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경리단길에 있는 한 가게에 폐업을 알리는 ‘임대’ 딱지가 붙어 있다. 박승화 기자
방송인 홍석천씨의 서울 이태원 가게 폐업을 최저임금 탓으로 보도한 보수 언론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홍씨는 최근 이태원 경리단길에 있는 음식점 3곳의 문을 닫았다. 그는 지난 1월18일 와 인터뷰하면서 장사를 접는 이유로 임대료 폭등, 사라지는 경리단길의 특색, 최저임금 등을 꼽았다. 그는 “(기사) 제목을 뽑을 때 ‘최저임금 때문에 가게 문 닫았다’라는 식으로 하지 말아달라”고 기자에게 말했고, 는 약속대로 기사 제목에 ‘최저임금’이라는 말을 넣지 않았다.
하지만 조중동( )이 해당 기사를 받아쓰면서 말썽이 생겼다. 조중동은 나란히 홍씨의 가게 폐업을 최저임금 탓이라는 취지로 제목을 뽑았다. 그러자 홍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제목이 내 의도하고는 많이 다르다’라고 점잖게 ‘항의’했다. 그는 TBS라디오 에 출연해 가계 폐업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다. “첫 번째는 임대료가 폭등한 게 매우 큰 요인일 수 있다. 임대료가 보증금 5천만원에 월세 200만원이었던 게 불과 5년만에 보증금 1억5천만원·월세 800만원으로 엄청 올랐다.” 그는 “건물주들은 ‘이 친구들이 나가도 다른 데서 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경리단길을 일으켜 세웠던 사람들은) 거의 다 나갔고, 마지막으로 남은 경리단길 1세대 몇 분도 뒤쪽으로 쫓겨날 판”이라고 했다.
방송인 홍석천씨가 최근 불황으로 서울 이태원에 있는 가게 2곳을 폐업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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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씨 사례는 보수 언론들의 최저임금에 대한 보도 태도가 ‘정치적 관성’에 영향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영업자들이 겪고 있는 위기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무조건 최저임금 탓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 친화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는 조중동의 정치적 성향이 기사의 왜곡 시비까지 낳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수 언론들의 이런 보도 태도는 자영업자에게 먹히고 있다. 홍씨처럼 가게 폐업의 원인을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 탓으로 돌리지 않는 ‘의연한’ 자영업자는 그리 많지 않다. 홍씨는 이태원에 건물을 갖고 있고 10개의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하루 매출이 1천만원에 이르는 요식업계의 ‘큰손’이다. 이런 홍씨를 일반 자영업자와 비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가 지난해 11월6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폐업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위기의 주범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중앙회가 전국 2천여 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일자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3.2%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 가중으로 사업 종료(폐업)를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홍보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시장에서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고 너무 빠르게 이뤄졌다. 그래서 노동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소상공인들은 한계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최근 17년간 중소 제조업체의 노동생산성 증가 속도보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2배 이상 빨랐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강행하기 전에 이런 상황을 충분히 검토해서 반영했어야 한다는 게 중소기업들의 ‘항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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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덕동의 한 고층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한우전문점을 운영하는 이아무개씨는 최근 단골들에게 오는 6월 폐업을 ‘예고’했다. 장사가 안돼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씨는 1월22일 전화 인터뷰에서 폐업을 결정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이씨도 폐업의 가장 큰 원인으로 비싼 임대료를 지목했다. “중산층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 있는 상가이고 건물도 새것이라서 임대료가 강남 수준으로 비쌌다. 관리비까지 합쳐서 월 1천만원이었다. 그게 제일 큰 화근이었다.”
이씨는 2017년 6월 가게 문을 열었다. 초기에는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위기가 닥쳤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기 시작했다.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직원만 일당을 올려주면 끝나는 게 아니다. ‘막내’(말단 직원)의 임금을 올려주면 다른 직원들도 그만큼 올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게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출도 30~40% 줄었다. 전반적인 경기 불황 탓이었다. 월 6천만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6월 3천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직접 ‘홀 서빙’에 나섰고, 아내도 주방 보조로 나섰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임대료와 재료비, 인건비를 빼면 남는 게 없었다. “그동안 적자를 감수하면서 버텨왔는데 6월이 되면 보증금(1억원)을 다 까먹는다. 그래서 장사를 접기로 했다.”
이씨는 이 가게가 “노후 대책용이었다”고 했다. IMF 외환위기 때 직장을 그만둔 그는 ‘오퍼상’을 차려 재기에 성공했다. 기사 딸린 차를 굴릴 정도로 잘나갔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 직격탄을 맞았다. 이씨는 남은 돈으로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노후를 위해 음식점을 차렸다. 그는 불황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인 정부가 야속하기만 하다. “지금 자영업자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청와대는 아직 사과 한마디 없다. 그래놓고는 말로만 정의를 외친다. 정의고 나발이고, 서민들한테는 내가 먹고살기 힘들면 그 정부가 제일 나쁜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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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의 수익 구조는?
다 오르는데 인건비까지 오르면 어쩌나
자영업자는 얼마를 남겨야 안정적으로 장사할 수 있을까. 자영업자의 수익·비용 구조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업종마다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외식업의 경우 비용은 재료비 40~45%, 인건비 20%, 임대료 10%, 공과금과 카드수수료 등 기타비용이 10% 정도로 구성된다고 한다. 이를 모두 더하면 매출 대비 80~85%의 비용이 발생한다. 나머지 15~20%는 장사를 하고 남은 수익이다. 하지만 이 돈을 모두 수익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장사가 잘되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대폭 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사를 안정적으로 하려면 임대료 인상에 대비해 돈을 비축해두어야 한다. 프렌차이즈의 경우 본사납입금 인상 횡포도 버텨야 한다. 건물주나 본사의 갑질에 시달리는 자영업자가 고육지책으로 인건비를 먼저 줄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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