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종은 해마다 국가 발전을 기원하는 ‘진호국가불사’를 연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교세를 얻기 시작한 진각종의 뿌리에는 ‘호국 불교’ 정신이 있다. 2015년엔 광복 70주년을 맞아 성대하게 불사(부처가 중생을 교화하는 일)가 진행됐다. 분명한 종교 행사였다.
전자우편으로 최소 분담액 공지2015년 4월27일, 진각복지재단 산하시설 직원들은 이상한 전자우편 한 통을 받았다. “각 산하시설 시설장님 이하 직급별 서원(소원) 등 달기 최소 분담액을 공지하오니, (중략) 위의 계좌로 동참하신 후 개개인 동참 내역을 시설별로 취합하여 법인 사무처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진호국가불사 때 등을 달아야 하니 그 비용을 내라는 공지였다. 전자우편에는 각 직원의 이름과 금액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재)대한불교진각종 유지재단의 계좌번호도 담겼다. 개인별로 수십만원씩 할당된 금액을 그 계좌로 보내라는 지시였다. 그리고 직원들이 돈을 냈는지 여부를 시설장들이 파악해 보고하라고 했다.
이런 요구는 사실상 ‘후원금 강요’다. 진각복지재단의 44개 산하·관리시설 700여 명의 직원 상당수는 진각종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진각종 정사(승려)나 교도는 드물다. 대부분 사회복지 업무를 할 목적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세운 노인요양원이나 어린이집 직원으로 취직한 민간인이다. 진각종 산하 진각복지재단은 그 시설을 잠시 위탁받아 운영할 뿐이다(일부는 직영). 하지만 전자우편을 보낸 쪽은 인사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요구를 거절하기 쉽지 않았다.
후원금 강요는 수시로 이뤄졌다. 2015년 8월 카루나합창단 창단 비용 1천만원, 2016년 5월 만등 달기 비용 1천만원, 2016년 9월 진각종 총인원 성역화 공사 봉축 불사 기념 소나무 구입비 1천만원, 2016년 12월 회향의 밤 분담금 등 밝혀진 것만 수천만원에 달했다. 직원들은 그때마다 각자 수만~수십만원씩 비용을 냈다. 진각종에서 열리는 행사의 티켓을 팔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2018년 8월 서울시 특별지도감독(특감) 과정에서 드러났다. 서울시는 2018년 12월 진각복지재단에 보낸 처분사전통지서에서 대표이사와 상임이사에게 해임 명령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현재 소명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은 자체 취재로 이와 같은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진각복지재단 산하시설 직원들은 종교 행사 참석도 강요받았다. 진각종은 월초 불공, 수요일 불사, 자성일(일요일) 불사, 계명(새벽) 정진 등을 열었다. 진각복지재단 산하시설 직원들은 간담회, 사업계획 발표 등을 하기 전 탑주심인당(절)에서 불사를 드리기도 했다. 공식 업무에 포함된 일정도 있었고, 새벽 6시부터 열리는 명상도 있었다.
단체 카카오톡방이 안내 창구 구실을 했다. 진각복지재단 법인사무처가 진각종 행사 때마다 “시설장 및 중간관리자, 직원 모두 참석할 수 있도록 독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글을 올리면 산하시설장들이 “네 참석하겠습니다”라고 답글을 달았다.
인사평가에 ‘심인당 참여 정도’ 반영종교 행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진각복지재단의 ‘시설장 자기평가서’에는 ‘소속 직원의 심인당 참여 정도’ 항목이 있다. 시설장들은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소속 직원들에게 자의든 타의든 종교 행사 참석을 강요했다. 진각종 서원가(불교 노래)를 부르는 카루나합창단에 참여하라는 요구도 있었다.
직원 A씨는 기독교인이다. 일요일은 늘 바빴다. 오전 9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10시에 탑주심인당에 갔다.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고 정사(승려)들의 설법을 들었다. 오후 2시에는 카루나합창단에 가서 서원가를 불렀다. 끝나면 4시가 넘었다. A씨는 “내 종교와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데서 느끼는 죄스러움이 있었다. 생계를 이어가야 하니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학문’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사실 어느 사회복지재단이든 종교 강요가 있기 때문에 그러려니 감수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후배 기독교인들에게는 “앉아만 있으면 되니까 눈 감고 자거나, 염송 대신 기도를 해라”고 조언했다.
단순 종교 강요를 넘어 일을 시키기도 했다. 진각복지재단 사무처는 2016년 1월부터 12월까지 순번을 정해놓고 진각종 월초 불공 때마다 배식 봉사를 맡겼다. 1월에는 수락요양원, 2월에는 진각노인요양센터, 3월에는 성북노인종합복지관 직원들이 일요일에 나와 밥을 펐다.
후원금과 종교 행사 강요는 진각복지재단 법인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했다. 진각복지재단의 최고 결정권자인 대표이사와 상임이사는 모두 진각종 정사다. 진각종 최고실무자인 통리원장(조계종 총무원장 해당)은 진각복지재단 대표이사를 당연직으로 겸한다. 진각종 종단에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2015~2016년 진각복지재단 대표이사는 회정 정사(김상균)였다. 그는 현재 진각종 최고지도자인 총인(조계종 종정 해당)이다. 회정 정사는 과 한 통화에서 “후원금이나 종교 행사 참석을 강요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후원금 할당도 “전혀 몰랐다”며 “법인사무처나 시설장들이 충성하려고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법인사무처에서 후원금 할당과 종교 행사 참석을 독려한 사람 중엔 총인의 아들도 있었다. 그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법인사무처 사업부장(실무자 서열 2위)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진호국가불사 후원금 요구 전자우편도 그가 보낸 것이다. 후원금 할당을 몰랐다는 회정 정사의 설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사회복지 노동자 62% ‘비자발적 후원하고 있다’진각복지재단의 현 대표이사인 회성 정사(김봉갑)는 “복지재단 행사를 할 때 종단에서 자리를 무상으로 빌려주기도 하는 등 서로 돕는 사이다. (후원금과 종교 행사 참여 요구도) 그런 관계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 같다. 다만 세상이 바뀌고 이제는 문제가 될 수도 있어서 내가 대표이사가 된 2017년 이후로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울시 특감에서 나온 비위 사실은 이뿐이 아니다. 종교에 따른 차별 행위도 있었다. 진각복지재단 규정 중 장기근속상과 모범직원상 선정 기준으로 “대한불교진각종 신교도로서 신행을 성실히 하며 수계를 받은 자”로 한정한 것이다. 인사권 남용도 있다. 산하시설 직원들의 인사권은 각 시설장에게 있는데도, 법인에서 각 시설 종사자를 무단으로 해고하고 신규 채용했다.
이런 불법행위들은 사실 진각복지재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가 2018년 3월 서울시 사회복지 노동자 150명에게 온라인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종교 행사가 가미된 공식 업무가 있다”는 응답이 60%에 이르렀다. “참석하지 않을 시 불이익이 있다”고 답한 사람도 반이 넘었다.
후원금 강요는 더욱 만연했다. “법인이나 시설에 후원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79%였는데 “후원 동기가 자발적이지 않았다”는 비율이 62%나 됐다. 할당된 모금액을 개인 돈으로 냈다고 답한 비율도 비슷했다. 후원의 상당수가 강요로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1인당 평균 후원액은 연 18만원이었다.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의 민간 종교 중심 위탁운영 구조로는 종교성, 인사 문제, 운영 비리 등은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다. 특정 법인의 문제로 초점을 맞추기보다 정부의 무책임한 위탁운영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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