큼 ‘시간제 돌봄’이나 ‘영아 종일제 돌봄’ 등의 서비스를 신청하면 된다. 맞벌이 부모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돕고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2007년부터 서비스를 지원했다. 여성가족부가 집계한 아이돌봄 서비스 이용자 수는 2018년 기준 6만4591가구에 이른다. 아이돌봄 사업을 위탁 운영하는 서비스 제공 기관 222곳에서 표준 근로계약서를 쓰고 일하는 특수고용직 아이돌보미 노동자도 2만3675명에 이른다.
가정집에서 일대일로 아이를 돌보며 뿔뿔이 흩어져 일하던 아이돌보미 노동자들이 모이게 된 계기는 교통비 삭감 소식 때문이다. 2014년 9월5일 아이돌보미 노동자들은 ‘9월부터 교통비 지급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서비스 기관으로부터 받았다. 문자메시지를 받은 날도 9월1일에서 닷새나 지난 때였다. 조아무개(60)씨는 “교통비 3천원은 적은 돈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돌보미 노동자에게 교통비는 최저시급 수준의 활동수당을 보조해주는 보조금이었다. 짧게는 2시간 동안 한 아이를 돌보려고 더 긴 시간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경우를 고려한 최소한의 조처였다”고 했다.
“우리가 노동자가 아니면 뭐냐”‘한 시간에 6천원을 받는 노동자라고 해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옳지 않다’(56살 김아무개씨) ‘억울하다’(조씨)는 생각의 파편들은 ‘뭐라도 해보자’라는 하나의 생각으로 모여 정리됐다. 같은 해 ‘아이돌보미 선생님 자조 모임’(아돌샘)을 만들어 종이접기 등 자기계발을 함께하던 노동자들이 광주 남구의 한 숲속 카페로 모였다, 은밀하게. 이 자리에서 전국에서 처음으로 ‘공공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곧바로 노조 가입 신청서가 돌았다. 공공비정규직 노조는 지난해 9월 만든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의 공공연대노동조합 아이돌봄 분과의 모태가 됐다.
교통비 삭감이 집단행동으로 이어지자 일부 서비스 기관은 아이돌보미 노동자들에게 ‘노조에 가입하지 마라’ ‘집단행동을 하지 마라’라며 회유했다. 박아무개(57)씨는 “일부 기관은 이용자에게 노조에 가입한 아이돌보미 노동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라고도 권했다”고 했다. 권씨와 박씨 등은 서비스 기관에서 이용자 연계를 중지할까봐 노조 가입을 꺼리는 다른 동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설득해야 했다.
이들은 ‘우리가 서비스 기관에 소속돼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서비스 기관에, 아이돌봄 서비스 사업을 위탁한 나라에 되물었다. 아이돌보미 노동자 163명이 2016년 서비스 기관 4곳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재판부는 ‘아이돌보미 노동자도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첫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서비스 기관 4곳에 아이돌보미 노동자 168명이 2013년 1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받지 못한 연장·휴일 근로 미지급 수당 4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일반 노동자처럼 일하면서도 근무지가 특정한 사무실이나 작업장 등으로 제한되지 않은 특수고용직도 현행 노동법에서 정한 노동자로 인정받게 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하지만 아이돌보미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주휴수당과 연차 미사용 수당 지급 청구는 제외됐다. 재판부는 ‘1주 동안의 소정 근로일 또는 1년간의 소정 근로일수를 미리 정할 수 없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주휴수당이나 연차휴가 일수를 산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여는’의 김성진 변호사는 에 “육아·요양 등 돌봄노동을 하는 특수고용직 여성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하는 것은 과도한 보호라는 인식이 있다. 돌봄노동은 여성이 하는 허드렛일이라는 잘못된 생각에서다. 이번 판결을 통해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여성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자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성평등적으로 이름 바뀔 그날까지항소심은 3월13일 열릴 예정이다. 서비스 기관 쪽은 여전히 아이돌보미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노동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국가가 아직도 돌봄노동의 가치를 전향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아무개(61)씨는 “노동자로 인정받았지만 정작 임금이 줄자 뭐가 나아졌느냐고 원망하는 동료도 있다. 아직 휴게시간이나 주휴수당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그래도 자식들이 우리 나이가 될 때쯤에는 아이를 낳고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사회가 될 거라고 동료에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일 뿐이다. 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비로소 현실이 된다.’ 비틀스 멤버였던 존 레넌의 노래 의 메시지이자 박씨가 전한 말이다. “언젠가 아이돌보미라는 이름도 바뀔 날이 오길 기대한다. ‘돌보미’라는 단어 자체가 사람들에게 비전문적이고, 성차별적인 선입견을 준다. ‘아동 보육사’처럼 좀더 전문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꾸는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싸울 거다.”
광주=글 조윤영 기자 jyy@hani.co.kr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미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한국 사회가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미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미투에 한국 사회 전반이 반응했고, 사법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과 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선정한 ‘#미투 판결 10’을 보면 그 불가역적인 변화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폭력·노동·가족·헌법 분야 전문가 10명으로 꾸린 ‘#미투 판결 심사위원회’는 2018년 한 해 나온 젠더 관련 판결들 가운데 성평등 판결과 성차별 판결을 추천했다. 대법원 젠더법연구회와 헌법재판소, 대한변호사협회도 추천에 참여했다. 그 결과 성평등 판결로 16건, 성차별 판결로 10건이 추천됐다. 지난 1월15일 이화여대 법학관에서 열린 심사위원회는 성평등 5건, 성차별 판결 5건을 선정해, 이들 가운데 최고와 최악을 가리는 자리였다. 최고의 #미투 판결은 지난해 4월 대법원이 내놓은 ‘ㅇ대 성희롱 교수 해임 사건’ 판결이, 최악의 #미투 판결은 지난해 8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수행비서 성폭행 사건에 대한 서울서부지법의 판결이 선정됐다. 은 1부(최고의 판결)와 2부(최악의 판결)로 나눠 #미투를 이해하는 법의 열쇳말을 살핀다. 성평등의 열쇳말은 ‘성인지 감수성’, 성차별의 열쇳말은 ‘위력’이다.
#미투 판결 심사위원회
위원장 김유니스 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 소장(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박귀천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신옥주 한국젠더법학회 회장(전북대 로스쿨 교수)
오선희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전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 위원)
원혜욱 인하대 부총장(인하대 로스쿨 교수)
이경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정구태 조선대 법과대학 교수
최미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대표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소장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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