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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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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이 최저노동은 아니잖아요

최저임금 받는 노동자 290만 명…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면 해보실래요?
등록 2019-01-26 16:48 수정 2020-05-03 04:29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1월18일부터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반영한 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준법 투쟁에 들어갔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1월18일부터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반영한 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준법 투쟁에 들어갔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죄송합니다. 이따금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장바구니에 담은 과자를 아무 데나 놓아두고 갔습니다. 과자니까 다른 과자들 사이에 두면 누군가 그 과자를 다시 집어갈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두어 걸음만 걸으면 될 텐데도 귀찮다는 핑계였습니다. 계산대에서 계산하려다 ‘너무 많이 샀나?’라는 걱정에 뒤늦게 과자라도 빼달라고 했습니다. 한 푼이라도 아꼈다며 뿌듯해했습니다.

당신을 따라 걸으니 두 시간 3천 걸음

몰랐습니다. 제가 다른 진열대에 제멋대로 놓아둔 과자들을 당신이 제자리로 옮겨놓는 것을, 아침에 홀로 출근하면 제가 계산하려다 만 과자들이 카트에 수북이 담겨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 말입니다. 목요일이나 금요일부터 특가로 파는 과자들의 가격표를 당신이 하나씩 진열대에 꽂는지도요. 1월18일 오전 10시께 홈플러스에서 과 만난 당신은 아침 8시부터 150여 개에 이르는 가격표를 교체했습니다. 당신은 “새로 나온 제품도 많고 재고 물량이 금방 바닥나 과자 진열대는 마트 노동자들이 일하기 힘들어하는 코너”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습니다. 인기 있는 과자들이 가득 찬 진열대는 1시간도 안 돼 이가 빠진 듯 빈틈을 보였습니다. 평일 오전인데도 당신은 과자 재고 물량을 가지러 창고를 두 차례나 왔다 갔다 했습니다. 마트를 방문한 손님 말고도 인터넷 주문을 받은 직원들이 장바구니에 과자를 담아가면서 일의 강도는 전보다 높아졌습니다. 당신을 따라 이날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2시간 사이에 걸은 걸음만 3천 걸음이 넘었습니다. 당신은 2만 걸음을 넘은 날도 있다고 웃었습니다.

만으로 7년차인 당신이 한 달 209시간 일해서 받은 기본급은 158만3천원이었습니다. 지난해 1월 최저임금(157만3770원)을 턱걸이로 넘긴 임금이었습니다. 올해 최저임금(174만5150원)을 크게 밑돕니다. 하지만 홈플러스 쪽은 ‘올해 최저임금 인상폭이 커 기본급을 그만큼 올려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신 기존에 주던 근속수당을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넣어 최저임금 부족분을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그전에는 설과 추석에 준 상여금을 12개월로 쪼개 최저임금 부족분을 돌려막겠다고도 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했지요. “상여금과 수당은 홈플러스노동조합이 마트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얻어낸 임금입니다. 근속수당을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하면 근속수당이 낮은 저연차 노동자의 임금 인상 폭이 고연차 노동자보다 더 커지는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연차가 높을수록 근속수당이 늘어나 최저임금 부족분이 줄어드니까요.” 당신은 과 만난 이날부터 준법투쟁에 들어갔습니다. “상여금 근속수당까지 건드리냐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쓰인 팻말을 등에 짊어진 채 오늘도, 내일도 당신은 과자를 진열합니다.

잊지 못할 댓글 “너희 수준이 그 정도인데…”

무례했습니다. 겨울방학 기간인 1월12일 오전 11시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청소하던 또 다른 당신이 물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잖아요. 다 공부 잘하고 번듯한 데서 일하면 애들 밥은 누가 짓나요?” 당신은 어느 날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조리원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아직도 기억했습니다. ‘너희 수준이 그 정도인데 최저임금만 받으면 됐지 애들 밥해주면서 얼마나 더 받으려고 하느냐. 공무원시험도 안 쳤으면서 무임승차하지 마라.’

몰랐습니다. 당신이 방학에도 학교 급식실에 나와 대청소를 하는 것을요. 식판, 반찬통, 밥솥 등을 수세미로 한 차례 닦고 뜨거운 물로 중탕하고 맨 마지막엔 세척기로 삶는지도요. 바퀴 달린 테이블 위에서 중심을 잡아가며 천장과 환풍기를 닦는지도 말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당신은 점심시간에도 휴게실에서 앉을 새도 없이 조리실 한쪽에 놓인 테이블에 동료들과 둘러앉아 점심을 해치웁니다. 하수구 바로 옆에서요. 초등학생들이 반찬을 타러 급식실을 왔다 갔다 하니까요.

지난해 만으로 4년차였던 당신이 받은 임금은 최저임금도 안 됐습니다. 기본급(164만원)은 지난해 최저임금(157만3770원​)보다 높았지만 한 달 노동시간이 243시간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올해 최저임금이 10.9% 올랐지만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근속수당을 포함하면 아마 실제 기본급 인상폭은 더 줄어들 겁니다. 사람들이 ‘밥하는 아줌마’라고 우습게 여겨요. 하지만 집 밖에서 학교 급식실만큼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이는 데를 찾기 어려울 겁니다. 다들 제 자식이 먹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서울시 생활임금 시급은 1만148원

대형마트에서, 학교 급식실에서 과 만난 이들처럼 올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290만 명(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 기준)에 이릅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2019년 생활임금 시급을 1만148원으로 결정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생활임금이 정부의 최저임금보다 먼저 ‘1만원 시대’를 연 겁니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인상만으로도 경영자 쪽에서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면 씁쓸합니다. 1시간 일한 임금으로 적어도 밥 한 끼 맛있게 먹고 커피 한잔 마실 여유가 있는 사회가 올 수 있을까요.

“알바를 리스펙트(Respect·존경하자)!”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정보 회사 ‘알바몬’ 광고의 한 장면입니다. 가수 사이먼 도미닉은 광고에서 묻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그럼 다들 해보실래요? 알바도 능력이야.” 수십 개의 립스틱에서 ‘딸기우유 핑크’ 색깔 립스틱을 단숨에 찾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초콜릿칩 프라페에 샷 하나만 추가해주시고요, 모카 시럽 네 번, 헤이즐넛 세 번, 초콜릿 시럽 두 번, 휘핑크림 세 바퀴만 얹어주세요”라는 손님의 주문을 한번에 외우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이 만난 이들처럼 모두 최저시급 노동자입니다. 여러분,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이 하는 노동의 값어치가 과연 ‘최저노동’인가요.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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