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이하 전우회)는 1997년 12월 설립됐다. 그때부터 2018년 초까지 21년여 동안 전우회는 핵심 간부 3인방의 종신제 왕국이었다. 지난해 1월 주택 사업 비리로 한꺼번에 구속된 이형규 전 회장, 김성욱 전 사무총장, 김복수 전 사업본부장이 주인공이다. 1997년 전우회 법인화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이 전 회장은 초대부터 죽 (회장 위의) 총회장을 지내다가, 지난해 구속 전까지는 7대 회장으로 재임 중이었다. 김 전 사무총장과 김 전 사업본부장도 설립 초기부터 잠시의 공백도 없이 같은 보직을 유지했다.
해마다 11~12월 전국 순회3인방에 버금가는 2인을 꼽으라면, 박근규 전 서울시 지부장과 황규승 신임 회장(전 경기도 지부장)이다. 지난해 4월 장례식장 운영을 맡기면서 3억원을 상납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박 전 지부장 또한 1997년부터 서울시 사령탑 자리를 지키며 군림했다. 5인방을 통틀어 유일하게 감옥에 들어가지 않은 황 신임 회장은 줄곧 경기도 지부장을 하다가 구속된 3인방의 후임으로 지난해 4월 중책을 맡게 됐다.
3인방은 그들만의 종신제 왕국에서 20년 이상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김 전 사무총장은 해마다 11~12월이면 전국을 돌면서, 지부와 지회 조직 군기 잡기 감사에 나섰다. 서울시의 ㅇ지회장은 “중앙회에서 지원금 내려보내는 것도 없으면서 해마다 감사한다면서 군기를 잡는다”면서 “워낙 위세가 당당하니까 지부장과 지회장들은 고분고분 떡값을 준비하고 비위를 맞춘다”고 말했다.
3인방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감옥에 들어간 회원도 여럿이다. 서울 시내 지회장 출신인 ㅂ씨 등은 2011년 전우회의 주택 사업 비리를 제기하는 무리에 가담했다가 중앙회에서 쫓겨나고 전과자가 됐다. 당시 회원들을 이끌고 중앙회 사무실을 찾아갔던 배상환 현 적폐청산추진위원장은 “이형규 총회장을 만나 비리 혐의자인 김성욱 사무총장과 김복수 사업본부장 사표를 받으라고 요구한 것이 화근이었다”면서 “그 일을 함께했던 5명의 동료 회원들이 고발당해 징역 살았고 나도 전과자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이 좋아져서 지금 우리가 나설 수 있지, 과거 정권 같으면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도 3인방이 꿈쩍도 안 한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국정원과 검찰, 경찰 모두 자기들 손아귀에 쥐고 놀았다”고 말했다.
황 신임 회장 체제에 대한 회원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서울시 한 지회를 맡고 있는 ㅈ씨는 “황 회장이 아직 정신 못 차리고 구속된 전임자들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다는 소문이 자자하다”면서 “과거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가 언제까지 무사할지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은 수차례 시도했으나, 황 회장 쪽과 직접 접촉할 수 없었다.
“황 신임 회장, 전임자 지시 받는다”지난해 4월, 8대 회장으로 취임한 황 신임 회장은 취임사에서 “대내외적으로 많은 문제가 드러났지만, 전임 회장단의 노력과 희생으로 우리 단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는 발언을 던졌다. 그러면서 “이제는 회원들을 위하여 노력하는 회장이 될 것을 약속드린다”는 뜻도 밝혔다. 이는 전임 회장단과의 굳은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는 심정과 분노한 회원들을 끌어안겠다는 의지를 동시에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회원들을 이용해 3인방의 배를 불렸다”는 배신감이 확산되면서, 회원들의 분노의 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라는 종신제 왕국을 떠받치던 밑돌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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